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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꾸준히 진행해온 초대형 프로젝트가 하나 있다. 바로 4대강 사업이다. 다른 일을 그렇게 열심히 했으면 참 좋으련만, 많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반대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는 모습은 어떻게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그 동안 4대강 사업을 반대하기 위한 운동은 꾸준히 일어났고, 뿐만 아니라 많은 책과 다큐멘터리의 소재로 등장하였다.

 

KBS 다큐멘터리 환경스페셜 <강과 생명> 2부작을 손현철PD가 글과 사진으로 엮은 <모래강의 신비>도 그렇게 출간된 책 중 한 권이다. 4대강 사업에 대해 직접적으로 논하기 전에 모래강의 모습을 글로 묘사한다.

 

"강물에 쓸려 온 모래가 뒤따르는 흐름을 가로막아 물이 역류하거나 에돌아가면서 변화무쌍한 무늬를 만들기도 한다. 아주 펑퍼짐한 보자기처럼 펼쳐져 있는 모래는 바람이 살짝 불기만 해도 가냘프게 떤다. 물이 얕으면 얕을수록 바람의 역할은 더 커진다. 낮게 깔려 불어오는 미풍에도 황홀한 물놀이가 펼쳐진다. 거기다 햇살이 가세하면 모래알과 잔물결이 동시에 황금빛을 발하며 몸을 떤다." - 115p

 

'사대강 죽이기'라고 하면 솔직하기라도 하지

 

섬세하게 묘사된 글을 읽으면, 내 눈앞에서 해질 무렵 석양빛을 받은 모래강이 그 빛을 잘게 부수며 흘러가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옛 선비들은 그 강을 보며 시도 읊고 마음도 다잡았나보다. 김소월도 정약용도 송계도 강을 향해 많은 연가를 남겼고, 책에 미처 소개되지 못한 시인들도 많을 것이다.

 

모래강은 단지 아름다움만을 뜻하지 않는다. 시를 포함한 여러 문학적 교양을 기를 수 있는 원천이기도 하며, 강 주위에 대대로 터를 잡고 살아 온 사람들에게는 살아 숨 쉬는 역사 그 자체이기도 하다. 모래강이 우리에게 준 선물들을 내성천과 낙동강, 섬진강을 따라 걸으며 하나씩 챙겨 받는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하회마을도 있고, 유명하지는 않지만 지형의 아름다움을 갖고 있는 대은리라는 작은 마을도 있다. 크고 작음을 떠나 강줄기를 곁에 두고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자연만큼이나 아름답다.

 

강들을 따라 도는 순례가 끝나면 안타까움이 기다리고 있다.

 

"지반을 허물어뜨리면서 소멸을 향해 가는 토목공사, 강이 긴 세월 동안 만들어 놓은 모래톱을 단 일 년 만에 박살내는 놀라운 파괴의 예술이 서슴없이 자행되고 있다." - 227p

 

차라리 '사대강 죽이기 사업'이나 여러 사람이 사용하는 말처럼 '死대강 사업'이라면 솔직하기라도 하겠건만, 무얼 새롭게 한다는 건지 아니면 새로운 것이면 무조건 좋다는 사고방식을 담은 건지 요즘엔 4대강 새물결이라며 광고를 한다.

 

몇몇 사람들은 수자원 확보, 수질 개선, 홍수방지라는 이유를 들어 찬성한다. 수자원확보에서 수자원은 깨끗한 물, 그래서 우리가 마시기에 충분한 물을 뜻할 텐데 아직 공사가 완성되지도 않은 지금, 벌써 수질오염이 심각하다. 얼마나 물이 더러워졌던지 모래강에 살던 물고기들이 배를 뒤집고 다 죽어버렸다. 수자원 확보도 수질 개선도 둘 다 되지 않았다. 홍수 방지도 마찬가지이다. 책의 설명을 들어보자.

 

"모래와 같은 고체 입자들 사이의 빈 공간을 공극이라 하는데 그곳에 많은 액체를 담을 수 있다. 고체 입자들의 부피와 거기에 담을 수 있는 액체 부피 사이의 비율을 공극률이라 하는데, 모래의 공극률은 50퍼센트에 이른다. 즉 모래 1리터가 0.5리터의 물을 머금을 수 있다는 뜻이다." - 258~259p

 

모래를 퍼내어 홍수 방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래를 그대로 두어 물을 흡수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 가지 이유 외에도 다른 이유들을 들어 찬성하기도 하는데, 어찌 되었든 자연을 배제하고 사람만 생각했을 때에도 4대강 사업은 분명 잘못된 것임에 틀림없다. 결국 모래와 강은 분노할 것이고, 더 이상 사람들에게 이로움을 주지 않고 해를 입히기 시작할 것이다.

 

모래강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아직 어린 티를 벗지 못한 소녀의 살구 색 볼 같은 것.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지면서도 본래의 모습을 잃지 않은 오래된 한옥 같은 것. 세상에는 그냥 그렇게 두어서 더 좋은 것들이 많다. 만일 더 예뻐 보이라고 어린 소녀의 볼에 어른들이 쓰는 진한 화장을 칠한다면, 문화재를 보호한답시고 사람들의 접근을 일체 금지시키고 조사하기 위해 뜯어본다면...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모래강도 마찬가지이다. 강물 밑 여린 모래는 그냥 두어야 하고, 강 주위에서 터 잡고 사는 사람들은 계속 그렇게 지내야 한다.

 

이 당연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 여러 환경 단체와 뜻 있는 사람들이 4대강 순례를 기획했다고 하니 함께 참여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순례를 할 수 있는 기간도 지금 2011년 가을부터 2012년 봄까지로 예상하니, 빠른 시일 내에 찾아가는 것이 좋겠다. 나 또한 올해가 가기 전에 순례할 생각이다.

 

이런 행동들이 모여 큰 힘이 되는 것은 맞겠지만, 그렇다고 국가에서 하는 큰 사업이 중단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이렇게 생각하고 싶다. 먼 훗날 우리의 자손들에게 우리가 얼굴도 모르는 '조상'이라는 어떠한 객체로 다가갔을 때, 조금이라도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아름다운 금빛 모래강이 아니라 모래와 물이 따로 놀아 사막이 되어버린 국토를 탓하는 후손들이 모든 조상들이 파괴에 동참한 것은 아니라고 위안이라도 할 수 있게 말이다.


모래강의 신비

손현철 글.사진, 민음사(2011)


#4대강#모래강의 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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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문화에 관심이 많은 청년. 서울시립대학교 일반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현대문학을 공부했다. 감명 깊었던 현대문학을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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