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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로3가,2가쪽에서 창덕궁 방향으로는 골목마다 오래된 집들이 참 많다. 60~80년대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집들에는 젊은 사람들보다 주로 노년층이 남아 거주하고 있지만 어린 시절 세들어 살던 그 집이 자꾸만 떠올랐다.
종로3가,2가쪽에서 창덕궁 방향으로는 골목마다 오래된 집들이 참 많다. 60~80년대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집들에는 젊은 사람들보다 주로 노년층이 남아 거주하고 있지만 어린 시절 세들어 살던 그 집이 자꾸만 떠올랐다. ⓒ 전은옥

요즘 아침 출근길이 덜 피곤하다. 온몸을 부대껴야 하는 아침 출근길 지하철과 버스 안 사정 때문에 보통 직장인에게 아침 출근길은 즐겁지 않다. 요즘은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도 많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압도적 다수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서울에서 다수의 직장인에게 출근길은 번잡하고 인파와 자동차에 시달리는 길이다. 또 너무 바빠 몇분 몇초라도 빨리 사무실에 도착하고자 하는 마음에 주변을 둘러볼 새도 없이 발걸음이 빠르기만 하다.  

나는 요즘 출근길에 작은 즐거움이 생겼다. 처음에는 나도 큰길로만 다녔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어쩐지 이 길이 더 서늘하고 길게만 느껴졌다. 그러다가 몇 차례 미로같은 골목길 출근을 시도해 봤다. 종로구 어딜 가든 좁은 골목길이 수 갈래로 이어진다. 점심시간 등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나 사무용품을 사러 다닐 때 골목길을 오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주변 골목길에 도가 트게 된다.

나 역시 바쁜 아침시간 말고 점심 먹으러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인근 골목여행에 나섰다. 처음부터 골목길을 순례한다는 마음과 계획 따윈 없었다. 그저 몇 번 발걸음이 반복되다 보니 그 속에서 재미를 찾은 것이다. 머릿속에 대강의 방향과 지도감각이 생기자, 아침 골목길 출근이 즐거워졌다. 큰길에 비해서 멀지도 더 가깝지도 않은 골목 출근길은 심리적으로는 지루하거나 피곤한 느낌 없어 좋다.

오히려 아침마다 작은 골목여행을 하면서 출근하는 기분도 즐길 수 있다. 무엇보다 쌩쌩 달리는 자동차를 피해 다니는 곡예를 하지 않아도 좋고, 큰길에서 부딪치고 마주치는 사람들보다 골목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더 반가움이 느껴진다.

 큰 길 대신 선택한 얼기설기 오밀조밀 따라가는 좁은 동네 골목길 출근은 작은 여행같은 즐거움을 준다.
큰 길 대신 선택한 얼기설기 오밀조밀 따라가는 좁은 동네 골목길 출근은 작은 여행같은 즐거움을 준다. ⓒ 전은옥


 종로2,3가쪽에서 창덕궁 방향 오피스가로 가다 보면 지나가게 되는 돈화문로, 수표로 골목길. 그곳엔 사람들이 산다.
종로2,3가쪽에서 창덕궁 방향 오피스가로 가다 보면 지나가게 되는 돈화문로, 수표로 골목길. 그곳엔 사람들이 산다. ⓒ 전은옥

나는 창덕궁 근처에서 일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창덕궁 정문 맞은편 골목 어디쯤에 사무실이 있는데, 지하철 종로3가역에서 내리면 낙원상가를 지나 큰 길로 출근할 수도 있지만, 요즘 내가 선택한 길은 수표로와 돈화문로 골목길이다. 이 골목으로 접어들면 아침부터 국물 끓이고 솥과 그릇을 씻거나 마당을 청소하는 손길로 바쁜 식당들이 즐비하다. 지난 밤 술손님들의 왁자함과 숙취가 아직도 남아있는 듯한 착각과 함께, 아침 국물 끓이는 뜨거운 냄새와 물을 뿌려가며 쓱쓱싹싹 청소하는 손길들도 바쁘다. 열심히 물을 뿌리다가도 사람이 지나가면 잠시 물길을 반대편으로 조심스레 거두어 준다.

또 이 골목에는 오래된 집들이 참 많다. 70~80년대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한 집들에는 이 지역 토박이들이 아직도 살고 있고, 골목마다 오래된 철물점, 세탁소, 점집, 간판도 파는 물건 가짓수도 적은 구멍가게(시골에서 만난 '점빵'과 비슷한 느낌이다), 한복집 등 다양한 가게들이 틈새에 자리하고 있다. 국수집, 해장국집 등도 물론 많이 있다.

어떤 때는 아침부터 골목에 할머니들이 나와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낡은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어느 집 대문앞에 세워져 있기도 하다. 어떤 찻집은 일본 영화 촬영을 하여 유명해졌다. 그래서 가게 앞에 일본어가 뒤섞인 홍보물들이 붙어 있다. 골목을 빠져나와 사무실로 접어드는 큰 길이 가까워지면 최근 공사중인 현장이 두 군데나 있어 먼지가 날리고 시끄러워 웬만하면 피하고 싶긴 하지만, 인부들이 찾는 덕분에 식당이 먹고 살기도 한다. 밥값도 대부분 저렴하다.

 출근길 골목에서 만난 점집. 간판이 정겹다.
출근길 골목에서 만난 점집. 간판이 정겹다. ⓒ 전은옥

 골목길 출근을 하다보니 만난 어느 '점빵'. 간판도 없는 이 가게를 지키는 건 할머니. 아마도 수십년 이곳에서 가게를 운영해 왔으리라. 안에 들어가보니 라면과 과자 몇 가지, 음료수와 술 간단히 몇 종류 등 판매 품목도 간소했다.
골목길 출근을 하다보니 만난 어느 '점빵'. 간판도 없는 이 가게를 지키는 건 할머니. 아마도 수십년 이곳에서 가게를 운영해 왔으리라. 안에 들어가보니 라면과 과자 몇 가지, 음료수와 술 간단히 몇 종류 등 판매 품목도 간소했다. ⓒ 전은옥

 재개발이 아직 휩쓸지 않은 종로 도심 골목. 이런 동네에서 일할 수 있는 것은 흔치 않은 행운이다.
재개발이 아직 휩쓸지 않은 종로 도심 골목. 이런 동네에서 일할 수 있는 것은 흔치 않은 행운이다. ⓒ 전은옥

이 골목들에는 외국인 게스트하우스나 모텔, 여관 등도 많다. 일부러 찾아오는 외국 손님도 많은 이 길을 나는 매일 출근하기 위해 걷는다. 그리고 출근길이 어딘가로 가는 단순한 과정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루의 짧은 산책길이요, 사색길이요, 여행길이 되니 나는 요즘 이 즐거움 덕분에 출근길이 한결 즐거워졌다. 


#도심골목산책#수표로#돈화문로#삼일대로#종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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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건강하고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는 주부이자, 엄마입니다.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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