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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의 인성교육과 창의교육의 강화라는 창의적체험활동(이하 창체)을 학교 정식 교과시수에 반영하고 이를 입학사정관제에 반영한다는 내용이 2009년도에 교과부로부터 발표되자 지난 2010년도에는 교육계와 청소년계 모두 떠들썩했다.

교육계와 일선학교는 새로 도입되는 창체에 관한 하드웨어 구축과 현장의 기반 마련에, 청소년계는 창체활동이 청소년계가 수행하고 있는 청소년육성의 사명과 일치한다는 흥분감에, 입시위주에 찌든 청소년들에게 다양한 체험과 문화활동의 기회를 넓혀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학교 현장에의 프로그램 제공과 연계방안 마련 등에 심여를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로 전국이 들썩였다.

그러나 시행 1년이 다 된 시점에서 보자면 이 창체가 과연 현재의 특별활동과 창의적 재량활동을 뛰어 넘는 보완적인 제도인가, 실효성은 과연 클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창체를 진행하면서 학교와 청소년계의 교류가 있다면, 그래서 발생하는 비용이 있다면 이는 학교에서 부담할 것인지, 청소년수련관에서 부담할 것인지 아니면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이 있는 것인지, 있다면 교과부가 담당하는 것인지 여성가족부가 담당하는지, 지자체는 어느 정도까지 지원하는지에 대해 명확하게 구분이 돼 있지 않다. 그런데다 협력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학교와 청소년단체, 청소년수련관은 서로 접촉하기가 쉽지 않다. 창체 시행 1년이 지나도록 '지역사회와의 연계' 단계에서 지지부진한 이유는 창체에 대한 부정적 시각의 가장 큰 요인이다.

창체는 단순한 제도나 시스템이 아닌 창의적, 인성적 인간을 길러내는데 일조하고자 하는 교육과정이다. 때문에 필수적으로 이 창체가 지향하는 교육철학을 수반해야 하고 이 철학을 근거로 추진 모델과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청소년수련관의 경우, 충분하지는 않지만, 이미 창의적 요소들을 모자람 없이 갖춘 프로그램들이 다수 가지고 있다. 청소년수련관은 창체가 학교의 교육과정에 공식 편성되기 전에 청소년을 창의적으로 육성하기 위한 노력을 해 오고 있었다.

그러나 교과부가 청소년계의 의견과 현황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은 상태에서 창체를 갑자기 쏟아내면서 청소년수련관들은 청소년들의 열린 활동의 철학을 고민하기보다 기존 프로그램들을 창체의 시스템에 맞게 변환하는 작업들을 먼저 고민하기 시작했다. 즉, 프로그램은 이미 다양하게 차려져 있으니 이를 어떻게 학교에 접목시킬 것인가를 더 고민했다는 것이다. 이는 청소년수련관들이 아닌 단체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러다 보니 청소년계에서는 교육계의 시각이 아닌 청소년계 자체에서 바라보는 창체의 의미와 방향, 기존의 청소년육성 "활동"이 가진 철학을 고민하고 정리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또 교육계에서 정의되어진 창체의 개념과 시스템에 단순히 청소년수련관 프로그램을 어떻게 도입시키느냐에 급급했다. 이는 창체가 가진 청소년 건전 육성이라는 모토의 주인인 청소년계가 이 창체를 주도하거나 또는 중요한 파트너로 인식되지 못하는 현상을 가져왔다.

청소년계는 마치 창체가 청소년계의 지상과제인 것처럼 착각했다. 그러면서 학교에서의 창체는 청소년수련관에 당연히 요청할 것이라며 수련관에 청소년들이 밀려오면 어떻게 수용할까하는 걱정부터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학교가 청소년수련관이나 청소년단체의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청소년계의 고민은 말 그대로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김치국부터 마시는 격이 되어 버리는 셈이다. 또 미술관, 박물관, 은행, 병원, 법원, 기업 등 창체의 대상 영역은 실로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학교 청소년들이 청소년수련관으로 몰려와 수용을 할 수 없는 일은 전국적으로 벌어지지 않았다.

청소년계가 이 창체를 아직 청소년을 의한 희망의 제도라 여긴다면 먼저 창체의 핵심 요소인 "창의"와 "인성"에 있어 어떻게 구분하여 접근할 것인지에 대한 청소년단체계와 수련시설계의 공동 연구가 필요하다. 청소년수련관에 학급 또는 학년 단위의 창체 의뢰시 개개인의 "역량"을 어떻게 분석하고 계통성을 확보한 수위에 맞는 프로그램 편성을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창의적인 청소년이 꼭 인성이 풍부하다는 전제가 없으며 인성이 잘 발달된 청소년이 꼭 창의적이라는 명제가 객관적으로 분석된 바 없기 때문이다.

청소년계는 청소년단체, 시설, 상담, 보호 등등 여러 갈래로 나누어지지만 상호간 너무나 교류가 없고 조직적이지도 못하며 그 작은 조직의 이익에 몰두하는 경향이 강하다. 때문에 단결행동은 불가능한 일처럼 청소년계 내부 스스로에서조차 자조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이 청소년계가 창체라는 하나의 제도를 두고 단결도 못하면서 학교 현장에 청소년 프로그램을 어떻게 투입시켜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한다는 것은 실현 가능성 자체가 낮다.

청소년계 입장에서는 이 창체가 너무나 당연한 자신들의 고유 목적사업일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창체시스템은 청소년계의 시각에서 나온 제도가 아니기에 청소년의 창의적 육성이라는 명제 앞에 청소년계의 프로그램 품질을 보증하는 확실한 창체 철학을 먼저 고민해야 한다. 만약 그러한 기본 골격없이 교육기부라든가 단순한 창체 프로그램 제공 시설형태로 진행하다가는 최악의 경우 이 창체가 또 하나의 진학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여 실효성을 잃어 폐기될 수 있다.

이는 청소년계로 보자면 커다란 수치다. 또 고유목적 사업 하나 제대로 살려내지 못하는 집단, 청소년 때문에 밥먹고 살면서 자기 집단의 이익에만 매몰되어 돈벌기에만 급급하면서 마치 청소년을 위한 성직자라도 되는 양 스스로 자아도취에 빠져 있는 집단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제 청소년계의 단결과 치밀한 공동연구, 신뢰받을 수 있는 정책 대안의 마련을 통한 사회 참여의 행동을 보여주어야 할 때임을 청소년계는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할 시점이다.


#청소년#청소년수련관#창의적체험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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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와 대학원에서 모두 NGO정책을 전공했다. 문화일보 대학생 기자로 활동했고 시민의신문에서 기자 교육을 받았다. 이후 한겨레 전문필진과 보도통신사 뉴스와이어의 전문칼럼위원등으로 필력을 펼쳤다. 지금은 오마이뉴스와 시민사회신문, 인터넷저널을 비롯, 각종 온오프라인 언론매체에서 NGO와 청소년분야 기사 및 칼럼을 주로 써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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