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서울 노원역 길가에는 이런 알찬 한뼘 가게들이 많다.
서울 노원역 길가에는 이런 알찬 한뼘 가게들이 많다. ⓒ 김종성

서울 노원구 상계동 노원역 주변. 친구는 "이곳에 언제나 손님들이 줄에 줄을 서 있다는 맛집이 있다"고 했다. 친구는 이 부근을 지나칠 때마다 '저긴 왜 사람들이 저렇게 줄을 서서 기다리지?'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결국 그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한 번 찾아가 보게 됐고, 이후 그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줄을 서게 됐다고.

지난 21일 찾아간 나도 가게 앞에 줄을 서게 됐다. 기다린 시간은 25분. 길 위에서 시간을 보냈지만, 후회가 되지는 않았다.

'정말 맛있는'의 요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가격대비 극강의 맛'을 지닌 크로켓과 꽈배기, 찹쌀 도넛을 먹을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영업이 시작되는 낮 12시가 넘으면 기다렸다는 듯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는 것이 낯선 풍경이 아닌 일상이 됐다.

노원역 주변에는 작은 포장마차 노점 혹은 한뼘 가게들이 많다. 그중 가게 이름도 특이한 '구·법원'을 찾는 것은 아주 쉽다. 왜냐면 그 가게 주변은 주로 여성 손님들이 가게를 호위하듯 둘러 에워싸기 때문이다.

하나에 500원... 일식집 크로켓들 속상하겠네

 최상의 맛을 내기 위한 방법으로 디지털 타이머가 쓰인다.
최상의 맛을 내기 위한 방법으로 디지털 타이머가 쓰인다. ⓒ 김종성

오전에 나와 식재료 준비를 한다는 지금의 주인아저씨는 가게 이름의 유래에 대해 "처음 이 가게를 시작한 곳이 춘천의 구 법원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그는 서울대 근처로 가게 터를 옮겼다가 몇 년 전 이 동네로 안착했다고. 가게 정면에는 'Since 1976'이라는 글귀가 자랑스럽게 적혀 있었다.

작은 가게지만 30년이 훌쩍 넘은 역사, 그리고 그 역사를 함께해 온 주인의 공력이 한눈에 느껴진다. 이 가게를 소개한 내 친구는 "그냥 길거리 음식을 파는 데가 아냐"라고 설명했다. 아마 주인아저씨의 오래된 경력 때문에 나온 말이 아닌가 싶다. 메뉴는 찹쌀도넛 두 종류와 팥빵, 꽈배기 각각 한 종류, 인기 메뉴인 크로켓 세 종류 총 7가지가 있다.

개당 500원이라는 가격도 놀랍다. 크로켓까지 500원이라니 일식당의 크로켓이 기절할 노릇. 그렇다고 크기가 작은 것도 아니다. 이 가게에서 가장 잘나가는 품목은 크로켓으로 그중 김치크로켓이 가장 잘 팔린단다. 속이 텅 비었고, 야채는 눈곱만큼 들어간 그저 그런 길거리 크로켓과는 차원이 다르다. 꽉 찬 속, 뭔가 입안에서 가득 채워지는 듯한 느낌! 이 가게의 크로켓은 길거리 음식에 대한 편견이 싹 사라지게 하는 식감을 자랑하고 있었다. 또한, 쫀득쫀득한 팥 도넛도 일품이었다.

돈 만지지 않는 주인아저씨, 그 이유는?

 유난히 쫀득하고 찰진 맛에는 좋은 식재료가 기본이다.
유난히 쫀득하고 찰진 맛에는 좋은 식재료가 기본이다. ⓒ 김종성

 주인장의 철학이 엿보이는 크로켓 속, 길거리 음식의 편견을 사라지게 한다.
주인장의 철학이 엿보이는 크로켓 속, 길거리 음식의 편견을 사라지게 한다. ⓒ 김종성

젊은 사람도, 어르신들도 다들 좋아하는 도넛과 크로켓의 맛은 주인장의 오랜 경력에서 나왔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가게 안쪽 나무 기둥 한 귀퉁이에 붙어있는 작은 디지털 타이머에 눈길이 갔다. 7가지의 메뉴별로 튀겨내는 온도가 다르니 가장 맛있게 느껴지는 온도에 타이머를 맞춰 그 시간을 엄수한단다. 오랜 경력에 과학적인 노력이 들어갔기에 명불허전의 맛이 나온 듯하다.

이 가게를 가장 많이 찾아오는 손님은 여성들이다. 10대 청소년에서 할머니까지 발길을 돌리게 하는 이 가게 음식들의 매력은 아무 메뉴나 하나만 먹어보면 금방 알게 된다. 내용물이 꽉 차있으면서도 바삭바삭한 식감, 조미료 맛이 강하지 않고 담백해 질리지 않는 맛이 인기의 비결이다.

취향에 따라 먹거리를 사서 봉지에 넣고 계산을 하는 모든 과정이 셀프로 이뤄지는 '자율계산제'도 이채롭다.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시스템이다. 이 가게를 소개한 내 친구는 이를 두고 '빌리브 유 시스템(Believe You System)'이라고 칭했다. 사실 도넛을 만들면서 돈을 주고받으면 위생상 좋지 않아 주인아저씨가 그렇게 한 것이란다.

한편, 여타 가게와는 다른 결제 시스템이 있다. 이 가게에는 하도 사가는 사람이 많아 기다리던 사람이 먹거리를 사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해 1인당 5000원어치 이상은 구매하지 못하는 게 바로 그것. 손님들에 대한 주인아저씨의 배려와 이 가게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저렴한 가격서부터 자율계산제, 그리고 변함없는 맛까지... 손님들을 생각하는 주인아저씨의 세심한 배려와 장사 철학을 엿볼 수 있었다. 이러다 보니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질 수밖에. 역시 자신만의 장점과 철학을 가지고 꾸준히 정진하면 세상은 그 노력을 인정해주는 법인가 보다.


#한뼘가게#구법원#고로케#노원역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