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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의 서러움

5월의 마지막 날은 둘째의 첫 번째 생일이었다. 안방에서 아내의 비명소리와 함께 우렁차게 울음을 터뜨리며 세상에 나온 것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1년의 세월을 함께 한 둘째 산들이.

자식을 키우는 부모로서 두 번째 맞는 돌이었지만, 그 감회는 첫째 때와 또 달랐다. 첫째의 돌은 마냥 새롭고 신기했던 반면, 둘째의 돌은 익숙하고 무덤덤하기까지 했다. 첫째 까꿍이 때는 1년 동안 무탈하게 큰 녀석이 마냥 대견했는데, 산들이 때는 오히려 녀석에게 미안한 감정이 앞섰다.

생일아침 조금은 연약해 보이는
▲ 생일아침 조금은 연약해 보이는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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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에 대한 미안함. 결국 그것은 평소 둘째에게 가지고 있던 안쓰러움 때문이었다. 모든 것이 누나 중심으로 돌아가는 현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름 고군분투했을 둘째. 첫째 때는 녀석이 언제 뒤집었는지, 언제 기기 시작했는지, 언제 서고 언제 걷기 시작했는지 모든 것이 관심사였건만, 둘째 때는 그 모든 것이 생략되거나 사소하게 넘어갔던 것이 사실이었다. 첫째 크는 것을 지켜보다가 문뜩 뒤돌아보면 둘째는 언제부터인가 혼자 뒤집고, 기고, 서고, 걷고 있었다.

특히 아내는 그런 둘째에 대해 더욱 미안해했는데, 그것은 그녀가 자라면서 겪어야했던 둘째의 서러움 때문이었다. 항상 오빠가 먼저였던 부모님들의 관심을 조금이라도 더 끌기 위해 홀로 고민했다던 아내. 결국 아내는 둘째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있었고 자신의 어린 시절을 둘째에게 투영하고 있었다. 아내는 가끔 내게 첫째라서 둘째의 서러움을 잘 모른다느니, 까꿍이 말고 둘째의 육아일기도 좀 써보라는 등의 핀잔을 주곤 했는데 그것 역시 위와 같은 맥락이었다.

남매 아직까지는 두 남매
▲ 남매 아직까지는 두 남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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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생일 산들이의 돌
▲ 첫번째 생일 산들이의 돌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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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첫째 까궁이와 비교해서 연약해 보이는 둘째의 모습은 그런 부모의 안쓰러움을 더욱 배가시켰다. 둘째는 태어날 때도 까꿍이보다 약해 보였는데, 감기와 함께 중이염이 오면서 복용할 수밖에 없었던 항생제 때문에 발육이 더 늦은 편이었다. 항생제를 먹으면 아이들의 성장이 저절로 잠시 멈춘다나. 덕분에 녀석은 돌이 다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9kg이 채 되지 않았다. 다행히 키는 평균 정도 되었지만 그만큼 더 호리호리하고 연약해 보였다. 그러니 부모의 입장으로서 둘째가 더 안쓰러울 수밖에.

따라서 둘째의 돌은 매우 중요한 행사였다. 비록 남들처럼 많은 사람들을 불러 성대하게 돌잔치는 하지 않을 테지만, 첫째 때와 같이 양가 식구들을 모시고 둘째가 나름 고생했을 1년이란 시간을 진심으로 축하하고자 했다. 중이염도 다 나았으니 앞으로 튼튼하고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둘째야.

안쓰러운 만큼 정성스럽게 준비하던 둘째의 돌잔치. 그러나 이런 계획에 결정적인 문제가 발생했으니, 그것은 바로 아내가 유행성 결막염에 걸린 것이다. 아내의 눈은 돌잔치 1주일 전부터 심상치 않았는데 돌잔치 즈음해서는 피크를 찍고 있었다. 첫째 때는 돌잔치 이틀 전에 까꿍이가 화상을 당하더니, 이번에는 아내의 눈병이라. 그나마 다행인 건 아내의 눈병이 다른 가족들에게 옮지 않았다는 사실.

결국 우리는 어른들을 모실 수 없었다. 안 그래도 몸이 좋지 않으신 양가 부모님들이 오셨다가는 아내의 눈병이 옮을 수도 있는 터, 그냥 우리 네 식구끼리 소소하게 돌잔치를 치르고자 했다. 덕분에 둘째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은 더 커졌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돌잔치까지 안쓰러울 줄이야.

집어라 산들아!

둘째 돌상 아내가 정성스레 마련한 돌상
▲ 둘째 돌상 아내가 정성스레 마련한 돌상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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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우리끼리 치르게 된 둘째의 돌잔치. 어른들이 오시지 않으므로 부담감은 덜했지만(덕분에 대청소는 하지 않아도 됐었다는) 그래도 바쁜 건 매한가지였다. 아내는 그전날 새벽까지 음식을 했고, 아침 일찍 일어나 병풍을 치고 돌상을 차렸다. 나 역시 회사에 하루 월차를 내고 아내를 열심히 도왔다.

그렇게 시작하게 된 산들이의 돌잔치. 더워서 찡찡대는 아이를 붙잡아 한복을 입히고 병풍 앞에 앉혀 사진부터 찍었다. 누나는 화상당한 팔을 팔걸이에 올려둔 뒤 거만하고 늠름하게 앉아 있었는데, 이 녀석은 남자라 그런지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온몸을 비틀고 소파에서 내려오는 등 부모에게 사진 찍을 시간을 주지 않았다. 게다가 호기심은 왜 그리 많은지 돌상의 모든 것들을 건드렸고, 부모가 사진 찍겠다며 잠시 행동을 만류하자 집이 떠나갈 듯 울어재꼈다.

귀찮아 누나와 달리 가만히 못 앉아 있는 산들
▲ 귀찮아 누나와 달리 가만히 못 앉아 있는 산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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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는 자고 한복입은 채 기다리고 있는 까꿍이
▲ 아가는 자고 한복입은 채 기다리고 있는 까꿍이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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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아내가 젖을 물리니 곧장 잠들어 버리는 산들이. 졸려워서 그랬던 걸까? 평소와 달리 낮잠을 왜이리 일찍 자는지. 덕분에 나머지 세 식구는 돌상을 앞에 두고 멍하니 서로를 바라만 볼 뿐이었다. 정작 주인공이 잠에 들었으니 녀석이 깰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까꿍이는 동생이 자러 안방에 들어가니 아가의 돌상이 부러웠던지 냉큼 그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포즈를 취했다. 못 말리는 까꿍이.

1시간쯤 지났을까. 둘째가 깼고 다시 돌잔치를 시작했다. 난 양가 아버지를 대신해 활에 수수팥떡을 끼어 동서남북으로 쏘았다. 첫째 때는 아파트에서 그런 의식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마냥 우스웠는데, 이번에는 둘째를 위해 활을 쏜다 하니 그 의식을 통해서라도 녀석이 건강해지기를 바랄 뿐이었다.

붓을 집어든 산들이 무엇이 되고 싶어서?
▲ 붓을 집어든 산들이 무엇이 되고 싶어서?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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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두 붓 아가 것은 모든 게 부러운 까꿍이
▲ 나두 붓 아가 것은 모든 게 부러운 까꿍이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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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돌 안쓰러운 둘째
▲ 둘째 돌 안쓰러운 둘째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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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돌잔치의 하이라이트 돌잡이 시간. 첫째 때와 마찬가지로 관직을 뜻하는 마패, 손재주를 의미하는 바늘방석, 무병장수를 뜻하는 명주실, 공부를 뜻하는 붓과 서책, 다재다능함을 의미하는 오방색지, 장군님을 뜻하는 활과 화살, 그리고 부귀를 뜻하는 엽전이 놓여 있었다. 자, 잡아라 산들아!

두두두둥. 생전 처음 보는 여러 물건 앞에서 한참을 고민한 뒤 오방색지를 집었던 누나와 달리, 둘째는 전혀 망설이지 않고 붓을 집어들었다. 설마 저 붓이 고모와 대고모 할머니처럼 화가를 뜻하는 건 아니겠지? 아님 엄마처럼 작가를 뜻하는 것일까? 엄마와 아빠는 둘 다 붓을 들어 이 모양 이 꼴로 산다마는, 어쨌든 네가 원하는 길로 열심히 정진하기를.

돌잡이를 끝으로 돌잔치는 끝났다. 비록 화려하게 치르지는 못했지만 둘째가 돌을 맞아 건강하게 자라기만을 바랄 뿐이다. 생일 축하한다. 산들아!

사족 : 이렇게 글로 써 놓고 보니 별 탈 없이 지낸 것 같은 돌잔치지만, 실제로는 둘째가 돌상 앞에서 자는 사이 매우 큰 폭탄이 터져 그 후로 경황이 없었다는. 그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다뤄지겠다. 우리 셋째 이야기. 계속되는 육아일기.

가족사진 넷이 아니라 다섯
▲ 가족사진 넷이 아니라 다섯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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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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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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