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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토요일(27일), 땡볕이 내리쬐던 오전, 반찬거리를 사러 집 근처에 있는 시장에 갔습니다. 시장 입구에 들어서기 전부터 어딘가에서 여자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냥 '어린 아이가 우는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울음소리가 좀 거칠긴 했지만 그냥 여느 아이들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시장 상가와 붙어 있는 작은 아파트 계단 입구 쪽에서 우는 아이의 모습을 봤습니다. 대여섯살 정도 돼 보이는 아이 얼굴은 완전 피범벅이 돼 있고 옷까지 흘러내린 핏물이 흥건한 가운데 공포에 질려 엄마 엄마를 외치며 울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저는 혼비백산했습니다. 눈앞이 캄캄해지고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하나? 후다닥 달려가 피범벅이 된 아이를 붙잡고 "너 집이 어디냐?" 물어봐도 아이는 울면서 방향도 가리키지 않은채 '저기요'라고 대답하더군요.

얼굴 중앙 부분이 찢어진 채 계속 피는 나오고 있고 답답한 마음에 저는 목소리를 더 올리고 말하는 속도를 높여 아이의 집을 물었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아이의 절규는 더 커져만 갔습니다. 지나는 사람은 없고 아이의 얼굴에선 여전히 피가 솟고 있고 제 심장은 벌렁거렸으며, 마음이 저려왔습니다.

바로 그때 계단 위쪽으로 발자국 소리가 나기에 무조건 뛰어 올라갔습니다. 혹시 아파트 주민이면 이 아이가 어디 사는지 알지 않을까, 도움을 청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죠. 하지만 계단을 올라가고 있는 사람은 다친 아이 또래 여자아이였습니다. 급한 마음에 '얘!' 하고 부르자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더군요. 같이 놀다가 친구가 다친 듯한데 피범벅이 된 얼굴에 놀라 이 아이는 허겁지겁 제 집으로 가는 듯했습니다. 다친 친구 집이 어디냐고 물어봐도 이 아이 역시 울면서 횡설수설했습니다.

다시 내려와 정신을 가다듬었습니다. 119를 부를까 생각했습니다. 내가 아이를 들쳐 업고 가까운 병원으로 가야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엄마 휴대폰 번호를 물었습니다. 사실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아직 어려서 엄마 핸드폰 번호를 모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울먹이면서 아이는 엄마 전화번호를 불러주었습니다. 전화를 했습니다. 여기 xx시장 입구인데 아이가 다쳐 피가 많이 흐른다고 다급하게 이야기 해줬습니다. 옆에서는 아이 울음소리가 여전히 크게 들려왔고 그 소리는 그대로 휴대폰 속으로 빨려 들어가 엄마에게 전달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별로 급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야기 하는 동안 엄마는 제 이야기를 다 듣고 이렇다 저렇다 말없이 전화를 끊었다가 잠시 후 다시 제게 전화를 했습니다.

여러 차례 통화 끝에 엄마가 나타났습니다. 아이가 있는 위치를 정확히 잘 몰라 약간 헤맨 듯 했습니다. 엄마를 기다리는 동안 아이에게 왜 다쳤는지 물어봐도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모기한테 물렸다고도 했습니다. 미간이 상당히 많이 찢어져 피가 철철 흐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는 저는 마음이 정말 아렸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 연출됐습니다. 현장에 나타난 엄마는 아이에게 다가가더니 뭐라 뭐라 나무라더니 아이를 데려가는 것이었습니다. 저게 어떤 말 한마디는 커녕 아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이를 나무라면서 가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지?"

저는 시장에서 반찬을 사고 나오면서 터벅터벅 걸어왔습니다. 이번엔 머릿속이 텅 빈 것 같았습니다.

'왜 난 이 상황이 이해가 안 되는걸까?'

아이가 저런 상황이라면 엄마가 혼비백산 달려와서 피범벅이 된 아이를 깜짝 놀란 표정으로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며 택시든 지나가는 승용차든 부여잡고 응급실을 가자고 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게 모정이고 본능이기 때문입니다. 이마에 찢어진 상처가 선명하고 피가 줄줄 솟는데 말이죠. 경황이 없어 전화를 해 준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은 못한다 하더라도 아이에게 한 행동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그런 상황에서 아이를 나무라면서 데려가다니...

4살, 7살 두 아이를 키우는 있는 아빠 입장인 저는 지금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집에 들어와 아내에게 방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엄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그 엄마는 아이가 왜 다쳤는지 제게 흥분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모기한테 물렸다는 얘기도 했고 정확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엄마는 알았다며 바로 끊어 버렸습니다.

 오전에 그 일이 있고 난 후 오후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다가 큰 아들이 얼굴에 부상을 입었습니다. 저는 이 정도 가벼운 부상에도 크게 놀라며 혼비백산했습니다.
오전에 그 일이 있고 난 후 오후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다가 큰 아들이 얼굴에 부상을 입었습니다. 저는 이 정도 가벼운 부상에도 크게 놀라며 혼비백산했습니다. ⓒ 윤태
이번에도 고맙다거나 감사한다거나 하는 말은 전혀 없었습니다. 아이가 왜 다쳤는지 사고의 원인이 무엇인지, 누구의 책임이 있는 것인지 엄마는 그것이 궁금했던 모양입니다. 옆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아내가 전화기를 달라고 했습니다. 그 엄마에게 한마디 해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지 말라고 말렸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니 기분이 또 안 좋아졌습니다. 이거 위급한 상황에서 좋은 일 하고 고맙다는 인사는 커녕 아이가 다친 상황의 최초 목격자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괜히 좋은 일 해주고 나만 이리저리 불려 다니면서 귀찮아 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도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엄마의 행동입니다. 제가 예상하고 생각하는 이런 상황에서의 부모, 엄마의 예상행동, 제가 좀 오버하는 건가요?

그날 오전 그 일이 있은 후 오후 우리 7살 큰아들이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다가 얼굴에 찰과상을 입었습니다. 미끄러지면서 바닥에 얼굴을 밀었는데 다행히 흉터가 날 정도는 아니지만 얼굴 한쪽이 피로 물들었습니다. 엉엉 우는 녀석 인라인 스케이트도 못 벗기고 업고 달려가 차에 태운 다음 밴드 붙여 임시 조치한 후 약국 가서 제대로 된 조치를 취했습니다. 혹시 세균에 감염되진 않을까, 흉터가 남지는 않을까 심장이 벌렁벌렁 하면서요.

세상이 각박해지고 부모 자식간 죽고 죽이는 일이 지금은 뉴스거리가 안될 만큼 빈번한 세상이 됐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행동을 해야지 인지상정 아니겠습니까?

고맙다는 인사를 못 받아서가 아니고 또래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아빠로써 또 유치원부터 초등, 중등 학생들을 매일 만나며 수업하는 사교육 지도교사로서 안타깝고 화가 날 뿐입니다.

덧붙이는 글 | 다음 블로그에 올렸고 내용 추가, 삭제, 변형, 사진 삽입 등 한 차례의 편집을 거치고 기사형식에 맞게 고쳐 썼습니다.



#놀다 다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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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소통과 대화를 좋아하는 새롬이아빠 윤태(문)입니다. 현재 4차원 놀이터 관리소장 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다양성을 존중하며 착한노예를 만드는 도덕교육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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