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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경제의 불안요인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인 것으로 판단되는 만큼 금융시장이 과민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된다"는 임종률 재정부 차관의 발언은 예측이 아닌 희망에 불과했다. 미국의 신용등급 하락 소식에 7일 부랴부랴 소집된 긴급 경제금융상황 점검회의는 '긴급'이라는 절박성을 내세우기는 했으나 '우리 경제는 별 문제없다. 안심해라'라는 납득하지 못할 추측만 남긴 채 마무리 되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일부 누리꾼들은 '정부에서 괜찮다니까 진짜 큰일이 난 것'이라며 정부 발표에 불신을 가감없이 표출했다. 하지만 정부 발표가 하루 지난 월요일 주가는 폭락하고 종합주가지수가 10% 이상 하락한 상태에서 1분 동안 지속하면 발동된다는 서킷브레이크가 발동되었다. 코스피 선물 가격 급락에 사이드카 발동. 수년에 한번 있을까 한 주식시장 폭락 장세를 두고 공항 상태라고 표현하는 속보 뉴스도 이어졌다.

별 문제없다 안심하라 VS 정부가 안심하라니까 진짜 큰 일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 후폭풍으로 이틀 연속 사이드카가 발동된 가운데,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시황판에 코스피 지수가 1700선이 무너진 1696.16를 표시하고 있다.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 후폭풍으로 이틀 연속 사이드카가 발동된 가운데,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시황판에 코스피 지수가 1700선이 무너진 1696.16를 표시하고 있다. ⓒ 유성호


글로벌 경제 위기. 그 위험한 파고가 태풍처럼 몰려들고 있다. 정부의 입만 쳐다보고 '괜찮을 거야'를 주술처럼 읊조리고 있어야 하는지, 아니면 '더블딥' '국가신용등급' '서킷브레이크' 등 뜻조차 쉽지 않은 용어들을 싸안고 제 살길을 찾아야 하는지, 보이지 않고 이해되지 않는 공포가 더 불안하다. 주식이야 폭락하든 말든 깡통 주식 한 주, 그 흔한 펀드 하나 없는 서민의 입장에서야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면 그만이라고,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치부해 버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바야흐로 세계화 시대. 나비의 날갯짓이 태평양을 넘으면 태풍이 된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나라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경제 대국 미국. 그 심상찮은 변화는 우리나라와 놀랄 정도의 똑같은 모순을 내재하고 있다는 그 심각성에 우선 주목해야 한다. 단지 경제대국의 신용등급이 떨어져 우리나라 주식에 악영향을 주고 경제회생에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문제로만 진단하고 대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효과적이지도 않다.

최고의 경제대국 미국이 AAA등급에서 AA+등급으로 강등되기까지 어떤 문제가 내재되어 왔는지, 우리나라 경제의 토대는 미국의 현사태에 반추해 바로잡고 고칠 것은 없는지 이 기회에 적극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문제없다, 안심해라' 라는 말은 신용 등급 강등사태가 있기 전 미국 관료들이 수도 없이 반복했던 말이고, 걱정어린 시선을 가진 우리 국민들에게 우리 경제관료들이 또 반복하는 말이다. 그러나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믿고 있기에는 가려진 불안요인이 너무나 많은 것이 사실이다.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강등, 경제 패권 상실의 전조일 뿐

우연이었을까?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강등이 있기 몇 주 전 서점에서 미국의 민얼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 한 권이 번역 출판됐다. '타임'이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으로 뽑은 거시경제학자 담비사 모요가 쓴 <미국이 파산하는 날>(원제: How The West Was Lost, 중앙북스)이라는 책이다.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사태를 예견이라도 하듯 시기적으로 절묘하고 시선 또한 날카롭다. 서구인의 시각에서 미국에 대한 희망과 애정을 가지고 썼다고는 하지만 미국이 세계에서 경제패권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매우 객관적이고 설득력 있게 설명해 내고 있다.

보조금을 통해 주택을 소유하는 문화가 장착된 이후 나타난 직접적인 결과가 개인이나 국가가 모두 담보비율을 최대한 높여 돈을 빌리는 이른바 부채의존형 사회였다. 즉 사람들이 자신의 재력범위를 넘어서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는 발상에 익숙해진 생활방식을 조장하고 장려한 것이다 -<미국이 파산하는 날> 중에서

2008년 미국을 금융위기로 몰아넣은 서브프리임 모기지론 사태 이전 미국의 모습은 이러했다. 돈을 빌릴 수 없는 불량신용자들에게 정부가 나서서 보증하고 보조해서 주택구매를 부추겼다. 은행은 정부의 보증을 믿고 최저리로 시장에 돈을 풀었고, 집값 상승이 빛난 투자가 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했다. 가정경제가 파산하고 집을 차압당하고 은행이 도미노처럼 파산했고, 정부는 천문학적 공적자금을 쏟아 부었다. 너무나 비싼 수업료를 지불한 미국. 그 휴유증이 여전히 미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진단한다.

또 하나의 진단은 인구의 노령화와 미비한 교육투자로 노동력이 양과 질적인 면에서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 평균 출산율을 밑도는 저출산 문제는 필연적으로 노동연령의 고령화를 낳고 조만간 엄청한 사회비용을 유발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빈부 격차에 따른 교육 기회의 편협성은 점점 빈부의 차이를 벌려놓고, 노동의 질적 수준을 끌어올리지 못하고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담비사 모요의 주장에 따르면 성장을 떠받치는 2개의 축 자본과 노동에서, 자본은 생산적인 곳으로 재투자되기보다 과도하게 비생산적인 곳으로 소비되고 있고, 노동은 질과 양에서 성장을 담보할 수 없을 정도로 노령화되고 교육은 노동의 질을 높여주는 데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미국이 독점적으로 가져왔던 기술력도 보편화됨에 따라 중국 등 신흥국들과 힘겨운 경제 패권 전쟁을 치러야 될 것으로 미국의 현재와 미래를 조명하고 있다.

물론 이 한 권의 책으로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강등 사태를 규명하고 예단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이런 국가신용등급 강등 사태가 미국 내 공화당과 민주당의 파워 게임이나 S&P 분석 오류에 따른 잘못된 판단이 아니라, 잘못된 정책의 반복에 따른 필연의 결과임을 증명하기에는 충분하다. 그런데 내가 놀란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책을 읽는 내내 대한민국이 미국이 걸어온 잘못된 길을 똑같이 밟고 가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기 때문이었다.

미국의 잘못된 길 답습하는 이명박 정부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 후폭풍으로 코스피가 연일 하락하고 있는 가운데,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 증권거래소 영업점 앞에서 한 시민이 코스피 시황판을 지켜보고 있다. 이날 삼성전자 주가가 7% 이상 빠지며 한때 70만원선을 지키지 못하고 2년만에 무너지기도 했다.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 후폭풍으로 코스피가 연일 하락하고 있는 가운데,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 증권거래소 영업점 앞에서 한 시민이 코스피 시황판을 지켜보고 있다. 이날 삼성전자 주가가 7% 이상 빠지며 한때 70만원선을 지키지 못하고 2년만에 무너지기도 했다. ⓒ 유성호


주택문제만 하더라도 그렇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몇 번이나 발표된 부동산 대책. DTI 규제를 완화하고 대출하기 쉽게 조건을 만들어 줄 테니 이 기회에 집 장만하라는 투기의 유혹이었다. 뉴타운 건설 공약이나 각종 개발 계획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우스푸어라는 신조어는 빚 내서 집사고 파산을 맞은 미국 서민들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빚 권하는 사회가 부동산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학 등록금, 자영업자 사업자금 등으로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고달파 아우성이 커질 때마다 정부는 어김없이 대출 카드를 내밀었다. 빚 권하는 정부.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야기한 미국 정부와 이명박 정부는 너무나 닮아 있다.

747 공약이 완전히 실현될 것이라고 믿은 것은 아니지만 청년 실업률과 저임금 구조는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다. 반대로 대자본이 시장을 독점하고 승자가 성과를 독식하는 구조는 관행처럼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세계 일류 기업들과 경쟁해야 할 대기업들이 노부부가 24시간 일해야 먹고 사는 구멍가게를 넘보는 것도 공정한 경쟁이라고 강변하는 자본의 횡포를 정부는 제대로 통제할 생각이 없었다.

그 결과 자본이 비대해 질수록 서민의 살림살이는 점점 더 팍팍해졌다. 대기업의 돈잔치와 서민의 빚잔치. 이렇게 고착되어 가는 경제의 불균형 체질을 두고 우리는 안전하니 걱정말라는 입에 발린 소리는 차라리 '위험하다, 바꾸어야 된다'는 말보다 더 위험하다.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강등 사태는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검은 장막처럼 흘러들고 있다. 당장 이 국제적 위기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지 않기 위해 정부의 숨가뿐 노력들이 필요하다. 필요이상 동요하는 시장을 안정시키는 것도 정부의 할 일이다. 그러나 이 기회에 우리나라 경제는 안전한가라는 심각한 진단을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미국의 경제 패권 몰락을 예견한 <미국이 파산하는 날>이라는 책에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낸 강만수 KDB 산은금융지주회장은 이렇게 추천사를 썼다.

"<미국이 파산하는 날>은 미국 경제의 흥망을 날카롭게 깊이 있게 보여준다. 명민한 독자라면 한국경제의 모형도 이 안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정부의 잘못된 경제 정책과 빚을 권하는 문화, 무절제한 소비는 몰락하는 경제의 주범이며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덫이다. 개인과 기업, 정부가 미국을 반면교사 삼아 대재앙을 막을 수 있는 값진 책이라 확신한다."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의 말처럼 현재 미국의 모습 안에는 대한민국 미래가 투영되어 있다. 사상 초유의 국가등급 강등 사태를 두고 우리는 미국의 잘못된 길을 답습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시급히 되돌아 봐야 한다.


#증시폭락#서브 프라임 모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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