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우리가 아는 '상식'은 무엇인가? 상식이 선(善)이라고 믿고 상식에 벗어난 일이나 이론을 악이라 믿는다. 상식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사회는 이것을 적절히 조율해 수렴한 법과 제도로 여럿이 사는 세상을 운영한다. 보통은 가정과 기관의 교육을 통해 상식이 형성된다. 잘못된 상식에서 벗어나기. 이 책의 출발이다.


질문. 경쟁이 없으면 우리는 발전하지 못할 것인가? 경쟁을 통해서 누군가는 이기고 누군가는 지게 된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유행어가 크게 회자된 적이 있다. 수백 명, 수천 명의 낙오자를 배출하는 시스템. 대부분은 '지는 자'들로 이루어진 사회.

 

경쟁은 효율이 아니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라는 말은 "자본주의 시스템 입장에서 온 세상의 개인이나 기업을 무한 경쟁시켜야 모두 1등 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릴 테고, 그러는 동안 그 지배력을 유지하고 그 위에서 엄청난 인간과 자연의 생명력을 추출할 수 있는" 비밀에 가려진 "치명적인 덫"이다. 


이 책의 공동 저자인 강수돌 교수는 "경쟁이 발전을 위한 것이라면 진정한 발전이 무엇인지 먼저 물어야한다"라며 "학교공부는 내가 무슨 소질이나 재주를 가졌는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며, 하고 싶어 하는지, 탐색하고 실험하는 과정이 되어야한다"라고 삶의 질을 위한 발전을 정의하고 경쟁이 아닌 동고동락과 서로를 살리는 아름다움에 대하여 논의할 것을 주문한다.


또 다른 저자의 '상식뒤집기'는 세계적 경제 가치를 건드린다. 신자유주의는 경제발전의 핵심적 가치다. 통제 없이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통한 경쟁을 통해 이루는 경제발전. 보다 많은 이들의 행복을 보장해줄 수 있는가? 필리핀 중부의 오리엔탈 네그로스라는 섬의 사례를 들어 과연 자유가 행복을 보장해줄 수 있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몇 명 되지 않은 대지주가 섬 전체의 땅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었고 섬주민 대부분은 농노의 신분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들은 농사를 짓고 그 수확물로 먹고 살면서 가정을 이루는 자유는 있기에 농민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자기 마음대로 이동하거나 다른 직업을 구할 자유는 없기에 노예라고도 할 수 있었다. 대신 지주는 이들의 생명에 책임을 져야 했다. 농노는 지주의 재산이라고도 할 수 있기에 흉년이 들거나 농사일이 없는 농한기에도 적당량의 식량을 제공하였다. 좋은 직업을 얻거나 신분상승의 기회는 없었지만 굶어죽을 염려도 없었다.


1970년대에 이르러 설탕 값이 폭락하면서 이 섬의 주요농업인 사탕수수농업에 위기가 찾아왔다. 지주에게 사탕수수 농장과 농노는 골칫거리로 전락했고 결국 대지주는 대대적으로 농노를 해방시키기로 했다. 땅이 많고 소출이 없더라도 먹고살 만큼 돈이 품부한 지주에게 농노는 그 자체로 돈만 나가는 구멍이기 때문이었다.


농노는 한순간에 자유인이 되었다. 더 이상 지주에게 속박되어 복종해야 할 필요도 없었다. 노동자로 신분이 바뀐 농노들은 농한기에 먹고살 길이 없어졌다. 대부분은 근처 도시로 뿔뿔이 흩어졌다. 도시로 갈 차표 값이라도 있는 이들은 대도시의 빈민가로 흘러들어갔고 그 돈마저 없는 이들은 해변으로 밀려났다. 많은 노동자들이 점점 먹고살기 힘들어졌다. 아버지들은 알코올 중독이 되었고, 그 사이 열 살 갓 넘긴 여자아이들은 사창가로 팔려갔다.


자유, 다시 생각하기

 

교과서에서는 가르쳐 주지 않는 지식이 있다. 이런 지식은 당장 쓸모는 없다. 좋은 대학에 입학해서 좋은 취직자리의 발판으로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대부분의 이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수학공식하나 영어단어 하나를 외우는 것이 훨씬 유용한 일이다. 학교를 빼먹고 "백두대간을 몇 달 동안에 걸쳐 종주하는" 일이나 "공부대신에 농사지어 먹고 사는 일" 따위는 인생의 낭비에 가깝다. '거꾸로 생각해봐'는 이런 생각에 반해 오늘을 사는 청소년들이 교과서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 세상의 진실과 자신의 위치를 좀 더 명확하게 알려주는데 도움을 주는 책이다.


'굶어죽을 자유'만 얻은 노동자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주변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자유를 가지고 있는 대신에 '사치스럽게 자신의 취향이 무엇이고 적성이 무엇인지를 돌볼 여유 따위는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언제 취직할지 취직해서도 언제 잘릴지 모르는 공포 때문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자기계발의 자유'만이 판을 친다. 스펙을 쌓고 외모와 인맥을 관리하는 등에 올인 할 수밖에 없다.


다소 충격적인 내용도 있다. 다윈의 진화론은 '약육강식'을 대표하는 논리였다. 그리하여 흔히 경쟁에 대한 합리화를 위한 자료로 제시되곤 했다. 저자로 참여한 이은희는 "사실은 그렇지 않다"라고 외친다.


실제로 다윈이 진화론을 제시한 그의 책 '종의 기원' 속에서 단 한 번도 약육강식의 법칙이 자연의 법칙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극히 드물다. 뿐만 아니라 다윈은 자신의 저작 속에서 진화라는 말의 사용조차 극히 자제했다고 알려져 있다. 진화라는 말 자체에 담긴 '나아가다' 혹은 '발전하다'라는 뉘앙스 때문이었다. 다윈은 진화라는 말 자체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겠다 여겼다. 


그리고 그의 우려는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중략. 생물체의 변이는 우연적인 사건이지만 오랜 세월을 거쳐 누적되다보면 마치 누군가 의도를 가지고 특정 개체만을 선별해 낸 듯이 뛰어난 형질을 지닌 생물종이 남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생물체의 진화가 '환경에 더 잘 적응한 개체가 선택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일어나는 결과일 뿐, 애초에 그런 경과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는 뜻은 아니다.


더불어 진화론에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이라는 말이 다윈과 관계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 영국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허버트 스펜서가 원조임을 밝힌다. 그가 살았던 19세기 영국은 사회적 불평등과 빈부 격차가 극에 달한 사회였으며 자유와 천부인권사상이 가치 있게 여겨지는 사회였다는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불평등을 합리화 할 수 있는 이론으로 생물세계를 연구했고 '생물체는 주어진 조건 내에서 경쟁을 한다'는 진화론에 한발 더 나아가 '경쟁에서 이긴 자가 모든 것을 갖는다'는 주장을 이끌어 내기에 이르렀다는 사실. 생물에 관한 명확한 이해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생물학 이론을 빌어 현실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생긴 오해다.


책은 이외에도 7명의 저자들이 말하는 '상식 바꾸기'를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이해의 시각을 넓힌다. 경쟁, 소비, 차별, 공존, 효율, 공동체 등으로 대표되는 사상과 현상에 대해 읽다보면 편협하게 이해했던 가치에 대한 '깨임'의 경험도 할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읽는 이의 자세에 달렸다.

덧붙이는 글 | <거꾸로 생각해봐 2 - 세상도 나도 바뀔 수 있어> 강수돌, 허지웅, 박홍규, 엄기호, 이은희, 남난희, 박승옥 씀, 낮은산 펴냄, 2010년 4월, 10500원


거꾸로 생각해 봐! 2 - 세상도 나도 바뀔 수 있어

강수돌 외 지음, 낮은산(2010)


#강수돌#거꾸로생각해봐2#세상도나도바뀔수 있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