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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심원들이 참여하는 국민참여재판에서 통상적으로 재판부는 배심원들의 유무죄 평결과 양형의견을 존중해 판결하는데, 재판부가 이례적으로 배심원 다수가 무죄 평결을 내렸음에도 유죄로 인정하며 중형을 선고했다.

 

범죄사실에 따르면 A씨는 지난 3월 18일 오후 11시경 대전에 있는 자신의 집 근처 노래방에서 만나 알게 된 B(49, 여)씨를 '택시비를 주겠다'며 꼬드겨 자신의 집으로 유인해 데려왔다.

 

그런데 A씨는 방안으로 들어가자 갑자기 태도가 돌변해 얼굴 등을 마구 때렸고, 이에 B씨가 저항하자 옷을 모두 벗기고 스타킹으로 양손을 묶고 목을 졸라 반항을 억압했다. 그런 다음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온갖 변태적인 방법으로 강간했다. 그 과정에서 A씨는 흉기를 들고 위협해 반항을 제압했다.

 

B씨는 알몸인 채로 A씨의 집을 빠져 나와 경찰에 신고했고, 결국 A씨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강간등상해) 혐의로 기소됐다. 그러자 A씨는 "B씨와 합의하에 성관계를 했을 뿐, 흉기를 들고 폭행 또는 협박해 강간한 사실이 없고, 그 과정에서 상해를 입힌 적도 없다"며 범행 자체를 부인했다.

 

하지만 대전지법 제12형사부(재판장 문정일 부장판사)는 최근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A씨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해 징역 7년을 선고한 것으로 5일 확인됐다. 이 사건 배심원 9명 중 다수인 5명은 상해죄만 유죄 의견을 제시했다. 배심원들의 평결을 존중하는 관례를 깬 이례적인 판결이다.

 

재판부는 "피고인과 피해자가 노래방에서 만나게 된 경위, 피해자가 피고인을 따라 피고인의 집에 가게 된 과정에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면서도 "피해자의 강간피해 진술은 실제 경험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고 보기에는 피해 당시의 상황에 대한 진술이 자연스럽고 구체적이며, 일관될 뿐 아니라 피고인의 주장과 같이 피해자가 피해상황을 조작했다고 의심할 만한 사정을 찾아볼 수 없다"고 밝혔다.

 

또 "피해자가 수치심을 무릅쓰고 피고인의 집을 알몸으로 탈출해 인근 식당에 뛰어들어 신고를 요청한 점, 피고인의 방을 탈출하기 전후에 112에 신고전화를 한 점, 피해자의 양손 손목에 묶인 자국이 선명하고 부은 모습이 뚜렷한 상흔이 있고, 피해자의 성기에 집어넣었다고 주장하는 리모콘과 페트병에서 피해자의 DNA가 발견된 점 등에 비춰 보면, 피해자의 피해상황에 대한 진술은 믿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이런 피해자의 진술과 각 증거들을 보태어 보면, 피고인이 범죄사실과 같이 흉기를 들고 피해자를 폭행, 협박해 강간한 사실과 그 과정에서 상해를 입힌 사실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어 피고인의 변호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했다.

 

양형과 관련, "피고인에게 동종전과가 없고, 피고인의 아이를 임신한 결혼 예정인 여자친구가 있으나, 누범기간 중의 범행인 점, 피해자와 합의되지 않은 점, 범행을 부인하며 잘못을 뉘우치고 있지 않은 점, 범행 당시 피해자가 겪었을 공포, 수치심 및 범행수법 등을 고려해 정했다"고 말했다.

 

한편, 재판부는 배심원 9명 중 다수인 5명이 공소사실에 대해 무죄로 판단하고 상해 부분만 유죄로 인정한 평결과 다르게 유죄로 인정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재판부는 "배심원 9명 중 과반수인 5명은 상해죄만 유죄로 인정하고 이 사건 공소사실에 대해서는 무죄로 평결했다"며 "이는 피고인과 피해자가 노래방에서 만나게 된 경위, 피해자가 피고인을 따라 피고인의 집에 가게 된 과정에 석연치 않은 점에 집중해 피해자의 진술을 믿을 수 없다고 판단한데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진술의 주요 부분에 일관성이 있다면 그 밖의 사소한 사항에 관하여 의심스러운 사정이 있더라도 그 진술의 신빙성을 함부로 부정할 것은 아니므로 피해자의 진술은 충분히 믿을 수 있고, 공소사실에 대한 증명도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입증됐다고 인정되므로 배심원들의 다수 의견에 따른 평결과 다른 판결을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국민참여재판#배심원#평결#양형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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