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시에는 영랑호 주변에 자리한 보광사라는 절이 있다. 이 절이 자리한 곳을 '불당골'이라고 부르는데,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금강산으로 공부를 하러가던 원효대사가 한참 머물렀던 곳이라고 한다. 아마도 적송 숲으로 쌓인 이곳이 공부를 하기에 좋은 장소였던 것 같다. 이 보광사 주변에는 많은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영랑호는 석호이며 자연호수이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신라의 화랑 영랑이 동료인 술랑, 안상, 남석 등과 금강산 수련 후 귀향길에 올랐다. 그런데 한 곳에 도달하니 명경같이 잔잔하고 맑은 호수에 붉게 물든 저녁노을이 눈앞에 펼쳐졌다. 한편으로는 설악산의 울산바위가 또 한편에는 웅크리고 앉은 범의 형상을 한 바위가 물 속에 잠겨있는 모습에, 그만 넋을 잃을 정도였다는 것이다.
화랑 영랑이 머물던 곳
영랑은 이곳을 떠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범바위 옆에 조그마한 암자를 짓고, 그곳에 머무르면서 공부를 하였다. 영랑호는 그 후 화랑들의 순례도장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영랑호주변에는 작은 동산이 하나 솟아있다. 현 보광사 뒤편으로 솟은 이 산 위에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영랑은 하루도 빠짐없이 이곳에 올랐다. 동으로는 동해가 바라다보이고, 북으로는 금강산이 보인다. 서쪽으로는 설악산과 울산바위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 아래로는 영랑호가 아름답게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 영랑은 관음보살을 친견했다고 한다. 그리고 육신을 벗어버리고 승천을 했다는 것이다.
관음보살을 친견한 관음바위
보광사를 뒤로하고 소나무 숲길로 들어섰다. 뒷짐을 지고 천천히 오르다가 보면, 하늘을 가린 소나무 숲의 향기가 코끝을 간질인다. 천천히 걸어도 10분이면 바위에 도착을 할 수가 있다. 지나는 길에 동해바다와 울산바위, 영랑호와 금강산이 주마등처럼 펼쳐진다. 그래서 이곳이 명당인 듯하다.
숲길을 걸어 바위가 있는 곳으로 오르다가 보면 '석문(石門)'이 나타난다. 커다란 바위에, 바위 하다가 기대듯 걸려있다. 그 밑으로는 사람 한 명이 빠져나갈만한 공간이 있어 석문이라 부른다. 석문을 지나면 관음바위의 위가 된다. 화랑 영랑이 스님이 되어, 날마다 관음보살을 기다렸다는 바위이다.
바위의 위편에는 길게 움푹 파인 곳이 있다. 이렇게 바위가 파인 것은 옛날에 임꺽정이가 이곳에서 소피를 보아 파였다고 한다. 그리고 보면 우리네 이야기들은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다. 동편으로는 동해가 한 눈에 바라다보이고, 좌측 편 바위 밑으로는 움푹진 곳이 있다. 이곳에는 부처님이 세 분 모셔져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자국만 남아있다.
음각한 '관음'은 명필 최홍희 장군의 글씨아마도 영랑스님은 이곳에서 관음보살을 친견하려고 날마다 이곳에 올랐을 것이다. 이 관음바위 동편으로는 깎아놓은 듯한 암벽이 서 있다. 높이 5m 정도의 암벽에 '관음(觀音)'이라 적었는데, 글씨의 깊이가 거의 10cm 정도나 된다. 글자의 크기는 지름이 약 80㎝ 정도이다. 그리고 오른편에는 1줄에 4자씩 2줄, 종서로 작은 글자가 새겨져 있다.
'세즉사바 구난대성(世卽娑婆 救難大聖)'이라 적었다. 세상은 괴로움이 많은 곳이니, 이를 구할 성인이 바로 관음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왼편에는 작은 글자가 종서로 '西歷 一九五二年 六月 日/ 李亨根 題 蒼軒 崔泓熙 書'라고 3줄로 새겨져 있다. 수복 직후 이 고장에 군정이 실시되고 있을 때, 제 1군단장 이형근 장군과 명필 최홍희 장군에 의해서 각자가 된 것이다.
화랑 영랑이 스님이 되어 관음보살을 친견했다는 관음바위. 4월 21일 아침에 관음바위 위에 올라 사방을 살펴본다. 동해와 설악, 금강산과 영랑호, 그리고 우거진 소나무 숲. 이런 명당이 또 있을까? 아마도 이런 곳이기에 관음보살이 현신한 것은 아니었을까? 바람소리를 따라 보광사의 예불소리가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