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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학급 명단을 받았다. 올해 이들은 1년, 365일간 호흡을 같이할 인연이다. 이렇게 신선하고 설레는 인연이 어디 있겠는가? 고등학생인 아이들은 감성의 소용돌이로 격랑을 겪는다. 이 소중한 시기에 동고동락할 연분이다. 학기 초, 새 학생 명단을 받을 때에는 대학 시절 미팅을 앞두고 있을 때만큼 설렌다. 아이들은 어떤 색깔을 가지고 다가올까. 내 모습은 어떻게 전달될까. 서로 만날 첫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학기 초 설렘으로 1년간의 아기자기한 사연이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그 기대는 서로의 존재에 대한 확인으로 이어질 것이다. 최근 언론은 학교폭력으로 아이들 세계의 흉흉함을 전하지만 여전히 교실에는 예쁘고 맑은 아이들이 더 많다. 모범생이다, 문제 학생이다는 이분법적 잣대가 소용없는 제각각 다양한 아이들이 공존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제 1년 동안 학급 살림살이가 궁금하다. 분명 공부와 담을 쌓은 친구도, 한껏 멋을 부리는 친구도,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친구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책벌레도 있을 것이다. 올망졸망 한배를 탄 그들을 잘 조율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것이 멋진 선장이 해야 할 첫 번째 역할일 것이다. 그렇다. 잘 해보겠다는 다짐을 넘어 서로 운명적인 만남으로 받아들일 때 아이들의 행복지수는 높아지리라. 아이들도, 나도 서로 모셔야 할 손님일 뿐 아닌가.

1년짜리 긴 항해다. 갖가지 추억으로 채워질 시간을 같이 할 것이다. 더더욱 아이들은 제각각 항로를 정하는 길목에서 만나지 않았는가. 지시만 내리는 일방적인 선장이 아닌 함께 지혜를 만들어내는 수장이 되어야 한다. 선장인 담임과 39명의 선원은 서로 존중하는 일체감을 갖는 호흡을 만들 때, 평화로운 뱃길이 될 것이다. 그들이 독립하여 성공적인 항해를 할 수 있도록 기틀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1년이지만 소중한 시기의 멋진 선장이 되고 싶다.

먼저 출항 준비를 하자. 따스한 햇살이 우리를 간지럽히는 날도, 비바람이 몰아치는 거친 풍랑을 만나는 날도, 잔잔한 파도에 평온한 날도 있으리라. 물과 식량이 떨어질 수도 있으리라, 항해의 고단함을 달랠 해맑은 유머 상비약도 준비해야지. 사소한 문제로 다툴지라도 공명정대하게 판정을 내릴 수 있는 학급운영원칙도 준비하리라. 아이들의 미래가 눈에 들어오도록 밑그림을 그려주고, 예쁘게 색칠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지. 그리고 개학 날 첫 만남부터 종업식이 있는 그날까지 가상 항해일지도 미리 써두어야지.

무엇보다 먼저 1년간 동고동락할 반 친구들의 이름을 외우자. 그것이 아이들에게 주는 첫  번째 행복이 아니겠는가. 39명을 만나기 전에 이름을 외운다는 것은 내가 그들에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성의일 것이다. 그들을 제대로 만나려면 특징을 파악하고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다가가야 한다. 거기다가 이름을 불러주는 일이야말로 관심의 적극적인 표현이다.

'아이들에게 행복이란 뭘까?'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고 살 때가 아닐까. 아이들이 학교에서 행복한 일은 공부를 잘하는 일만은 아니다. 친구와 친구, 선생님들, 담임과 학생들과의 관계가 편해야 한다. 그렇다. 모두가 공부를 잘할 수 없는 법이다. 24시간 내내 공부만 할 수 없다. 놀기도 해야 하고 떠들 때도 있을 것이요, 꾸지람을 들을 때도 칭찬을 받을 때도 있을 것이다. 조용히 침잠할 때도 흥분할 때도 있는 것이다. 그런 일상 속에서 아이들과 허리를 젖히며 깔깔대며 웃을 때가 있다면 그것이 행복 아니겠는가.

요즘은 '가르친다'는 표현이 적절치 않을 때가 있다. '코디한다' 거나 '디자인한다'가 더 적당한 것 같다. 아이들은 의외로 능력이 많다. 그들의 창의적인 능력에 깜짝 놀란다.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가이드 역할을 하는 것이 교사가 해야 할 최선의 일이다. 지식만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의 유기성을 체득할 수 있도록 아이들에게 조력할 때, 청소년의 갈등은 반감될 것이다.

이맘 때 학교는 개학 준비로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 각종 사건 사고로 곱지 않은 세상 시선을 업고 새 학기를 시작하려는 교사들의 어깨는 또 다른 무게를 느낀다. 그래도 우리는 이상을 꿈꾼다. 학급을 통해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작은 공화국을 만들자. 그래서 아이들이 행복하고 교사가 보람있는 학교를 만들자. 아이들이 성장해 세파를 헤쳐나갈 즈음 가장 멋진 지혜를 키워준 산파였다는 얘기를 듣는다면 교사는 영원히 행복하리라.


#개학#학급운영#학급배정#학급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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