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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날 행사에서 모종 심기를 함께 하고 있는 부모와 아이들. (자료사진)
어린이날 행사에서 모종 심기를 함께 하고 있는 부모와 아이들. (자료사진) ⓒ 송상호

5월이다. 꽃이 피고 신록이 푸르러지기 시작하는 계절. 언제부터인가 난 그 5월의 싱그러움이 너무 좋았다. 비록 지구 온난화로 인해 연두빛 색감이 점점 4월로 옮겨가고는 있지만, 20대의 난 5월만 되면 괜히 들떠 있었고, 시간만 나면 배낭을 짊어지고 길을 나서곤 했다. 내 눈으로 직접 5월의 아름다움을 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마냥 아름답기만 했던 5월. 그러나 5월에 대한 연모는 그리 길지 않았다. 그토록 좋기만 했던 5월이 30대 가장이 된 내게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10년 전만 해도 그냥 형식일 뿐이라고 생각했건만, 이젠 왠지 부담스러워진 5월의 기념일들.

5일 어린이날은 첫째가 18개월이니 그냥 넘어간다고 치자. 8일 어버이날은 그야말로 새로운 발견이었다. 예전에는 부모님께 편지를 쓰거나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면 되었던 그 날이, 결혼을 하고 보니 전혀 다른 날로 변한 것이다. 아내의 눈치를 봐가며 처가와 본가 어른들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척이나 고민해야 하는 어버이날. 그냥 돈을 드리려니 무성의한 것 같고, 봉투를 드린다 하더라도 얼마를 넣어야 할지 도대체 감이 잡히지 않았다.

15일 스승의 날 역시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비록 아이의 선생님을 챙길 필요는 없지만, 아내와 나, 둘 다 대학원을 졸업한 터라 각자의 은사님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아직까지 아내와 함께 작품을 쓰시는 김 선생님께, 그리고 흔쾌히 우리의 주례를 맡아주셨던 최 선생님께 어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다. 나의 5월엔 이외에도 큰 행사가 또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1일 부모님의 결혼기념일과 5월 초 석가탄신일보다 며칠 빠른 어머니의 생신이었다.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은 이제 내가 결혼을 했으니 두 분만의 날로 넘어간다고 하자. 문제는 어머니의 생신. 결혼 이후 그 성격이 전혀 달라진 어머니의 생신이었다. 결혼 전에는 무슨 선물을 사드릴까 하는 고민만 존재했건만, 결혼 후에는 시어머니의 생신상을 어떻게 차려드려야 하느냐는 며느리의 깊은 고민이 추가됐다. 게다가 8일 어버이날까지 겹쳤으니, 어머니께 선물을 드린다 한들 생신과 어버이날을 구분해야 되는지, 어찌해야 하는지 고민될 수밖에. 

그렇다면 5월 한 달 우리는 얼마를 지출해야 하는 것일까? 가계부를 들춰보니 지난해 우리 부부가 쓴 경조사비는 5월 한 달만 100만 원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양가 부모님께 드린 용돈이 총 40만 원, 스승의 날 선생님을 모시고 저녁을 함께하고 버섯 등으로 마음을 표하기도 했다. 또 5월, 날씨가 좋으니 얼마나 많은 선남선녀가 결혼을 했겠는가. 결국 5월은 갓 가정을 꾸린 30대 가장에게 너무 잔인한 달이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출산, 결혼식... 고물가 속 더 잔인해진 5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소속 회원들이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인근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MB정부 3년, 민생회복과 국정쇄신을 위한 경실련 기자회견'을 열어 구제역 사태와 물가폭등, 전세대란으로 힘들어진 서민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소속 회원들이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인근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MB정부 3년, 민생회복과 국정쇄신을 위한 경실련 기자회견'을 열어 구제역 사태와 물가폭등, 전세대란으로 힘들어진 서민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유성호

계속해서 이어지는 행사들로 정신 차리기 어려운 5월. 그러나 올해 5월이 더 두려운 까닭은 이번 5월 말에 아내가 둘째를 출산하기 때문이었다. 비록 지금까지 뱃속의 아이가 주수에 맞게 아무 탈 없이 자라고 있고, 첫째와 비교하면 이미 한 번 경험을 한 터라 들어가는 비용 역시 적은 것이 사실이지만, 어쨌든 새 생명의 탄생은 그만큼의 지출을 발생시키고 있었다.

우선 크게는 아내의 출산, 산후조리와 관련해 조산원 출산 비용 40만 원, 신생아 검사 비용 회당 10만 원, 산후도우미 3주에 130만~140만 원 등이 필요했다. 더불어 신생아에게 적합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다시 여러 가지 물품들을 구매해야 했는데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지출이 발생하기도 했다. 유모차와 옷 등이 그 대표적인 예였다. 첫째와 둘째의 터울이 채 24개월이 안 되는지라 아내는 두 아이를 한꺼번에 태울 수 있는 유모차가 필요했다. 가격을 알아보니 50만~60만 원 정도. 또 둘째와 첫째의 탄생 계절이 다르다 보니 당장 옷을 구하더라도 물려 입히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러니 또 다시 구매할 수밖에. 친환경 기저귀 비용도 만만치 않았는데 여기에 한 달 50만 원 가량이 필요했다.

어디 그 뿐인가. 일본 후쿠시마 원전에서 야기된 방사선 오염과 구제역, 그리고 최근 불거진 매일유업의 포르말린 사료 우유 파동 등은 어린 아이를 키우고 있는 가계의 식비를 배 이상 증가시켰다. 먹을거리의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서는 좀 더 안전하다고 믿을 수 있는 비싼 식품을 사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유를 먹일 때 비록 50% 이상 비싸더라도 아이를 위해서라면 그 정도 지불은 아끼지 않는 것이 부모심정 아니겠는가.

하필 5월 들어 발생한 새로운 비용들. 그러나 정작 이것들을 두드러지게 만드는 것은 결국 연초부터 고공행진을 벌이고 있는 물가였다. 고깃값부터 꽃값까지 오르지 않은 게 없으니 안 그래도 소비가 많은 5월이 물가대란을 만나 소비자에게 더 큰 부담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좀처럼 떨어질지 모르는 물가와 이젠 거의 손을 놓은 것 같아 보이는 무기력한 정부. 물가대란에 대한 대책으로 고작 '절약'을 읊조리는 대통령 앞에서 나의 이번 5월은 너무도 잔인할 뿐이었다. 더불어 말로만 복지국가의 완성을 떠들고 있는 현 정부 하에서 아이를 낳는다는 것이 정말 미친 짓 아닐까하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든다.

난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우리 올해에는 어머니 생신과 어버이날 한 번에 퉁 치자."
"그래도 돼? 그건 당신 총각 때나 하던 거 아냐? 그래도 결혼까지 해서 애도 있는데."
"그건 그렇지만 너무 힘들잖아. 게다가 내가 회사 옮긴다고 두 달을 쉬었는데 어찌 모든 기념일을 챙길 수 있겠나. 대신 같이 여행가서 재미있고 신나게 놀자. 부모님도 이런 사정 아시고, 손주 재롱 보시면 이해하실 거야."

우리 부부는 올해 5월에는 어머니의 생신과 어버이날을 한꺼번에 준비하기로 결정했다. 전혀 다른 성격의 기념일을 스리슬쩍 넘어가는 것 같아 송구하고, 어머니께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며 아버지께 어버이날을 맞아 고맙다고 말씀드리기 죄송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결국 지난 4월 30일과 5월 1일 우리 부부는 부모님을 모시고 인천의 어느 리조트로 1박 2일 여행을 다녀왔다. 아내는 시부모님과의 여행이 처음인 터라 조금은 긴장한 듯 보였지만 그래도 밤늦게까지 게임도 하고, 물놀이도 하며 꽤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만삭의 몸으로 어머님 생신상을 차린다며 그 전날 늦게까지 잡채를 준비하고, 생신 당일에는 일찍 일어나 미역국을 끓인 아내에게 고마울 뿐이었다.

아직 채 1/3도 지나지 않은 5월. 새로 들어간 회사의 직원들을 보니 5월에 결혼하는 이들도 꽤나 있는 것 같던데, 과연 나는 이 '마의 5월'을 잘 넘기고 우리 새로 태어나는 산들이를 만날 수 있을까? 부디 정부는 나와 같은 애처로운 30대 가장들을 위해 제발 물가 관리 좀 해주길 바란다. 그냥 절약하자고만 한다면 대통령 못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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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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