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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음악이 하고 싶어졌다, 왜?

필자의 스무 살 된 동생은 매일 작은 연습실에 틀어박혀 열심히 노래 연습을 한다. 가수의 꿈을 키워온 지 어느 덧 5년째. 합격통보를 받는 행운의 지원자는 학과 당 열 명 안팎으로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입시의 문은 그토록 좁았고, 작년에 고배를 마신 뒤 올해 다시 도전 중이다. 동생이 다니는 곳은 인천시내의 한 유명한 실용음악 입시 학원.

그런데 동생이 얼마 전부터 예민해졌다. 확장 공사를 하고 있음에도, 날로 몰려드는 입시생들로 학원건물은 이미 포화상태 그 이상에 이르렀기 때문에 연습실 예약하기가 녹록치 않다는 것이다. 따로 비용을 치러가며 근처 연습실 전용 건물을 빌려 쓰는 것을 고민 중이라며 다시 아르바이트를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는 모습이 안됐었다.

인천에 있는 모든 고등학생들 다 거기로 몰린 건가 싶었는데, 지방에서 올라와 자취하며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도 허다하다는 이야기를 동생이 덧붙였다. 부산, 대구 지역에서 매주 레슨 받으러 오는 아이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고 한다. 도대체 다들 왜 이렇게 음악이 하고 싶어 안달난 걸까.

오디션 열풍과 뮤지션 드림

수많은 학생들이 '갑자기' 음악인으로서의 꿈을 갖고 실용음악과로 몰리는 현상의 이유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최근 불고 있는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아이들은 그것을 보고 자신도 화려한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고 수많은 관중들에게는 뜨거운 주목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 환상에 사로잡힌다. 우리나라에 노래 나오면 '얼쑤!' 하며 흥에 겨워하지 않는 이 있는가. 노래방 많이 다녀봤고 노래 좀 부를 줄 안다는 이들 수두룩하다. 과감히 도전하기로 한다. 나도 스타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이에 따라 실용음악 등 예능 관련 학과 역시 덩달아 인기몰이를 하고 그것이 사교육왕국인 한국사회에서 실용음악 입시학원 급증으로 이어진 것은, 어쩌면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당연한 귀결인지 모른다. 올해 국내 대학의 실용음악과 경쟁률은 평균 100대 1이라는 사상 최고의 기록을 남겼다. 특히 상위권 대학의 보컬 전공 부문 경쟁률은 500대 1이 넘기도 했다.

실용음악과 개설 대학도 늘고 있는데 최근 4년 사이 실용음악과 개설 대학이 그 전에 비하여 두 배가 된 것은 실용음악과를 지원하는 수험생의 수가 급증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대학으로선 높은 실기시험 지원비만으로 보장된 수입원을 챙길 수 있게 된 셈이니 관련 학과를 신설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문제는 (오디션 열풍 아닌) 제도권 입시야, 바보야!

과연 오디션 열풍 현상에 이 모든 책임을 돌릴 수 있을까. 그것은 하나의 계기로서의 역할을 했을 뿐, 학생들은 이미 억압적인 제도권 입시의 틀을 벗어나게 해 줄 돌파구를 갈구하고 있었다. 지난해 자살한 우리나라 초중고교생은 모두 150명에 달한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청소년 5명 중 1명이 자살충동을 느끼고 있다고 하니 그들의 삶이 얼마나 피폐한지 가히 짐작할 수 있다. 그들 개개인의 삶은 너무도 오랫동안 조명을 받지 못해왔다. 무엇보다도 삶의 가치와 의미를 몸소 느끼게 하는 참 교육은 사라진지 오래다. 천편일률적인 입시 목표와 작은 교실 속 무한 경쟁체제 하에서, 그들 스스로가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 또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묻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은 채 고유의 인간성, 정체성을 상실하도록 방치한 것이 우리 교육의 초상이다. 있는 그대로의 삶이 존중받고 그것이 받아들여지며 자연스레 소중한 꿈으로 발전해가게 하는 기반이 없는 사회에 매몰되어, 그들은 방황하고 또 방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오디션 열풍이 가져다준 뮤지션 드림은 화려한 희망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즉 굳이 뮤지션 드림이 아니었다 해도 학생들은 -어떠한 형태라도 상관없이-그 무언가가 절실했던 것이다.

다시, 갈 곳을 잃은 아이들

그리고 그것은 드림 그 자체라기보다는, 드림의 역할을 충실하게 대행해주는 하나의 매개체, 대변자로서의 드림에 불과했다. 희망이라는 이름의 잔인한 허상일 뿐이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예체능 교육마저도 한탕주의로 내모는 사회의 흐름에 휩쓸려, 오늘도 실용음악 입시학원 문을 두드린다. 말 그대로 로또 복권 당첨을 꿈꾸면서 말이다. 이제 그들을 맞이하는 것은 숨 막히는 교실과 다를 바 없는 풍경, 입시지옥이다. 아니, 이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은 어쩌면 더 지독할지 모른다. 적어도 이 영역에서만큼은 가장 보호받아야할 창의성의 자리에마저 천박한 입시전략이 들어섰다. 남들보다 더 튀기 위해, 합격하기 위해,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내달리는 그들은 이제 스스로를 착취하는 지경에까지 다다른다. 누가 예술에는 방향성 없는 자기 착취가 뒤따른다고 했던가. 뮤지션 드림은 처음부터 없었다.

물론 혹독한 착취는 그 결과마저 안전하게 보장해주지 못한다. 배신 뒤에 더 큰 배신이 기다리고 있다. 입시에 실패하고 뮤지션 드림의 허상에 '새파란 초승달이 시린' 아이들은 이제 또 어디로 가야할까. 또 다른 '내가 아닌 타자가 던져준 드림'이 올 때까지, 얼마나 더 많은 아이들이 갈 길을 잃고 헤매야 할까. 그리고 그들은 다시 배신당할 것이다.

거짓된 드림은 더 이상 안 된다. 거짓은 거짓을 낳는다. 꿈이 없는 사회는 위험하다. 그러나 왜곡된 꿈을 안고 살아가게 하는 사회는 더더욱 위험하다. 이제 오디션 열풍 탓은 그만할 때도 되었다. 아이들에게 진정한 꿈을 심어줄 수 있는 참 교육의 회복만이 희망이 될 수 있음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 그 희망의 첫 걸음이다.


#오디션 열풍#실용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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