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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2일 4대강 공사 완공행사를 연다고 하지만, 경기도 양평 두물머리에서는 '한 삽'도 뜨지 못했습니다. 경기도는 두물머리 유기농지를 그대로 둘 수 없다면서 행정대집행을 위해 3차 계고장을 발송했지만, 오는 15일 두물머리 유기농 공동체는 강변가요제를 엽니다. 경기도가 강제집행을 하지 않는 한 '두물머리 통신'을 계속 올릴 예정입니다. <기자 말>

 두물머리 멜로디잔치에서 함께 춤을 추는 사람들! "죽이지 말라"고 말하기 위해서 우리는 신나게 논다. 춤추고 노래하며.
 두물머리 멜로디잔치에서 함께 춤을 추는 사람들! "죽이지 말라"고 말하기 위해서 우리는 신나게 논다. 춤추고 노래하며.
ⓒ 사직동, 그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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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던 모든 것들이 부서진 세계를 상상해본 일이 있으신가요? 오늘 아침 졸린 눈을 비비며 내려왔던 그 침대가, 거울이 달린 옷장과 책꽂이, 식탁, 걸어왔던 골목길, 지하철역, 버스 정류장, 도심의 빌딩 숲, 엘리베이터, 쇼핑센터, 담배를 피우던 공원, 점심을 먹은 식당, 식당 아줌마를 비롯해 당신이 아는 모든 사람들이 사라지고 없는 그러한 세계를.

지난 여름은 쓰나미로 부서진 일본 동쪽 바닷가에서 보냈습니다. 드문드문 길이 끊긴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면 수백 킬로미터를 가도, 가도, 보이는 것이라고는 부서진 것들뿐인 그런 곳이었습니다. 말로 할 수 없는 풍경들.

어느 날인가는 친구와 차를 빌려 완전히 부서져 이제는 없는 도시에 갔습니다. 이와떼 현, 리쿠젠타카타 역.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곳에는 있어야 할 기차역, 쇼핑센터, 극장, 국수 가게, 초등학교, 공원, 그리고 사람들이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녹슨 철로가 길게 남은 바닥과 사방에 쌓인 잔해들뿐이었죠. 콘크리트와 모래, 녹슨 철근, 찌그러진 자동차들로 만들어진 산과 그것들을 실어나르는 덤프트럭, 포클레인, 쉴 새 없이 부옇게 날리는 먼지, 먼지.

사대강 홍보 광고 속에 깃든, 허다한 죽음들

말로는 제대로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한 그 풍경 앞에서, 저는 제가 이미 보았던 다른 풍경을 떠올렸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자리에 있던 하나의 세상이, 작은 산이, 숲과 나무와 버섯과 수백 마리의 동물들이 하루 아침에 평평하고 붉은 바닥만을 남기고 사라진 비현실적인 풍경을요.

그 산이 품었을 수많은 세계들은 목재와 바위, 모래 몇 종류로 분리되어 강으로 갔습니다. 강에다 제방을 쌓고 보를 짓기 위해, 그리고 그 위에 자전거 도로와 공원을 만들기 위해서였죠. 정말로 말로 할 수 없는 그런 장면들이 하나 둘 떠올랐습니다. 경북 상주시 도남강의 오리섬을 기억하시나요?(지율 스님이 찍으신 동영상 보기) 그 섬에 있던 작은 숲과 모래와 수백 수천의 생명들은, 이제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곳은 지금 그럴듯하게 콘크리트로 다듬어진 '생태 공원'이 되었죠.

알고 있던 모든 것들이 부서진 세계는, 쓰나미로 만 명이 넘게 사라진 일본의 동북 지방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바로 여기, 우리의 곁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한 세계가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그것을 의식하고 있든 그렇지 않든, 우리는 이미 그러한 풍경과 관계 맺고 있습니다. 하나의 세계가 이토록 폭력적인 방식으로 사라지는 세계, 그것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니까요.

길을 걷다 눈을 돌리면, 시내 곳곳에 나붙은 사대강 홍보 광고에 이미 사라진, 또는 사라질 세계가, 허다한 죽음들이 깃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좋든 싫든 매일 그 장면들을 스쳐 걸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죽음들을 딛고, 10월 22일에 정부는 사대강 공사 완공 축하 행사를 엽니다.

무수한 생명이 버티고 있는 곳... 우리는 춤추며 싸웁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다른 풍경이 하나 있습니다. 정부가 아직까지 사대강 공사를 '한 삽'도 시작하지 못한 곳.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팔당 두물머리 유기농지입니다. 고작 네 농가만 남아 싸우고 있는 곳, 곧 경기도가 행정대집행을 통해 없애버릴 곳, 잔디를 심고 농약을 뿌려 자전거 도로를 만들기로 예정되어 있는 곳, 이기기 쉽지 않을 싸움…. 그렇지만 그 네 농가 뒤에는 우리가 세지 않는, 또는 셀 수 없는 무수한 생명들이 버티고 서있습니다.

'두물머리'가 사대강 사업에 맞서는 이유는 다른 곳에서 농사를 짓게 해달라거나 보상을 해달라는 차원의 문제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두물머리 고운 흙 속을 기어 다니는 수천의 지렁이와 강가의 고니, 풍성한 잎사귀로 자란 배추의 이름으로, '두물머리'는 말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세계입니다. 우리는 곧 사라질 이곳에, 당신들이 없애버리겠다고 말하는 이곳에 끝까지 남겠습니다. 우리를 여기 그대로 놓아 두라, 살게 해달라, 죽이지 마라. '우리'라는 이름의 이 공동체는 죽어간다는 것에 대해서 한 가지 말밖에 할 줄 모릅니다.

"우리는 홀로 죽지 않는다. 만일 죽어가는 자의 이웃이 된다는 것이 인간적으로 진정 필요하다면, 그 이유는… 죽어가면서 현재 죽을 수 없다는 불가능성에 부딪힌 자를 내리막길에서 붙들기 위해서이다. 가장 부드러운 금지의 명령으로, 지금 죽으면 안 돼. 죽기 위한 지금이 있을 수 없다는 것. '안 돼.'" - 모리스 블랑쇼(프랑스 철학자)

 두물머리 강변가요제 포스터. 3개 스테이지에 총 26개 밴드가 출연한다. 스테이지 외에도, 먹거리 장터, 벼룩시장, 4대강 싫어 물풍손, 날밤독립영화관, 두물머리 나이트 댄스파티 등 다채로운 행사가 준비되고 있다.
 두물머리 강변가요제 포스터. 3개 스테이지에 총 26개 밴드가 출연한다. 스테이지 외에도, 먹거리 장터, 벼룩시장, 4대강 싫어 물풍손, 날밤독립영화관, 두물머리 나이트 댄스파티 등 다채로운 행사가 준비되고 있다.
ⓒ 두물머리 강변가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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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죽여서는 안 돼!" 신나게 놀며 말해요

우리는 이 '죽어서는 안 돼', 그리고 '죽이지 마라'라는 말을 하기 위해, 사라질 생명들을 끝까지 붙들고 지키기 위해, 이번주 토요일(15일) "우리는 강이다!" 페스티벌을 엽니다. 정부는 두물머리 유기농지를 자진철거 하지 않으면 강제철거 하겠다는 계고장을 벌써 네 차례나 보냈지만, 우리는 여기에 맞서 끝까지 재미나게 노래하며 춤출 작정입니다.

우리는 어디에선가, 어느 밤인가, 손바닥이 축축해지도록 눈물 흘릴 우리를 생각합니다. 사라지는 것들 앞에서 가슴 아팠던 기억, 안 돼, 라고 들리지도 않는 말을 혼자 읊조렸던 기억, 그리고 언제 어디서고 누구라도 느낄 수 있는 '우리'라는 감각, 당신과 '두물머리'라는 이 공동체를 연결하는 그 감정으로부터 우리는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강이다!" 더 이상 죽여서는 "안 돼". 그리고 "두물머리에서 같이 놀아요!"

이번주 토요일에 우리는 노래하며, 춤추며, 서로의 헌 물건들과 기억들을 나누면서, 유기농 고추를 따고 고구마를 캐면서 신나게 놀 겁니다. 그러니 부디 당신, 두물머리로 오세요.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목소리, 웃는 눈으로 안 돼, 라고 말하기 위해서!

덧붙이는 글 | * 두물머리 강변가요제 누리집 : http://riverun.org/dmf
* 유선(달팽이 공방, 장애인극단 판) : 여기저기에 이상한 공간을 열어 헌 물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합니다. 두물머리 강변가요제에서 정말로 황당하고 재미있는 벼룩시장을 열 계획입니다.



#4대강사업#두물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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