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 1 / 18 )

ⓒ 강복자

길이 아닌 길로 어프로치

주말을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할수록 주말은 멀리 있다. 가까스로 주말은 왔지만 비가오고 추워진다는 일기예보에 은근히 걱정이 앞선다. 그러나 어김없이 배낭을 꾸렸다. 이른 아침 숙대역에서 재필이와 근영이를 태우고 도선사 주차장으로 향했다. 산으로 오르기 전 따끈한 떡국 한 그릇씩으로 속을 녹이고 인수 야영장으로 향했다.

야영을 한 조용준 대장과 영길, 주성, 성준이가 부스스한 얼굴로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산을 집 삼은 동료들 덕분에 이웃집 마실가는 마음으로 북한산을 찾을 수 있다.

선등을 맡은, 고슴도치 헤어스타일의 김주영씨가 마침내 합류했다. 기온이 많이 내려가면 암벽타기가 힘들 것이라는 귀띔이 있었기에 대장님의 결정이 궁금했다.

대장님은 침묵했고, 주영씨는 그것을 실행으로 해석했다. 우리는 배낭들을 메고 따라 나섰다. 코스는 동양길. 날씨가 추우니 햇볕이 잘 드는 남측 코스를 택한 것이다.

야영장에서 동양길 암벽까지의 어프로치조차 가파른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속이다. 잠수함 바위를 지나 나무와 바위가 가로막은 길 없는 길을 갔다.

도착한 곳은 여정길 옆. 인수암 가는 쉽고 편한 길을 두고 험난한 어프로치를 시도한 것이다.

탈 때는 벗고 쉴 때는 입어라

인수 바위는 오늘 더욱 빛나게 반짝이고 있다. 동양길은 선배들의 말에 의하면 남측에서 가장 쉬우면서 재미있는 길이란다. 여름과 시즌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벼서 순서를 기다려야하는 코스임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우리팀외에는 아무도 없다.

어프로치 동안 벌써 발가락이 얼어서 감각이 없다.

"이 날씨가 바로 에베레스트에서의 날씨입니다."

에베레스트의 여러 루터를 등반한 프로 산꾼 주영씨가 말했다.

콧잔등은 빨갛고 손가락은 감각이 사라졌다. 굳은 몸을 풀기위해 뜀뛰기를 했다. 옷을 위주로 배낭을 다시 정리했다. 해발 100m 높아지면 온도가 1도씩 떨어지니 오를수록 추위는 더 심해지는 것이다. 또한 피치와 피치사이의 대기시간들을 견딜 충분한 방한 대비책을 세워야한다. 암벽을 탈 때는 옷을 벗고 쉴 때는 입는 것이 불문율이다. 쉴 때 덥다고 옷을 벗으면 금방 체온이 떨어지고, 떨어진 체온을 다시 올리는 일은 어렵기 때문이다.

동양길 첫피치의 난이도는 5.8.  아래에서 보는 바위의 모습과 면벽을 했을 때의 바위의 모습은 다르다. 밑에서 올려다 볼 때는 크랙이 크게 보이고 발을 딛고 설수도 있어 보인다. 그러나 막상 바위에 붙으면 잡을 곳도, 발 디딜 곳도 여의치가 않다.

두 번째 피치는 오른 쪽으로 사선을 그리다가 수직으로 위를 향한다. 직벽에 가깝다. 오늘은 자신감이 앞서는데 암벽은 자신감으로 되지를 않는다. 체력이 뒷받침되어야한다. 지난주에 인수A변형에서 무리한 오른팔이 아직까지 원상회복이 되지 않더니 결국 한 팔에 힘을 줄 수가 없다.

슬랩에 한 발을 놓으면 그 발밑의 바위를 믿고 한 번에 몸을 이동해야한다. 그러나 나는 아직 그 슬랩을 믿지 못한다. 몇 번씩 미끄럼을 테스트하다가 체력을 더 소진한다. 또한 직벽을 한 번에 차고 올라야한다. 두 번 미끄러지면 스스로 오르기는 힘들어진다.

계속되는 직벽과 벼랑이다. 선등중인 주영씨가 밑을 향해 소리쳤다.

"정상까지는 힘들겠다."

추위와 바람 때문이었다.

사광을 받는 바위의 햇살은 순식간에 이동한다.  한 피치를 오를 동안 나를 비추던 빛은 금방 서쪽으로 내달리고 나를 뒤따르는 성준이와 대장은 계속 그늘진 암벽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다.

절벽의 소나무는 간절한 서원의 결과일 거야

세 번째 피치는 암릉과 크랙을 따라 연결된 20미터쯤 되는 구간이다. 하켄haken은 하나 밖에 없다. 앞서가는 재필이가 잡을 곳이 없다고 난감해한다. 하켄에 슬링sling을 걸어 발의 지지대를 만들어 오르고 있다.

네 번째 피치도 마지막 도착지점에 부드러운 홈들이 4-5개가 있음에도 어떤 방향으로 손을 뻗어야할지 막막했다. 먼저 도착해 있는 재필이의 조언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오늘은 네 번째 피치에서 하강하기로 결정했다. 이곳부터는 학교B길과 하늘길이 만나는 구간이란다. 오른쪽 옆에는 작은 소나무 한 그루가 바위틈에서 자라고 있다. 절벽에 자리 잡은 소나무를 눈높이로 만나니 더욱 고고해 보인다.

나는 60미터 두 줄 하강을 하고 옆에는 성준이가 올라오고 있다. 올라왔던 길을 약간 비켜서 하강을 하니 지난번 서측과는 또 다른 비경이 펼쳐져 있다. 천천히 줄을 늦추며 주위를 돌아보니 내려가고 싶지가 않다.

바위 어느 틈에 내 몸이 붙어 버리면 저 절벽의 소나무가 될 것이다. 그 소나무는 우연이 아니라 아마 간절한 소원의 결과로 이곳에 소나무로 태어난 듯싶었다.

나는 소원했다. 이 절벽의, 소나무로 환생케 해달라고…….

솔씨와 바위

아래의 글은 시인이자 동화작가이신 가순열 선생님께서 인수봉 동양길 등정기인 '한그루 절벽의 소나무였으면...'이라는 위의 글을 읽으시고 한 편의 동화로 만들어 보내주셨습니다.
아래는 그 내용입니다._기자 말

솔씨 하나가 바위에 날아 앉았다. 그것도 가파른 벼랑 바위틈이었다. 힘껏 날아오른다는 것이 그만 인수 바위 중간쯤에 걸터앉게 된 것이다.

 인수봉 바위 절벽을 오르다
 인수봉 바위 절벽을 오르다
ⓒ 강복자

관련사진보기


"에이 겨우 여기였어. 난 하늘과 제일 가까운 곳, 최고로 높은 정상에 내려앉고 싶었는데."

솔씨는 내심 실망을 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찔했다. 수 백 미터 아래를 내려다보는 순간, 자신이 심연 속으로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인수봉 절벽을 먼저 오른 나무들
 인수봉 절벽을 먼저 오른 나무들
ⓒ 강복자

관련사진보기


"왜 하필 이런 바위틈에 끼이게 된 거야. 거기다 암벽에 풀 한 포기 나지 않은 곳이잖아."

실망에 빠져 있는 것조차 사치였다.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맘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갑자기 불어 닥친 센바람에 몸을 맡긴 게 잘못이었다. 아주 높은 곳, 뿌리 내리기 좋은 곳으로 데려다 줄 것 같아 좋아했었는데.

"어쩌지? 누가 와서 나를 여기서 빼내지 않으면 나는 영영 이곳에서 빠져 나가지 못할 텐데..."

 나무들, 인수봉 절벽에 서다
 나무들, 인수봉 절벽에 서다
ⓒ 강복자

관련사진보기


솔씨는 그렇게 몇 날 며칠, 자신을 구출해 줄 용사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런 행운은 솔씨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런데 자신의 몸에서 자꾸 발아가 시작되었다. 어딘가에 뿌리를 내리지 않으면 말라 죽을 게 뻔했다.

"어쩌지? 이를 어째."

울어도 소용없었다. 산이 떠나가라 소리쳐도 듣는 이가 없었다. 그 때였다.

"그대는 누구인고? 누가 내 몸에 간지럼을 태우느냔 말이다."

바위였다. 깊은 잠에 빠져있던 바위는 자신의 배 언저리에서 꿈틀대고 있는 것에 몹시 기분이 나빠졌다. 겁도 없이 또 찾아와 잠을 깬 것이 벌레라 여겨졌던 것이다.

 인수봉 절벽, 구름높이에서 본 아득한 대처
 인수봉 절벽, 구름높이에서 본 아득한 대처
ⓒ 강복자

관련사진보기


"저기 바위님, 저는 저 아래 살던 솔씨입니다. 어쩌다 제가 여기까지 왔는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바위님, 저를 좀 품어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곧 죽게..."

바위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냉정하게 내칠 수는 없었다. 그 날부터 바위는 솔씨를 포근하게 감싸기 시작했다. 바람도 막아주고 햇빛도 가려주고 물도 적당하게 흡수하고...

어느 날부터 바위는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갈기갈기 찢어지는 아픔이 계속 이어졌다. 이윽고 솔 씨는 바위를 뚫고 가지를 뻗기 시작했다. 바위는 해산의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솔씨를 보살폈다.

 바위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
 바위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
ⓒ 강복자

관련사진보기


솔씨는 무럭무럭 자랐다. 그래서 그 곳을 스쳐가는 이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지쳐있는 그들에게 희망을 안겨 주기도 했다.

"아! 저 고고한 소나무 좀 봐. 나도 저 소나무처럼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

 인수봉을 올라 절벽에 선 나무를 만나다
 인수봉을 올라 절벽에 선 나무를 만나다
ⓒ 강복자

관련사진보기


솔씨는 억새풀처럼 하얀 머리카락을 가진 아주머니의 눈웃음을 보며 바위에게 고맙다는 인사로 온 몸을 흔들어 보였다.  ●글 | 가순열(시인, 동화작가)  사진 | 강복자(하얀 머리카락을 가진 아주머니)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암벽등반 | 인수봉 동양길

●일시 | 2011년 11월20일 일요일

●온도 | 0-영상7도

●팀원 | 선등자 김주영, 대장 조용준, 이경순, 박성준, 송재필, 이영길, 이주성, 문근영, 강복자



#인수봉#동양길#가순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