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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일 오전 서울 송파구 배명중학교에서 열린 '학교폭력 자정 결의대회'에서 학생들이 학교폭력 추방을 다짐하며 결의문을 낭독하고 있다.
7일 오전 서울 송파구 배명중학교에서 열린 '학교폭력 자정 결의대회'에서 학생들이 학교폭력 추방을 다짐하며 결의문을 낭독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행은 힘이 세다. 관내 초, 중, 고등학교 학생부장들이 올 여름에도 어김없이 해외 나들이를 떠나게 될 것 같다. 꽤 오랜 기간 행해졌던 것이라 학사일정의 한 꼭지로 여겨온 터여서, 학생부장들이나 공문을 내리고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 중에 토다는 이가 없다. 이런 관행을 두고 일개 교사가 상급관청인 교육청을 상대로 다투려니, 처지가 흡사 '돈키호테' 같다.

지난달 광주광역시교육청은 '학교폭력 예방에 애쓴 생활지도 교사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올 여름방학에 국외 체험 연수를 실시한다'는 공문을 일선 학교들에 보냈다. 말이 좋아 '연수'지, 공문을 받아든 학생부장들 중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늘 그래왔듯, 고생 많은 학생부장들에게 해마다 챙겨주는 '위문 관광'일 뿐이다.

신청 대상도 일선 학교 학생부장과 교육청 업무담당자에 상담사, 교원범죄예방위원과 교외생활지도 담당자 등 학교폭력과 관련된 일을 맡고 있는 이들이 다 포함되어 있다. 교육청이 예상하고 있는 신청자 수만 해도 총 180명 내외이니, 만만치 않은 규모의 '단체 여행단'이 꾸려지는 셈이다.

학생부장 일이 교사들의 '기피 대상 1호'라지만... 이건 아니잖아

교육청은 신청 인원이 초과될 경우, 최근 3년간의 생활지도 실적을 심사하여 선발하겠다고 공문에 명시했다. 하지만 주변 학생부장들 가운데 '연수를 신청했지만 탈락했다'는 얘기가 없는 걸 보면, 예상 인원을 넉넉히 잡았거나 신청자가 예상보다 적었거나 둘 중 하나다. 솔직히 '학생부장을 위로하겠다'며 해외 연수를 보내주는 건데, 실적이 좋지 않다고 탈락시키는 건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소리다.

필자 역시 한 고등학교의 학생부장으로서, 사기 진작을 위한 행사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는다. 학교의 어느 업무가 만만할까마는, 특히 최근 들어 교사들의 '기피 대상 1호'인 학생부장 업무에 대한 인센티브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른 교사들마저 두루 인정하는 점이다.

문제는 이 '일회성' 행사를 치르는 데 막대한 예산이 쓰인다는 것이다. 참가자 1인당 연수비로 100만 원씩 지원한다고 하니, 교육청의 예상대로 180명이 참가한다면 무려 1억8000만 원이 소요되는 셈이다. 아무리 관행이라지만, 고작 며칠간의 해외여행에 막대한 예산을 허비한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반면 며칠 전 필자의 학교에서는 몇 십만 원이 아쉬워 쩔쩔매는 '쪼잔한' 일이 있었다. 학교 상담실에서 또래상담을 위한 워크북을 제작하는 데 예산이 필요했다. 학년 초에 계획되었던 게 아니어서 사전에 예산이 책정되지 않았을 뿐더러 추경 예산 편성 때도 누락된 상태였다.

제작업체에 문의를 했더니, 표지가 무광택인데다 속지조차 모두 컬러로 돼 있어서 면수가 얼마 되지는 않아도 비용이 꽤 든다고 귀띔해주었다. 견적서를 받아보니, 무려 권당 만 원꼴이었다. 또래상담자 교육에 당장 50여 권 정도가 필요했으니, 상담사와 필자는 어떻든 50만 원을 변통하려고 교무실로, 행정실로, 교장실로 찾아다니며 협조를 구해야 했다.

믿기지 않겠지만, 올해 우리 학교 상담실이 교육청으로부터 지원받는 예산은 고작 150만 원이다. 방학을 뺀다 해도 한 달에 15만 원꼴인데, 상담 온 아이들에게 읽힐 책 한 권, 주전부리 하나 마련하기 쉽지 않은 '푼돈'이다. 하물며 상담실 안에 기자재를 마련한다는 건 꿈도 못 꿀 일이다.

그나마 필자의 학교는 양호한 편이다. 상담실조차 갖춰져 있지 않은 학교도 적지 않은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학교에 남아있는 빈 교실 공간을 상담실로 리모델링하기 위해 교육청에서 지원받은 예산이 2000만 원이었다. 단순히 계산해봐도, 1억8000만 원이면 학교 9곳에 상담실을 마련해줄 수 있는 돈이다.

상담실 9개 만들 돈으로 선생님들 해외연수 보내주면 학교폭력 예방?

 7일 오전 서울 송파구 배명중학교에서 열린 '학교폭력 자정 결의대회'에서 학생들이 학교 폭력을 추방하자는 문구가 담긴 피켓을 들고 묘기를 펼치는 '사인스피닝' 퍼포먼스를 하고나서 무대에서 내려가고 있다.
7일 오전 서울 송파구 배명중학교에서 열린 '학교폭력 자정 결의대회'에서 학생들이 학교 폭력을 추방하자는 문구가 담긴 피켓을 들고 묘기를 펼치는 '사인스피닝' 퍼포먼스를 하고나서 무대에서 내려가고 있다. ⓒ 연합뉴스

교육청은 학생부장들을 단체로 위문 관광시켜주는 것이 학교에 상담실을 한 곳이라도 더 갖추는 일보다 더 학교폭력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여기는 걸까? 하긴 공문에서 강조한 대로 '학생부장의 사기를 진작시켜 학생들의 생활지도에 만전을 기하고자 한다'는 번듯한 '연수'의 취지만 놓고 보면 그럴 수 있겠다.

그러나 추진 계획서를 읽노라면, 어느 것 하나 '말장난' 아닌 게 없어 황당하다 못해 헛웃음만 나온다. 다녀온 후 제출할 보고서를 포함해 계획서만 무려 A4로 10쪽인데, 학생부장 아닌 다른 교사들조차 뻔히 아는 내용을 온갖 미사여구로 도배했다. 모든 학교가 이 계획서를 출력한다고 하면 '종이 낭비'만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개인당 100만 원씩 여행경비를 들여 갈 수 있는 나라는 중국과 일본, 동남아 정도다. 경험으로 미루어 보면, 중국과 일본은 지원금에다 적잖은 자비를 보태야 관광할 수 있을 만큼 물가가 만만치 않은 지역이다. 일정이 잡힌 8월이면, 동남아는 내내 비가 내리는 우기라서 관광 자체가 쉽지 않다.

그런데 계획서엔 생뚱맞게 '선진 문화 체험을 통해 교육현장의 개선방안을 연구하고, 선진국의 교육 현장 체험을 통해 역동적인 교육공동체 형성 촉진과 교육청의 방향을 탐색할 수 있는 계기를 부여하려는 목적'임을 밝히고 있다. 그 '선진국'들의 어느 교육기관을 방문해 무슨 체험한다는 것인지, 또 그것으로 뭘 얻겠다는 것인지…. 그저 황당할 뿐이다.

또 이번 행사를 통해 '선진국'의 학생 생활지도 현황과 사례를 조사해 우리 학교현장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기회로 삼겠다고도 했다. 8월에 대체 어느 학교가 외국의 대규모 교사 방문단을 맞아 자신들의 생활지도 현황을 브리핑할지 의문이다. 계획서는 있어야겠어서 기존의 것을 급히 짜깁기하다보니 엉뚱한 내용들이 뒤죽박죽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

백 번 양보해서, 학생부장들의 국외 연수가 관행처럼 굳어진 이유가 공문에서 밝힌 것처럼 학교폭력 예방 효과가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적어도 지난번 연수 참가자들이 이 프로그램의 필요성에 동의해야 한다. 하지만 다녀온 분들은 하나 같이 '관례적인 행사여서 참가했을 뿐, 그게 학생 생활지도에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저 '공짜'이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는 거다.

물론 교육청의 입장에서야 이것도 실적이니, 경비 산출내역에 부합하도록 집행결과보고서를 갖춰놓았을 테고, 계획서에 명시된 기대효과를 감안해 그럴듯한 연수보고서도 작성해 보관하고 있을 것이다. 서류로만 보면 손색 없는 논문감이지만, 정작 학교 현장에는 아무런 효과가 없는, 그야말로 전시성 사업의 표본이다.

진보 교육감님, 담대한 변화도 좋지만... 작은 실천을 부탁합니다

그렇다면 인센티브랍시고 공짜로 해외여행을 보내준다고 하면 선뜻 학생부장 업무를 맡겠다고 나서는 이가 과연 있을까? 단언컨대, 그런 교사는 단 한 명도 없다. 자존심을 지켜가며 묵묵히 소임을 다하려는 이들의 진정성을 교육청이 되레 해외여행 같은 '싸구려 미끼'로 폄훼한다고 불쾌해하는 교사들이 생각보다 많다.

교육청이 진정 폭력 없는 학교 만들기를 바라고 학생부장의 고단한 업무를 덜어줄 요량이라면, 모든 교사들이 '눈먼 돈'으로 여기는 이 막대한 예산으로 하루 빨리 모든 학교에 상담실을 설치해달라. 아니라면 그 돈을 학교폭력 예방교육 내실화에 투자하는 것도 좋겠다. 하품 나오게 하는 교과부와 교육청말고, 시민단체 등 제대로 예방교육을 실시하는 곳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다. 하다못해 그 돈으로 학교마다 단 한 달만이라도 업무를 보조할 직원을 채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겠는가.

하나만 덧붙이자. 2년 전 광주광역시의 주민들은 '진보 교육감'을 선택했다. 필자를 포함한 주민들이 그에게 기대한 건 결코 거창하지 않다. 대학 입시를 전면 개편하고, 교육법을 개정하고, 나아가 학벌 구조를 일거에 타파해달라고 뽑아준 주민은 없다. 그저 참신한 아이디어와 작은 실천으로 학교 안팎의 소소한 일상에 변화를 느끼게 해달라는 것뿐이다.

그러자면 첫 단추가 바로 낡은 관행과의 결별이다. 누구의 말마따나, 어젯밤 기획한 일도 자고 나면 낡은 것이라는 지속적인 긴장이 '진보'의 덕목일진대, 막대한 예산이 드는 학생부장 위문 관광 같은 우스꽝스러운 행사가 여전히 추진되고 있다는 건 수치스러운 일이다. '진보 교육감'이라면 변화된 정책으로 말해야 한다.


#학생부장#진보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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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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