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는 서울 강북구 북한산 자락에 자리 잡은 작은 학교입니다. 전교생이 500명도 되지 않는 작은 학교인지라 1000명이 훨씬 넘는 주변의 큰 학교들과 늘 비교가 되곤 하였습니다. 학생 수가 적으니 내려오는 예산도 적고, 건물도 낡고 오래되어 시청각실이나 실습실 같은 특별실도 없습니다.
리모델링을 하긴 하였지만 예산이 부족했던 탓인지 별관 건물의 유리창틀은 교체하지 못해서 바람이 불면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날 정도이고, 칠판도 아주 오래된 옛날 칠판입니다. 게다가 교실의 컴퓨터 모니터는 전자파가 많이 발생한다는 소위 배불뚝이 모니터입니다. 올해 처음으로 이 학교에서 근무하게 된 저는 이런 환경을 보고 많이 놀랐습니다. 최근 10년 동안 이 정도로 열악한 근무 조건에서 일했던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학교가 서울형 혁신학교가 되고 나서 교사들은 지난 겨울방학부터 학교 교육의 비전을 무엇으로 잡을 것인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습니다. 배움, 돌봄, 배려라는 서울형 혁신학교의 큰 축은 이미 제시되어 있지만 우리 학교만의 비전을 어떤 말 속에 담을 것인가는 고민거리였습니다. 이미 새 학기가 시작된 3월 중순 이제는 결정을 해야 할 때라는 필요에 교사들이 모여 밤늦게까지 논의한 결과가 "작지만 강한 학교"였습니다.
"오늘이 행복한 유현어린이", "더불어 함께 하는 학교" 등 다른 다양한 제안들도 나왔습니다. "작지만 강한"이 작은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어감이 있으니 "작고 강한" 혹은 "작아서 강한"으로 바꾸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지만 강한 학교"가 된 이유는 이런 모든 제안과 의견 속에서도 외적 조건만을 본다면 작고 허술하지만 내적으로 튼실하고 질적으로 좋은 교육을 하겠다는 의미와 의지가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작지만 강한"이라는 수식어가 어쩌면 시대에 뒤떨어지고, '힘'의 논리, 그 중에서도 강자의 논리를 따라가고자 하는 뜻이 담긴 듯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서울형 혁신학교로 지정된 50여 개의 학교 중에서 우리 학교처럼 건물이 낡고 부지도 좁고 열악한 조건에 있는 학교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혁신을 해야 하는 이유가 절박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우리 학교에 새롭게 체육관이 신축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부지가 좁아서 우리 학교에 하나밖에 없는 모래 놀이를 할 수 있는 작은 놀이터를 없애고 그곳에 체육관을 짓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체육관이 완공되면 건물에 가려져 1~2학년 교실이 햇볕이 들지 않는 그늘진 교실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도 우리 1~2학년 아이들은 그 모래 놀이터에서 미끄럼틀과 시소를 타며 모래 놀이를 하며 신나게 뛰어놉니다. 그런 공간이 사라진다는 것이, 볕 잘드는 남향 건물이 그늘진 뒷 건물이 되어버린다는 것이 너무나 아쉽고 안타깝습니다.
작지만 강한 학교로 만들고 싶었던 이유는 이런 안타까운 마음의 소산입니다. 번듯한 강당이나 체육관은커녕 유리창틀이 덜컹거리는 낡고 오래된 건물이지만 아이들에게 행복한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싶다는 교장 선생님과 교사들의 바람을 담은 것입니다. 집 주변에 제대로된 놀이터가 없어 학교가 끝나면 여기로 달려와 노는 아이들에게 학교 놀이터라도 빼앗지 않을 방법은 없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