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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군사관학교를 수석입학했던 그는 청와대 경호를 하는 55경비대에서 소대장을 역임했다. 군인으로서 앞길이 창창했던 그는 군 제대 후 고향 제주도에서 '제주해군기지 반대운동'을 하고 있다. 사진은 55경비대 소대장 시절 청와대 경호실 차장에게 보고를 하고 있는 송창욱씨의 모습.
육군사관학교를 수석입학했던 그는 청와대 경호를 하는 55경비대에서 소대장을 역임했다. 군인으로서 앞길이 창창했던 그는 군 제대 후 고향 제주도에서 '제주해군기지 반대운동'을 하고 있다. 사진은 55경비대 소대장 시절 청와대 경호실 차장에게 보고를 하고 있는 송창욱씨의 모습. ⓒ 송창욱 제공

육군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입학(1984년)했다. 청와대 경호를 하는  55경비대에서 소대장을 역임했다. 55경비대 소대장은 출세가 보장된 '황금보직'으로 통했다. 정통 군인의 길을 걸었을 법한 그가 지금은 '구럼비를 죽이지 마라'는 구호가 적힌 노란 옷을 입고 전국을 누비고 있다.

"강정마을에 건설하려는 해군기지는 우리 국가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합니다. 우리의 주적인 북한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휴전선에서 가장 먼 제주에 기지를 건설할 필요가 없습니다. 정부 주장대로 이어도 자원 확보나 남방 해양 수송로 확보를 위한 것이라면 해군기지를 짓는 게 아니라 해경 기지를 건설하거나 확장해야겠죠.

영토 분쟁이나 공해 상 수송로 확보 작전은 국제 해양법 상 해군이 절대로 개입할 수 없는 영역이며, 만약 어느 나라이건 해군이 출동하면 이는 바로 전쟁과 국제적인 제재를 받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정부의 주장은 완벽한 허구이며 대국민 기만입니다."

이젠 예비역 육군 장교인 송창욱(46)씨. 그가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여러 이유 가운데 으뜸은 '안보 위협'이다. 그의 설명을 더 들어보자.

"제주해군기지 건설의 목적은 미국의 대중국 MD(미사일방어)의 일환인 거죠. 지금의 국제 정세 상 미국 위주의 안보 정책은 우리나라를 심각한 위협에 빠뜨린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코 밑에 러시아 미사일 기지를 건설할 수 있도록 했다가 수십 년째 국제적으로 고립된 쿠바의 예를 보십시오. 미국이 우리를 끝까지 지켜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러시아가 쿠바를 버렸듯이 미국도 우리를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운명은 도마 위에 놓인 생선처럼 중국의 식칼 밑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삼성물산이 돌린 시뮬레이션에는 항공모함 정박 시뮬레이션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 항공모함이 제주해군기지에 기항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게 공군기지입니다. 항공모함 탑재기들은 기항시 반드시 육지 비행장에 기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요즘 한창 제기되고 있는 제주 신공항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고 있는 이유입니다. 제주를 자연과 함께 하는 생명평화의 섬이 아니라 온통 전쟁기지로 뒤덮인 죽음의 섬으로 만들고 싶은 건지 위정자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육사 출신 선후배들로부터 적잖은 공격을 받았다. 지난 2009년엔 당시 제주도 기무부대장이었던 선배로부터 '빨갱이'이라는 욕까지 들었다. 지난해 가을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거리공연을 하고나서부터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육사 선후배들로부터 그의 표현대로 치면 '조금 거친 공격'을 받기도 했다.

육사 출신 그의 눈으로 봤을 때 제주해군기지 건설은 도저히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자연스럽게 반대 입장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행동'에 나섰던 것은 아니었다.

고향 제주도 거리공연으로 시작한 '해군기지 건설 반대 운동'

 제주해군기지 건설 현장 사무소에 앞에서 거리연설을 하고 있는 송창욱 씨. 그는 다른 이유도 아닌 바로 '안보'때문에 제주해군기지를 건설해선 안된다고 주장한다.
제주해군기지 건설 현장 사무소에 앞에서 거리연설을 하고 있는 송창욱 씨. 그는 다른 이유도 아닌 바로 '안보'때문에 제주해군기지를 건설해선 안된다고 주장한다. ⓒ 송동효


지난해 4월 양윤모 전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이 폭력으로 연행 당하고, 그가 감옥에서 옥중단식을 하자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차에 육사 동문인 신구범 전 제주지사가 양 전 회장의 단식에 동조단식을 하며 해군기지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자 참았던 울분이 터졌다.

"저는 학생운동이나 시민운동을 해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어느 날 친구랑 술을 마시다가 '구호를 외치거나 운동가를 부르는 것이 익숙하지 않고 약간은 거슬리기까지 하다'고 털어놨어요. 그랬더니 운동권 출신인 친구가 '내가 기타만 칠 줄 알고 노래만 잘 불렀다면 길거리에 나가서 노래를 하면서라도 시민들에게 강정을 이야기할 수 있을 텐데…'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술김에 '그래? 노래는 내가 하지 뭐, 너는 유인물 나눠주고 서명 받을래?'…"

그렇게 '술김에' 한 약속을 핑계 삼아 그는 고향 제주도의 시내에서 거리공연을 시작했다. 그는 술김에 약속한 대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고, 친구는 유인물을 나눠주며 '제주해군기지 반대' 서명을 받았다. 하루가 이틀이 되고, 열흘이 스무날이 되고… 그렇게 한 달이 넘어갔고 많은 이들이 그와 함께 길거리에 서서 노래 부르며 '해군기지 반대'를 외쳤다.

그는 강정마을 평화활동을 하면서 "세상의 많은 가치들 중에서 생명과 평화가 가장 근본적이고 우선적이라는 신념이 생기게 되었다"고 했다. 또 "동생이나 조카뻘 되는 분들로부터 자연과 환경에 대한 배려, 인간에 대한 사랑 등 많은 것을 배우고 나만의 자만심에 빠져 있다가 내면으로부터 많이 겸손해졌다는 느낌도 든다"고 했다.

특히 그는 "강정과 강정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깊어질수록 제 생물학적 가족들에 대한 사랑도 더 깊어짐을 느낄 수 있다"며 "딸이 더 생길수록 제 친딸에 대한 사랑이 더 깊어지는 상황"이라고 예의 그 맑은 웃음을 머금으며 행복해 했다.

아무리 '사랑이 깊어지는 상황'이라지만 그에게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운동을 하다가 지금까지 모두 여섯 번 연행 당했다. 이 가운데 네 번은 약식기소로 벌금형을 맞았고, 한 건은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돼 재판이 진행 중이다. 구럼비가 처음으로 폭파되던 날 화약고 앞을 막았다는 이유로 일반 교통방해 혐의로 곧 기소될 예정이다.

그에겐 신념에 찬 행동이고, 새로운 가치를 배운 행복일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가족에겐 큰 고통일 수 있다.

"갑자기 잘 하던 학원 때려치우고 강정에 가더니 연행 소식이나 들려오고…. 생계는 어떻게 할 건지 궁금하고 막막했을 텐데 잘 견뎌주고 힘을 준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네요. 저도 생활인임을 자각하고 열심히 경제활동 하면서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활동을 슬기롭게 병행해 나갈 테니 조금만 더 믿어주길 부탁합니다."

 이제는 '장교'가 아니라 '욱꽃'이라 불리는 사내 송창욱. 궂은 날씨에 아랑곳않고 그는 전남 목포와 여수, 서울에서 열린 강정마을 지키기 촛불집회에 함께 했다.
이제는 '장교'가 아니라 '욱꽃'이라 불리는 사내 송창욱. 궂은 날씨에 아랑곳않고 그는 전남 목포와 여수, 서울에서 열린 강정마을 지키기 촛불집회에 함께 했다. ⓒ 송동효

강정마을 사람들은 그의 맨 마지막 이름 자인 '욱'에 '꽃'을 붙여 '욱꽃'이라 부른다. 나라를 지키는 무기에서 평화를 지키는 꽃이 된 사람 송창욱. 그는 "아직도 사람들이 강정의 현실을 모른다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고 애타한다.

더 물어볼 게 있어서 1일 오후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남 목포와 여수에서 열렸던 강정마을 지키기 촛불집회에 참석하고 서울에 있단다. 8일에 제주로 돌아갈 예정이라 해서 그때까지 계속 촛불집회에 참석하냐고 물었다.

"서울 대한문 일정만 참석하고 나머지 일정은 저도 생활해야 하니까 일을 좀 하려구요, 하하하."


#강정마을#제주해군기지#송창욱#육사#경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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