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길산 역 근처 팔당유기농단지 중에서 토지가 수용된 곳은 이미 공원공사가 한창이었다.
북한강가에 있던 버드나무만 남겨두었다. 유기농단지가 사라진 들판엔 땅을 고르는 굴삭기만 황량한 들판에 먼지를 일으키고 있다.
운길산 역이 생기면서 운악산 계곡에서 북한강으로 흘러드는 지류를 넓히는 작업도 동시에 진행이 되었다. 가만 보니 운길산 역도 지류공사도 유기농단지에서 농사를 짓던 분들을 몰아내고 공원을 만드는 것은 하나의 일관된 사업이다.
운길산 계곡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서울 근교에서는 보기 힘든 야생화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겨우 명맥만 유지할 뿐이다. 넓어진 계곡에는 물이 말랐고, 아직 정리되지 않은 계곡은 점점 좁아져 그 흐름 자체를 위협받고 있었다.
그래도, 꽃은 피어 있었다.
이전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피어 있었다.
슬픈 것은 '내년에도 볼 수 있을까?'하는 마음이 예년같지 않고, '내년에는 볼 수 없을지도 몰라'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느 것이다.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피어나는 꽃은 없다고 했다.
그래서 꽃이라고도 했으며, 바람에 흔들리고 피어나기에 향기도 좋다고 했고, 그 바람에 그냥 꺾이기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도 했다.
그렇게 두물머리는 흔들리고 있었다.
그 바람이 그들이 견딜만한 바람이라면 좋겠다. 토네이도처럼 뿌리를 완전히 도려내는 그런 광풍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연잎이 올라온다.
조그만 위치를 바꾸고, 조금만 조작을 달리하면 같은 곳이라도 전혀 다른 모습으로 표현이 된다. 그것이 사진의 매력일 터이다. 그런데, 그렇게 현실이 왜곡되었다고 해도 그 현실 자체는 그대로이다. 그것 역시도 사진의 매력이다. 그들을 손상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들도 생각하지 못했던 모습으로 담아낸다는 점에서.
그런데, 4대강 사업을 구상하고 계획하고 청사진을 그리던 이들은 본질과 현실을 철저하게 파괴했다. 그리고는 그렇게 하면 강들이 알아서 자신들의 청사진에 맞게 적응할 것이라고 우겼다. 거짓말.
오랜만에 선 두물머리, 팔당유기농단지, 그곳은 죽어가고 있었다.
아직도 살아 있는 기운을 맛보려고 수많은 이들이 그곳을 찾았건만 모두 그들의 주검에 무관심했다. 자연이 주기를 더이상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켜야 그들의 아픔에 관심을 가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