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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2007년 초봄으로 생각난다. 한 겨울 옷을 입고 비옷을 겉에 두른 채 내내 비를 맞으며 끝 없는 삼보일배를 진행했던 장면.(사진 저작권 문제로 부득불 기자 사진을 싣게 됨을 널리 헤아려 주시길 바라는 마음이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2007년 초봄으로 생각난다. 한 겨울 옷을 입고 비옷을 겉에 두른 채 내내 비를 맞으며 끝 없는 삼보일배를 진행했던 장면.(사진 저작권 문제로 부득불 기자 사진을 싣게 됨을 널리 헤아려 주시길 바라는 마음이다) ⓒ 이정민
# 2007년 3월께, 비가 하염없이 내렸던 그날 초봄은 한낮인데도 추위가 밀려왔다. 이유인즉 오전11시무렵, 부평역 근처 롯데백화점에 시작된 "계양산 지키기 삼보일배"가 해가지고 나서야 끝이 났기 때문이다. 기자를 포함해 그날 삼보일배에 참가한 30명의 시민단체, 제정당 회원들은 얇은 비옷만을 두른 채 온몸으로 소낙비를 맞으며 첨벙거리는 아스팔트위에 그대로 얼굴을 묻어야만 했다. 하지만 고통과 아픔이 그들의 가슴 한 쪽에 채워질수록 계양산 사랑에 대한 믿음 또한 차곡차곡 쌓일 수 있었다.

인천시민운동사 중 21세기 서두의 혁명적인 아이콘으로 급부상됐던 '계양산 살리기'운동이 그 방점을 찍고 지난 6년간의 운동을 정리하는 백서를 출간했다. 그 이름하야 <함께 꾸는 꿈은 꼭 이루어진다>...  계양산 골프장 반대운동 6년의 기록.

시청 앞 릴레이 시위, 시청 앞 천막농성, 나무 위 철야시위, 삼보일배, 롯데 신격호 회장 자택 앞 기자회견, 자전거ㆍ자동차ㆍ걷기 시위, 촛불 집회, 릴레이 단식, 계양산 등반 등 만들 수 있는 모든 시위기법들을 총동원했던 '계양산 지키기' 운동은 어느새 '환한 희망'의 웃음을 선사하며 이내 평화의 숨결을 되찾았다.

어린 아이부터 80대 노인까지 인천시민이면 한 번쯤 참가했을 이 운동에는 단순히 '계양산'이라는 아이콘을 넘어서 시민운동이 이제 그들만의 협소한 이기심이 아닌 시민 모두를 살리는 '생활정치'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백서 서두에 '여기 작은 희망의 싹을 봅니다'라는 주제로 축사를 대신한 홍재웅 '계양산 골프장 저지 및 시민자연공원 추진 인천시민위(이하 시민위)' 공동대표는 다음과 같은 말로 이 운동을 이야기 한다.

"약 7년에 걸친 계양산 보전운동은 인천의 그 어느 문제보다도 인천시민을 하나로 모으는 계기가 됐습니다. 우리는 이 운동을 통해 작은 희망의 싹을 찾아봅니다. 그리고 그 싹을 키우는 일에 더 열중해야 할 것이라고 다짐합니다.(중략)시민의 눈으로 전문학자의 지식과 기술로 그리고 관의 행정력을 하나로 모아 우리가 지켜낸 계양산을 시민공원화하고 시민들의 영원한 휴식터로 만들기 위해 모든 길을 찾아야만 합니다."

작년 지방선거에서 유독 인천지역에서 한나라당의 오랜 아성을 깨고 야권 정치인들이 대거 지방정부 수장에 선출된 이유에도 분명 이런 시민운동의 힘이 작용했을 거라는 방증이다. 이렇듯 한 낱 꿈에 불과했던 '계양산 지키기'운동이 뜻 깊은 결실을 맺게 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마이너리그였던 시민운동, 이젠 정치권 1부리그의 '화두'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 계양산 골프장 반대운동 6년의 기록 <함꼐 꾸는 꿈은 꼭 이루어진다> 표제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계양산 골프장 반대운동 6년의 기록 <함꼐 꾸는 꿈은 꼭 이루어진다> 표제 ⓒ 이정민
계양산 살리기 운동은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인구밀집지역인 계양산 남사면 징맹이고개 일대를 소유하고 있는 대양개발이 자신의 소유지 안에 6백억원을 투입해 간이골프장 등 위락시설 계획안을 내면서 시작됐다.

이 운동은 당시 범시민위원회를 구성해 10만명 서명운동 등의 탄력을 받아 결국 인천시의 계획안 반려로 종결지어진다. 당시 시민위에 참여하며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벌였던 이가 바로 전현직 부평구청장인 최용규와 홍미영씨다.

이어 98년에도 경인화학이 계양산 동북사면인 다남동 일대에 화약고 건축허가 신청을 하면서 재점화 되었지만 주민대책위, 환경대책위를 비롯한 범시민위가 반대하면서 결국 계양구청이 허가취소를 하기에 이른다. 이 사건은 2005년 12월 8일에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앞선 두 사례에 이어 2006년 6월, 롯데그룹의 계양산 골프장 건설이 언론에 알려진 후 인천시민사회그룹은 다시 신속하게 '계양산 골프장 저지 인천시민대책위'를 구성한다. 그리고 그해 10월 26일 새벽, 인천녹색연합 신정은 회원의 계양산 소나무 위 철야농성이 시민여론에 불을 점화시켰고, 이어 윤인중 목사의 155일지지 시위 등 총210일간의 혹독한 나무 위 시위가 제정당의 정치인들을 결속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제공했다.

이에 대해 장정구 인천녹색연합 사무처장은 "롯데건설이 계양산에 골프장을 지으려고 했던 것은 1998년 시작됐다. 그러나 지방선거 직후인 2006년 이전까지는 권투로 치자면 '잽'을 날려보는 수준이었다. 언론이나 혹은 행정관청에 툭 던져 시민들의 반응을 떠보고 빠지는 식"이었다며 당시 처음 시작하게 된 취지를 회억해 전해 주었다.

백서에 따르면, 시민위가 진행한 전체 과정은 간략히 5단계로 압축된다. 구체적으로는 ▲ 1단계, 롯데건설의 계양산 골프장과 근린공원 조성을 위한 <2011수도권개발제한구역 관리계획 수립 제안서> 제출(2006.6~2007.8.30) ▲ 2단계, 국토해양부 심의단계(2007.9~2008.4) ▲ 3단계, 도시관리계획수립 결정 및 고시(2008.5~2009.9) ▲ 4단계, 사업시행자 지정 및 실시설계 인허가 신청(2009.10~2010.6) ▲ 5단계, 계양산 골프장 관련 체육시설 부지 도시계획위 폐지 의결(2010.7.1~) 등이다.

시민위는 특히 지난 2010년 지방선거에 자치단체장 후보 공약사항에 관한 철저한 검증운동을 실시했으며, 이 과정에서 롯데골프장 추진을 찬성했던 한나라당 안상수 시장과 이익진 계양구청장 후보에 대한 낙선운동을 채택하기도 했다. 결국 이 두 후보는 선거에서 사전 여론조사의 예상을 깨고 떨어졌다.

롯데의 권력 횡포, 이명박 정부 들어 더 심해져

백서는 총260페이지의 전문과 100페이지의 부록, 그리고 10페이지 남짓의 집행위원 후기로 구성됐다. 책 첫 장에는 주요 캠페인 사진화보가 시선을 끌었고, 각 시민위 단체대표들의 축사가 이어졌다. 그리고 계양산 롯데골프장 저지운동의 진행과정, 저지운동의 의의와 성과, 골프장 반대운동의 진행과 쟁점 등에 구체적인 묘사와 설명으로 이해하기 쉽게 풀어놓았다.

이 중 시민위가 자체 평가한 이 운동의 핵심 쟁점을 들여다보면, 특히 이명박 정부 들어 공군비행장 활주로를 변경하면서까지 초고층빌딩을 허가해주는 막강한 롯데권력의 실체를 예를 들며 민간기업의 전횡과 횡포에 대해 강하게 성토했다.

그러며 시민위가 지난한 과정 속에서 이길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 10여년 활동을 통해 축적된 환경단체의 활동역량 집중 ▲ 서로 다른 위상과 임무를 갖고 있는 상이한 단체들이 함께한 운동 ▲ 참여단체들의 상호 신뢰 배가 ▲ 시민들의 자발적인 계양산 지키기 활동 진행 ▲ 취약한 풀뿌리 운동의 기초 토대 형성 등을 열거했다.

이밖에도 시민위 활동 중에서 치열하게 펼쳐진 법정공방의 사례로는 ▲ 환경성검토서, 사전환경성평가서 조작 혹은 부실 의혹 ▲ 계양산 골프장에 대한 롯데와 군당국(3군지사, 17사단)과의 협의과정 의혹 ▲ 입목축적허위조작 등을 예로 들었다. 이 과정에서 노현기 시민위 사무처장은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불구속 기소를 당하기도 했다.

백서는 마지막으로 릴레이 서명운동에 참여했던 시민들의 기고 글을 보여주며 "희망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라며 갈무리를 한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계양산 지키기 운동은 이제 '계양산 보전을 위한 한평사기운동본부'로 그 명맥을 이어가며 시민의 땅으로 돌려주기 위한 제2의 운동을 점화해가고 있다. 이 운동본부의 실무를 책임지고 있는 장정구 인천녹색연합 사무처장은 "계양산이 살아야 인천시민 모두가 살 수 있다"며 다음과 같은 시를 소개해 주었다.

 수주(부평도호부의 옛 지명), 숲이 울창하여 불리던 고을
 계양산 너른 자락은 많은 생명을 품고 은은한 향기가 흘렀습니다.
 그러나 오늘, 계양산은 시름시름 병을 앓고 있는 어머니처럼
 안타까운 마음만 가득합니다.
 잘리고, 파헤쳐지고, 모두 다 내어주고, 병든 몸 뿐입니다.
 말라버린 가슴이지만 아직도 불쌍한 새끼들은 그 품을 파고듭니다.
 다시 건강하게 일어설 어머니를 고대하며, 어머니 그 품을 그리워합니다.
 계양산, 그 품에 안깁니다.  

덧붙이는 글 | 책 구입문의. 인천녹색연합 032-548-6274



#계양산 골프장 반대운동 6년의 기록#인천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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