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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도 창후리 선착장에서 보이는 교동도의 모습, 왠지 몽환적이다.
 강화도 창후리 선착장에서 보이는 교동도의 모습, 왠지 몽환적이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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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선에 서면 저 앞에 북한의 갯벌과 육지가 손에 닿을 듯 훤히 내다 보이는 섬이 있다. 바로 교동도라는 곳으로 강화도의 동생이자 석모도의 이웃 섬이기도 하다. 이렇게 남방한계선이 있는 섬인 탓에, 관광지가 발달하여 사시사철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옆의 석모도와 달리 찾는 사람이 드문 조용하고 쓸쓸한 섬이다.

그래서인지 예부터 왕권 다툼에서 내몰린 많은 왕족들이 유배를 오기도 한, 역사 속의 이야기가 많은 섬이기도 하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조선시대 10대 임금인 연산군으로, 섬 안에는 연산군이 두어 달 살다 세상을 떠난 유배지 터가 남아 있기도 하다. 유배지였다니 멀게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서울에서는 의외로 가까운 섬이다. 강화도에서 배를 타고 15분밖에 안 걸리니 말이다. 옛부터 중요한 무역로였으며 군사 요충지였다니 그럴 만도 하다.

오래전부터 간척이 많이 이루어져 경작지 면적, 즉 쌀이 나는 평야가 강화군 내에서 가장 넓다고 한다. 모내기가 끝난 지금쯤 연둣빛 들판길을 자전거 타고 실컷 달리고 싶고, 교동도 양갑리에 있다는 커다란 느티나무 그늘 아래서 쉬며 정겨운 마을 구경도 하고 싶고, 북쪽 해안선 마을인 인사리 철책선 농로길에서 정말 북한 땅이 훤히 보이는지 확인도 하고 싶다.

무더운 여름이 오기전에 교동도 자전거 여행을 하고파 차에 '애마' 자전거를 서둘러 싣고 강화도 창후리 선착장으로 떠났다. 

 섬에 있는 오래된 비석들을 모아놓은 비석터, 잊혀져 가는 섬의 과거처럼 무성한 잡초들이 덮고 있다.
 섬에 있는 오래된 비석들을 모아놓은 비석터, 잊혀져 가는 섬의 과거처럼 무성한 잡초들이 덮고 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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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역사가 느껴지는 쓸쓸하고 고즈넉한 섬

휴일이지만 교동도 가는 배 안은 한산하다. 교동도에도 생겼다는 '나들길'을 걸으러 간다는 부부 한 쌍과 나만이 관광객이고 다른 어르신들은 모두 교동도 주민이다. 인천에 사는 딸네 집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라는 할머니와 잠깐 얘기를 나누었는데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마을 이름이 '고구리'란다. "동네 이름이 재미있네요" 하니 마을에 '고구저수지'도 있단다.

하도 독특한 지명이라 기억해놨다가 나중에 집에 와서 찾아봤더니, 고구려의 전성기를 구가한 광개토태왕(374~412)이 스무 살이 갓 넘은 나이에 백제 땅이던 교동도에 남하하여 20여 일의 치열한 전투 끝에 이 섬을 정벌했다고 한다. '고구리'라는 마을 이름은 이런 역사적 사건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교동도 월선포 선착장에 내려 자전거 안장에 가뿐하게 올라타 대룡리행 길을 따라 시계 방향으로 섬 일주를 시작한다. 교동도는 자전거 여행자의 체력을 시험하고 힘들게 하는 급경사의 언덕길이 없는 평탄한 길을 가진 섬이라 신나게 달리기에도 참 좋은 곳이다. 부처님의 머리를 닮았다 하여 이름 지은 불두화가 담벼락에 풍성하게 피어난 마을을 구경하며 기분좋게 페달을 밟는다.

 마을 한가운데에 터만 남은 교동읍성, 왠지 애잔한 감흥을 불러 일으킨다.
 마을 한가운데에 터만 남은 교동읍성, 왠지 애잔한 감흥을 불러 일으킨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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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판에 친절하게 써있는 화개산 자락의 '교동향교'와 담쟁이 넝쿨이 덮고 있는 동네 한가운데의 '교동읍성'도 찾아 가보고, 섬안에 있는 오래된 비석들을 모아놓은 비석터에는 잊혀진 섬의 과거를 상징하듯 잡초가 무성하다. 바로 옆의 논과 밭에 주민들이 나와 부지런히 일하시는 모습을 보니 쓸쓸했던 풍경에 다행히 생기가 돌기도 한다.  

동네에 터만 남은 연산군 유배지에도 가보았다. 몇 년 전 크게 히트했던 영화 <왕의 남자>에 나오는 임금이 연산군으로, 오죽했으면 광대에게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한다"는 비아냥을 들었을까. 교동도는 연산군 말고도 고려 21대 왕인 휘종, 조선 세종의 셋째아들 안평대군, 광해군의 형인 임해군, 인조의 동생 능창대군, 광해군의 폐비 류씨, 흥선대원군의 큰아들 영선군 등이 유배됐던 왕과 왕족의 유배지였다.  

 오래된 이발관, 약방, 신발가게, 방앗간이 줄지어 모여 있는 대룡시장 골목길은 내 어릴적 동네를 떠오르게 한다.
 오래된 이발관, 약방, 신발가게, 방앗간이 줄지어 모여 있는 대룡시장 골목길은 내 어릴적 동네를 떠오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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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던 고향' 같은 골목길...교동도 대룡리

얼마 안 있어 대룡리가 나오는데 관공서, 초등학교와 중고교가 모여있는 교동도의 시내요 가장 번화했던 동네다. TV 예능 프로그램인 <1박 2일>에도 나와 유명해진 대룡시장 골목길 입구에 들어서자 빨간 간판의 '화개클럽'이 보여 풋웃음이 나기도 한다. 중앙신발, 동산약방, 교동다방, 형제방앗간… 간판만 봐도 내가 어릴 적 살던 고향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번화가 골목길에서 제일 유명한 곳은 바로 교동이발관이다. 신문과 방송을 많이 타서 그런지 이발관 문을 살짝 열어 빼꼼히 훔쳐봐도 이발사인 주인아저씨 아니 칠순이 넘은 할아버지는 전혀 놀라지 않고 오히려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신다. 고마운 마음에 이발관 안에 들어서려다 멈칫 놀랐다.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이발관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교동 이발소는 50년이 넘은 곳이지만, 이발사인 주인 할아버지처럼 깔끔하게 정돈된 편안한 공간이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교동 이발소는 50년이 넘은 곳이지만, 이발사인 주인 할아버지처럼 깔끔하게 정돈된 편안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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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이 넘은 곳이지만 잘 정돈된 이발관 안은 일흔 나이에도 염색을 하시고 정정한 이발사 할아버지처럼 깔끔하고 편안하다. 교동도 바로 너머의 북한 연백지방(현 황해남도 연안군)에 살았던 할아버지는 스무 살도 안 된 나이에 6·25전쟁을 맞아 잠깐 이 섬에 피난을 왔다가 여지껏 살고 계신다. 오래전 왕족들이 유배를 와 살던 섬에, 현대에 들어서 실향민분들이 유배 아닌 유배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내년에 강화도에서 교동도까지 연륙교가 생기면 편해져서 좋으시겠어요" 했더니, 좋은 건 섬 안에 사는 노인들이 갑자기 아플 때 언제라도 차를 타고 큰 병원에 갈 수 있는 거라고 하신다. "나쁜 건 어떤 게 있을까요" 하고 여쭤봤더니 육지에서 차를 타고 놀러온 사람들이 섬 구석에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것이란다. 도시나 섬이나 쓰레기는 현대 인간 문명의 원죄 같다는 생각이 스친다.

이제 앞으로 섬을 일주하면서 한동안 가게나 식당을 만나기 힘드니 대룡리에서 배불리 먹고 간식과 물을 사두어야 한다.

 섬 끝의 바다가 아니었다면 여느 농촌 마을로 착각할 정도로 너른 들녘이 펼쳐져 있는 섬
 섬 끝의 바다가 아니었다면 여느 농촌 마을로 착각할 정도로 너른 들녘이 펼쳐져 있는 섬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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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더위를 식혀주는 농로길을 원없이 달리다 

대룡리에서 양갑리를 향해 조금만 달리면 간척지로 생긴 사통팔달의 드넓은 평야가 눈앞에 끝없이 펼쳐진다. 도시에서 살면서 굳혀진 근시안이 멀리까지 트이는 것 같다. 잠시 섬이 아닌 어느 농촌마을에 여행 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모내기가 막 끝난 연둣빛 들판 위엔 하얀 옷을 입은 귀족같은 백로들과 오리들이 농부, 농모님처럼 돌아다니고 있다.   

표지판이 따로 없는 너른 들녁을 무작정 달리다보니 여기가 어디쯤인지 헤매기 쉽상이다. 이럴 땐 논가에 앉아 막걸리와 함께 새참을 드시는 농부님들이 'GPS' 역할을 해준다. 농로길을 이리저리 달리다 드디어 양갑리 마을에 도착, 밭일을 하시는 주민 아주머니에게 물어물어 백 살은 족히 넘었을 느티나무가 있는 곳에 다다랐다.

 양갑리에는 두세그루의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는데 나무밑 평상에 누우면 그렇게 편안하다.
 양갑리에는 두세그루의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는데 나무밑 평상에 누우면 그렇게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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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했던 대로 치렁치렁 그늘진 나무 밑에 평상이 놓여 있다. 물도 마실 겸 자전거를 세워놓고 평상에 대자로 누우니 하늘을 가린 느티나무 가지가 참으로 신령스럽게 뻗어 있다. 이상한 '금속말'을 타고 나타난 외지인을 보고 놀란 동네 개들이 짖어대며 조용한 마을을 시끄럽게 하는가 하면, 언뜻 까만색의 개인줄 알았던 염소들도 매애애~ 울며 희한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고 있다.  

양갑리를 지나면 다행히 폐교되지 않은 난정초등학교가 나타나고 동네 꼬마 녀석들이 재잘거리며 노는 흐뭇한 모습도 보인다. 작은 자전거를 타고 농로길을 열심히 달리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무섭지도 않은지 마을안 무덤들 위로 올라갔다 내려갔다하며 깔깔거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 귀엽고 농촌 마을에 활기가 돈다.  

 바다 옆에 위치한 드넓은 호수같은 난정 저수지길을 따라 섬의 북쪽으로 달려간다.
 바다 옆에 위치한 드넓은 호수같은 난정 저수지길을 따라 섬의 북쪽으로 달려간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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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수한 한 그릇의 밥이 나오는 논에 물을 대주는 난정 저수지 옆길을 따라 섬의 서쪽 마을 무학리, 지석리를 지난다. 한낮엔 29도의 뜨거운 여름 날씨라 더위를 먹을까 걱정했는데,농로길 양 옆의 드넓은 논에 찰랑찰랑 차 있는 물 때문인지 햇살은 따가워도 무덥게 느껴지지가 않다.

종종 양지 바른 자리인데도 빈집들이 나타나 마음이 허허로워지기도 하고, 담쟁이덩굴로 폐가가 된 교회를 다 보았다. 가끔씩 마주치는 동네 사람들이 무조건 반갑기만 한 시골 마을이다.    

철책선 사이로 북한 땅이 훤히 보이네

이제 북한 땅과 가까이 면한 교동도 북쪽의 마을 인사리로 향한다. 다른 동네와 비슷한 농촌 마을이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해안선을 따라 나있는 철책선길. 예전엔 이 철책선길을 지나려면 초소 군인들의 통제를 받았다던데 이젠 그 누구도 말리지 않는다. 자전거를 멈추고 서서 철책선 사이로 시선을 두니 저 앞에 북한 땅과 갯벌이 정말 가까이 보인다.

 교동도의 북쪽으로 해안선을 따라 난 철책선옆 농로길에 서면 북한땅과 갯벌이 코앞에 보인다.
 교동도의 북쪽으로 해안선을 따라 난 철책선옆 농로길에 서면 북한땅과 갯벌이 코앞에 보인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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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안개가 끼었지만 한달음에 갈 수 있을 것 같은 거리. 어서 통일이 되어 저 북한 땅에서 자전거 여행을 하고 싶은 내 소망이 꼭 이루어졌음 좋겠다. 철책선은 삭막하게 서 있지만 천혜의 자연상태인지라 곳곳에 낚시꾼 아저씨들이 작은 텐트까지 치고 앉아 세월과 물고기를 함께 낚고 있다.    

교동도 오는 배 안에서 만난 할머니가 산다는 마을 고구리에 다다랗다. 넓은 고구저수지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는 고구리는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한 곳인지 많은 사람들이 차를 몰고 오고가고 있다.

마을을 지나다 쭈그리고 앉아 밭일을 보고 있는 할머니와 눈길이 마주쳤는데 반갑게도 아까 섬에 올 때 만난 그 할머니다. 식사는 했느냐며 자전거 타고 다니느라 고생 많다고 하시는데, 뜨거운 햇살 아래 밭일을 하시는 분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괜시리 죄송스럽다.     

 강화도로 돌아올때 불쑥 바다위로 모습을 들어내던 암초와 긴 모래사장, 배 시간이 1시간 넘게 걸리게 하는 자연의 신묘한 현상이다.
 강화도로 돌아올때 불쑥 바다위로 모습을 들어내던 암초와 긴 모래사장, 배 시간이 1시간 넘게 걸리게 하는 자연의 신묘한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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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룡리 이후로 고구리에서 오랜만에 명지슈퍼라는 가게를 만났다. 컵라면을 사서 가게 마루에 앉아 주인 할머니가 덤으로 주시는 김치까지 곁들여 꿀맛 같은 식사를 했다. 할머니는 이 동네 고구리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 옆 마을인 고구2리에서 약방을 하시는 할아버지와 결혼해 지금껏 살고 계시는 교동도 토박이다. 이제 이름도 정겨운 도토리, 봉소리 마을을 지나면 처음 출발했던 월선포 선착장이다. 

자전거를 타고 원없이 섬을 일주했지만 아쉬운 마음을 안은 채, 황금빛 들녘으로 아름다울 가을날을 기약하며 강화도행 배를 탄다. 푹신한 소파에 앉아 곧 내릴 때를 기다리는데 웬걸, 배는 한없이 바다 위를 달리기만 한다. 이런 일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듯 여유로운 표정의 옆자리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썰물 때라 강화도로 돌아가는 데 1시간 정도 걸릴 거란다.

창밖의 바다를 보니 정말 풀등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긴 모래사장과 암초들이 바다 한가운데에 불쑥 올라와 있다. 갈 땐 십여 분만에 도착했던 섬, 다시 돌아오려니 한 시간여를 붙잡는 곳이 교동도다.

덧붙이는 글 | 6월 6일 다녀왔습니다.



#자전거여행#교동도#고구리#대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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