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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미마타 학생들 환영식을 위해 모여 있는 아이들
부미마타 학생들환영식을 위해 모여 있는 아이들 ⓒ 고상훈

"단장님, 언제면 도착하나요?"

이른 아침부터 버스로 한참을 산을 타서 올라가더니 버스가 미처 가지 못하는 길에 다다라 다시 작은 트럭으로 갈아타 달달달 거리며 한참을 또 올라갔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도 보이라는 학교는 보이지 않더니 어느 순간엔가 구름에 걸려있는 부미마타 학교가 보였다.

트럭에서 내려 운동화 끈을 단단히 매고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은 갑자기 찾아온 마늘 냄새가 나는 우리가 신기했는지 창문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고 인사를 하려 하면 부끄러운지 눈을 피해버리는 것이 꼭 어린 냄새가 향긋한 아이들이었다. 두 번째 학교, 부미마타와의 첫 만남이었다. 

이랄랄과 나 형제 결연을 맺는 의식의 모습
이랄랄과 나형제 결연을 맺는 의식의 모습 ⓒ 고상훈

"나마스테, 마이 네임 이즈 이랄랄 타망."

우리 ADRF(아시아아프리카난민교육후원회) 봉사자들은 이 곳 부미마타에서 교육 봉사, 노력 봉사와 더불어 소중한 인연을 맺고 세 밤 동안 새로운 친구와 함께할 요량이었다. 그렇게 나는 내 소중한 친구, '이랄랄 타망(Hiralal tamang)'을 만났다.

열일곱 살의 이랄랄은 웃는 모습이 너무나 순수한 청년이었다. 이랄랄이 영어가 서툴러서 많은 것을 물어볼 수 없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그냥 이랄랄과 나는 미소가 멈추질 않았다. 그때 그 감정을 지금 글로 표현할 수가 없지만 그냥 그랬다. 미소가 멈추질 않았다. 요즘도 가끔 이랄랄과 전화 통화를 하곤 하는데 수화기에 대고 하는 말이라곤 'I miss you, how are you' 등과 같은 뻔한 이야기뿐이지만 그냥 미소가 지어진다. 그냥 그런 기분이었다.

하굣길 이랄랄 집으로 가는 길. 걷고 있으면 마치 구름으로 들어가는 듯 하다.
하굣길이랄랄 집으로 가는 길. 걷고 있으면 마치 구름으로 들어가는 듯 하다. ⓒ 고상훈

그렇게 왠지 모를 감정에 싸인 첫 만남을 맺고 간단한 의식을 거치니 어느덧 그 날의 해가 기울고 있었다. 산을 두 번 돌고 돌아 구름 속으로 들어가 한 명 겨우 지나갈 오솔길을 조금 걸었더니 이랄랄의 집이 보였다.

신발을 벗어두고 집 안에 들어가 앉으니 흙냄새와 장작 타는 냄새가 나를 감쌌다. 사람도 집도 자연도 정겨웠다. 처음 만난 이랄랄 그리고 그의 가족들이었고 처음 걸어본 네팔의 산길이었지만 내 마음 지척에 있음을 느꼈다. 밖에는 보슬비가 내리고 안에서는 스테인리스 잔에 담긴 찌아(네팔의 밀크티)로 속을 녹이는 내가 마음을 내려놓고 있었다.

나마스테 수줍게 인사건네는 네팔의 아이
나마스테수줍게 인사건네는 네팔의 아이 ⓒ 고상훈

'나는 왜 이토록 두려워하고 불안해할까. 사람들은 나를 이토록 기다려주는데.'

이 날 일기의 첫 머리글이다. 처음, 네팔 사람들을 만났을 때 강한 인상에 내 마음을 꼭 쥐어 잡고 힘을 풀지 않았다. 내가 스스로 쌓은 네팔과 나 사이의 두려움과 불안함의 아픔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굳은 표정의 네팔 사람들이라도 '나마스테'하고 먼저 인사 건네면 이내 표정을 풀고 웃으며 '나마스테'하고 한껏 답인사를 해주는 모습을 보았다. 사람들은 나를 기다려주는데 내가 울타리를 치고 혼자 끙끙 아파하고 있었다. 네팔 사람들의 싱그러운 답인사는 내가 먼저 마음을 내려두고 다가가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그렇게 나는 찌아와 함께 사람들을 향해 마음을 내려놓았다. 

"상훈아, 수저 없이 먹을까? 밥은 오감으로 먹어야지."

나와 함께 홈스테이를 같이 하게 된 형이 이랄랄의 가족이 대접을 해준 달밧(네팔의 요리 중 하나로 밥과 수프, 고기, 야채 등 나머지 반찬을 곁들여 먹는 요리)을 받아들고 나에게 물었다. 순간 많은 생각이 오갔지만 곧 숟가락을 이랄랄에게 돌려주었다. 접시를 받아 들고선 눈을 딱 감고 손으로 슥슥 비벼 입으로 한 움큼 집어넣었다.

아마 열 두 밤의 네팔을 천천히 돌아봐도 가장 맛있는 아니, 이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아마 그 때 형과 내가 '감동적인' 식사쯤 표현했던 것 같다. 어쨌든 음식은 오감을 모두 이용해서 먹는 거라는 형의 말을 이해하는 순간이었다.

나도 형도 그대로 뚝딱 접시를 비웠다. 급하게 먹은 덕에 나중에 소화제 신세를 지기도 했지만 나도 형도 이랄랄도 음식을 준비해 준 이랄랄의 가족들도 흐뭇한 순간이었다. 문득 가족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그 때 이랄랄의 집에는 가족의 향기가 나지 않았을까 싶다. 아직도 일기장 저편에 찌아 냄새가 아른하다. 

우리 가족 라미솔, 병엽이 형, 섬미다, 이랄랄, 나, 설리나
우리 가족라미솔, 병엽이 형, 섬미다, 이랄랄, 나, 설리나 ⓒ 고상훈

덧붙이는 글 | 11. 07. 23 ~ 11. 08. 04 네팔에서 ADRF와



#ADRF#해외봉사#네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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