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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 총선이 끝나자 많은 이들은 '이젠 다 끝나버린 것이 아닌가' 염려했다. 제주해군기지 계속 추진을 공약한 새누리당이 원내 1당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강정의 바다와 하늘은 어둡기만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염려는 염려일 뿐이었다. 5년을 하루처럼 버티고 싸워온 강정사람들에게 4.11총선은 '그렇고 그렇게 약간 기분 나쁜 소식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리고 강정바다는 여전히 옥빛으로 빛났으며, 강정의 밤은 더없이 푸르기만 하였다.

 

14일 오후 3시 무렵, 고권일 강정마을 해군기지반대대책위원장은 손님맞이 준비에 정신이 없었다. 강정평화 콘서트가 열릴 강정포구와 마을회관을 몇 번이나 오갔는지 모를 정도다.

 

"총선 이후에 염려하는 얘기들 많이 들었는데 지금까지 우리 강정마을은 정치권의 풍향에 모든 걸 걸고 활동하지 않았습니다. 국민이 단합해서 한 목소리를 내면 정치권은 국민의 목소리에 따라오게 돼 있으니까요. 제주지역에선 해군기지 찬성하는 후보들은 모두 떨어졌어요. 오늘 평화콘서트를 계기로 우리의 평화노래와 메시지를 어떻게 멀리 퍼트릴까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방법'에 대해서 고 위원장은 상세하게 설명하진 않았다. 다만 "해군기지 반대만이 아닌 평화와 행복의 대안을 제시하며 '긍정의 힘'을 전파하는 방법"이라고만 설명했다. 강정평화학교의 상시운영, 국내외 각종평화대회 유치, 19대 국회 개원과 시기를 맞춘 대규모 평화순례 등의 이야기가 마을 안팎에서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제주해군기지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하면서 제주도와 인연을 맺어 온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낙담하고 계시면 어쩌나 걱정 많이 했는데 마을주민들이 오히려 나를 위로해주신다"며 환하게 웃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5년째 싸워 오신 분들이어서 그런지 총선 결과에 개의치 않는 것 같아요. 다만 해군기지 문제가 이념과 안보의 문제로만 밀리면 어쩌나 걱정은 좀 되는 게 사실이죠. 하지만 면밀한 분석을 통해서 거꾸로 이 문제를 이슈화시켜 나가면 된다고 생각해요."

 

정 대표는 "강정을 염려하는 분들에게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는데 일단 한 번 강정마을에 와보시라"며 "처음엔 '뻘줌'할 수 있겠지만 마을 주민들이 주는 술 한 잔 얻어 마시며 이야기하다 보면 평화의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것을 느낄 것"이라고 했다.

 

기쁘게 잡혀가서 즐겁게 구속되기... 시민 1만 명 참여 목표

 

서울 명동 향린교회에 다니는 박종권(60)씨는 처음으로 강정마을에 왔다. 그는 '구럼비 평화 직접행동'을 자원했다. 공권력에 의한 횡포가 심하다고 판단한 이들이 자발적으로 연행과 체포, 구속을 각오하고 저항하겠다며 벌이고 있는 이른바 '기쁘게 잡혀가서 즐겁게 구속되기' 운동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해군기지를 짓겠다니 이해가 안 돼요. 여기에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바로 미군기지가 되고 말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제주도는 미국과 중국의 전쟁터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자꾸 총선 참패라고 이야기하는데 전체 득표율만 보면 야권이 참패한 것이 아니거든요. 대선이 있으니까 우리가 더욱 힘을 모아야죠. 그래야 구럼비도 지키고 강정마을도 지킬 수 있겠죠."

 

체포, 연행을 실천할 '구럼비 평화 직접행동'은 시민 1만 명의 참여를 목표로 하고 있다. 14일 하루에만 12명의 시민이 '해군기지 공사중단'을 요구하며 비폭력 저항투쟁을 벌이다 연행됐다.

 

충남 서산 가로림만 조력발전소 반대투쟁을 주민들과 6년째 하고 있는 박정섭 위원장은 누구보다 강동균 강정마을회장에 대한 염려가 컸다. 동병상련이었다.

 

"조력 방전소 반대싸움 하는 6년 동안 마을이 갈갈이 찢어졌어요. 정부는 주민끼리의 싸움을 부추기고 삼성과 롯데 등 대기업은 돈에 환장해 고향을 파괴하고 있어요. 무엇보다도 고향을 지키겠다는 마음을 저들은 찢는데 그 중심에서 밤잠을 이루지 못할 강동균 마을회장이 참 걱정이 많이 됩니다. 그렇지만 강정사람들이 마을을 지키겠다고 나서고 제주도민이 함께 해주고 국민들이 도우면 해군기지 막아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강동균 강정마을 회장은 '갑장'인 박 위원장의 위로와 격려에 그 어느 때보다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저는 신자는 아니지만 신이 역경과 고난을 주면서 우리를 시험하시는 것 같아요. 우리가 이를 슬기롭게 이겨나가면 기쁜 날이 찾아오겠지요. 이 시험을 이겨내기 위해서 우리는 순해서만은 안됩니다. 분노해야 합니다.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진 땅을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자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국회 진출한 임수경 "훌륭한 소통의 다리 하나 더 생겼다... 기운내세요"

 

'통일의 꽃'으로 불리는 임수경 19대 국회 비례대표 당선자. 임 당선자는 문정현·문규현 신부와 남다른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그가 1989년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하기 위해 평양을 방북했다가 휴전선을 통해 돌아올 때 그의 곁을 지키며 함께 고난의 사선을 넘은 이가 바로 문규현 신부다.

 

"오랫동안 강정마을을 지켜봐왔습니다. 강정마을 주민들과 신부님들의 희생과 헌신을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함께 해야겠다는 다짐으로 국회 진출을 결심했습니다. 신부님을 아버지라고 생각하는 제가 국회에 들어가 있습니다. 입법부를 통해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 일을 하는데 훌륭한 소통의 다리가 하나 더 생겼다고 생각하시고 기운내세요."

 

그리고 오후 6시부터 강정마을 포구에서 '강정평화콘서트, 강정의 푸른 밤'이 열렸다. 가수 안치환과 장필순, 밴드 갤럭시익스프레스, 루나틱 등이 강정을 노래했다.

 

정담을 나누는 사람들 사이로 유랑한 바람은 바다와 방파제를 수시로 넘나들며 평화의 노래를 세상 곳곳에 퍼트렸다. 폭약 발파로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구럼비 바위는 헐떡거리는 숨을 고르며 평화의 노래를 감상했다.

 

"이봐요, 이봐요, 거기 누구 없어요? 제발 이 미친 짓 그만두라고 말해주세요. 이봐요, 이봐요, 거기 누구 없어요? 제발, 제발 이 죽음의 망나니짓 그만 멈추라고 말려주세요!" - 이주빈 <구럼비의 노래를 들어라> 에필로그 중에서


#강정마을#제주해군기지#임수경#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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