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저는 지난해 3월부터 서울형혁신학교로 지정된 신설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현재 뜻을 같이하는 교사들과 꿈의 학교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서울형 혁신학교 이야기'는 선생님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서울형 혁신학교 이야기입니다. <기자말>

작년 이맘때 설레는 마음으로 개설요원으로 발령을 받고 한창 공사 중인 학교에 들어선 지가 어제 같은데 벌써 일 년이 지났습니다. 이제야 뒤돌아 볼 시간과 여유가 조금 생긴 것 같습니다. 우리 학교 교사들은 요즘 정신없이 보낸 지난 1년의 세월을 정리하고 돌아올 1년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는 주5일 수업제가 처음으로 전면 시행되는 첫해입니다. 주5일 수업을 전면 실시하게 되면 법정 수업일수가 '190일 이상'으로 되어서, 작년 월 2회 주5일 수업을 한 때인 '205일 이상'보다 최대 15일이나 수업일수가 줄어들게 됩니다. 주5일 수업제가 오래전부터 도입되려다가 말곤 했는데,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시행하게 된 것이 여러모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학교교육과정, 주5일 수업제 실시 따라 내용도 달라져야

'주5일 수업제'를 맞이한다는 것은 단지 학교 수업을 5일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학교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주5일 수업제가 도입되는 취지를 최대한 살리려면 기존의 학교 교육 틀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봅니다. 단지 수업일수만 줄여서 해결되지 않고, 수업 속에 담아내는 내용과 방법도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교과부와 교육청은 물론이고 학교도 고민이 많습니다.

우리 학교도 주5일 수업제를 처음으로 맞이하면서 작년과 학교교육과정 운영의 틀이 바뀌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지난 11월부터 현재까지 전체교사들과 가장 주5일제 수업에 알맞은 학교교육과정의 내용과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논의에 논의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의 틀을 벗어나서 법이 정한 범위에서 마음껏 새롭고 다양한 의견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새롭고 다양한 의견들을 실현하지 못하게 막는 곳은 다름 아닌, '자율성과 다양성, 창의성'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교과부와 교육청 당사자들입니다. 수업일수만 줄어들었지 모습은 여전히 과거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그보다 더한 것은 교육청이 학교교육과정 편성에 대한 것을 '컨설팅'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자꾸 간섭하고 참견한다는 것입니다. 교과부와 교육청은 법적 근거도 없이 우리들의 다양한 생각들을 '하지 마라!'만 하고 있습니다. 교과부와 교육청이 '하지 마라!'는 것에는 여러 가지가 많은데 대표적인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주당수업시수 29.5시간 편성 불가!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을 쪼개서(분할해서) 운영하지 마라!
1일 수업시간을 6교시 넘게 배당하지 마라!(7교시 수업 지양)

학교교육과정 편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 내용입니다. '29.5', '분할', '6'이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있는 내용인데 내용은 보려 하지 않고 무조건 '하지 마라!'고만 하고 있습니다. 내용 전달방법도 공문이 아닌, 개인 메일 전달 방법으로 하고 있는데, 학교들은 모두 장학사가 보낸 메일을 반드시 학교에서 지켜야 할 '지침'으로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시 교육청 담당 장학사는 10일 기자와 면담한 자리에서 '메일은 지침이 아니다'고 밝혔습니다.)

교과부와 교육청이 학교 현장에 '지시'하고 있는 내용을 보면 상위법과 배치되는 것으로 지극히 자의적인 해석에 불과합니다. 교과부는 이미 '학교자율화조치'(2008. 4.15)를 발표했고, 2009 개정 교육과정을 고시하면서 '창의·인성교육'을 강조하고 '자율화·다양화된 교육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교과부 방침대로라면 교과부는 학교현장에 '하지 마라!'보다는 '(법 테두리에서) 한번 해 봐라!'는 내용이 더 많아야 하는데, '해 봐라'는 것은 없고 오직 '하지 마라!' 투성입니다. 학교는 지금 교과부의 '하지 마라!'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형편입니다. '하지 마라!' 때문에 학교에는 '자율성'과 '창의성'을 발휘할 것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교과부 눈치를 보고 있는 교육청은 더 합니다. 학교교육과정 편성에 대한 내용까지 시시콜콜하게 참견하고 못하게 하는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학교가 과거 전례대로 해 오던 것에서 벗어나서 좀 더 새롭게 자율성과 창의성을 발휘할 기회를 교과부와 교육청은 전적으로 막고 있습니다.

교육과정에도 '학교단위의 자율적 편성 운영' 강조 하지만...

교과부가 학교교육과정 편성에 대해서 이미 모든 것을 규제하고 있는데 반해, 그나마 학교 자율과 창의성을 맘껏 풀어놓고 있는 것이 있다면, 2009 개정 교육과정에서 가장 특징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창의적 체험활동입니다. 올해 1학년부터 4학년까지 적용이 되는 창의적 체험활동운영 방법에 대해 2009 개정 교육과정 창의적 교육과정 해설서에는 다음과 같이 학교단위의 자율적 편성·운영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모든 학교에서 똑같은 교육과정을 획일적으로 교육하는 방식에서 탈피하여, 모든 학교가 특성화된 교육과정을 운영하게 되었다. 국가는 교육과정 운영의 기본 틀만을 제시함으로써, 학교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성을 대폭 확대하였다.'(6쪽)
 '창의적 체험활동은 운영 면에서 단위 학교의 자율성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창의적 체험활동은 학교 교육과정 편성 ․ 운영의 자율성과 융통성을 단위학교에 부여함으로써 학교 실정에 부합하는 특색있는 학교 교육과정 편성 ․ 운영을 더욱 가능하게 하였다..... 무엇보다 창의적 체험활동은 단위 학교 교육과정의 자율성이 많이 보장된 교육과정 영역이다.'(8쪽)
 '창의적 체험활동은 학생과 교사가 주제를 자유롭게 선정하여 장소, 시간, 방법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11쪽)
 '각 학교에서는 창의적 체험활동의 목표 달성에 적합한 내용을 선정하여 교육과정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14쪽)

그러나 교육청에서는 창의적 체험활동에 대해서도 계속 '하지 마라!'만 하고 있습니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5,6학년 특활지도서에도 분명 다음과 같이 제시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나, 교수 학습 운영
 1) 탄력적인 시간 운영
   특별활동은 학교의 필요에 따라 시간(단위) 배당 기준보다 더 많은 시간을 확보하여 운영할 수 있으며, 다양한 방식으로 시간 운영을 통합하거나 분할하여 융통성 있게 할 수 있다. (특활, 적응활동 교사용 지도서, 36쪽)

교과부와 교육청이 스스로 만천하에 내세우고 있는 단위학교 교육과정의 '자율성', '창의성', '다양성'이 구호뿐이 아니라 학교 현장에서 충분히 실현될 수 있게 하려면 지금부터라도 무조건'하지 마라!'를 거두고, 단위 학교가 법 테두리 안에서 맘껏 해 볼 수 있게 충분히 도와주고 지원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것이 바로 예전에 '하지 마라!' 위주의 '장학지도'가 '컨설팅'이 라는 말로 새로 바뀐 뜻이기도 합니다.

일반학교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자율학교' 이름을 달고 있는 혁신학교에서는 더욱더 다양한 교육, 틀에 박힌 과거의 교육내용과 방법을 반성해 보고 새롭게 고민하는 과정을 통해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틀을 맘껏 제시해 볼 수 있게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혁신학교의 내용 속에 기존의 교육내용과 방법에 대한 혁신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덧붙이는 글 | 그동안에도 학교교육과정편성운영할 때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작년과 올해 교육과정부장을 맡으면서 학교교육과정편성운영을 주도하는 있는 자리에 있고 보니 더욱 교과부와 교육청이 학교에 내리고 있는 '지시'와 '지침'이 학교 현장과 괴리되어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되었습니다. 다음은 교과부와 교육청이 학교교육과정편성운영에 대해 학교현장에 내리고 있는 직간접적인 '지시'와 '지침'의 문제점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학교교육과정편성운영#교과부#서울시교육청#창의적체험활동#서울형혁신학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34년만에 독립한 프리랜서 초등교사. 일놀이공부연구소 대표, 경기마을교육공동체 일놀이공부꿈의학교장, 서울특별시교육청 시민감사관(학사), 교육연구자, 농부, 작가, 강사. 단독저서,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 외 열세 권, 공저 '혁신학교, 한국 교육의 미래를 열다.'외 이십여 권 있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