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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이 세상을 아프게 한다> 겉그림
<말이 세상을 아프게 한다> 겉그림 ⓒ 살림프랜즈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라는 속담이 있다. '발 없는 말 천리를 간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도 있다. 말조심하라는, 말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 말이다.

<말이 세상을 아프게 한다>는 우리들의 언어, 즉 '말'에 대한 이야기다. 제목을 처음 봤을 때 문득 위 속담들이 떠올랐다. '늘 조심하고 또 조심해도 어느 순간 실수하고 마는 말. 아마도 이 책이 도움될 거야'와 같은 생각과 함께.

하지만 나의 이런 기대와 달리 이 책은 개인의 말조심이 아닌,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말이나 용어들을 다루고 있다.

청소년, 장애우, 미혼, 미혼모, 시댁과 처가, 남녀, 착한 몸매, 결손가정,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 옴, 하나님 아버지, 학부형, 교편을 잡다 등 사회 구성원인 우리들이 보편적으로 당연한 듯, 그리고 바람직하지 못한 말이라는 것을 모르고 쓰지만 알고 보면 누군가를 아프게 하고 나아가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그런 말들.

"가해자의 책임과 관련해서 성폭력 사건을 명명하는 방식에 대해 잠깐 살펴보죠. 일전에 나영이라는 아이가 끔찍하게 성폭행 당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사건의 가해자는 조두순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건은 '나영이 사건'일까요. '조두순 사건'일까요?

언론마다 다르게 명명했습니다. 범죄 사건은 가해자의 이름으로 부르는 게 맞지, 피해자의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가해자의 이름은 공개해도 되지만, 피해자의 이름은 공개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피해자의 이름은 밝히지 않는 게 당사자를 위해서도 낫습니다. 그런데도 왜 나영이라는 이름이 주목받은 걸까요? 그것은 한낱 호기심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아이가 끔찍한 일을 당했는지 궁금해 합니다." (본문 중에서)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라, 사실 성범죄 관련 보도를 볼 때면 나 역시 조두순보다는 나영이란 이름을 먼저 떠올리는지라 예사로 읽지 못한 부분이다.

시댁은 높이고 처가는 낮춘다

저자는 또 다른 예로 2007년에 일어난 '혜진·예슬이 사건'을 이야기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혜진·예슬이 사건'으로 불렸는지라 가해자인 '정성현'이란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많아도 피해자의 이름은 우리들 기억 속에 낯익다.

아마도 여기까지 읽은 독자 중에 그렇다면 위에서 잠깐 언급한 '미혼'이나 '미혼모', '시댁과 처가', '학부형', '결손 가정' '착한 몸매' 등과 같은 말들이 왜 그다지 바람직하지 못한 지, 왜 우리 사회를 아프게 하는 말일까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시댁(媤宅)과 처가(處家). 시집은 남편의 집안, 곧 시부모가 사는 집이고, 처가는 아내의 본가입니다. 시집은 다른 말로 시가(媤家)라고도 합니다. 시집을 높이면 시댁이 되고 처가를 높이면 처가댁이 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시댁과 처가와의 갈등'(<시사저널> 2010년 10월 6일 자)처럼 시댁과 처가를 대비해서 씁니다.

남자 쪽은 '댁(宅)'으로 높이고, 여자 쪽은 '가(家)'로 낮추는 식이죠. '출가외인(出嫁外人)'이나 '처가와 뒷간(화장실)은 멀수록 좋다' 등과 같은 말에 반영되어 있는 시가 중심 문화의 결과 입니다. 이 같은 시댁과 처가의 대비는 공평하지 않습니다. 시댁을 쓰려면 처가도 처가댁으로 쓰고, 처가를 쓰려면 시댁도 시집이나 시가로 써야 하겠죠."(본문 중에서)

예전에도 어떤 책에서 이와 비슷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쉽게 공감했다. 그럼에도 여자인 내 입에서 지금도 나도 모르게 '시댁'과 '처갓집'이란 말이 튀어 나오는 것은 공감만 했지 '바람직하지 못한 말은 가급적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없었기 때문일 게다. 이런 개인적인 소회 때문에 이 또한 남다르게 읽은 부분이다.

예쁘지도 몸매도 별로인 나, 그럼 나쁜 사람?

요즘 많이 쓰는 말 중에 '착한 가격(가게)', '착한 몸매' 등이 있다. 언제부터 누구에 의해 이 말이 처음 쓰여 졌는지 모르겠지만 비교적 양심적인 가격이라는 뜻의 착한 가격과 달리 착한 몸매는 쓰지 않는 것이 바람직 할 것 같다.

'착한 몸매'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말이라는 것에 궁금해 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다. 최근 자주 쓰이고 있는 신조어가 '착한 가격', '착한 몸매' 등처럼 앞에 '착한'이 들어가는  말들이다.

 '네이버'와 '다음'의 검색창 '착한' 입력 화면 캡쳐
'네이버'와 '다음'의 검색창 '착한' 입력 화면 캡쳐 ⓒ 네이버·다음

얼마나 많은 '착한' 것들이 있을까. 거의 매일 1회 이상은 이용하는 포털 누리집 검색창에 '착한'이란 말을 입력하자 이처럼 수많은 '착한…'이 자동으로 뜬다. 개인들이 소소하게 검색했을 것들까지 생각한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보다 훨씬 많은 '착한○○'이 있지 않을까 싶다.

"미적 판단이 윤리적 판단을 대체한 상징적 표현이 바로 '착한 몸매'입니다. '착한 몸매'는 잘빠진 몸매를 이르는 말입니다. '착한 몸매'에는 개념이 다른 두 개의 낱말이 포개져 있습니다. '착한'은 마음에 관한 표현이고 몸매는 몸에 관한 표현인데, '착한 몸매'에서 '착한'이 수식하는 말은 마음이 아니라 몸매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몸의 모양새는 결코 착할 수 없지만, '착한 몸매'라는 표현에서는 잘 빠진 몸매라는 미적 판단이 착함이라는 윤리적 판단을 대체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착한 몸매'는 다분히 시사적입니다. 모든 것이, 심지어 윤리까지도 외면적가치에 철저히 종속된 오늘날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이제 진선미(眞善美) 중의 으뜸은 단연 미입니다.'미(美)에 종속된 선(善)'은 외모지상주의에 물든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그런 현실에서 '얼꽝', '몸꽝', '숏다리'는  저주받은 신체의 낙인이 됩니다."(본문 중에서)

'착한'에 대한 설명은 새삼스럽다. 여하간 남들이 보아 그다지 잘나지 못한 몸매인 나는 결코 착하지 못하다는 말이 된다. 이는 윤리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말과도 같다. <말이 세상을 아프게 한다>는 이처럼 우리들이 깊이 생각하지 않고 쓰는 말이 은연 중 품고 있는 폭력과 그 폐해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추측하건대, 이 책에서 문제 삼고 있는 말들도 '착한 몸매'처럼 사람들이 별다른 생각 없이 쓰기 시작했는데, '정성현 사건'이라 해야 할 것을 언론이나 관련 기관들이 '혜진·예슬이 사건'으로 깊은 생각 없이 보도한 뒤 확산한 것처럼, 현재까지 재생산된 것이 아닐까. 누군가 저자처럼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사회 구성원들이 쓰는 것을 자제하거나 조금이라도 신중하게 언어 선택을 하는 노력을 했더라면 스스로 사라지고 말았을 것을 말이다.

'남녀'나 '남편과 부인', '남성과 여성'처럼 보편적으로는 남성을 앞세워 쓰지만, '연놈'처럼 부정적으로 쓰일 때는 여성을 앞세우거나 유독 많은 여성과 관련된 좋지 않은 말들. '국민 여동생'이나 '유관순 누나'처럼 남성의 시각이나 남성 기준으로 쓰인 말들도 결코 곱지 못한 말들로 고치거나 자제해야 한다. 내가 여성이기 때문인지 껄끄럽기만 하다.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지만 노력해봐야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다. 좋은 말의 가치를 살려주는 속담이다. 우리 누구나 죽는 날까지 어떤 말이든 끊임없이 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왕 하는 말 누군가를 살리는 말을 해야 하지 않을까. 천 냥 빚을 갚을 정도의 가치 있고 감동스러운 말은 못할지라도, 적어도 누군가를 아프게 하고 병들게 하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그녀'의 역사
"사실 '그녀'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그'나 '그녀'가 쓰이기 시작한 것은 100년도 안 되었습니다. 그전까지는 '그' 대신에 '궐자(厥者)', '그녀' 대신에 '궐녀(厥女)라는 말을 썼는데, 신문학 초창기인 1919년경부터 김동인 등이 '그'와 '그녀'를 쓰기 시작했죠. 영어의 'he'와 'she', 일본어의 かのじょ(彼女) 등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습니다."(본문 중에서)

하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함께 살아가는 누군가가 쓰기에 자연스럽게 써왔을 뿐이다. 또한, 교과서나 언론이 기본말로 쓰니 나도 당연하게 아무런 의심 없이 써온 말들인데 알고 보니 이처럼 바람직하지 못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노력은 해야 하지 않을까? 시대가 바뀌었으니 옛 시대의 그른 문화가 양산한 말들만이라도 우선 고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한국교육개발원이 발표한 최근 자료에 보면 우리나라 초·중·고등학교 학생 중 욕설을 하지 않는다는 학생은 20명 중 고작 한 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반면, 매일 욕설을 한 번 이상 한다는 학생은 70%나 된다. 우리 사회가 욕설과 그릇된 말로 병들었다는 한 증거인 것이다. 이 책은 이와 같은 현실을 반영, 청소년을 주 대상 독자로 쓴 책이란다.

'그녀'의 역사처럼(위 박스기사 참고) 말에 관련한 다양한 읽을거리를 쪽지 형태로 들려주는 것도 이 책을 바짝 끌어 당겨 읽게 하는 이유 중 하나. 이외에도 좌우, 오른손, 지방지, 태극전사, 여편네, 산부인과, 사생아, 처녀작이나 처녀출판과 같은 처녀-, 군대를 갔다 와야 사람(어른) 된다, 여직원이나 여배우와 같은 여(직업), 여자중(고등)학교, 집 식구 혹은 안 식구 등과 같은 말들의 바람직하지 못한 그늘과 모순들을 명확하게 다룬다.

덧붙이는 글 | <말이 세상을 아프게 한다>(오승현 씀ㅣ살림프랜즈(살림출판사)ㅣ2011.11. | 1만2000원)



말이 세상을 아프게 한다 - 차별과 편견을 허무는 평등한 언어 사용 설명서

오승현 지음, 살림Friends(2011)


#말(언어)#착한 몸매#시댁#처가(처갓집)#오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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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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