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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에서 가시 돋친 농담과 수수께끼들이 퍼지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26일(현지 시각) 이러한 농담과 수수께끼를 정리했다. 먼저 표적이 되고 있는 것은 그리스다.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빚더미에 빠져 유로존(유럽연합 회원국 27개 나라 중 유로를 사용하는 17개 국가)에 재앙을 불러왔다는 비난이다.

"그리스는 왜 유럽연합-국제통화기금의 최신 지원금을 못 받았지?"
"왜냐하면 그리스에는 (지원금) 신청서를 완성할 정도로 충분히 일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거든."

독일 언론 <도이체벨레> 웹사이트에 올라온 다음 농담도 그리스인을 비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에 이런 농담이 떠돌고 있다. '400유로만 내면 당신은 그리스인을 입양할 수 있다. 그 그리스인은 당신 자리에 머물고, 늦잠을 자고, 커피를 마시고, 점심을 먹은 다음 낮잠을 한숨 잘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일하러 갈 수 있다.'"

경제 위기 발생한 국가들 겨냥한 날선 농담들

이와 관련, <로이터통신>은 그리스 출신의 자사 취재진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겪은 일을 소개했다. 암스테르담의 한 미용사는 능글맞게 웃으며 <로이터통신> 취재진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 같으면 50퍼센트 헤어컷(haircut)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나?"

헤어컷은 은행을 비롯한 민간 채권자들이 보유한 그리스 채권의 손실률을 말한다. 채권의 헤어컷을 50퍼센트로 정하면, 그리스가 갚아야 할 빚은 절반으로 줄고 나머지 절반은 민간 채권자들이 손실로 떠안는다는 뜻이다.

지난 7월 민간 채권자들은 그리스 채권의 헤어컷을 21퍼센트로 하기로 했으나, 독일을 중심으로 이 비율을 50퍼센트 이상으로 높일 것을 요구해왔다. 그 후 유럽연합과 민간 채권자들은 헤어컷 수준을 놓고 줄다리기 협상을 했다. 오랜 협상 끝에, 유럽연합 정상들과 민간 채권자들은 27일(현지 시각) 헤어컷을 50퍼센트로 하기로 합의했다.

날선 농담과 수수께끼의 표적이 된 건 그리스만이 아니다. 경제 위기를 겪은 아일랜드, 아이슬란드 같은 다른 유럽 국가들도 도마에 올랐다. 한때 '켈트의 호랑이'로 불리며 잘나갔던 아일랜드는 지난해 유럽연합과 국제통화기금으로부터 850억 유로의 구제금융을 받는 처지로 전락했다. '유럽의 강소국'으로 불리던 아이슬란드도 2008년 전 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를 거치며 경제가 엉망이 됐다.

"아이슬란드(Iceland)와 아일랜드(Ireland)의 차이가 뭘까?"
"(c와 r) 한 글자, 그리고 (경제 위기가 발생한 시점 차이인) 약 6개월."

PIGS
피그(PIG)는 피그스(PIGS)에서 스페인(S)을 뺀 나머지 국가를 가리킨다. 피그스는 유럽 국가 중 재정 문제가 심각한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을 말한다.

'왜 피그스는 날지 못하는가'라는 2008년 <뉴스위크> 기사에서 처음 쓰였다. 그 후 유럽에서는 피그스에 아일랜드를 포함시킨 PIIGS라는 표현도 쓰이고 있다.
경제 위기가 발생한 유럽 국가들을 한꺼번에 겨냥한 것도 있다. "그리스인, 아일랜드인, 포르투갈인이 술집에 들어가 술을 시킨다. 계산은 누가 할까? 독일인이 한다."

즉 사고는 '피그(PIG, P-포르투갈, I-아일랜드, G-그리스)'가 쳤는데 왜 독일이 부담을 떠안고 수습해야 하느냐는 불평이다.

'나치 독일' 비유 풍자 등장한 그리스

유로존을 이끌고 있는 독일도 풍자 대상이다. <로이터통신>은 그리스인들이 가만히 앉아서 모욕을 감수하지는 않고 있으며, 특히 독일인들의 비난에 격노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그리스 언론에는 자국에 긴축을 강제하고 있는 유럽연합 관계자 등을 나치 독일의 제복을 입은 군인으로 묘사한 풍자만화들이 등장했다. 이 과정에서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 때 그리스를 점령한 것에 대한 역사적 적대감도 다시 살아났다. 일부 그리스인들은 독일인 관광객에게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그리스뿐만 아니라 포르투갈 언론에도 독일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내용이 실렸다. 몇 주 전 포르투갈의 한 신문은 '공공의 적'이라는 코너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게재했다. "독일은 유로존을 떠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독일은) 유로존의 모든 화폐를 가져가고 있다."

'나치 독일' 비유에서도 드러나듯이, 경제 위기를 계기로 독일이 유럽의 패권국가로 떠오를 가능성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렇지만 독일이 나서지 않는다면 유럽의 경제 위기를 풀 방법을 찾기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이 문제에 대해 요슈카 피셔 전 독일 외무장관은 "독일이 움직이면 (자국을) 지배할 것을 걱정하고, 움직이지 않으면 (독일이) 유럽에서 철수할 것을 걱정한다"고 지적했다.

이밖에 유럽연합을 이끄는 거물들이 위기의 해법을 조속히 찾아내지 못하는 것에 불만을 토로하고, 유럽의 미래를 암울하게 보는 풍자도 있다.

▲"백열전구를 갈아 끼우려면 유럽 재무장관 몇 명이 필요할까?"
"한 명도 필요 없다. 백열전구에 전혀 이상 없다."

▲"유럽 경제를 전망하는 데 가장 적절한 모델이 뭐지? 더블딥 침체? V자형 회복? 아니면 다른 무엇?"
"욕조다. 가파르게 하강하고 침체기를 겪은 다음 수포로 돌아간다."

진통 끝에 '그리스 채권 헤어컷 50%' 합의... 아직 갈 길 멀어

그리스 채권의 헤어컷을 50퍼센트로 한다는 합의가 이뤄진 후, 파판드레우 그리스 총리는 "최악의 상황은 끝났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유럽 경제 위기가 바로 가라앉을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갈 길은 아직 멀다.

경제 위기를 극복한 재원을 마련하고, 국경을 넘어선 공동 통화인 유로 자체에 내재된 문제를 푸는 것도 만만치 않다. 이뿐만 아니라 각국의 내부 사정도 복잡하다. 예를 들면, 메르켈 독일 총리는 유로존을 유지하기 위해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하는 동시에 '술은 피그가 마셨는데 계산은 독일이 해야 하나'와 같은 반발을 다독여야 하는 상황이다. 유로존의 또 다른 축인 프랑스는 내년에 대선이 예정돼 있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유로존 문제에 대처할 때, 내년 선거 결과에 따라 정권이 바뀔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리스에서도 '강제된 긴축'에 반발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래저래, 유럽연합 내에서 빚더미에 올라앉은 나라 사람들과 곳간 사정이 괜찮은 나라 사람들이 가시 돋친 말들을 주고받는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독일 언론 <프랑크푸르트 룬트샤우>에는 유럽인들이 경제 위기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풍자만화가 실렸다.

아이가 저녁에 거실로 가서 아빠에게 말한다. "잠이 안 와요." 유로존을 구할 방법에 관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고 있던 아빠가 고개를 들어 말한다. "오, 귀여운 토끼, 네가 언젠가 이 모든 빚을 갚아줄 수도 있는 사람에 관한 꿈을 꿀 수도 있지 않겠니?"


#유로#경제 위기#그리스#농담#헤어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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