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령을 바로 넘다보면 오른쪽으로 난 샛길이 있다. 지금은 아스콘으로 포장이 되어 있지만 20년 전에는 비포장이어서 그 들머리가 쉬이 눈에 띄지 않았었다.
한계령이 암릉으로 이루어진 고개이기 때문에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나무 몇 토막으로 입구를 가로막아 놓았다면 그곳이 차도인지 산판길인지 등산로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눈에 띄지 않았다. 그곳에 길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 당시엔 별로 없었다. 그래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간혹 등산지도에 필례약수, 필례령이라는 위치명이 적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알고 있었다. 막연히 가고 싶었다.
하여튼 그 길로 들어서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설악의 거대한 암릉세계와는 전혀 다른 평온하고 아늑한 길이 계곡을 따라 굽이굽이 이어지고, 그 길은 내리천에서 만난다.
하늘같은 설악을 앞에 두고, 양 옆으론 점봉과 가리봉이 설악을 호위하듯 우뚝 솟아 있으며 그 사이를 비집고 샛길이 나 있는데, 남성적이고, 자신감이 넘치고, 다소 거친 주위의 산과는 어울리지 않는, 은밀함이 설악의 위용에 압도 되어 있는 나그네의 마음을 순간 안정시킨다.
누가 이 길을 만들었는지 옛 선조의 혜안과 멋에 감탄을 하고 그 노고에 후세의 한사람으로서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옛날 어느 누가 한계령으로 가려고 이 길을 냈던가. 평생 동안 얼마나 많은 산촌 사람이 첩첩산중 이 길을 이용하겠다고 노동을 감수했단 말인가. 소통을 위해 인간이 얼마나 큰 노력을 기우렸는지 새삼 그 노역에 고개가 숙여진다. 인간이 존재함으로서 길이 있고, 길이 존재함으로서 인간이 있다.
그 길은 일명 은비령이라고 한다. 월래 이름이 필례령이었는데, 이순원의 소설 <은비령>이란 작품 제목이 유명세를 탔고, 그 소설이 만들어준 은비령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면서 길 이름이 바뀌었다. 그러니까 소설이 만들어 준 특이한 케이스의 길 이름이다. 우리나라에 문학과 연관된 길 이름이 이 말고 다른 곳에 또 있는지 모르겠다.
세상이 문명의 이기로 가득 들어차면서 길도 넓혀지고 아스콘으로 포장이 되어 예전의 풍광은 남아있지 않지만 그래도 길은 지금 세상과 맞게 그 깊은 산중에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길의 포장이 아니라 내용이다.
한계령에서 그 길을 따라 4키로미터 정도 내려가면 필례약수터가 나온다. 설악에 열등감이 있는 오만한 가리봉 그 산끝 기슭에 조용히 숨어 있는 모습이 마치 심산수곡 암자의 범접치 못할 자태 같기도 하다. 길가에 작은 이정표가 없으면 여지없이 그냥 지나칠 게다.
사람의 손길을 거부하지는 않지만 쉽게 자신의 모습을 들어내지는 않는다. 물맛과 성분은 중요하지 않다. 깊은 산속 울창한 숲과 그 대자연이 발산하는 침묵에 그저 마음이 경건해짐을 느끼게 된다. 텅빈 큰 성당에 홀로 앉아 있는 듯 어떤 신앙적 기운이 침잠해 있다고 한다면 너무 과장일 지도 모르지만 분명한 건 그곳에선 이상하게 목소리가 작아지고 조심스럽게 행동하게 된다. 떠들면 무언가 크게 흔들릴 것만 같고 어디서 불호령이 떨어질 것 같은 자각이 자신도 모르게 의식을 지배하니까. 그러한 분위기에선 대처의 상념들은 깨끗이 씻겨져 사라진다.
그 공간이 자기만의 작은 도량으로서 내면에 존재함을 자신도 모르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특히 여름이면 더욱 그렇다.
지금은 그곳에 식당도 있고 숙박할 수 있는 작은 공간도 있다고 한다. 약수 한 사발 마시고 식당에서 산채비빔밥으로 요기를 한다면 신선도 부럽지 않을 게다. 그리고 하룻밤 묵는다면 금상첨화일 게다. 자연의 고요가 무엇인지 당신의 가슴으로 흠뻑 적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