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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독재정권의 마침표를 찍던 때, 1997년 최초로 민주적 정권교체가 실현되던 때, 그리고 2002년 권위주의 정치에서 탈피하던 때와 마찬가지로 2012년을 앞둔 한국정치는 변화무쌍한 터널을 통과 중에 있다.

 

집권한 보수정치는 자초한 '대란'에서 헤어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민심이반과 자중지란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반면, 진보개혁정치는 감동 없는 깃발만 휘두르며 패배의 늪에서 올라서려하지만, 아직까지는 이렇다 할 변화도 대안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소소한 선거결과와 무관하게 어느 누구도 민심을 확실히 얻지 못하는 현 상황이 '새로운 정치'를 갈구하는 직접적 이유이고, 그렇기에 지금은 87년, 97년, 02년과 마찬가지로 한국정치를 질적으로 바꾸어 놓을 전환기라 할 수 있다.

 

민주당부터 사회당까지 반MB를 시대적 사명으로 안고 있는 정당들, 그리고 정당의 무능을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던 시민사회단체들은 십인십색으로 한국사회의 현재에 맞는 새로운 정치를 주창하고 필요성을 역설하거나, 실현계획을 밝히거나 실현조직을 건설 중에 있다. 혹은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혹은 실현계획을 밝히고, 혹은 실현조직을 건설중에 있다. 이들 모두 대안과 미래를 이야기하나, 국민들이 느낄 만한 감동과 희망은 아직 빠져 있다. 물론 아직 새정치는 그 설계도를 작성하는 과정이다.

 

이들 모두 대안과 미래를 이야기하지만 새정치는 '설계도' 작성 단계이고, 아직은 국민들이 느낄 만한 감동과 희망은 빠져 있다. 그렇다면 설계도를 자세히 들여다보자. 새정치에의 '진정성'을 확인하고 부족한 감동과 희망을 모색하기 위함이다.

 

새 정치에 대한 의지, '싹수'가 보인다

 

새로운 정치 모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체의 의지'다. 즉, 진보개혁정치세력들의 냉철한 현실진단과 자기변화에 대한 의지가 필요하다. 일단 정치현실에 대해서는 비교적 정확하게 진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야권연대'의 성숙도가 이를 반증한다.

 

2007년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은 'MB vs 반MB'의 구도를 형성케 했고, 2008년 총선은 여대야소 정국을 만들었다. 이후 민주적 리더십이 실종된 '독선정치'에 비례하여 야권연대의 필요성과 요구가 상승하였고, 지난 2010년 지방선거는 야권연대의 리트머스 시험지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전국적 연대의 실험은 실패했으나 지역적 연대는 성공하였고, 야권연대의 위력과 국민적 공감대를 확인하기에 충분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2012년 총선을 1년 앞두고 진행된 4·27 재·보선은 '야권연대의 모의고사' 격이었다. 여기서 야권은 보다 성숙된 의지와 협상력을 보이며 전국적 연대를 성사시켰다. 야권연대의 목표가 정권교체와 새 정치의 서막을 여는 것이라고 했을 때, 적지 않은 과제가 산적해 있지만 시대흐름 및 국민적 요구를 진단하고 이를 위해 이룬 진보개혁정치세력의 진화는 긍정적으로 평할 수 있다.

 

진보개혁정치세력의 '가치 이동'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진보개혁정치세력은 국민적 공감을 불러일으킬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지 못했고, 보수정치의 성장경제 프레임에 맥없이 무너진 바 있다. 그러나 성장경제의 버팀목인 신자유주의와 토건주의는 바뀌는 시대와 전 세계적 불황에 속수무책이었다. 그에 '정치보다는 경제, 성장지표 보다는 생활향상'을 갈망했던 국민들은 '복지와 분배의 경제가치'를 지향하기 시작했다.

 

진보개혁정치세력은 뒤늦었지만 복지와 분배의 경제가치로 적극 이동하고 있다. 민주당은 2010년 10월 전당대회에서 당헌을 고쳐 '보편적 복지'를 담고 '3+1 무상복지 시리즈'를 내세웠으며, '부유세 무상의료 무상교육'의 원조인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도 노동을 앞세워 복지국가에 대한 지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즉, '가치와 연대'의 틀에서 진보개혁정치세력들의 혁신 의지에 '싹수'가 보이는 것이다.

 

그럼 이제 '입찰경쟁' 중인 다양한 새 정치 설계도들의 차이와 공통점을 알아보고, 긍정성과 부정성을 따져보자.

 

새 정치를 논하는데 있어서 '야권연대'는 현실상에서 이미 전제조건이 되어 있다. 따라서 새 정치에 대한 전망은 '통합론'의 차이에 따라 달라진다고 봐야 한다. 현재 진보개혁정당과 시민사회단체에서 다양하게 제기되고 있는 '새 정치의 그릇'은 통합의 과정, 대상, 그리고 형식에 따라 차이를 보이고 있다.

 

양당체제인가, 삼분지계인가

 

새 정치 '설계도'의 가장 큰 갈래는 '진보'개념의 차이와 그에 따른 진보정당의 존재가치에 대한 인식차로 볼 수 있다. 즉, 한국사회에서 진보정치세력의 개념으로 정립된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 등과 중도개혁세력의 개념으로 정립된 민주당내 진보블록과 국민참여당, 창조한국당이 '진보'라는 개념에서 차이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 또한, 차이가 있다고 전제하더라도 진보와 개혁의 동맹이 필요한가, 진보의 독자적 존립이 필요한가에 대한 인식차도 존재한다. 이러한 차이들은 한국정치의 미래 즉, 새로운 정치의 대안을 미국식 양당체제로 전망하느냐, 진보-개혁-보수의 삼분지계로 목표하느냐로 궁극적 지향을 달리 한다.

 

미국식 양당체제 주창자들은 한국사회의 이념지향은 진보, 중도, 보수로 나뉘지만 구체적 정치 사안이나 정책이슈로 들어가면 진보와 보수의 양 체제로 구분된다는 것에 착안한다. 즉, 한국정치에서 진보정당의 독자생존론은 정치적으로 의미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실패했다는 것이다. 한국정치에서 진보정당이 독자적 목소리를 낼 수 없고 따라서 정치적 힘은 약화되고 조직기반은 줄어들 수밖에 없으며, 상대적 존립가치로만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진보정당의 지지도 상승과 하락이 개혁정당에 의해 좌우되거나 동반되는 사실을 그 징표로 제시한다. 결국 대통령중심제와 국회의원 소선거구제라는 정치현실은 양당정치를 강제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의 헌법체제와 선거법상에서는 양당체제에서 진보를 강화해야 한다는 논리다.

 

반면, 한국정치의 삼분지계를 주장하는 이들은 진보정치세력과 중도개혁세력의 분명한 차이를 강조하고 있고, 따라서 한국사회와 정치발전을 위해서 진보정당의 존립과 강화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그들은 2004년 민주노동당의 원내 입성은 정당명부비례대표제라는 제도가 일등공신인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13.5%의 정당지지도는 사회진보와 정치적 혁신에 대한 국민적 기대와 염원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중도개혁세력과는 평화와 통일이라는 정치분야 가치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어도 노동과 분배, 복지라는 경제분야 가치에서는 큰 차이를 보이며, 구체적 정책에서는 더욱 그 간극이 커 때로는 적대적 대립도 형성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한 마디로 개혁정치세력은 연대의 대상이지, 동맹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진보정당의 독자적 존립과 강화는 한국사회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며, 그것이 결국 개혁세력의 진보화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논리이다.

 

이러한 근본적 개념과 인식 차는 야권대통합과 진보대연합으로 나뉜다. 민주당 내 진보블록과 국민참여당(단계론), '복지국가 진보정치연대'가 야권대통합을 주장하고, 진보정당들은 진보대연합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진보정당 내에서도 국민참여당과 마찬가지로 단계적인 과정을 거쳐 궁극적으로는 야권대통합을 이루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기도 하다.

 

시민사회단체에서는 대표적으로 '빅텐트론'과 '국민의 명령, 유쾌한 백만 민란'이 야권대통합을 위해 실천하고 있고, '복지국가와 진보대통합을 위한 시민회의'와 '진보정치세력 연대를 위한 교수·연구자 모임', '진보의 합창'이 진보대통합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단계적 통합인가, 포괄적 통합인가

 

통합의 과정의 차이에 따라서는 '단계적 통합론'과 '포괄적 통합론'으로 구분될 수 있다. 단계적 통합론은 말 그대로 진보진영과 개혁진영이 먼저 각자의 통합을 거친 후 일정한 시기와 준비를 거쳐 야권 전체의 통합을 이루자는 내용이다.

 

그에 반해, 포괄적 통합론은 일거에 야권통합정당을 건설하자는 안이다. 단계적 통합론과 포괄적 통합론의 사이에는 상대적 소수인 진보정치의 존립에 대한 안전성 확보와 기득권 다수세력의 쇄신에 대한 의견차가 존재한다. 현재, 진보정당과 국민참여당, 시민사회단체 일부에서 단계적 통합론을, 민주당 내 진보블록과 복지국가 진보정치연대, 시민사회단체 일부에서 포괄적 통합론을 주장하고 있다.

 

통합의 대상에 따라서도 새 정치 설계도는 달라진다. 즉, 보수를 제외한 진보개혁정치세력 전체를 통합의 대상으로 할 것인가, 일부의 통합과 전체의 연대를 지향할 것인가에 따라 '야권대통합'과 '소통합연대', 그리고 통합에 반대하는 '선거연대'로 나눌 수 있다.

 

야권대통합론에는 '빅텐트론', 그리고 '복지국가 단일정당론'이 해당된다. 야권대통합의 최초의 공식적 주장은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김기식 운영위원장의 빅텐트론이다. 새로운 가치로 진보와 개혁이 동맹을 맺어야 하고, 이것이 야권의 진보화로 작동된다는 것이다.

 

'시민정치행동-내가 꿈꾸는 나라'의 공동대표이기도 한 그는 빅텐트론을 진보가 다수가 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빅텐트론은 미국식 양당체제를 지향하는 것이고, 결국 진보정당의 독자적 존립을 부정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정당정치의 기본을 묵살하고 있다는 비판과 함께 다수당인 민주당의 기득권 포기에 대한 강력한 주문이 빠진 '민주당 중심의 야권 정리'라는 지적을 받고 있기도 하다.

 

민주당發(발) 야권통합 빅텐트론은 당내 진보블록에서 나오고 있다. 민주당 내 진보그룹이 총망라된 진보개혁모임은 자기목표를 야권통합이라고 제시한 바 있다. 당내 486세력의 정치결사체라 할 수 있는 진보행동은 이를 단계적 통합론 반대와 야권단일정당 추진으로 설명한다.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과 함께 개혁적인 시민사회, 학계 등을 포괄한 그들의 야권단일정당 추진은 룰라를 낳은 브라질 PT(집권노동자당)와 넬슨 만델라를 배출한 남아공 ANC(아프리카 민족회의)를 모델로 하고 있다. "빅텐트 안에서 진보색채의 여러 정파들이 다양하면서도 통일된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시도는 '4·27 순천 재선거에서의 무(無)공천'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실천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연말로 예정된 민주당 전당대회에서의 당권장악 여부에 따라 크게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야권단일정당론을 시민운동화하여 대중적 지지기반을 확보하고 정치세력을 압박하는 조직이 '국민의 명령, 유쾌한 백만 민란'이다. 7개월 만에 10만 명의 지지를 돌파한 '국민의 명령'은 시민의 감동과 지지로 전국에서 고른 지지를 받는 단일정당을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정파등록제를 바탕으로 한 연합정당 성격의 단일정당 건설을 5개 야당이 당론으로 채택할 것을 대중실천으로 압박하고 있다.

 

한편, 지난 4월 16일에는 진보신당발 야권대통합론 조직이 출범하였다. 바로 '복지국가 진보정치연대'다. 복지국가 진보정치연대가 '보편적 복지'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한 야권대통합을 내세웠지만, 이미 복지라는 가치가 한국사회의 주류가치로 부상하였고 보수정치세력까지도 들고 나서는 가치이기에 사실상 빅텐트론과 큰 차이를 갖기 어렵다. 그럼에도 가치중심 연대와 국민대중운동을 지향하는 데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새로운 진보정당은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의 몫

 

대통합론이 민주당 내부, 시민사회단체, 진보정당 내부 등에 전방위적으로 퍼져있는 반면, 소통합연대론은 진보정당과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다.

 

소통합연대론은 '선진보대통합 야권연대'와 '민주당을 제외한 통합과 야권연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진보대통합은 크게 두 축으로 논의되고 있다. 하나는 '진보대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진보진영대표자 시민회의'이고, 또 하나는 민주노동당-진보신당간 진보대통합(새 진보정당 건설) 추진논의다.

 

소위 8자 연석회의라고 불리는 '진보대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진보진영대표자 시민회의'는 지난 1월부터 3개월여에 걸쳐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 민주노총, 전국농민회총연맹, 반빈곤빈민연대, 진보정치세력 연대를 위한 교수·연구자 모임(진보교연), 복지국가와 진보대통합을 위한 시민회의(시민회의)의 8자로 구성된 연석회의는 명실공히 진보진영 대표단체의 모임이라 할 수 있다. 지난 3월 8자 연석회의에서는 '2011년 9월까지 광범위한 진보세력이 참여하는 진보대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합의하고, 6월 말을 전후해 각 단위에서 구체적 의결을 거치기로 하였다.

 

이러한 진보진영의 통합과 새로운 정당 건설에 큰 물줄기를 만드는 것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몫이 되고 있다. 양당은 각기 강기갑 의원을 진보대통합 공동추진위원장으로, 노회찬 전의원을 새 진보정당 건설 추진위원장으로 선임하였고, 8자 연석회의와는 별개로 만남과 논의를 이어가기로 한 바 있다.

 

또한 진보대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의 시민운동을 책임지는 조직이 '진보의 합창'이라 할 수 있다. 오는 5월 22일 공식 창립을 앞두고 있는 '진보의 합창'은 새로운 진보정치를 바라는 시민들의 정치운동조직으로 위상을 정하고, 위로는 민주노동당-진보신당간 통합을 압박하고 아래로는 진보의 재구성 전파 역할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야권대통합론에 '국민의 명령'이 있다면, 진보대통합론에는 '진보의 합창'이 있는 셈이다.

 

한편, 국민참여당의 유시민 대표도 소통합연대론을 주장하고 있다. 유시민 대표는 민주당을 제외한 야권통합과 2012년 민주당과의 선거연대를 대안으로 밝힌 바 있고, 진보진영의 8자 연석회의에도 참여하겠다고 공식 입장으로 요청했다. 그러나 국민참여당의 진보대통합 참여에 대해서는 진보진영 안에서 찬성론과 회의론이 병존하며 뜨거운 감자로 되어 있는 상황이다.

 

한편, 민주당 내부나 진보정당 내부에서는 통합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이들의 주장은 정당정치의 원리상 이념과 정책이 상이한 각 정당들은 자기 정체성을 유지한 채 독자정치를 펼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지난 2010년 지방선거 이후 진보정당 내에서 야권 선거연대에 대한 이견은 상당히 불식된 것으로 보인다. 반면, 민주당 내에서는 야권의 선거연대 자체에도 부정적인 세력이 있다. 구민주계를 중심으로 하는 이들은 민주당이 나아갈 길을 좌파와의 연대가 아닌 중도세력 포괄로 두고 있기에 진보정당과의 연대에 대해 마뜩찮아 하고 있다.

 

합당인가, 창당인가

 

통합과 연대의 논의에서 빠지지 않는 것 중 하나가 '어떠한 방법이 현실 가능하고 새로운 정치를 여는 길인가'이다. 즉, 현재의 정당을 중심으로 한 신설합당인가, 아니면 새로운 정당의 창당인가에 대한 논쟁인 것이다.

 

야권대통합론 내에서도 기존 정당의 존재를 인정하는 속에서의 빅텐트와 기존 정당을 허물고 새로운 빅텐트로 모이는 것으로 나뉘고, 진보대통합론 내에서도 진보세력의 대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로 미묘한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신설합당이냐, 새로운 정당 창당이냐는 본질적으로 정권교체를 위한 반한나라당 연합을 우선시하는지, 한국사회와 정치의 질적 변화에 방점을 찍고 있는지의 차이로 볼 수 있다.

 

반면, 현실가능성으로서의 수단으로 논의되기도 한다. 즉, 현재의 동력을 유지, 확산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창당의 모험보다는 합당의 안정성을 택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각 정치세력의 정치적 지분을 보장하기 위해 현재를 인정한 합당이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공천권' 보장과 더불어 '새도 캐비넷(예비내각)' 조직화가 실질적인 통합의 전제라는 지적도 있다.

 

통합을 위한 구체적 논의와 함께 야권연대를 위한 현실적 구상도 제기되고 있다. 이탈리아의 올리브동맹을 벤치마킹한 '가설정당'이다. 가설정당은 현행 선거법이 야권연대를 원천적으로 제한하기 때문에 구상된 것이다. 현행 선거법은 여러 당끼리 하는 국민경선제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어 야당연대는 여론조사 룰로만 가능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가설정당 즉 서류로만 등록된 페이퍼정당을 만들고, 연대하는 야권이 모두 등록하여 하나의 야권통합정당으로 국민경선을 치러 2012년 양대선거에서 보수정치와 맞서자는 계획이다.

 

노회찬 전 의원과 조국 서울대 교수가 주장한 바 있는 '가설정당'은 2012년 전 야권대통합은 옳지 않거나 가능성이 없고, 현 수준의 연대논의로는 제대로 된 야권연대도 현실성이 없다는 전제 하에 고민되었다. 즉, 진보정치와 개혁정치의 독자성을 보장하면서 연대의 현실성을 높이고, 국민경선을 통해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 '가설정당'이라는 설명이다. 노회찬 전 의원은 1997년 대선에 출마했던 '국민승리21'을 가설정당의 한 예로 들었다. 이미 진보정치세력은 가설정당의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목표와 가치'를 정립하여 '설계도'를 보완하라

 

지금까지 다양하게 제시된 새 정치 '설계도'를 관점과 이해, 차이에 따라 구분하고 분석해 보았다. 진보적 정권교체와 새로운 정치의 실현을 위한 창의적이고 진정성 있는 고민과 실천은 한국사회와 정치 발전에 큰 자양분이 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다양한 주장이 자기 목표와 가치를 분명하게 제시하지 못함으로 인해 국민적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국민의 명령'이나 '내가 꿈꾸는 나라', '진보의 합창' 등이 시민정치운동을 표방하며 희망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실천을 진행하거나 계획 중에 있어 기대해 봄직하다. 그러나 여기에도 '목표와 가치'는 아직 부실하다. 선거 공학적 발상은 무수히 많지만 이것이 없는 이상 공허함을 떨칠 수 없다.

 

따라서 진보개혁정치세력들의 공통적인 허점이자,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것은 국민이 공감하고 지지할 '새로운 정치의 목표와 가치'를 분명하게 정립하는 것이다. 그것이 결국 '왜, 새로운 정치인가?'에 대한 분명한 답이자, 국민적 감동과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최적의 비책이 될 것이다.

 

2007년 대선부터 2011년 재·보선까지 야권의 선거 전략은 원포인트 정치연합이었다. 즉, 반MB연대로 국민적 동의와 선택을 조직한 것이다. 그러나 2012년은 전적으로 다르다. 2012년에도 현재권력에 대한 심판이 주요한 선거기조를 차지하겠지만, 결국19대 총선과 18대 대선은 미래권력에 대한 선택이다. 더 이상 '반MB 선거'는 없다는 것이다. 87년 체제를 대체할 새로운 시대정신과 국가목표, 대중적 대안담론, 대표정책을 제시하고, 선택받는 선거가 될 것이다.

 

선거 공학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진보개혁정치세력이 간과하는 게 있다면, '보수의 정계개편'에 대한 것이다. 이미 보수 세력은 크게 양분되어 있고, 현재권력 하에서는 적절한 절충으로 유지되고 있지만, 미래권력을 향해서는 치열한 다툼이 예상되고 있다. 또한 빠르면 4·27 재·보선 직후에, 늦더라도 이명박 정부 말기가 다가올수록 현재권력에 대한 이탈이 심각하게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 보수진영의 대표적 책사인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이상돈 중앙대 교수가 모여 '보수 재집권플랜'을 위한 좌담회를 통해 '선진화, 국가통합, 상처치유'를 시대과제로, '선진화와 통일'을 국가 비전으로 논의한 바 있다. 또 현재의 민심을 이미 '여소야대'라고 규정하며, 한나라당에 사람과 정책을 모두 바꿀 것을 주문하고 대통령과의 결별 또는 '박근혜 신당 창당'을 통해 미래정당과 미래형 리더십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거대한 보수적 정계개편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결국 2012년은 모든 정치세력이 '미래를 책임질 새로운 정치'라는 잣대로 국민의 평가와 선택을 받는 장이 될 것이다. 그 결과는 '감동과 희망'의 새 정치를 누가 만드느냐에 달렸다.

 

완성된 새정치 '설계도'를 갖고 국민과 함께 춤추자

 

새 정치 '설계도'를 정리해보면, 결국 2012년을 어떤 시기로 규정하고, 한국정치의 현실과 전망을 어떻게 해석할 것이며, 국민적 요구와 지지는 어디에 있는지 해석하는 데 따라 방향과 원칙이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또, 새 정치는 '시대정신과 국가목표, 대안담론, 대표정책을 담는 새로운 가치'와 그것을 사회적 합의로 이끌 '새로운 리더십을 가진 인물', 그리고 '새 정치를 뒷받침하고 대중적 지지를 확보할 새로운 대중운동'의 세 가지가 분명하게 정립되어야 한다.

 

한국사회 최악의 경제와 양극화 지표, 부자감세와 4대강 토건사업, 민주주의와 평화의 위기 등을 고려했을 때, 더 이상 보수정치세력에게 국정을 맡길 수 없음은 자명해졌다. 따라서 진보개혁정치세력은 진보적 정권교체는 물론 한국사회의 새로운 대안을 위한 사명을 부여받았다고 할 수 있다. 새 정치는 그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모색인 것이다.

 

이제, 진보개혁정치세력은 '설계도'를 빠르게 완성하고, 국민의 선택을 호소해야 할 때다. 결국 새 정치의 대상도 국민이고, 그에 점수를 매길 주체도 국민이다. 정치권 상층에서만의 조율과 협상으로는 작은 그 무엇도 바꿔낼 수 없다.

 

국민 앞에 '설계도'를 펼쳐놓고,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호흡해야 한다. 그 속에서 감동도 나오고, 희망도 세울 수 있다.

 

아마도 우리 국민들은 20세기 초에 엠마 골드만이 한 이야기를 진보개혁정치세력에게 똑같이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춤출 수 없다면, 나는 혁명을 원하지 않는다!"

"If I can't dance, I don't want your revolution!"

덧붙이는 글 | 필자 강형구 님은 정치컨설팅기업 조원씨앤아이 이사로,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입니다. 이 글은 월간 <노동세상> 5월호에도 함께 기재됐습니다.


#진보의 합창#국민의 명령#빅텐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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