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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전 조선은 자전거의 나라였다. 자동차 등 다른 교통수단을 압도했을 뿐만 아니라 통근, 통학, 업무, 레저 등 여러 분야에 두루두루 쓰였다. 그 시대 자전거문화는 어땠을까. 역사는 반복된다는데 앞으로 다가올 자전거시대에 비슷한 모습으로 재현되진 않을까. 그 시절 그 풍경 속으로 들어가본다.<기자 주>

 안양천을 달리다 보면 만나게 되는 자전거전용식당.
안양천을 달리다 보면 만나게 되는 자전거전용식당. ⓒ 김대홍

2008년 여름 자전거를 타고 안양천을 달리다 우연히 자전거전용식당을 발견했다. 식당이름은 '자전거가 좋은 사람들'이었다. 식당 이름을 보고 호기심이 생겨 가던 길을 멈추고 식당에 들렀다. 식당 바깥엔 자전거 주차장이 있었다. 이 정도는 사실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실내에 들어서자 '이곳이 정말 자전거전용식당이구나'라고 느낄 수 있었다. 식당 안에 있던 꽤 넓은 자전거 거치대를 보면서다. 도난 때문에 자전거를 밖에 두기 찜찜한 이들은 아예 식당 안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음식을 먹게 한 것이다.

그렇다고 밖에 세워둔 자전거를 불안하게 놔둔 것도 아니다. 감시용 카메라를 설치해 안에서 모니터로 밖을 살피게 했으니 자전거 보관에 있어서 이만큼 편안하게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어디 있을까 싶다. 나 또한 자전거를 세워두고 오랜만에 편하게 밥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껏 잃어버린 자전거만 10대 가까이 되는 처지였으니, 보관이 애매한 식당에 가면 잘 보이는 데 세워두고 그것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한 번씩 밖에 나가 확인을 하곤 했으니 말이다.

한강 상류 쪽으로 달리다 만나게 되는 서울 광진교 북쪽 '벨로마노'(velomahno) 또한 자전거테마카페다. 벨로는 프랑스말로 자전거, 마노는 이탈리아말로 바리스타의 손을 뜻한다. 마노는 벨로마노 주인이 키우는 애견 래브라도 리트리버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 카페는 자전거 관련 액세서리로 내부를 꾸몄다. 실내에 스트라이다와 소프트라이드(softride) 자전거가 전시돼 있다. 자전거경기계에선 조용필만큼이나 유명한 랜스 암스트롱이 올누드로 자전거를 타는 사진도 눈에 띈다. 전등 재료는 자전거휠이다. 벽면에 자전거바퀴와 자전거벨이 붙어 있다. 창가엔 자전거 미니어처. 곳곳에 자전거 물건들이다. 자전거를 좋아하는 이라면 사방이 볼거리다.

벽 곳곳엔 엑스게임(X-game) 헬멧으로 유명한 넷케이스 헬멧이 걸려 있다.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전거헬멧보다 단순하면서 깔끔한 게 훨씬 예뻐 보인다. 카페에선 넷케이스 헬멧을 직접 판다. 자전거카페라는 특성을 살려 헬멧을 쓰고 오면 오백 원 할인이다. '안전하게 자전거를 타자'는 캠페인을 이처럼 부드럽게 진행 중이다.

자전거족이 느니 '자전거'를 주제로 한 식당들이 하나둘 생긴다. 이 외에도 자전거 부품을 팔거나 관련 상담을 해주는 카페, 자전거인들에게 알맞은 식단을 갖춘 카페 등 관련 공간이 날로 느는 추세다. 외국에 나가서 자전거 관련 명소들을 보고 오는 여행객들이 많아지고 있어 이처럼 특징 있는 자전거카페들은 더 많아질 전망이다.

앞으론 자전거에 수레를 매달아 커피를 파는 이동자전거노점, 원하는 자전거를 골라주는 자전거상담카페, 자전거 세미나 전문 문화공간도 생기지 않을까. 카페엔 자전거전문상담사가 머무르며 "필요한 자전거가 무엇입니까", "어디에 쓰려고 하시나요", "어떤 디자인을 좋아하시나요"라고 질문을 던지면서 마음에 쏙 드는 자전거를 골라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서울쪽 한강 상류쪽으로 달리다보면 나오는 자전거 전용 식당. 실내에 자전거 관련 물품이 다양하게 전시돼 있다.
서울쪽 한강 상류쪽으로 달리다보면 나오는 자전거 전용 식당. 실내에 자전거 관련 물품이 다양하게 전시돼 있다. ⓒ 김대홍

"음식을 먹는 동안 자전거는 뻔적뻔적 빛나고 있을 것"

어쨌든 자전거 관련 서비스를 하는 카페는 '이색적'이고 '새롭다'는 평가를 받지만, 꽤 오래전 경성에서는 놀랄 만한 식당이 선을 보였다. 이름하여 자전거세차 전용식당.

시내에 대단히 번창한 모 음식이 있는 바 별로 동 점은 외장에 특징 있는 상점도 아니며 그렇다고 하여서 음식 그 자체도 타 점에 비하여 엄청나게 맛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고도 하고로 번창하였는가 하면 이곳에 명안 써-비스가 잇다. 즉 이것은 자전거를 타고 온 객에게는 그 자전거를 정결하게 소제하여 주는 것이다. 조금 쉬어서 음식을 먹고 있는 동안에 자전거를 몰라보리 만큼 깨끗하게 뻔적뻔적 빛나고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 상점의 앞에 자전거가 열을 지어 놓여 있으며 객이 음식을 먹고 있는 동안에 한 점원이 열심으로 자전거를 소제하고 있다. 이것은 이렇게 하면 번창하겠는가 생각한 끝에 나온 고안은 아니고 한번 친절을 보여주기 위하야 객의 자전거를 소제하였던 바 대단히 기뻐하는 것을 보고 그 후 이것을 상점의 방침으로서 실행하게까지 되었는데 재미있는 써-비스이며…. - <동아일보> 1938년 8월 14일

기자가 지적한 것처럼 식당은 음식이 특별히 맛있지 않고, 그렇다고 인테리어가 독특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단지 자전거를 씻겨주는 것만으로도 인기를 끈다. 이유는 자전거세차가 필요한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당시는 생활형 자전거 시대였고, 길 상태는 매우 나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고 다녔고, 자전거엔 고스란히 흙탕물이나 먼지가 단골손님처럼 들러붙었다.

어쩌다 휴일이나 휴가철에 자전거를 탄다면 재미삼아 청소를 하겠지만 매일 자전거를 탄다면 그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자전거는 진흙이나 먼지가 들러붙기 쉬운데다, 한 번 들러붙으면 자전거를 굴리기조차 쉽지 않으니 이런 서비스가 얼마나 인기를 끌었는지 짐작이 된다.

기사 내용처럼 만약 이런 식당이 지금 문을 연다면 어떨까. 생각해 보건데, 만약 제대로 된 시설을 갖추기만 한다면 꽤 인기를 끌겠다 싶다. 이유는 몇 년 전 꽤 인기를 끌었던 무료 자동차 세차식당 때문이다.

자전거 탈 날 때마다 도움 얻을 공간이 곳곳에 생긴다면

 자전거가 생활형으로 쓰이던 시절 자전거 모양(상주자전거박물관에 전시된 옛 자전거)
자전거가 생활형으로 쓰이던 시절 자전거 모양(상주자전거박물관에 전시된 옛 자전거) ⓒ 김대홍

몇 년 전 한 기사에서 서울의 한 기사식당가를 다뤘는데 꽤 인기라는 내용이었다. 비결은 바로 위에 나온 기사처럼 자동차세차서비스였다. 지저분한 자동차를 끌고 들어가서 주차한 다음 밥을 먹고 나오면 깨끗하게 청소가 된 차가 대기 중인 서비스.

물론 기자는 "여기 식당 서비스가 좋답니다"라고 1938년 <동아일보>처럼 흥미롭게 다루진 않았고, 내용은 비판적이었다. 세차서비스 때문에 주변이 더러워진다는 지적이었다. 당시 자동차를 씻겨주던 식당은 건물 앞 길가에서 청소를 했고, 오물은 고스란히 길을 따라 하수구로 흘러들었다. 당연히 오염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모르긴 몰라도 기사를 본 서울시는 당장 행정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그 뒤에 서울 시내를 돌아다녀봐도 자동차세차서비스를 하는 식당을 보진 못했으니 기사의 의도는 제대로 들어맞은 셈이다.

재미있는 점은 기사 의도와는 달리 댓글은 호의적이었다는 점이다. "그곳이 어디냐?", "나도 그곳에 가서 밥을 먹겠다"와 같은 내용이었다.

문제는 지금 자전거세차서비스가 생긴다고 해도 몇 년 전 기사식당의 세차서비스를 소개한 기사가 지적한 것과 같은 문제는 여전하다는 사실이다. 완벽하게 세차시설을 갖추면 되겠지만 그 비용은 어떻게 할까. 음식값에 포함시키면 사람들이 즐거이 세차서비스를 선택할까? 금액에 따라 승패가 갈릴 것 같다. 적정가격을 찾을 수 있다면 추천 아이템 가운데 하나지만.

어쨌든 20세기와 함께 자동차시대가 열렸다. 곳곳에 자동차 기름주유소와 정비소가 있다. 기사식당은 흔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기사는 '자동차기사'니, '자전거기사'는 해당되지 않는다. 자전거를 모는 사람은 자동차보다 불편한 게 더 많다. 땀을 흘리니 샤워장이 필요하고, 안전하게 놔둘 보관소도 필요하다. 여행 중일 때는 관련 자료를 찾을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을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을 다 준비하면 좋겠지만 그건 마니아들에게나 해당되는 얘기다. 자전거에 탈이 날 때마다 쉽게 도움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이 곳곳에 생긴다면 자전거 타는 사람이 좀더 늘지 않을까. 1930년대 말 자전거세차식당에 몰린 사람들 마음이 지금과 별로 다를 것 같지 않다.


#자전거#자전거 카페#자전거식당#자전거세차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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