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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쯤 한 여름이 찾아오면 충남 서해안의 바닷가에는 두개의 축제가 벌어진다. 하나는 대천해변에서 열리는 '보령머드축제', 서해 바닷가의 갯벌 진흙을 가져다 온몸에 바르고 구르며 노는 축제로 성공적인 홍보와 운영으로 외국인들도 많이 찾아 온단다. 다른 하나는 대천해변에서 10Km 정도 떨어진 무창포 해변에서 열리는 '신비의 바닷길 축제'.

달과 지구가 애인들이나 한다는 밀고 당기기를 하다가 생긴 길로, 한 달에 서너번 이런 신기한 바닷길이 나타난다 (우리나라의 이런 바닷길 정보는 국립해양조사원 홈피에 가면 잘 나와 있다). 흥미로운 이 두개의 축제를 보려고 하니 아쉽게도 서로 다른 날에 한다. 어떤 축제에 찾아 가볼까 고민을 하다가 '신비의 바닷길'을 선택했다. 인간이 만든 축제보다 자연이 만든 축제가 호기심을 더 불러 일으켰나보다.       

바다에 간김에 자전거를 타고 눈시원한 해변가를 신나게 달리고, 속시원한 파도소리를 자장가 삼아 바닷가에서 하룻밤을 자보고 싶어 애마 자전거에 텐트를 실었다. 먹을거리는 현지에서 사먹고 무더운 여름날이라 침낭이 필요없어 빼니 자전거 짐받이에 실린 캠핑 짐이 한결 가뿐하다. 기차를 타고 대천역에서 내릴까 했는데 동서울버스터미널에서 여름에만 대천해변까지 가는 시외버스가 다닌단다.  

예정에도 없이 시외버스에서 내리게 한 정감가고 운치있는 기차역 청소역의 모습
 예정에도 없이 시외버스에서 내리게 한 정감가고 운치있는 기차역 청소역의 모습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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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 한 장면같은 운치있는 간이역 청소역

여름 휴가철이라 서해안 가는 고속도로는 차량들로 꽉 찬 가운데 시외버스는 널널한 1차선 버스전용 도로를 타고 씽씽 달린다. 자가용을 타고 오지 않은 게 잘한 듯 싶다. 이 대천해변행 시외버스엔 바다를 열망하는 젊은 청년들이 많이 탔는데 성급한 친구들은 앞자리에 앉은 여성들에게 썰렁한 유머를 날리며 세칭 작업을 거느라 여념이 없다. 버스는 덜막히는 길을 잘 찾는 인디언 전사처럼 고속도로와 국도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막힘없이 달려간다.

직행이 아닌 시외버스는 중간 중간에 들른 동네에 손님들을 내려준다. 그러다 무심코 창 밖으로 보이는 곳에 시선이 박혔다. 작은 간이역 건물에 써있는 이름은 '청소역', 한 눈에 봐도 운치있고 정감이 가는 기차역이다. 두 번 생각할것도 없이 버스 기사에게 여기서 대천해변이 머냐고 물어보았다. 가깝다는 대답을 듣자마자 계획했던 여행일정을 바꿔버렸다. 대천해변이 아니라 청소역이 있는 충남 보령시 청소면 마을에 내린 것이다. 버스 기사님이 가깝다고 대답한 건 뒤에 '차로 가면' 이란 말이 생략된 것이었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대천해변 가는 삭막한 국도변에서 만난 장항선 기차길의 건널목과 작은 마을이 오아시스 같다.
 대천해변 가는 삭막한 국도변에서 만난 장항선 기차길의 건널목과 작은 마을이 오아시스 같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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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문화유산이 충분히 될만한 이 간이역의 한자 이름은 靑所驛. 작은 대합실에 놓여있는 긴 나무 벤치 의자에 앉으니 이름대로 깔끔하고 사방이 트여 위치가 좋은 편안한 정자같은 곳이다. 역 앞으로 청소 슈퍼, 청소 정육점이 보인다. 꼭 영화속에 나오는 기차역같다 싶었더니 아니나다를까 학생인듯한 젊은 청년들이 역사 안팎에서 진지하게 촬영을 하고 있다. 무궁화호 기차가 하루에 서너번 서다보니 역무원 아저씨도 심심했던지 자전거 여행자에게 물과 관광용 지도를 주며 반가워 하신다.
 
시외버스 기사도 청소역 역무원이 준 지도에도 가깝다고 나온 대천해변은 하필 자전거 여행자에겐 심적으로 멀게 느껴지는 국도를 타고 달려가야 한다. 게다가 내가 사는 서울에선 툭하면 비가 쏟아지곤 했는데 이 동네는 어제부터 폭염주의보가 발령되었단다. 정말 태양이 쏟아내는 폭염이 등짝으로 폭포처럼 떨어지는 듯 따갑다. 비가 너무 자주 내린다고 투덜거렸던 서울 집이 벌써 그립다.

할머니표 냉커피를 마시고 다시 페달을 밟다

폭염에 지쳐 대천해변까지 가는 약 20여 킬로미터의 국도길을 자전거가 아닌 거북이를 탄 듯 느릿느릿 달리다 장항선 기차가 지나가는 반가운 건널목을 발견했다. 이 수수한 무인 건널목이 반가운건 그 너머로 작으나마 마을이 있다는 것, 지나가는 차들 말곤 땡볕에 그늘 한점없는 국도를 달리다보니 갈증에 물도 떨어지고 심신이 지쳤기 때문이다.        

동네 가게 안에 모여 고스톱을 치던 할머니들에게 길을 물어보며 혹시 물 한잔 얻어 마실 수 있냐고 하니 한 할머니가 잠시 기다리라며 옆에 있는 집에 들어갔다가 큰 머그잔에 출렁이는 차가운 냉커피를 담아 가지고 나오신다. 할머니들이 마시는 커피라 좀 달 거라고 웃으며 건네 주시는데 내겐 지친 소가 먹고 벌떡 일어섰다는 세발 낙지와 같은 냉커피였다. 좀 앉아 쉬었다 가라며 할머니들이 쐬어준 커다란 선풍기 바람과 냉커피 덕에 다시 자전거 페달을 밟을 수 있었다.

지친 여행자를 파도와 모래로 부드럽게 마사지 해준 한적해서 좋은 용두 해변
 지친 여행자를 파도와 모래로 부드럽게 마사지 해준 한적해서 좋은 용두 해변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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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엉금엉금 기다시피 도착한 대천해변은 머드축제로 유명한 해변답게 크고 넓고 상가들도 많고 피서온 사람들로 시끌벅적하다. 특히 젊은이들이 많이 찾아오는지 바닷가에서 쉴새없이 서로 빠뜨리며 장난을 치고 연신 폭죽을 날리며 해변을 색색으로 물들이고 있다. 재미있는 건 음료수를 파는 자판기인줄 알고 동전을 넣으려 앞에 섰더니 머드를 파는 자판기, '먹지말고 피부에 양보하세요'라는 글귀가 피식 웃음을 나게 한다.

더위와 갈증에 지친 여행자를 부드러운 파도와 모래로 달래준건 남포 방조제를 건너면 나오는 용두 해변. 고요하고 한적한 바닷가를 맨발로 걸어보니 심신의 피로가 다 가시는 것 같은 맘에 드는 해변이다. 용두 해변에서 잘 쉬고 출발한게 다행이지, 그 다음에 있는 무창포 해변은 드물게도 긴 오르막 언덕길이 가로막고 서있다. '신비의 바닷길'은 쉽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는가 보다.

자연의 선물 '신비의 바닷길'을 걸어 석대도로 건너가고 있는 사람들
 자연의 선물 '신비의 바닷길'을 걸어 석대도로 건너가고 있는 사람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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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소리를 자장가 삼은 바닷가 야영

무창포 해변도 대천 해변만큼이나 큰 바닷가지만 신비의 바닷길이 바다속에 숨어 있어서인지 해변 분위기가 좀 다르다. 조수간만의 차가 큰 해변이라 바닷가에 우리 조상들의 전통 어로방식이었다는 독살(혹은 돌살)이 있다. 밀물때 같이 들어온 물고기들이 썰물때 바다로 빠져 나가지 못하고 저 돌그물에 갇힌다는 것으로 관광객들에게 새로운 체험거리가 되고있다.

저녁나절이라 이젠 선선해진 바닷바람을 여유로이 쐬며 긴 해변길이 끝날때까지 슬렁슬렁 달려본다. 무창포 해변에는 두 개의 작은 무인도가 있는데 신비의 바닷길이 열리면 걸어 건너갈 수 있는 석대도와 해변가 가까이에 아스팔트길로 연결되어 있는 이름도 재미있는 닭벼슬섬이 그곳이다.

여름날엔 뜨거운 태양대신 시원한 바닷바람과 파도소리가 좋은 밤바다가 제격이다.
 여름날엔 뜨거운 태양대신 시원한 바닷바람과 파도소리가 좋은 밤바다가 제격이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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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길었던 나의 하루를 안다는 듯 닭벼슬섬 주위로 저무는 아름답고 부드러운 노을을 감상하며 바닷가 산책로 옆 적당한 곳에 하룻밤을 보낼 텐트를 쳤다. 해변 샤워장에서 시원하게 씻고 텐트안에 다리를 쭉 펴고 누우니 바닷 바람은 솔솔 불어오고 가까이에서 반복적으로 들려오는 파도소리가 자장가가 되어 언제 잠든지도 모르게 꿈속으로 골아 떨어졌다.

사람들이 지나가는 시끌시끌한 소리에 늦잠을 깨서 밖을 보니 벌써 무창포해변과 석대도 사이에 S자 모양의 바닷길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신비한 바닷길을 보러 대구에서 관광버스를 대절하고 구경왔다는 아주머니들은 손에 손에 호미와 비닐봉지를 들고 기대감에 다들 즐거운 표정들이다.

1.5㎞에 달하는 긴 거리에 줄을 서서 석대도로 건너가는 사람들, 조개같은 해산물을 열심히 캐느라 정신이 없는 사람들...언제봐도 자연의 경이로움과 고마움을 느끼게 되는 장관이다. 열린 바닷길은 2시간 가량 지나면 다시 물속에 잠기게 되지만, 이번달 말경 3일간 또다시 그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 8월 4일에 다녀 왔습니다.



태그:#자전거여행, #청소역, #대천해변, #무창포, #신비의바닷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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