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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궁내동 톨게이트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궁내동 톨게이트
ⓒ 김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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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나 차가 막힐 때 길게 줄이 서 있으면 제가 도리어 긴장을 해요.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느냐'고 짜증내는 분들이 많거든요. 그래서 명절에는 도로교통상황부터 먼저 확인하고 마음의 준비를 해요."

28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궁내동 톨게이트(서울영업소)에서 9년간 요금 징수 업무를 담당해온 오화자(48, 여)씨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오씨의 일터는 고속도로 한복판, 0.5평(1.65㎡)짜리 작은 부스다. 추석을 이틀 앞두고 서울영업소 노동자들은 모두 한복을 차려입었다.

요금소로 들어오는 차의 번호를 카메라가 자동으로 판독하면 오씨 앞에 놓인 컴퓨터 모니터에 '차가 어디서 왔는지' '내야 할 요금이 얼마인지' 등이 자동으로 뜬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즐거운 명절되세요"

차량 한 대 한 대마다 같은 말을 반복한다.  

서울영업소는 하행(부산 방향) 12개와 상행(서울 방향) 20개의 차로로 하루 평균 10만 대의 차량이 이곳을 통과한다. 하행은 무인 티켓 발행기이지만, 상행은 하이패스구간 6개의 차로를 제외하고 14개의 부스에서 정산원이 차량을 맞는다. 전국 326개의 톨게이트 중 가장 큰 규모다. 추석 연휴 기간에는 귀경 차량이 몰리니 1년 중 가장 바쁜 날이다.

자동차 소음과 매연, 3교대 불규칙한 생활 견뎌

톨게이트 정산원은 하루 8시간씩, 주 5일을 3교대로 일한다. 낮 근무, 밤 근무, 새벽 근무까지 일 주일에 3교대가 다 들어 있다. 5일 중 이틀은 새벽 6시부터 오후 2시까지, 또 다른 이틀은 오후 2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한다. 일주일 중 하루는 밤 10시에 출근해 새벽 6시에 퇴근한다. 영업소에서 짜주는 근무표대로 돌아간다. 개인사정이 있을 때는 근무자들끼리 휴무를 바꾸는 방식이다. 월급은 약 140만 원. 그래도 중간에 쉬는 시간 40분과 식사시간 50분이 있기 때문에 임금과 근무환경은 좋은 편이라는 게 오씨의 설명이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궁내동 톨게이트 요금소 부스 내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궁내동 톨게이트 요금소 부스 내부.
ⓒ 김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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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죽박죽 3교대로 인해 생활은 불규칙해질 수밖에 없다. 대부분이 40~50대 주부인 요금소 근무자들은 이런 생활이 "오히려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서 좋다"고 말한다. 새벽부터 일해 오후 2시에 퇴근하면 오후에 집안일을 할 수 있고, 밤에 일하면 낮에 미리 일을 처리하고 나오면 되기 때문이다.

전국 326개 영업소 모두 외주사업자를 통해 위탁경영을 하고 있어 요금소 근무자들은 모두 비정규직이다. 고용불안을 감내해야 하지만 오씨는 "이 나이에 일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하다"고 말한다.

하루 종일 매연에 노출되는 요금소 근무자들의 건강이 걱정됐다. 오씨는 "공기가 안 좋은 건 어쩔 수 없다"며 "어디에서 일하든 장단점이 있을 것"이라고 가볍게 넘겼다. 소음과 매연이 건강에 좋을 리는 없다.

게다가 정산원들은 고속도로 한복판, 차들 한가운데 앉아 있다. 물론 정산소 박스 위에 '에어커튼'이 달렸다. 유일한 환기시설이다. 여름에는 에어컨, 겨울에는 온풍기 역할을 한다. 에어커튼이 외부공기를 차단해 준다고는 하지만 항상 창문이 열려 있으니 그 공기가 그 공기다.

하루에 지나치는 얼굴만 수천 명

사람을 상대하는 일과 돈을 만지는 일은 까다롭다. 톨게이트 노동자는 단 10초 안에 이 두 가지 일을 척척 해내야 한다. 조금이라도 지체되면 운전자들에게 짜증과 욕설을 듣기도 한다. 오씨는 "이 줄만 왜 이리 늦느냐고 화를 내는 고객님들이 많다"며 "나름대로 열심히 일을 처리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럴 때는 속상하다"고 말했다.

하이패스 구간이 생기고, 요금을 전자카드나 후불카드로 지불하는 차량이 늘어 과거보다 지체되는 시간은 줄었다. 하지만 요금소 근무자들이 잔돈과 영수증 주는 일만 하는 건 아니다. 할인카드나 통행료 카드 충전 등 다른 업무도 처리해야 한다. 또 운전자가 잔돈을 미리 준비하지 않아 시간이 지체될 때도 있는데, 정산원이 부지런히 일하지 않은 탓으로 돌리는 사람도 많다.

9년 차인 오씨는 고객들의 짜증과 욕설에 '달관'한 경지에 이르렀다. 그의 대처법은 간단하다. 일단 참고, 더 웃고 더 열심히 인사하기. 그는 "인사하는 사람한테 화내지는 않을 거 아니냐"고 말했다. 욕을 듣더라도 바로 잊어 버려야만 다음 고객을 대할 수 있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훌훌 털어버린다"고 했지만 마음에 남지 않을 리는 없다.

한국도로공사 관계자는 "운전자가 장시간 운전해서 스트레스도 쌓인 데다 가는 길을 막고, 요금을 징수하니까 기분이 좋지 않을 수도 있다"며 "고객들이 욕을 하는 등 난감한 상황에도 참아야 하고 친절하게 대해야 하는데, 여성들이 그런 능력이 탁월하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요금소 근무원이 여성인 이유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궁내동 톨게이트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궁내동 톨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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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치 않지만 아직은 인색하지 않은 세상

오씨는 "그래도 세상에 따뜻한 사람들이 많다"며 밝게 웃었다. "수고하세요" "고맙습니다" "고생하시네요"라며 먼저 인사를 건네는 운전자도 많다. 음료수 주거나 지방에서 올라오면서 사온 호두과자를 전해 주는 운전자도 있다. 그는 "요금소 직원까지 챙겨주는 마음의 여유가 있는 분들이 있다니, 아직 세상이 인색하지 만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28일, 한복을 차려입은 요금소 근무자들에게 몇 운전자들이 '고우세요' '아름다우시네요' '추석 잘 쇠세요'하는 덕담을 건넸다. 추석 명절, 넉넉해진 마음만큼이나 따뜻한 정이 오간다. 오씨는 그 어느 때보다 고객이 자신의 이름을 불러줄 때가 가장 좋다고 한다.

"제 이름이 예쁘지는 않지만, 제 이름표를 보고 '오화자씨 수고하세요'하고 가실 때가 제일 기분 좋아요."

가끔 자식뻘 되는 젊은 사람이 '아줌마'라고 부르며 말을 거칠게 하면, 자신을 홀대하고 존중해주지 않는 것 같아 기분이 상할 때도 있다.

하루에 그를 스쳐가는 사람만 2000여 명. 이제는 사람들의 얼굴만 봐도 대충 어떤 성격인지 안다. 욕을 하는 사람, 농을 하는 사람, 보자마자 화부터 내는 사람, 심지어 야간에는 성희롱을 하기도 하는 등 별의별 사람을 다 만난다. 인사를 해도 반응이 없거나 냉대하는데 한결같이 미소를 보이며 인사를 건네야 할 때도 많다. 짧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순간. 요금소 근무자들은 고객이 눈인사라도, 인사에 대꾸라도 해주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오씨는 "이곳에서 일하는 분들 모두 열심히 살아가는 엄마이자 아내"라며 "남들 쉬는 명절 연휴나 휴가 때 더 바쁘게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요금을 받고 잔돈과 영수증을 건네는 시간은 단 몇 초. 하지만 그 짧은 순간에도 사람간의 정이 전해짐을 알기에 오씨는 오늘도 밝게 웃는다.


#톨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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