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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퇴근 후에도 평소에 경험해보지 못한 전신 권태감이 밀려왔다. 괜히 가족들에게 짜증부터 내기 시작했다. 이윽고 왼쪽 가슴과 옆구리에 예전에는 전혀 느껴보지 못한 날카로운 고통이 밀려온다.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고통에 어지러움 증세까지 겹쳤지만, 일단 감기 몸살이라고 자가진단을 하고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 것이 화근이었다. 3~4일 정도를 참았지만, 별 차도가 보이지 않는다.

칼로 베인 듯한 날카로운 이 고통은, 뭐지?

시간이 지나며 왼쪽 가슴의 고통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그냥 스쳐가는 몸살일 것이라고 얕봤는데, 이렇게 고통스러울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통증이 오는 부위를 살펴봐도 전혀 증상이 없다. 옷이 왼쪽 가슴을 살짝 스치기만 해도 칼에 베인 듯하게 아려오는 이 극심한 고통은 말로 표현할 방법도 없으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심호흡을 크게 한번하고 우선 동네 의원부터 찾았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상포진'이라는 생소한 병이 의심되기는 하지만 육안으로는 봐서는 이상이 없으니 확진할 수 없다는 것이 의사의 대답. '큰 병은 아니니 너무 걱정 말라'는 말을 하지나 말던지…. 내가 느끼기에는 분명히 몸에 심각한(?) 이상이 있는데, 의사는 "진통제 처방외에는 뾰족한 처방이 없다"며 당분간 기다려 보란다.

그로부터 일주일, 인생 최대의 악몽이 따로 없었다. 환부에는 강력한 전기가 통하는 것 같고, 살이 찢어질 것 강력한 통증을 경험했으니 '듣보통(들어보지도 본적도 없는 통증)' 그 자체였다. 엎드리거나 옆으로 누워도 결코 잠을 재우지 않는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로 인해 새벽녘에나 겨우 잠이 들곤 했다.

그나마 오른쪽으로 모로 누워 새우잠을 자니, 얼굴은 퉁퉁 붓기 일쑤였다. 잠이 부족하니 입맛도 없고, 삶의 의욕조차 없어지는 것 같았다. '들으면 병이요, 안 들으면 약'이라는 속담이 이럴 때 쓰는 말이었을까?

"혹시…. 심근경색? 아니야, 아직 젊은데 그건 아닐 거야. 그렇다면 오십견? 아니지, 혹시 심장이나 폐질환? 흑흑…. 그래, 운동도 안 하고 그저 방탕하게 살아왔건만, 결국에는 무슨 병이 생기고 만 거야. 드디어 일 났어. 일 났네. 아,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왜 하필이면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급기야 바람만 불어도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밀려온다. 간헐적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에 입에서는 신음소리가 절로 나오니, 세상에 이런 고문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증상은 비슷한데, 피부 발진이 없으니... 이를 어쩐다?

혹시나 해서 몸을 추슬러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처음 갔던 병원에서 의심된다고 했던 '대상포진'이라는 단어를 인터넷 포털 검색창에 넣으니, 실제로 '탤런트 차O련, 대상포진으로 촬영중단', '환절기 대상포진 조심' '수포와 극심한 통증을 동반하는 질환' '척추를 중심으로 한 쪽으로만 나타나는 고통' 등 내 증상과 비슷한 정보가 좌르르 열린다.

하루종일 증상과 관련된 인터넷 검색을 했더니, 이젠 이 질환에 대해 얼추 반의사가 다 됐다. '어른들의 수두'로 알려진 대상포진은 수두바이러스(Varicella-Zoster Virus, 약자로 VZV)가 신경절에 숨어 있다가 성인이 된 후 인체의 면역 기능이 떨어진 것을 노려 다시 활성화되면서 생기는 병이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강력한 통증이 몸의 한 쪽에 나타난 후 피부에 띠처럼 반점이나 물집이 생기는 '대상포진'? 하지만 아직 나에게는 물집이나 피부 발현이 없지 않은가. 근심 반, 두려움 반으로 떨고 있던 내 발길은 어느새 종합병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진료과 몇 군데를 거쳤지만 진단은 내리지 못하고 돈은 돈대로, 시간은 시간대로 보내고 말았다.(사진은 2011년 12월)
진료과 몇 군데를 거쳤지만 진단은 내리지 못하고 돈은 돈대로, 시간은 시간대로 보내고 말았다.(사진은 2011년 12월) ⓒ 김학용

피부과 대기실에서 내 증상을 들은 간호사는 환부에 피부 발현이 없으면 대상포진이 결코 아니란다. 환부를 한번 쓱 보더니 "흉부외과로 연결시켜 줄테니 기다리라"며 친절하게(?) 진료과를 변경해 준다. 흉부외과 전문의 역시 고개를 흔들며, 위로의 말을 건넨다. 여기서도 "종합검진 받는 셈 치고 몇 가지 검사를 한 후, 결과가 나오면 순환기내과로 가라"고 한다.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두 시간을 기다려 만난 순환기내과 전문의는 "검사 결과만으로는 특정 병명을 확진하기가 어렵고, 특별히 도와줄 수 없다"는 답변이다. 몇 군데를 거친 진료로 돈은 돈대로, 시간은 시간대로 보내고 결국 그렇게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리 가라, 저리 가라... 진단은 못 내리고 다시 원점으로

집에 와서 돌아와 환부를 자세히 보니, 붉은 반점 하나가 보이는 것이 아닌가? 아, 이렇게 기쁠 수가….  쾌재를 부르고도 남을 일이다. 이 반점이 통증과 연관성이 있는지 여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또 수포(물집) 형태도 아니었지만, 일단 피부 발현은 대상포진 처방의 핵심이 아닌가. 다시 회사 근처의 다른 병원을 찾았다.

"저, 선생님, 한 10일 정도 왼쪽 가슴과 옆구리 쪽에 평소와는 다른 날카로운 고통을 겪고 난 후 피부발현 증상이 생겼는데…. 이거 대상포진 맞죠?"
"……."
"선생님, 항바이러스제 처방 좀 부탁드려요."
"제가 볼 때는 이 반점은 대상포진과 무관한 것 같은데…. 듣고 보니 증상은 대상포진과 흡사하네요. 그렇게 아프시니 처방은 해 드릴게요. 혹시 다른 곳이 이상이 있을 수도 있으니 혈액검사와 성인병 검사도 병행할게요."

눈에 보이는 외상이라면 의사에게 바로 보이고 치료를 받으면 되겠지만, 병원을 여러 곳 거치고 나니 이제는 자가 처방 소견을 내가 먼저 내놓는다. 결국 항바이러스제(팜시클로버, Famciclovir)를 처방 받고 약국을 찾았다. 약 값이 3만 원에 육박한다. 금액에 놀라서 건강보험적용 여부를 물어보니, 약 자체가 워낙 고가(1정당 약 4천 원)이며, 약의 갯수와 횟수(1일3회, 6일 분)도 많다고 한다.

 처방을 받은 후 어깨 부위에 띠 모양의 붉은 반점이 생겼다.
처방을 받은 후 어깨 부위에 띠 모양의 붉은 반점이 생겼다. ⓒ 김학용

결국 처방을 받고 이틀째, 왼쪽 어깨 부위엔 빨간 반점이 띠처럼 생겨나기 시작했다. 대상포진 진단 여부의 기준인 피부 발현은 시작됐지만, 바늘로 찌르는 듯 욱신거리던 악몽의 고통은 어느덧 사라지고 있다. 다른 검사에서 특별한 이상도 나타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진단을 내리지 못한 의사가 한편으로는 야속했지만, 아이를 낳는 산고보다 더할 듯한 형언할 수 없는 아픔과 고통에서 해방되니 이제는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다.

이유 없이 아프고 물집 생기면 '대상포진' 의심

대상포진(帶狀疱疹)은 발열·전신권태감 등 감기와 비슷한 증상으로 시작되다가 물집(수포)을 동반한 아픈 뾰루지(발진)가 몸의 한 쪽에, 주로 줄무늬로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어렸을 때, 걸렸던 수두 바이러스가 사멸되지 않고 척수 신경 세포에 숨어 있다가 면역력이 떨어질 때 활동을 재개해 물집과 발진으로 극심한 통증을 일으키는 병이다.

초기증상은 주로 몸의 한쪽 부위에 심한 통증이 온다는 것이다. 가슴, 허리, 팔, 얼굴 순으로 통증이 많이 나타난다. 발진이 없는 경우에는 조기 진단이 어렵고, 신경통이나 디스크, 오십견, 늑막염, 심장질환 등으로 오진을 내리는 경우도 있다. 보통 1주일 정도가 지나 피부에 물집이 잡혀서야 비로소 '대상포진'이라는 확진이 내려진다.

항바이러스제는 피부 발진이 생긴 후 72시간 내에 7일 정도 투여를 시작하면 통증과 발병기간을 감소할 수 있다. 문제는 초기에 치료하지 않을 발진만 사라지고, 통증은 그대로 남게 되는 '대상포진후신경통'으로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상포진은 결코 집에서 그냥 나을 병이 아니다. 대상포진, 걸려본 사람만이 아는 고통이리라. 

독자들이여! 평소 경험해보지 않은 통증이 몸의 어느 한 쪽에만 나타난다면 먼저 대상포진을 의심하라.

 처방받은 항바이러스제인 '팜시클로버', 1정의 가격의 4월 현재 3800원 선이다. (출처:드럭인포)
처방받은 항바이러스제인 '팜시클로버', 1정의 가격의 4월 현재 3800원 선이다. (출처:드럭인포) ⓒ www.druginfo.co.kr


#대상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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