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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하고 늦게 출근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간 큰 직장인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정영훈 '직장인작은권리찾기(작은권리)' 대표가 "재보궐선거 지역 유권자에게 '2시간 이상의 유급휴가'를 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간이 크지 않은, 지극히 평범한 다수의 직장인들도 투표에 참여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오전 6시부터 오후 8시까지로 지정돼 있는 투표시간에 맞춰 투표장을 찾는 직장인은 매우 적다. 시간에 맞게 투표 하려면 '아침의 단잠 15분'을 포기해야 하고, 퇴근하자마자 달음질 쳐 투표장에 도달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약 조건에 지난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치러진 9번의 재보궐선거 평균 투표율은 32.4%에 그쳤다. 대부분 간 큰 행보 대신, 투표권 포기를 선택한 것이다.

온라인 기반 시민단체인 '작은권리'는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장기적인 개선책으로 "재보궐 선거의 해당 유권자인 직장인들에게 2시간 이상의 유급휴가를 주는 것을 법에 명문화하자"고 제안하고 나섰다. 또 단기적인 보완책으로 "행정안전부가 해당 유권자인 공무원들의 출근 시간을 1시간 늦추고, 기업들로 하여금 '근로자투표권보장기업'임을 선언하도록 지도하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작은권리' 측은 이 같은 제도 도입을 촉구하는 질의서를 지난 13일 선관위에 제출한 바 있다.

'2시간 유급휴가' 주장에는 법상의 '선거권'이 뒷받침된다. 정 대표는 15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근로기준법에 '사용자는 근로자가 근로시간 중에 선거권 행사를 위해 필요한 시간을 청구하면 거부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공직선거법 역시 '다른 사람에게 고용된 자가 투표하기 위한 시간은 보장돼야 하며 이를 휴무 또는 휴업으로 보지 아니한다'고 명시되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러나 이러한 권리를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노동자가 얼마나 될지 의문스럽다"고 꼬집었다. 법상의 권리로만 남아 있는 선거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게 선관위와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현재 같은 추세라면 10%의 득표만으로도 지역구 국회의원이 당선될 텐데, 이렇게 되면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는 생화가 아닌 가짜 꽃인 셈"이라며 "투표율이 적어도 50%는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차' 내가며 투표 독려에 나선 시민들

 13일, 정영훈 '직장인작은권리찾기' 대표(왼쪽)가 중앙선관위를 찾아 유급휴가제 도입 촉구 질의서를 제출했다.
 13일, 정영훈 '직장인작은권리찾기' 대표(왼쪽)가 중앙선관위를 찾아 유급휴가제 도입 촉구 질의서를 제출했다.
ⓒ 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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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 같은 활동에 나선 '작은권리' 모임은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매개는 트위터였다. 트위터 친구로 이야기를 나누던 20여 명의 사람들이 "실생활에서는 작지만 소중한 문제들이 간과되는데 이를 적극적으로 이슈화 시켜보자"며 의기투합한 것이다. 대기업 임원이면서 변호사인 정영훈씨가 얼결에 대표를 맡았다.

그는 "의미 있는 활동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재보궐 선거가 떠올랐다"며 "직장인들의 투표권 보장 문제를 사회적 관심사로 불러일으키지 않으면 또 다시 유야무야 넘어갈 것 같아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며 모임 발동의 배경을 설명했다.

선거를 '생화'로 만들기 위해, 작은권리 회원 4명은 15일 오전 분당의 IT 기업들을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기업에서 먼저 '직장인 투표권 보장기업'임을 선언해 유권자가 마음 편하게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다. 직접 방문하기 힘든 4·27 재보궐 선거 지역의 대기업과 중소기업에는 온라인으로 협조문을 돌렸다. 반차를 내면서까지 벌인 적극적 시민참여 활동이다.

이들의 투표참여 활동은 선거관리위원회의 활동과 대비돼 더욱 주목받고 있다. 최근 선관위는 부재자 신고를 독려하는 배너광고 삭제를 지시했고, 지난 12일 방송된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 라디오 연설문도 일부 손댔다. 백만민란의 투표독려 활동도 막아선 바 있다.

"'민주주의 꽃 선거' 명함에 명시하고 그 역할 못해"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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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두고 정 대표는 "선관위 직원들은 명함에
'민주주의 꽃, 선거'라고 박아놓고선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며 "선관위는 '선거방해위원회'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러한 선관위를 향한 누리꾼들의 반응도 싸늘하다. 트위터에는 "대단한 MB선거 간섭 위원회"(@hangulo), "인권유린하는 인권위나, 투표방해하는 선관위나 쌤쌤"(@gumdol2)이라는 비판이 줄 잇고 있다.

반면, '작은권리'를 향해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작은권리 홈페이지에는 수십개의 댓글이 달렸고, 직접 '직장인투표권보장기업'에 참여하겠다는 누리꾼도 등장했다.

누리꾼 '허니'는 작은권리 블로그에 "옥토농산(주) 대표입니다, 직장인투표권보장기업을 선언합니다"라며 동참 의사를 밝혔다. '고독한 탐색가' 역시 "이런 좋은 운동에 동참할 수 있어서 고맙습니다, 인터메디북 대표입니다 힘내세요 화이팅"이라며 응원의 글을 남겼다.

누리꾼 '꿈사랑'도 "대박 아이디어입니다~! 각자의 권리를 찾기 위한 소중한 개선의 의지가 힘을 합할 때 그 의미가 더욱 커질 거라 믿습니다"라고 글을 남겼다. 조국 서울대 교수도 자신의 트위터에 "<직장인작은권리찾기> '재보궐선거 때 직장인 2시간 유급휴가 줘야' 옳소!!!"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현재 추세라면 10% 득표만으로도 국회의원 당선"
[인터뷰] 정영훈 직장인작은권리찾기 대표
 15일, 분당 KT 앞을 찾은 정영훈 대표가 시민들에게 '투표 독려 호소문'을 나눠주고 있다.
 15일, 분당 KT 앞을 찾은 정영훈 대표가 시민들에게 '투표 독려 호소문'을 나눠주고 있다.
ⓒ 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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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장인작은권리찾기, 몇 명이나 함께 하나.
"오프라인에 모인 건 20여 명 정도 된다. 순수한 뜻에서 유권자 참여를 독려하는 건데 회원을 모집하게 되면 특정 세력으로 오해가 있을 것 같아 회원 수를 늘리는 것은 자제하고 있다."

- 모임은 어떤 취지로 언제, 만들어지게 됐나.
"언론에서는 큰 이슈들만 얘기되는데 실생활에서는 소중하고 작은 것들이 문제가 많이 된다. 특히 직장인들은 그들의 작은 권리 제대로 못 찾고 있다. 이를 개선하는 문제를 적극적으로 이슈화시켜보자고 모였다. 트위터에서 얘기를 나누던 몇몇이 모임을 갖게 된 건 3주 정도 됐고, 모임 자체를 정식으로 하자는 건 10여 일 됐다. 의미 있는 활동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재보궐 선거가 떠올랐다. 법에 보장된 직장인들의 투표권 보장 문제에 대해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으면 또다시 유야무야 넘어갈 것이라고 봤다. 때문에 정성을 들여서라도 선관위나 기업들에 강하게 문제 제기를 하자는데 구성원들의 동의가 이뤄졌다."

- 구체적으로 요구하는 바는 무엇인가.
"장기적인 개선책으로 재보궐 선거의 해당 유권자인 직장인들에게 2시간 이상의 유급휴가를 주는 것을 법에 명문화해야 한다. 단기적인 보완책으로는 행정안전부가 해당 유권자인 공무원들의 출근 시간을 1시간 늦추고, 기업들로 하여금 '근로자투표권보장기업'임을 선언하도록 지도하는 방법이 있다.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질의서를 13일 선관위에 제출했다."

- 직장인의 투표권, 어떤 점에서 침해되고 있다고 보나.
"근로기준법에는 '사용자는 근로자가 근로시간 중에 선거권 행사를 위해 필요한 시간을 청구하면 거부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직선거법 역시 '다른 사람에게 고용된 자가 투표하기 위한 시간은 보장돼야 하며 이를 휴무 또는 휴업으로 보지 아니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권리를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노동자가 얼마나 될지 의문스럽다. 지금처럼 사용자나 회사에게 명문 규정으로 의무부과하지 않은 상태에서 '투표 좀 하고 늦게 출발하겠습니다' 그런 간 큰 직장인이 얼마나 되겠나."

- 선관위에 질의서를 제출했는데 답변 받았나.
"조속하게 답변 준다고 했는데 아직 정식 답변은 없다. 선관위에서 직원과 2~30분 면담했는데 관계자 대답은 '취지는 공감한다' 정도였다. 계속 답변이 없으면 20일쯤 선관위에 재방문할 계획을 갖고 있다."

- 회사에도 협조문을 전달했다고 들었다.
"15일, 직장인 투표권 보장 협조문을 각 기업에 온라인으로 보냈다. 나와 회원 4명은 그날 오전에 반차를 내고 분당 지역 기업체에 찾아다니면서 직접 투표권 보장 협조문을 전달했다. 전국에서 선거가 이뤄지지만 거리상의 문제로 분당만 찾았다. 기업에서 동참하겠다는 확답을 받은 건 없다."

- 요즘 투표에 대한 관심이 많이 떨어졌는데, 안타깝게 생각하겠다.
"현재 같은 추세라면 10%의 득표만으로도 국회의원에 당선된다.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인가. 생화가 아니고 가짜 꽃, 조화다. 투표율이 적어도 50%는 돼야 한다. 이번에 법 개정이 안 되면 행안부에서라도 조처를 취해야 한다."

- 이처럼 시민들의 모임에서 투표 독려를 위해 나서는데, 요즘 선관위는 '선거 방해 위원회'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법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선거방해위원회라고 까지 얘기하는 건 좀 저어된다. 하지만 선관위 직원들은 명함에 '민주주의 꽃, 선거'라고 박아놓고선 그 역할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다. 선관위는 '선거방해위원회'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 향후 활동 계획은.
"법의 명문화가 이뤄진다 해도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기 때문에 우선은 기업들의 참여를 이끄는 활동을 하려고 한다. 트위터에 관심을 갖고 직장인과 소통하려는 대기업 회장들에게는 직접 트위터를 날려 참여를 요청할 생각이다. 또 경제 4단체를 직접 방문해서 소속 기업들에 투표권 보장을 촉구하게 해달라고 요청할 계획도 갖고 있다. 몇 개 기업이라도 참여해주면 참여를 부담스러워 하는 다른 기업들의 참가를 이끌 수 있을 것이라 본다."


#2시간 유급휴가#재보궐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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