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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명으로서의 정치>
<소명으로서의 정치> ⓒ 폴리테이아

서평을 시작하기에 앞서 고백하건대 필자는 막스 베버도, 정치 철학도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충분히 이해하지도 못했을 뿐더러, 짧은 지식 때문에 잘못 읽은 부분이 있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이 글은 평범한 한 시민이 <소명으로서의 정치>(막스 베버 저, 박상훈 역, 폴리테이아 펴냄)를 읽고 난 소회를 가벼운 마음으로 써본 것이라 생각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소명으로서의 정치>는 현대 사회학의 창시자라 불리는 막스 베버가 한 학생단체의 요청으로 강연한 내용을 책으로 발간한 것이다. 스 베버는 이 강연을 통해 소명의식을 갖춘 정치인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소명으로서의 정치>는 이전에도 번역된 바 있지만, 이번에 나온 <소명으로서의 정치>는 최장집의 '강의'를 통해 텍스트 해설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 특별하다. 필자도 그렇지만 막스 베버나 정치 철학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는 최장집의 '강의'가 길잡이가 될 것이다. 여기서는 필자가 생각한 두 가지 쟁점을 짚어보는 것으로 서평을 갈음하고자 한다.

 

민주주의는 어떤 지배인가?

베버는 "모든 국가는 폭력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는 트로츠키의 말을 인용하며 폭력이 국가 특유의 수단이라 주장한다. 물론 폭력만으로 국가가 유지될 수는 없다. 람들의 복종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최소한의 정당성은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베버는 지배를 정당화하는 내적 근거에 따라 지배를 3종류로 나눈다.

 

첫째는 전통적 지배다. 이는 신성화된 관습의 권위에 근거한 지배로 씨족 사회에서의 가부장이나 고대 중국의 황제가 행사하던 지배 양식이다. 둘째는 카리스마적 지배다. 이는 비범한 개인의 권위, 즉 카리스마에 근거한 지배로 예언자나 전쟁 지도자 등이 행사하던 지배 양식이다. 셋째는 합법적 지배다. 이는 합리적으로 제정된 법과 규칙의 권위에 근거한 지배로 근대적 공무원에 의해 행사되는 지배 양식이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는 이 셋 중 어디에 포함될까? 합법적 지배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베버는 민주주의를 카리스마적 지배 형태로 보고 있다. 베버에게 있어 민주주의는 "카리스마적 지도자와 이를 추종하는 대중의 열망 사이에서 발생하는 지배-정당성의 상호 관계에 기초를 둔 통치 체계이다."(46p)

 

이 대목에서 고개를 갸우뚱한 사람이 필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베버의 말처럼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데는 동의한다. 그러나 지도자의 역할이 법과 규칙을 넘어설 만큼 대단한 것일까?

 

우리의 현대사를 잠깐 돌이켜보자. 우리 헌법은 독재자의 입맛에 맞춰 이리저리 변해온 불행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승만과 박정희는 자신들의 장기 집권을 위해 대통령 선거제도를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다시 직선제에서 간선제로 바꾸는가 하면 중임제한을 철폐하는 등 헌법을 마음대로 유린해왔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법보다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힘이 더 강력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독재자들도 나름대로 헌법을 지켜야 했기 때문에 헌법을 바꾼 것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헌법이 이들을 전혀 구속하거나 제약할 정도의 힘이 없었다면 굳이 바꿀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이들이 멋대로 바꾼 헌법이 정당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이들의 지배도 대체로 법의 틀 안에서 이뤄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세부적으로 법을 어긴 사례가 없지는 않겠지만, 독재자들의 지배 역시 법의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역할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베버의 입장에 의구심이 든다.


신념윤리와 책임윤리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는 <소명으로서의 정치>를 관통하는 주제 중 하나다. 신념윤리란 '각 개인이 행위할 때, 명시적으로나 암묵적으로 그 행위의 결과를 고려하지 않고, 그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하는 도덕이다.'(87p) 반면 책임윤리는 '사건의 전체 구조, 내지는 맥락에서 행위자가 자신의 결정이 가져올 수 있는 결과를 상상하고, 그가 원래 바라는 목표와 관련해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하는 판단력, 사려 깊음을 뜻한다.'(87p~88p)

 

개인적으로 박상훈의 <정치의 발견>을 읽고 신념윤리보다는 책임윤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소명으로서의 정치>를 읽으며 책임윤리의 한계를 생각하게 됐다. 물론 정치적 행위가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직접 연관된 문제이며 선한 의도가 늘 좋은 결과를 낳는다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책임윤리는 필요하다. 그러나 책임윤리 역시 한계를 갖는다. '인간의 이성으로 자신의 행위가 불러올 결과를 얼마나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가'하는 점이다. 아무리 풍부한 자료와 세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결과를 예측하려 해도 자신이 예상했던 결과가 나온다는 보장은 없다.

 

멜서스가 쓴 <인구론>의 그 유명한 구절, "인구는 (억제되지 않을 경우)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인식은 멜서스 혼자만의 것은 아니었다. 서울대 이정전 교수는 "맬서스를 비롯한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은 농업부문에서 수확체감의 법칙이 워낙 강해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인위적 노력을 단연 압도한다고 생각하였다. 말하자면, 식량생산에 있어서는 극복할 수 없는 자연의 절대적 한계가 있다고 보았다"고 말한다. 따라서 멜서스의 <인구론>를 단순히 오해와 편견에 가득 찬 보수주의자의 저작이라 봐서는 곤란하다. 그의 예언은 결과적으로 빗나갔지만, 당대의 지성들이 그와 인식을 공유했다는 점에서 멜서스의 어긋난 예언은 앞으로 기술이 얼마나 발전할지 예상할 수 없었다는 점, 즉 이성의 한계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편이 공평할 것이다.

 

이런 사례를 보면 결과를 예측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성공적일지 회의가 든다. 우리가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은 이성뿐인데, 인간의 이성이란 얼마나 미약한 것인가. 그런 의미에서 결과를 중시하는 책임 윤리는 분명 한계를 띠고 있다. 그래서 정치가의 길은 어려운 것일 수밖에 없다.

권하기에는 꺼려지는

필자는 <소명으로서의 정치>를 읽기 전에 상당한 기대를 가졌다. 최장집이 해설한 막스 베버라니, 생각만으로도 기대가 되는 책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막상 이 책을 읽고 나서 서평을 어떻게 써야할지 고민에 빠졌다. 이유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최장집의 '강의'는 그래도 읽을 만했지만, 막스 베버의 '텍스트'는 만만치 않았다. 물론 필자의 무지 때문이라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최장집의 책을 모두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읽었고 책임윤리와 신념윤리의 대략적인 내용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 책을 따라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솔직히 다른 사람에게 권하기는 꺼려진다. 그러나 책임윤리와 신념윤리라는 내용만으로도 이 텍스트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다소 머리가 아프더라도 정치가가 갖추어야 할 요건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한번쯤 시간을 투자해서 읽어도 좋을 것이다. 최장집의 다른 <정치철학 강의> 시리즈를 기대해본다.


막스 베버 소명으로서의 정치 - 베버 편

막스 베버 지음, 최장집 엮음, 박상훈 옮김, 후마니타스(2013)


#최장집#막스 베버#신념윤리#책임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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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15기 인턴기자. 2015.4~2018.9 금속노조 활동가. 2019.12~2024.3 한겨레출판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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