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금강에서 출발한 배는 금방 외도에 도착을 했습니다. 선착장에 배를 대면서 유람선 선장님은 승객들과 시간 약속을 했지요. 낮 12시 50분에 도착을 했으니 오후 2시 20분에 다시 출발을 하겠다고 말이죠. 외도는 이렇게 승객이 머물 수 있는 시간이 딱 정해져있습니다. 1시간 30분만 머물 수 있죠.
그런데 저는 아까부터 이 섬의 이름이 궁금했습니다. 그저 사람들 말로, '외도'라고 하기에 다른 이름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했는데, 이 섬에도 따로 이름이 있었습니다. 바로 '외도 보타니아'가 그 이름입니다.
예전 이곳의 이름은 '외도 해상농원'이었답니다. 하지만 2005년 새로운 비전을 내세우며 이름을 '외도 보타니아'로 바꾸게 됩니다. '보타니아'라는 뜻은 사전을 아무리 뒤져봐도 나오지 않습니다. 합성어로 만들어낸 새로운 명칭이기 때문이지요. 그 뜻은 나중에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일단 정문을 통과해 이곳에 들어서면 길은 거의 오르막으로 돼있습니다. 당연하겠죠. 섬이 평지가 아닌 이상 자연을 그대로 살려서 농원을 조성했기 때문에 오르막길이 대부분인 것을 당연합니다. 그런데 저희에게 둘째 딸 아이가 앉아 있는 유모차가 아주 큰 문제였습니다.
산책로 바닥은 예쁘게 만들어져 있었는데 유모차를 살살 밀면 바퀴가 조그만 턱에도 자꾸 걸립니다. 하는 수 없이 아내는 빨리 밀고 올라갑니다. 힘들면 제가 밀겠다고 했더니 아내는 "오랜만에 부모님과 대화도 나누고 사진도 많이 찍어드리라"면서 제 등을 부모님 쪽으로 떠밉니다. 그런 아내가 고맙기도 하지만 영 맘이 놓이지 않더군요.
그렇게 언덕을 올라 처음 만난 평지에서 잠시 쉬다갑니다. 가을이지만 햇살은 따가웠습니다. 나무 그늘에 있으면 시원했지만 볕에 나가면 덥더군요. 한 여름에는 모자나 양산 등은 반드시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나무가 많아서 그늘은 충분하지만 곳곳에 땡볕이 숨어있답니다.
처음 나타난 평지에서 아주 잠시 쉬고 다시 언덕을 오릅니다. 그러면 '선인장 동산'이라는 곳을 만나게 되는데 그곳엔 세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선인장 동산을 중심으로 바나나, 천사의 나팔꽃, 올리브나무, 월계수 등 우리가 흔히 볼 수 없는 특이한 식물들을 볼 수 있죠.
화훼단지를 천천히 산책하듯 언덕을 오르면 좀 전에 걸어왔던 '비너스 가든'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아마도 외도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 아닌가 싶습니다. 원래 이곳은 해상농원으로 가꾸기 전, 초등학교 분교가 있던 곳이고 또 나중에 돼지를 키우던 곳이기도 합니다. 지중해가 연상되는 건축물과 곳곳에 놓인 비너스 상들. 게다가 동백나무도 어우러진 곳이죠. 버킹엄 궁전의 후정을 모티프로 외도 보타니아 최호숙 사장이 직접구상·설계를 했다죠. 또 이곳에 있는 '리스 하우스'는 드라마 <겨울연가>의 마지막 촬영지로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그렇게 화훼단지를 지나 대나무가 무성한 '대죽로'를 통과하면, 바다 쪽 전망을 볼 수 있는 제 1전망대를 마주하게 됩니다. 이곳에 서면 해금강을 바로 눈 앞에 볼 수 있답니다. 그리고 외도의 동섬이라고 불리는 작은 섬을 볼 수 있는데 동섬의 기암절벽 위로는 아직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원시 동백림이 그대로 남아있다고 합니다.
자! 이제 여기까지 언덕을 계속 올라왔습니다. 이제부턴 내려가는 길입니다. 올라왔으니 내려가는 것은 당연한 이치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내려가는 길이 쉬울 것이라는 제 예상을 깨버린 문제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계단' 이었습니다.
조각 공원까지는 잘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자유롭게 예배를 올릴 수 있는 명상의 언덕까지도 별 무리 없이 내려왔습니다. 하지만 천국의 계단이라고 이름 붙여진 곳에서 저희는 망연자실해야했죠.
이제 사진이고 뭐고 찍을 여유가 없습니다. 저는 카메라 둘러메고 유모차를 앞에서 들고 아내는 뒤에서 들고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가야 했으니까요? 사실 아내는 유모차를 계속 끄느라고 아까부터 힘이 다 빠진 상태였습니다. 그러다 이렇게 계단을 마주쳤으니 맥이 빠질 수 밖에요.
제가 아이를 안고 아내와 다른 가족 중 한 사람이 함께 유모차를 들고 내려온다고 해도 쉽지 않습니다. 요즘 유모차가 워낙 무거워야 말이죠. 반대로 제가 유모차를 들고, 아내가 아이를 안고 내려간다는 건 더 어려운 일입니다. 묵직한 아이를 안고 난간 없는 계단을 내려가는 것은 꽤 위험해 보였으니까요.
결국 아내와 저는 아이를 유모차에 태운채로 그렇게 계단을 내려오고 초입에서 만났던 분수대까지 그럭저럭 잘 내려왔습니다. 이제 배를 탈 시간까지 10분 정도 남았습니다. 그런데 기념품 가게를 지나 바다전망대를 지나 선착장까지 가는데 계속 계단이 있지 뭡니까?
배 탈 시간에 쫓겨 마음은 초조하고 유모차가 넘어 질까봐 계단에서 속도는 안 나고 땀이 줄줄 흐르더라고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지금이 만약 여름이라면 아주 많이 힘들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을에 오길 잘했죠?
다행히 제 시간에 배를 타고 '외도 보타니아'에서 나왔습니다만 1시간 30분이라는 관람 시간은 성인 남자가 천천히 걸어서 돌아볼 경우나 조금 넉넉할 시간인 것 같습니다. 저희처럼 노약자나 어린 아이가 있는 집은 더 빨리 서둘러 돌아봐야 한다는 사실. '외도 보타니아' 관계자 여러분! 혹은 유람선 관계자 여러분! 시간 좀 더 주시면 안 되나요?
참! 제가 '보타니아' 뜻을 나중에 알려드린 다고 했죠. 여기서 '보타니아'라는 뜻은 '보타닉(식물)'과 '유토피아(낙원)'의 합성어라고 하네요. 아마도 '식물의 낙원'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전 개인적으로 '외도 해상농원'이라는 이름이 더 좋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블로그에서도 포스팅 됐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