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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래시몹 참석자들이 매장내 통로를 파자마 및 병원복 차림으로 활보하고 있다.
플래시몹 참석자들이 매장내 통로를 파자마 및 병원복 차림으로 활보하고 있다. ⓒ 김영욱

22일 오전 11시 20분, 영등포 신세계 백화점에서는 갑자기 나타난 파자마와 병원복 차람의 고객으로 인해 작은 소동이 빚어졌다. 약 20여 명의 '잠옷 부대'는 매장 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매장 직원뿐 아니라 고객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어머, 저게 머야', '병원복 입고 쇼핑왔네' 등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웅성거림으로 매장은 술렁였다. 이번 플래시몹(flash mob) 행사는 지난 6월 29일 영등포 롯데백화점에서 '휴일에는 휴식을 밤에는 수면을!'이란 주제로 열린 퍼포먼스 이후 두 번째다. 이날 플래시몹에 참석한 약 20여 명의 NGO 단체 회원들은 여성의 노동권과 휴식권을 박탈한 대형유통재벌의 24시간 영업 행태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약 10여 분 동안 진행된 플래시몹은 매출 증대를 위해 신성한 노동권마저 이윤 추구의 도구로 전락시켜 버리는 대형유통재벌의 비도덕적 영업 관행을 꼬집기에 부족함이 없었다고 참가자들은 한목소리를 냈다. 이번 행사를 함께 주관한 전국유통상인연합회 관계자는 "지난 6월 29일 '유통서비스 노동자 및 환경보호 특별법 제정 전국연석회의' 발족 이후 백화점, 대형마트 등의 영업 시간 규제에 대한 사회적 확산을 이끌어내기 위해 지금까지 다양한 운동을 펼쳐왔다"며 "이번 플래시몹은 영업 시간 규제 필요성의 연장선상에서 두 번째로 마련된 것이며, 이러한 움직임들이 최근 민주당 이미경 의원을 주축으로 한 18명의 국회의원이 발의한 '유통산업근로자 보호와 대규모점포 등의 주변생활환경 보호 등에 관한 특별법'으로 이어지게 됐다"고 밝혔다.

플래시몹 행사 이후 연이어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민주화 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의 박정만 변호사는 "선진 유통 국가에서조차 24시간 영업을 엄격히 규제하는데 국내 현실은 거꾸로 가는 것 같다"며 "이번 플래시몹 행사가 여성 근로자의 노동권과 휴식권을 확보할 수 있는 초석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박 변호사는 또 "현재 이 법안이 한미FTA 비준 문제로 인해 여야 의원들의 관심권 밖으로 밀려난 것은 사실이지만 여성의 '행복찾기' 차원에서 반드시 국회에서 통과 돼야 할 중요한 사안"이라며 "이번에 또 다시 국회에서 사장된다면 전국연석회의 단체들과 힘을 모아 이번 플래식몹과 같은 다양한 사회적 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이 법안은 3년째 국회에서 난항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민변은 지난 2009년 자유선진당 이상민 의원의 대표발의를 통해 '기업형 대형마트의 품목제한 및 영업시간 제한'을 주요 내용으로 한 특별법을 준비했었다. 하지만 국내 투자자인 외국 기업에 대한 차별이 WTO에서 제소당할 위험이 있을 뿐만 아니라 헌법상 영업의 자유 침해소지가 있다는 정부 의견으로 인해 국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는 것이 민변측 설명이다. 
 
"선진 유통 국가에서도 24시간 영업 규제... 국내 현실은 거꾸로"

 이날 플래시몹 행사에 약 30여 명이 넘는 취재진이 참여, 취재 열기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이날 플래시몹 행사에 약 30여 명이 넘는 취재진이 참여, 취재 열기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 김영욱

"당시 민변은 정부의 반대 의견서 재검토 후 제소 당하지도 않았는데 정부가 미리 제소 위험 발언을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다. 민변의 특별법안 발의 취지는 영세상인을 보호하자는 것인데 이를 외면하는 것은 정부의 소임을 다하지 않는 처사나 다름없다"는 뜻을 국회 및 정부에 전달하며 강하게 항의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 박 변호사 설명이다.

박 변호사는 또 "정부측에 설령 WTO로부터 제소를 당했을 경우 승소의 가능성을 한번 따져보자고 해도 정부는 그렇지 않다는 어거지식 논리만 펼치며 이 문제를 외면했다"며 "유통 관련 외국 기업 차별로 인해 야기된 WTO의 제소가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없었다는 데 문제의 핵심이 있으며, 정부 또한 그러한 사실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기에 민변의 주장을 애써 외면했다"고 덧붙였다.

대형마트의 24시간 영업 확대에 따른 부작용 차단에 대한 민변의 의지는 확고했다. 첫 번째 특별법안이 국회에서 사장되자 민변은 영업 시간 규제외에도 여성 근로자의 휴식권 및 노동권, 환경권 보호라는 새로운 접근법을 시도한다. 그 법안이 바로 '유통산업근로자 보호 등을 위한 대규모점포 영업제한에 관한 특별법'이다. 두 번째 특별법안 준비에는 경실련, 민노당,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여성환경연대, 전국여성연대, 진보신당, 참여연대, 한국진보연대, 환경운동연합, 전국유통상인연합회 등 노동·환경 등 사회의 다양한 NGO 단체들이 합세했다.

 매장을 활보했던 참석자들이 기자회견을 앞서 마지막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매장을 활보했던 참석자들이 기자회견을 앞서 마지막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 김영욱

사회적 반향 역시 클 수밖에 없었던 이번 두 번째 특별법안은 국회 지식경제위 소속 의원들을 통한 입법 발의 형태로 준비됐으며, 민변을 포함한 관련 단체들은 지난 4월부터 지경위 의원들을 대상으로 입법 취지를 설명하는 등 국회 안팎에서 물밑작업을 했다. 하지만 대형마트 영업 시간 규제 외에도 노동·환경 문제라는 또 다른 걸림돌로 인해 지경위 소속 의원들은 환경노동위원회에서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결국 이 법안은 지난 6월 세 번째로 환경노동위로 바통이 넘어갔으며, '유통산업근보자 보호와 대규모점포 등의 주변생활환경 보호 등에 관한 특별법'의 제목 수정과 함께 법안 내용에도 첨삭이 가해졌다.

이번 세 번째 특별법안이 최종 수정 법안이 될 것이라는 민변과 전국유통상인연합회는 "이번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될 경우 여성 근로자의 휴식권 및 노동권, 환경권 보호뿐 아니라 지역 중소상인들은 대형마트 영업 규제에 따른 반사 효과를 얻을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이번 특별법안 발의에 중추적 역할을 했던 민변 박정만 변호사는 "이번 특별법안이 국회에서 조속히 통과될 수 있도록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유관 단체와 함께 지속적인 활동을 펼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산넘어 산' 한미FTA 날치기 통과... ISD에 발목 잡히나

 신세계백화점 앞에서 플래시몹 참석자들과 함께 기자 회견을 하는 NGO 단체들(오른쪽 네번째가 민변 박정만 변호사)
신세계백화점 앞에서 플래시몹 참석자들과 함께 기자 회견을 하는 NGO 단체들(오른쪽 네번째가 민변 박정만 변호사) ⓒ 김영욱

민주당 이미경 의원을 주축으로 한 환경노동위 소속 의원들은 현재 마지막 세 번째 특별법안을 심도있게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이번 특별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기까지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바로 11월 22일 국회에서 날치기 통과된 한미 FTA와 상충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한미 FTA 비준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ISD(투자자국가제소) 독소조항의 또 다른 저항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실제로 이번 특별법안에 포함된 대형마트 규제가 외국 투자자의 국가 제소를 충분히 불러올 소지가 있다는 한 단체 관계자는 "이번 특별법안의 통과 가능성이 높은 만큼 법 조문의 첨삭 가능성 또한 커질 것"이라며 "환경노동위 소속 여야 의원들이 심사숙고해 유관 단체들이 충분히 납득할만한 법안으로 새롭게 만들어내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또 있다. 특별법안 통과로 직접적 타격을 받을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코스트코 등의 거센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이마트와 삼성물산은 각각 코스트코와 테스코(홈플러스) 지분을 일부 갖고 있다. 한미 FTA가 비준될 경우 홈플러스 및 코스트코의 ISD 발동은 즉각 현실로 나타날 것이며, 코스트코와 테스코의 지분을 일부 갖고 있는 이마트와 삼성물산 역시 자국 정부를 소송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발생될 수 있다며 일부 법조인은 우려한다. 한미FTA에 따르면 외국 기업의 투자 지분을 갖는 국내 기업도 ISD의 투자자 인정을 받기 때문이다.     

 신세계백화점 앞에서 마지막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플래시몹 참석자들
신세계백화점 앞에서 마지막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플래시몹 참석자들 ⓒ 김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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