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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크리스마스 때는 생략하기로 내심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새벽 송'을 하는 교회가 많지 않을 뿐 아니라 추운 밤 기온에 몇 시간을 바깥에서 도보로 걷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은 함께 하자고 하기에도 좀 부담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주일 낮 예배와 수요 밤 예배 때 일부러 광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24일, 그러니까 성탄절 전 날이 됩니다. 우리 교회 할머니들과 마을 노인 분들께 점심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떡국을 끓이고 불고기를 굽고 잡채 요리에 사라다 등 몇 가지 반찬이 덧붙여졌습니다. 김종말 집사님은 송편을 만들어 왔고, 이상혁 장로님과 여전봉 집사님은 할머니들 드리라고 과자와 치약 등 선물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이선옥 권사님은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특별 주문해서 가지고 왔습니다. 초콜릿으로 장식된 케이크 위에 'Merry Christmas, 성탄을 축하합니다!'라는 글귀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들뜬 분위기에 편승한 학생들은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를 '생신 축하합니다. 예수님의 생신을 축하합니다'로 고쳐 힘껏 불렀습니다. 그리고 오후 2시부터 학생회 발표회가 시작되었습니다.

 

학교를 파하고 짧은 시간 연습들을 하는가 싶더니, 생각한 것보다 발표를 잘 했습니다. 아이들은 너나없이 연예인 기질들을 갖고 있다는 말이 실감이 났습니다. 우리 교회 아이들은 그 숫자만큼이나 다양합니다. 모범생에서부터 문제아로 보이는 아이들까지 정말 개성들이 강하고 갖고 있는 생각들이 가지각색입니다. 장학생이 있는가 하면 학교를 자퇴한 녀석도 있습니다.

 

탤런트를 꿈꾸는 정민이는 그날 이상한 행색을 하고 나타났습니다. 머리를 빨갛게 물들이고 빨강색 잠바에다 짙은 홍색 바지를 걸쳤습니다. 거기에다 운동화까지 빨강색입니다. 마치 중국 문화혁명 때의 홍위병을 연상케 하는 복장입니다. 다른 사람의 눈을 아랑곳하지 않고 행사장 모습들을 앵글에 담기에 바쁩니다.

 

아이들의 발표회는 아마추어 중의 아마추어 수준입니다. '아마추어'라는 말을 두 번이나 반복한 것은 그 수준이 높지 않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지요? 고액의 입장권을 끊어서 관람한 고급 연극보다 더 애정이 가는 것이요. 저는 엉성한 아이들의 작품이지만 더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발표한 것은 4개의 레파토리입니다. '슈퍼 내추럴'과 '예수 십자가에 흘린 피로써'는 음악에 맞춘 율동입니다. '밀알'은 더불어 살아갈 것은 주문한 수화(手話)입니다. 그 날 아이들의 발표 압권은 '김 집사의 크리스마스'라는 연극이었습니다. 각자 역할을 맡아 천연덕스럽게 하는 연기가 얼마나 그럴듯하든지.

 

럭키 페니(레스토랑) 김현옥 집사님이 아이들 수고했다며 전원을 초대해서 저녁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담임 목사인 저까지 23명의 먹성 좋은 아이들이 정말 톡톡히 대접을 받았습니다. 아이들이 레스토랑에 집단으로 간 것도 처음이지만 이렇게 각자의 분량에 맞게 햄버거 등을 먹어 본 것도 기대 밖이었습니다. 봉사와 섬김에 늘 앞장서는 김 집사님 내외이니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밤 8시가 넘어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일부의 아이들은 놀다가 교회에서 자고 가겠다고 합니다. 이미 집에서 허락을 받아 놓은 상태라는 것입니다. 좀 고민이 되었습니다. 이 아이들의 열정을 담아낼 시간과 공간이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박 사모와 담당 교사 혜선이 그리고 학생회장 현경이와 긴급 회동을 가졌습니다. 돌지 않기로 한 '새벽 송'을 도는 문제를 논의했습니다.

 

'새벽 송'을 돈다, 안 돈다 못을 박은 광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안 돌면 교회 사정이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길 테고, 돈다고 하면 매년 성탄 전야에 돌았던 것이니까 그냥 받아들일 것입니다. 아이들은 추운 날씨에 자기들의 복장 등 준비 정도는 전혀 생각하지도 않고 무조건 좋다고 했습니다. 주일학교 아이들도 덩달아 좋다면서 손뼉을 쳤습니다.

 

긴급 결정을 했습니다. 밤 11시에 돌아 2시 정도에 마칠 것을 예정하고 준비를 시켰습니다. 참석한 아이들도 예외 없이 끝까지 돌겠다고 다짐들을 했습니다. 손꼽아 보니 20여 호는 넉넉히 될 것 같았습니다. 크리스마스 캐롤송을 부르고 기도하고 성탄 축하와 새해 강복을 빌면 최대한 줄여도 3시간은 소요될 것 같았습니다. 사택에서 두터운 옷과 장갑 그리고 털모자와 목도리 등을 몽땅 찾아다가 아이들을 무장 시켰습니다.

 

사택에서 출발 테이프를 끊었습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두 곡 부른 뒤 제가 축복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용배 마을 김종말 집사님 댁을 거쳐 12가정을, 남전 마을엔 김명호 집사님 가정을 비롯해서 5가정을 그리고 마지막 도산 마을엔 박옥남 집사님 가정을 비롯해서 5가정을 돌았습니다. 용배 마을을 도는 데만 1시간 40분 가량 시간이 걸렸습니다. 다른 마을로 옮기는 과정에서 격무로 몸살을 앓고 있는 문혜선과 주일학교 아이들은 교회로 가서 먼저 쉬기로 양해가 되었습니다.

 

중간에 박철희 권사님과 김은자 집사님 그리고 향화 어머니, 김명옥 집사님, 최옥순 권사님이 선물을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만약 '새벽송'을 돌지 않았다면 크게 서운해 했을 것입니다. '새벽송'의 기원은 잘 모르겠습니다. 언제부터 있어왔는지, 그리고 왜 점점 사라져 가는지 확실하게 잡히는 것이 없었습니다. 단지 인간의 편의에 의해 사라져 가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추운 한 겨울 심야 날씨 속에 추위와 맞서가며 짧지 않은 시간을 가가호호 돈다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도회지 대형 교회를 중심으로 '새벽송'을 돌지 않은 지가 꽤 된다고 합니다. 지금도 소수의 농촌 교회에서만 무슨 전통이라도 고수하는 양 이 행사를 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그런 소수의 대열에 동참하고 있는 격이 됩니다. 세 시간 여를 소리로 다리로 손으로 중노동(?)을 하며 보내고 나니 배가 출출했습니다. 이럴 때 컵 라면은 맛 이전에 히트할 먹을거리가 될 것입니다. 저는 차를 돌려 24시 편의점에 가서 컵 라면 한 상자를 사왔습니다.

 

컵 라면으로 요기를 하고도 아이들은 한참을 자지 않고 놀았습니다. 게임을 하고 또 한쪽에선 피아노 소리에 맞추어 찬양을 하고, 저학년 아이들은 한쪽에서 새우잠을 청하기도 했습니다. 좁은 예배당 공간이 아이들로 초만원이었습니다. 장의자를 일부 밖으로 내왔지만 그래도 좁기는 매 한 가지입니다. 궁여지책으로 남학생들은 예배당에서 여학생들은 사택에서 나누어 자기로 하고 성탄절 행사의 막을 내렸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이런 경험은 좋은 추억이 될 것이라고 했고, 또 다른 아이는 힘든 '새벽송' 돌기였지만 기쁨이 더 컸다고 어른스런 얘기를 했습니다. 성탄절은 우리 모두의 잔칫날입니다. 예수님은 인류 전체를 위해 오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의 성탄절 행사를 생각하면 아이들의 성탄절이란 느낌이 강하게 다가옵니다. 아마 아이들이 잔치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이런 우리 교회의 성탄절 행사를 준비하면서 '베들레헴의 예수님, 덕천교회의 예수님'이란 비유적 표현을 떠올렸습니다. 이 제목은 저의 성탄 축하 예배 설교 제목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감사할 일입니다.


#성탄절 행사#덕천교회#새벽송 돌기#학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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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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