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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지난 주 1주일 동안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를 방문하였다. 그곳을 방문한 이유는 아시아 지역 여성노동자들에 관한 회의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쿠알라룸푸르 방문 기간 동안 필자는 말레이시아의 정치적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을 접하게 되었다.

 

시민이 "EO6"라고 적힌 배지와 사인을 들고 시위를 하는 모습이었다. 이는 말레이시아 시민사회가 지난 1개월 동안 가장 집중하고 있는 이슈였다. 즉 EO에 의해서 구속된 6명을 석방하기 위한 활동으로 쿠알라룸푸르 시민사회는 분주하게 보냈고 있었다. "EO6"는 말레이시아 현 정부의 비민주성을 확실히 보여주며 동시에 말레이시아 사회의 민주주의적 변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촛불집회 현장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현장
촛불집회 현장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현장 ⓒ 김애화

식민주의 법을 활용한 탄압

 

6명의 석방을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매일 밤 경찰청 본부와 시내 곳곳에서 열리고 있었다. 그 곳에서 "EO 6"라는 뱃지를 단 참가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즉 Emergency Ordinance(긴급법령)으로 6명이 구속되었다는 뜻을 함축하는 구호였다.

 

이들 6명은 벌세이(Bersih)라 불리는 조직과 관련된 활동으로 구속되었다. 벌세이는 말레이 말로 "깨끗이하다"는 뜻으로,  조직의 영어 공식 명칭은 "깨끗하고 공정한 선거를 위한 연합(the Coalition for Clean and Fair Elections)"이다. 이들은 다가올 선거에 대한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었다. 구속된 이들은 6월 25일 연행되었는데, 7월 9일로 계획되었던 벌세이 집회를 위한 전단을 거리에서 배포하는 중이었다.

 

당시 연행된 숫자는 30명이었다. 이들에 대해서 즉각 보수언론과 경찰은 연행된 이들이 말레이시아 왕에 대한 불복종 운동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30명 중 24명은 석방되고, 6명이 7월 2일 다시 구속되었다. 그리고 그 구속은 악명높은 Emergency Ordinance(긴급법령)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말레이시아에는 이미 국제적으로 악명 높은 국가보안법(Internal Security Act, ISA)이 있다. ISA는 말레이시아 독립 이후, 1960년에 공산당 무장혁명 시도를 막기 위해서 만들어진 법으로 반공산당법이라 할 수 있다. 법의 목적을 "단지 공산주의자를 저지하기 위해서"라고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런데 이 법은 사실상 영국이 만든 비상계엄령(Emergency Regulations Ordinance)를 복원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는 식민주의 영국이 말레이시아인들의 독립투쟁을 약화시키기 위해서 만들었던 법으로 "1년 미만 기간 동안 피의자를 재판 없이 구속을 가능하게 하는" 법이었다. 

 

이렇게 식민지 법은 계속 부흥하여 ISA 외에 Emergency Ordinance(이하 EO)이 만들어졌다. ISA와 EO는 동일하게 용의자를 재판 없이 60일 동안 구속할 수 있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또한 60일 구금 뒤에 다시 매 2년 마다 무제한으로 재판 없이 구속할 수 있다. EO는 1969년 중국계와 말레이계의 인종 분쟁에 대응하기 위해서 임시적으로 만든 법령이었다. 그러나 이후 정부는 형사 확실하고 충분한 증거 없이 혐의자를 구속하는 데 사용해 왔다. 그런데 대부분 EO는 형사범죄에만 사용되어 왔다. 정치적 사건에 적용된 것은 드문 일이다. ISA로 대부분 정치범을 구속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ISA 대신 EO를 적용한 이유에 대해서 말레이시아 변호사협회 사무총장인 스테파니(Stephanie Bastian)는 "정부와 경찰의 입장에서 구속된 6명이 공산주의 혐의를 적용하기 어려워서가 아니라 ISA에 대한 국제적 비판 여론이 높기 때문이었다. 지난 몇 년 동안 ISA가 반정부 활동에 대한 탄압으로 활용이 되면서 ISA 폐지 운동이 국제적으로 진행되었었고, ISA의 문제점은 국민 일반에게 인식되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정부와 경찰의 입장에서는 ISA와 EO 모두 동일한 목적을 위해서 적절히 다르게 적용하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구속, 구금만으로도 충분히 정치적 활동을 약화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자주 활용되고 있었다.

 

자주 열리는 선거, 그리고 조기 총선 예감   

 

말레이시아 정치는 한국과 다른 정치제도 때문에 복잡하다는 것이 첫인상이다. 우선 내각제이다. 이는 총선이 자주 열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회의원 임기는 5년이다. 즉 총선이 5년마다 열려야 한다. 그러나 내각제이기 때문에 수상이 의회를 해산할 수 있는 권한이 있어서, 총선은 임기 이전에 열릴 가능성이 높다. 또 다른 말레이시아 정치의 특징은 정당이 많다는 것이다.

 

정당인들도 그들 국가의 정당수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인종 국가을 반영한 정당제도는 인종별 정당과 인종통합 정당 등으로 많다. 대략 30개가 넘는 정당이  난립하고 있고, 그 속에서 정당들은 정당 연합으로 선거에 참여한다. 현 집권 세력은 14개의 정당 연합인 the Barisan Nasional (National Front, 이하 BN)이다. 이 중에서 수상은 영국으로부터 독립 이후 줄곧 통합말레이정당(United Malays National Organization, 이하 UMNO)에서 배출되었다. 장기집권으로 유명한 마하티르도 UMNO 출신이고 현재 수상은 나지브(Najib Razak)이다.

 

지난 2008년 3월 총선은 말레이시아 정치사에 획기적인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변혁적인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내었다. 장기집권의 BN이 예전보다 58개의 의석 잃고 간신히 의회의 과반수를 넘었다. 반면 야당연합인 인민전선이 지난 선거보다 62석을 더 획득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는 말레이시아에서 BN의 장기집권을 멈추게 할 수 있다는 분위기를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시민의 힘의 탄생을 보여주는 기회였다. 시민사회는 이러한 선거 결과의 뒤에 벌세이(Bersih)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한다. 벌세이는 2006년 정당 지도자, 시민사회 그룹이 참가하여 공식적으로 출범하였다. 벌세이는 공정한 선거를 위한 운동을 위한 캠페인을 벌여왔고 2008년 선거 시기에도 적극적인 활동을 하였다.

 

말레이시아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고 자신하는 Bersih는 올해에 들어와서  Bersih 2.0의 이름으로 새롭게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들이 공정선거 캠페인을 2006년 이후 계속 진행해올 수 있었던 것은 말레이시아 정치의 특징, 자주 열리는 선거 때문이다. 2008년 총선 이후에 보궐선거가 12번이 있었다. 그리고 2번의 보궐선거가 기다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수상 나지브가 의회를 해산하고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총선을 실시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외신도 이를 뒷받침하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부정부패, 좋지 않은 경제적 상황 등으로 인해서 나지브 정부는 중산층으로부터 인기가 떨어지고 있다.

 

벌세이는 이런 조기 총선 분위기를 활용하여 2008년을 넘는 선거결과를 만들어내고자 한다. 그래서 그들은 선거법 개정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개정 운동에 포함되는 요구 중의 하나가 선거 부정을 막기 위한 지워지지 않는 잉크 사용과 공식 선거운동 기간을 현재의 7일에서 21일로 바꾸는 것이다. 벌세이 2.0은 7월 9일 예정대로 공정한 선거를 위한 집회를 개최하였다. 이날 집회에서 경찰은 1667명을 연행하였다.

 

소수 정당 사회당이 주목받는 이유 

 

구속된 6명이 모두 사회당(Malaysia Socialist Party, PSM)의 간부들이다. 이중 한명은 현역 의원이다. 6월 25일 구속되었다가 먼저 석방된 24명도 사회당원들이다. 이렇게 사회당에 탄압이 집중된 이유를 사회당의 최고위원인 레치미(Letchimi Devi)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벌세이 활동을 공산주의 무장세력과 연관시키기 위해서이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끊임없이 반정부 활동을 공산당의 복원운동이라고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하면서 조정하려 한다. 대중에게 그런 요소를 보여주기 쉬운 것이 사회당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사회당원들이 집중적으로 구속되었다."

 

덧붙여 그녀는 "말레이시아에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와 마찬가지로 금기시되는 말이다. 물론 창당할 때 사회주의자라는 표현이 들어간 정당명이 정치적인 자살행위라는 의견이 있었다. 그러나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어서 사회당으로 작명하였다"고 말했다. 사실상 사회당은 1998년 창당하였으나, 정부로부터 끊임없이 정당 등록이 거부되다가 2008년 되어서야 공식적인 공당으로 인정을 받은 소수 정당이다.

 

사회당을 비롯하여 진보적 조직들에 대해서 정부는 이들 조직들이 왕에 대한 저항을 하고 있다, 공산당을 재건하고 있다, 정부를 전복하기 위해서 해외 단체와 함께 일하고 있다는 혐의를 퍼뜨리고 있다. 그러나 벌세이에 참가한 시민사회그룹의 줄기찬 촛불집회는 오히려 국민들에게 사회당을 알리는 기회가 되었다고 레치미는 평가한다. 그리고 다음 선거에서 아마도 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전망한다. 사회당은 단식투쟁을 시작했다. 당의 각 지역위원회에서 6명의 석방을 요구하는 단식투쟁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구속된 사람들도 단식투쟁에 합류하였다. 이러한 단식투쟁에 촛불집회 참가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이런 상황 전개에 대해서 말레이시아 변호사 협의회 사무총장, 스테파니는 "정부가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다. 내가 일하는 이곳, 변호사 협의회에서 비상상태에 대응하기 위해서 즉시 법률자문을 맡을 변호사 17명을 훈련했다. 그런데 17명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일이 너무 많다. 어제도 의사협의회와 청년조직에서 자신들의 이름으로 기자회견과 집회를 하려는데 필요한 법률자문을 요청해왔다 "고 말했다.

 

촛불의 승리

 

709세대를 알리는 표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촛불집회 현장
709세대를 알리는 표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촛불집회 현장 ⓒ 김애화

필자의 귀국일인 29일에, 6명이 석방되었고 저녁 8시에 시내 중국인총회당에서 환영행사가 열릴 예정이라는 소식을 문자로 받았다. 행사장에 참가하지 못해서 아쉬웠다. 그러나 말레이시아에 정말로 변화가 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국처럼 구호는 크지 않지만 그리고 깃발도 보이지 않지만 촛불에서 나와 자신들과 공감할 수 있는 시와 글귀를 읽는 조용한 그들의 움직임이 민주주의 사회를 향한 자신감 있는 태도를 드러내고 있음은 확실하다. 
 
그리고 청년들이 집회에서 보여준 작은 종이에 쓴 "Generasi 709"라는 구호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7월 9일 세대라는 새로운 민주주의 세력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말레이시아 #공정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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