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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 재판부가 배심원 전원의 만장일치 무죄 평결을 존중해 무죄를 선고한 것을 항소심 재판부가 새로운 증거도 없이 유죄로 뒤집은 것에 대해, 대법원이 "배심원 평결을 한층 더 존중해야지, 함부로 뒤집어서는 안 된다"며 잘못을 지적했다.

 

배심원 평결은 법관의 판단을 돕기 위한 권고적 효력을 갖지만, 이번 판결로 배심원들의 평결에 더욱 무게가 실릴 전망이다.

 

서울 마장동 축산물 유통업체 종업원인 A(48)씨는 지난 2009년 10월 냉장고 사용문제로 이웃 업체 직원과 다투다 이를 본 이웃 업체 K사장이 욕설을 하자 화가 나 축산물 해체작업에 이용하는 손도끼(30cm)를 휘둘러 전치 2주의 상처를 입힌 혐의로 기소됐다.

 

이에 검사는 A씨를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했고, 이 사건은 배심원 7명이 참여하는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다. 1심인 서울동부지법 제11형사부(재판장 정영훈 부장판사)는 2009년 12월 살인미수 혐의에 대한 배심원 전원의 만장일치 무죄 평결을 존중해 무죄로 판단하고,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흉기 등 상해)을 적용해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평소 피해자와 별다른 원한관계 없이 지내온 점, 피고인이 작업용 손도끼를 20년 이상 사용해 오면서 손도끼의 용법 등을 잘 알고 있어 살인의 고의로 손도끼를 휘둘렀다면 피해자가 경미한 상해를 입는데 그치지 않았을 것인 점, 목격자들의 진술이 엇갈리는 점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이 화가 난 나머지 피해자를 위협하려고 한 것에서 나아가, 살인의 고의를 갖고 피해자를 향해 손도끼를 내리쳤다고 보기 어렵다"며 살인미수에 대해 무죄로 판단했다.

 

그러자 검사는 "피고인이 범행 후 피해자가 도망치자 손도끼를 들고 쫓아갔던 점 등을 종합하면 살인의 범의가 충분히 인정됨에도 살인미수에 관해 무죄를 선고한 것은 위법하다"며 항소했고, 서울고법 제7형사부(재판장 김인욱 부장판사)는 지난해 4월 1심 판결을 뒤집고 살인미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A씨에게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손도끼를 휘둘렀음에도 치명상을 피한 것은 피해자가 본능적으로 공격을 피하기 위해 순간적으로 뒤로 물러났기 때문이며, 피고인이 손도끼를 휘두른 후에도 몇 백 미터를 손도끼를 들고 피해자를 추격했던 점, 설령 일부 목격자들의 증언과 같이 도끼날이 아닌 망치부분으로 공격했더라도 이 역시 매우 위험해 치명상을 입게 할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범행 당시 최소한 미필적으로나마 살해의 범의를 갖고 있었음을 인정할 수 있다"며 판단했다.

 

이어 "따라서 피고인에 대한 살인미수의 점은 유죄로 인정됨에도, 이와 달리 무죄를 선고한 원심은 사실을 오인하거나 살해의 범의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며 유죄를 인정했다.

 

"명백한 증거 없이 항소심이 배심원 판단 함부로 뒤집어서는 안 돼"

 

하지만 대법원은 이를 다시 뒤집었다. 대법원 제3부(주심 차한성 대법관)는 4일 살인미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A(48)씨에게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라"며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2010도4450)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먼저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과 신뢰를 높이기 위해 도입된 국민참여재판의 형식으로 진행된 형사공판절차에서 엄격한 선정절차를 거쳐 양식 있는 시민으로 구성된 배심원이 사실의 인정에 관해 재판부에 제시하는 집단적 의견은 실질적 직접심리주의 및 공판중심주의 아래에서 증거의 취사와 사실의 인정에 관한 전권을 가지는 사실심 법관의 판단을 돕기 위한 권고적 효력을 가진다"고 말했다.

 

이어 "배심원이 증인신문 등 사실심리의 전 과정에 함께 참여한 후 증인 진술의 신빙성 등 증거의 취사와 사실의 인정에 관해 만장일치 의견으로 내린 무죄 평결이 재판부의 심증에 부합해 그대로 채택된 경우의 1심 판단은, 형사소송법이 채택하고 있는 실질적 직접심리주의 및 공판중심주의의 취지와 정신에 비춰 항소심에서 새로운 증거조사를 통해 그에 명백히 반대되는 충분하고도 납득할 만한 사정이 나타나지 않는 한 함부로 뒤집어서는 안 되며, 한층 더 존중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또 "이 사건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 재판부가 배심원 7명 전원의 만장일치 평결을 받아들여 피고인이 살인의 범의를 갖고 있었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살인미수에 대해 무죄로 판단했는데, 원심은 새로운 증거조사도 없이 피고인이 최소한 미필적으로나마 살인의 범의를 갖고 있었음을 인정할 수 있다고 봐 1심 판결을 깨고 살인미수에 대해 유죄로 판단한 것은 증거재판주의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따라서 살인미수의 공소사실에 대한 1심 판단을 뒤집어 유죄라고 인정한 원심 판단은, 실질적 직접심리주의와 공판중심주의의 원칙 아래에서 국민참여재판의 형식으로 이루어진 형사공판절차를 통해 1심이 한 증거의 취사와 사실의 인정을 합리적 근거 없이 뒤집음으로써 공판중심주의와 실질적 직접심리주의의 원칙을 위반한 만큼,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케 하기 위해 원심법원으로 돌려보낸다"고 판시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배심원#평결#국민참여재판#공판중심주의#직접심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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