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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다니다 보면 전국 각지의 자치단체들이 발행한 관광 안내 홍보책자를 보게 된다. 물론 의성군도 <의성 관광>이라는 홍보책자를 발행하고 있다. 표지에는 '아름답고 풍요로운 의와 예의 고장! 의성 관광 Tourist map of Uiseong'이라는 글자와 금성산 고분군 사진이 실려 있다.

펼쳐보면, 앞면은 '의성군 관광 안내도'이고, 뒷면은 'Theme 1 휴양지와 공원', 'Theme 2 명소와 유적지', 그리고 문화행사, 명산, 특산품, 관광 코스, 의성읍 시가도, 마늘소 먹거리 타운에 대한 소개로 이루어져 있다. 

'Theme 2 명소와 유적지'에 자연의 '보물'인 천연기념물 두 곳이 소개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국보 77호인 탑리 5층석탑, 보물 327호인 빙산사지 5층석탑, 보물 188호인 관덕동 3층석탑, 보물 246호인 고운사 석조 석가여래 좌상, 보물 880호인 <정만록>에 대해 알아보았으니 이제는 '자연의 보물'인 천연기념물을 둘러볼 차례이기 때문이다.

의성이 자랑하는 '자연의 보물' 천연기념물 두 곳은 점곡면 사촌리의 숲과 금성면 제오리의 공룡 발자국이다. 사촌리 가로숲은 천연기념물 405호이고, 제오리 공룡 발자국은 천연기념물 373호이다. 고운사 석조 석가여래 좌상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촌리 가로숲부터 살펴보는 것이 여정(旅程)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방법이겠다.

 사촌마을 입구의 숲. 천연기념물이다.
사촌마을 입구의 숲. 천연기념물이다. ⓒ 정만진

고운사 가운루에서 대형 주차장 앞의 새로 지은 일주문까지 향기가 가득한 금강송 황토 숲길을 걷고, 다시 노란 은행잎이 황홀한 길을 달려 79번 지방도로로 나온다. 여기서 좌회전하여 동쪽으로 나아가면 송내소나무숲과 김치중의열각, 그리고 박시목기념비를 지나 사촌마을 안으로 들어선다. 점곡면 면소재지인 이 마을의 입구가 바로 천연기념물인 '가로숲' 일대이다.

의성 사촌리 가로숲 (천연기념물 405호) : 약 600년 전 사촌마을이 형성될 때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심은 방풍림이 자라서 풍치림이 되어 경상북도 내에서 가장 큰 군락을 이룬 숲이다.

위의 글은, 의성군이 발행한 홍보책자 <의성 관광>에 나오는 사촌마을 가로숲 소개 내용이다. 사람들이 사촌마을을 이루어 살기 시작한 때가 600여 년 전의 일이고, 이곳의 가로숲도 그때 조성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촌마을에 둥지를 튼 사람들은 처음에는 바람(風)을 막기(防) 위해 방풍림(防風林)으로 나무를 심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나무는 점점 자라 아름다운 풍(風)경(致)을 자랑하는 풍치림(風致林)이 되었다. 그것도 '경상북도 도내에서 가장' 울창하고 위풍당당한 큰 숲이 되었다.

풍치림은 역사유적이나 사찰, 공원, 고속도로 등의 주위에 있으면서 경치를 더욱 멋지게 만들어내는 역할을 해내는 숲을 일컫는 용어이다. 근래에는 일본식 한자어인 풍치림 대신 '경관림(景觀林)'이라는 말을 사용하라고 권장하고 있다. 누가? 국립국어원에서.

사촌마을 안에도 거목들이 많다 천연기념물 가로숲이 있어서 그런지, 사촌마을에는 거목들이 많다. 왼쪽은 거대한 고목들이 울창한 후산정사, 오른쪽은 경상북도 기념물 107호인 향나무(만취당 옆)이다.
사촌마을 안에도 거목들이 많다천연기념물 가로숲이 있어서 그런지, 사촌마을에는 거목들이 많다. 왼쪽은 거대한 고목들이 울창한 후산정사, 오른쪽은 경상북도 기념물 107호인 향나무(만취당 옆)이다. ⓒ 정만진


그렇다면 '사촌마을 가로숲'의 '가로'는 무슨 뜻일까? <의성 관광> 홍보책자는 '가로숲'을 'Roadside Forest'로 변역하여 '가로'를 '길가'로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사촌리 가로숲이 옛날에는 농민들이 다니는 '길'의 '가'에 심어졌겠지만, 지금은 차가 다니는 도로를 '가로'막고 서 있다. 79번 도로를 기준으로 보면 이곳의 울창한 나무들은 차를 '가로'막는 숲이 되었다는 뜻이다.

'길가'의 '숲'보다 더 재미있는 해석을 해본다. 종횡(縱橫)의 '가로'로 보면 어떨까? 사촌마을이나 점곡면 소재지에서 바라보는 '사람'의 눈에는 나무숲이 가로로 1050m나 길게 이어져 있으니 '가로(縱)'이라 부를 만도 하다. 또 '가로'로 늘어서서 바람을 '가로'막아주는 숲이기도 하다.

다시 홍보책자를 보자. 사촌리의 이 숲이 국가 지정 천연기념물의 명예를 얻은 까닭이 밝혀져 있다. 약 600년 전에 심은 거목(巨木)이자 고목(古木)들이 경상북도 내에서 가장 많이 모여[群] '나무의 마을(落)'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만 하면 천연기념물이 되고도 남을 일이렷다. 

경상북도에서 가장 큰 600년 세월의 풍치림

 사촌마을은 스스로를 '문화재'나 역사유적지로 자부하고 있다. 도로변에 세워진 안내판도 문화역사유적지의 빛깔(짙은갈색 바탕에 흰 글자)을 하고 있다. 실제로 이 마을은 동네 중심부에 '사촌마을역사관'까지 건립해 두었다.
사촌마을은 스스로를 '문화재'나 역사유적지로 자부하고 있다. 도로변에 세워진 안내판도 문화역사유적지의 빛깔(짙은갈색 바탕에 흰 글자)을 하고 있다. 실제로 이 마을은 동네 중심부에 '사촌마을역사관'까지 건립해 두었다. ⓒ 정만진
숲 앞에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천연기념물이니 이 정도의 친절은 당연한 일이다. 커다란 고목들의 그늘에 가려 약간은 어둡게 보이는 글자들을 읽어본다.

의성 사촌리 가로숲
천연기념물 405호

이 가로 숲은 고려 말(1392년) 안동 김씨 중시조 충열공 김방경(金方慶)의 5세손 감목관(監牧官) 김자첨(金子瞻) 공이 안동 회곡에서 이곳으로 입향하여 조성하였다.

이주(移住) 후 '서쪽이 허(虛)하면 인물이 나지 않는다'는 풍수지리설과, 샛바람을 막아 삶의 터전을 보호하려는 선현들의 혜안이 있어 방풍림으로 여러 종류의 나무를 심었다.

수종은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팽나무를 주종으로 10여 종이며, 수령은 400∼600년이 되었다. 나무의 높이는 20∼30m로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데, 그 길이가 1050m에 이른다.

시조는 민족이나 집안을 연 분을 말한다. 우리 민족 모두의 시조는 '단군 할아버지'이지만, 집안마다 시조는 따로 각각 계신다. 따라서 안내판의 본문에 나오는 '중시조(中始祖)'는 약해진 집안을 중(中)간에 다시 크게 일으킨 중간 시조(始祖)를 말한다. 

본문은 또 '김자첨 공이 안동 회곡에서 이곳으로 입향'하였다는 내력(來歷)을 밝히고 있다. 본래 안동 회곡에 거주하던 안동 김씨의 일부가 이곳 의성 사촌마을[鄕]로 옮겨(移) 살았는데(住), 처음 들어와(入) 살기 시작한 사람은 김방경의 5세손(世孫) 김자첨이었다. 그는 김방경의 고손자였다.

 점곡초등학교 교정의 숲
점곡초등학교 교정의 숲 ⓒ 정만진

그는 감목관을 역임했다. 감목관(監牧官)은 고대부터 전쟁, 수송, 목축, 교통 증 여러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재산이었던 말을 키우는 목(牧)장의 감(監)독 관(官)리이다. 조선 고종 때에는 먼저 감목관을 역임한 사람만 지방 고을의 수령으로 임명했다고 하고, <대전회통>이라는 책에도 감목관의 정원이 경기도 5명, 충청도 1명, 전라도 5명, 경상도 3명, 황해도 3명, 함경도 3명, 평안도 1명에 지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을 보면 감목관은 상당히 중요한 벼슬이었다.

사촌마을에 들어와 살기 시작한 안동 김씨들은 마을 서쪽에 나무를 심었다. 마을이 뒤편에는 산이 있어 안정된 느낌을 주었지만, 서쪽 방면이 너무 훤하게 뚫려 있어서 바람에 시달리는 등 집터로는 약했기 때문이다. 이는 또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을 따른 조치이기도 했다. 당시 사람들은 땅의 모양, 바람(風)의 방향, 물(水)의 흐름 등 지리(地理)의 조건이 사람살이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說)을 굳게 믿었는데, 서쪽이 약한 곳에 살면 후손들이 출세를 하지 못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마을 서쪽에 나무를 심었다.

그렇게 나무를 심은 것은 앞(先) 시대를 산 현(賢)명한 조상들의 지혜(惠)로운 안[眼]목을 따른 식목(植木)이기도 했다. 1km 이상 이어지는 나무들은 바람을 막아 마을을 따뜻하게 만들어주었고, 곡식이 익는 데에도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의성 관광>의 'Roadside Forest in Sachon-ri, Uiseong'보다 현지 안내판의 'THE WEST FOREST OF SACHON-RI, UISEONG'이 더 좋은 번역이다. '길가'의 숲보다는 '서쪽'의 숲이 뭔가 사연이 있는 듯 느껴지고, 문학적 분위기도 훨씬 은은하게 풍겨나는 까닭에.

점곡초등 교정 은행나무길도 보기드문 아름다움

가로숲 근처에 있어서 그런지 점곡초등학교 교정도 아름다운 풍치를 자랑한다. 특히 10월말에 찾아가면 하얀 구름 사이로 머리를 밀어넣은 듯 시원하게 솟구친 은행나무들이 두 줄로 나란히 선 채 노랗고 고운 잎새들을 폴폴 떨어뜨려 운동장 한켠을 폭신폭신하게 만들어주는 절묘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그 아래를 거닐며 은행잎사귀들의 감촉을 발 아래로 느껴보면, 왜 김자첨 공이 이곳으로 이사를 왔는지 저절로 헤아려지는 기분이 된다.

이런 곳, 나무가 울창한 숲이나 꽃이 화사한 화원, 붉고 맑은 열매들이 옹기종기한 과수원 등을 찾았으면 무엇보다도 걸어야 한다. 나무와 풀, 그리고 꽃과 바람이 안겨주는 풋풋한 내음을 맡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런 곳을 답사한 사람이 다른 모든 일에 앞서 즉각 실천해야 할 '행동'이다. 걸으라. 걷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자연이 그의 것이다.


#의성여행#사촌마을가로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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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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