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e사람'은 우리 경제의 각 분야에서 독자들이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현장 노동자부터 학자, 관료, CEO, 사회단체 등 그 누구도 대상이 될수 있습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을 통해 누리꾼의 참여도 열려 있습니다. [편집자말]
 김태동 성균관대 교수.
김태동 성균관대 교수. ⓒ 유성호

지난 2월 14일 오후 7시께, 서울 성균관대 앞 조그마한 국수 포장마차. 60대로 보이는 할머니의 손이 여느때보다 바삐 움직인다. 기자가 "좀 바쁘셨나"고 물었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손님들이 계속해서 들어오셔서...어떻게 해야할지..."라며 말끝이 흐려졌다.

이 포장마차에 갑자기 사람들이 몰린 이유는 김태동 (64) 성균관대 교수의 트윗 때문이었다. 이틀전인 2월 12일 저녁, 김 교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인 트위터에 몇 차례에 걸쳐 글을 올렸다. "무바라크 사퇴 기념, 기분이 너무 좋아 제가 국수와 떡을 쏩니다"라고..

특히 이집트 시민혁명에 전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을때, 그는 밤새 외신 뉴스 등을 직접 챙기면서 트위터를 통해 실시간 중계를 했다. 작년 11월부터 시작해 만 4개월만에 그의 팔로워 숫자만 3월 6일 현재 8250명이다.

최근 몇 년 새 인터넷 포털사이트인 다음 아고라를 통해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실랄하게 비판해 온 그가  이번엔 트위터로 누리꾼들과 소통하고 있는 것이다. 내용도 경제 분야 뿐 아니라 정치, 미디어, 사회 등 다양하다.

지난 김대중 정부 첫 청와대 경제수석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등을 지낸 김 교수와의 만남은 무바라크 퇴진 기념 호프집부터 시작됐다.

- 요즘 트위터를 활발하게 하시는 것 같은데.
"아직 초보 수준이다. (학교가) 아직 방학중이라 조금 했는데… 개강하게 되면 지금처럼 할수 있을지 모르겠다."

- 전에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도 많은 글을 올리시던데, 트위터는 어떻게 알게 되셨나.
"(담담하게) 아고라도, 트위터도 모두 MB 독재정권 때문에 알게됐지."

"무바라크는 이집트의 MB...자음이 같고, 독재도 같고"

국수 모임에 이어 그와의 인터뷰는 지난달 28일 학교 연구실 등으로 이어졌다. 김 교수와의 만남은 최근 3년새 벌써 세번째다. 그의 암울했던 경제전망은 여지없이 그대로 현실이 됐고, 현 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그의 독설(毒舌)은 여전했다.

그는 꾸준히 현 정부에 대해 '독재'라는 표현을 써왔다. 김 교수는 "2008년 경제위기를 두고 미네르바 논쟁이 붙었을때, 아고라를 알고 참여하기 시작했다"면서 "트위터는 작년 전태일 열사 40주년때 우연한 자리를 통해서 알게됐다"고 말했다.

- '우연한 자리'라면 어떤 것을 두고?
"전태일 40주년 되는 날, 청계천 6가의 버들다리에서 아는 화가를 만나기로 했는데, 연락처를 몰랐다. 그분이 트위터를 한다고 해서, 그걸 통해 연락을 하게 됐다. 그때 그 다리가 전태일 다리로 함께 쓰인다고 하더라."

 김태동 성균관대 교수.
김태동 성균관대 교수. ⓒ 유성호
김 교수는 "트위터가 속보성이나 다른 사람의 의견 등을 빠르게 전파시키는 것에 큰 장점이 있는 것 같다"면서 "140자로 짧게 써야하는 것이 만만치 않지만, 기존 언론에선 볼수 없는 것들이 있어, 많이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짧은시간에 많은 팔로워가 모인 것 같다'고 하자, 웃으면서 "아직 멀었다. 내 기대치보다는 적으니까…"라고 답했다.
- 이집트 시민혁명 때, 거의 밤을 새면서 트윗을 하시던데. 피곤하지는 않으셨나.
"그쪽과 시차가 7시간이다. 무바라크 대통령의 사퇴성명이 나올 것이라는 예고가 있길래, 외신 뉴스를 통해서라도 보고 싶었다. 이집트 시각으로 밤 11시에 (사퇴)한다고 해서 보니까, 우리로는 아침 6시였다. 밤을 샐 수밖에 없었다."

- 그때 CNN 등 서방언론에서 '사퇴 예고' 보도를 했다가, 무바라크가 거부해서 혼란을 빚기도 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밤 새면서 봤는데, 처음에 (사퇴를) 안 한다고 하길래 허탈하더라. 다음날 상황이 또 바뀔 줄도 몰랐다. 결국 시민들의 단결된 힘이 승리하는 것을 보고 너무 기뻤다."

무바라크 퇴진 소식과 함께 그는 곧장 국수와 떡(일명 '무바라크 떡')을 대접하겠다고 트윗을 날렸다. 누리꾼들의 반응은 매우 뜨거웠다. 그는 "밤 11시 넘어서까지 많은 분들이 찾아 오셔서 놀랐다"면서 "집사람에게 야단을 맞기도 했지만, 마음 같아선 좀더 대접을 해드리고 싶었지만 예산 문제때문에…"라며 겸연쩍해 했다.

"2년 넘도록 제2환란 은폐해 온 나쁜 정부"

그가 중동문제에 관심을 갖게된 것은 지난 1976년 중동문제연구소에서 일했기 때문. 당시 전 세계가 1차 오일쇼크로 혼란에 빠져있을 때였다. 김 교수는 "당시 이집트 대통령이 사다트였는데, 이후 무바라크가 잡은 후 30년 넘게 독재를 이어가더라"면서 "석유의존도가 높은 우리 입장에선 중동 정세가 중요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서 무바라크 대통령을 줄곧 '이집트의 MB'라고 적었다. 그는 "내가 지어낸 것은 아니고, 다른 트윗 친구가 쓴 것을 빌려온 것일 뿐"이라며 "(무바라크의) 앞 자음을 영어로 옮기면 MB가 맞고, 독재정권도 같으니까…"라고 말했다.

이야기는 자연스레 현 정부에 대한 평가로 이어졌다. 마침 이명박 정부가 시작된 지도 3년이 됐다. 그는 이미 현 정부를 두고, 출범하기 전부터 "경제를 살리기보단 죽일 것"이라고 실랄하게 비판했었다.

- 얼마 전 다음 아고라에 '제2환란, 2년이상 은폐끝에 진상 드러나'라는 글을 올리셨는데.
"(물을 마시면서) 미국 재무부에서 공개한 국제경제환율보고서를 보고 쓴 것이다."

- 보고서에 '환란'이라는 표현이 나오는가.
"물론 '환란'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미국이 공개한 우리나라 외환시장 동향 수치를 보고, 내가 판단한 것이다."

- '환란'이라고 볼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경제학에선 (우리처럼) 변동환율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의 환율이 33% 이상 움직이게 되면, 외환위기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이같은 상황이 일어날 확률이 1%도 안되기 때문이다."

- 2008년 위기 당시 우리 환율이 33%이상 뛰었다?
"미국 보고서를 보면, 2008년 4.4분기 원화의 달러 환율이 45%나 폭등했다. 교역비중 등을 고려한 실질실효환율( real effective exchange rate)도 35%나 폭등한 것으로 돼 있다."

김 교수는 지난 2008년 말부터 '이미 제2의 외환위기'라고 해왔다. 그는 "2008년 초부터 정부는 고환율 정책을 펼치면서 시장에 개입해 왔다"면서 "리만사태가 터졌을 때는 환율 방어를 위해 막대한 양의 달러를 내다 팔아가면서 버텼지만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동안 (정부가) 어떻게 시장에 개입했는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면서 "이번 미 재무부 보고서를 통해 그 실상이 드러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말을 좀더 옮겨본다.

"2008년 7월부터 2009년 2월까지 8개월 동안 우리 외환보유액이 약 570억달러나 줄어든다. 9월 리먼사태가 일어나기 전부터 이미 달러가 줄어들고 있던 것이다. 이때부터 외환시장이 더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선물환(先物煥) 시장까지 달러 매도계약을 체결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외환위기 인정하면, 2012년 대선 패배가 뻔한데..."

 김태동 성균관대 교수.
김태동 성균관대 교수. ⓒ 유성호
- 한은에서 선물(先物) 외환시장까지 개입했다는 말인가.
"(끄덕이며) 선물환이라는 것은 쉽게 말해 외상거래와 비슷한 개념이다. 지금 당장 물건은 없지만, 미래 어떤 날에 그 값을 지불할 것을 약속하고 물건을 파는 것이다."

- 보고서에 구체적인 금액까지 나와있나.
"그렇다. 선물환 시장 개입 규모가 무려 310억 달러나 된다."

- 과거에도 그런 예가 있었나.
"(고개를 흔들며) 내 생각엔 없다. 아마 이 금액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왜 그랬을까. 그의 설명이 계속됐다.

"2008년 4분기 동안 570억 달러 외환을 탕진했는데도, 환율이 안 잡히니까 다급했던 것이다. 엄청난 외환을 풀고, 그것도 모자라서 선물환까지 손댔는데도 환율이 폭등했다. 제2의 외환위기였다. 아마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동안 외환보유액을 늘려놓지 않았다면 훨씬 더 나빠졌을 거다."

- 정부는 '외환위기'라는 단어 자체를 쓰지 않고 있는데.
"2008년 10월인가 이명박 대통령 스스로 당시 위기를 '전대미문의 위기'라고 할 정도였다. 말그대로 최악의 위기라는 것이다. 당시 리먼사태를 두고 한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지만, 우리 외환시장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 1997년 외환위기를 경험했던 정부 입장에서도,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끄덕이며) 낙인효과가 두려웠던 것이다. 김영삼 정부 때 IMF 구제금융 받은 것 때문에 여당이던 신한국당이 97년 대선 때 정권을 잃지 않았나."

그는 "10년만에 정권잡은 한나라당(옛 신한국당)이 또 IMF 구제금융을 받는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사망선고나 다름없는 것"이라며 "결국 다음 대선 패배가 뻔한데, 외환위기를 인정하고 싶었겠는가"라고 되물었다.

실제 2008년 말 당시 한국은 민간부문에서 외화자금 조달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자, IMF가 한국 정부에 자금 제공 의사를 전달하기도 했다. 물론 우리 정부는 거부했고, 미국 중앙은행 등과 통화스왑(나라간 통화를 담보로 상대방 국가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 협정을 체결했다.

그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IMF에게서 돈을 꾼 것이나, 미국에게서 돈을 빌린 것이나, 둘다 수치스러운 것은 같다. IMF의 낙인효과가 더 한 것 같지만, 국제기구로부터 돈을 꾼 것보다 미국이라는 개별국가들에게서 돈을 빌리는 것이 더 수치스러운 일 아닌가? 중요한 건, IMF든 통화 스왑이든, 당시 우리는 분명 외환위기 상황이었다는 사실이다."

"물가폭등 등 현 위기, 윤증현-최중경-김석동 작품"

그와의 인터뷰 시간이 1시간 30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내년이면 정년이라는 그의 학교 연구실에는 수많은 책과 논문 등이 쌓여 있었다. 한때 청와대 경제수석과 중앙은행 금통위원 등을 지냈던 그는 이명박 정부의 3년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 어떤 신문의 여론조사를 보니, '절반이상 국민의 살림살이가 나빠졌다고' 하던데.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절반? 아마 80% 이상은 나빠졌다고 느낄 것이다. 현 정부들어 국민들의 실질 임금은 계속 줄고 있다. 아마 OECD 국가 가운데 최악일 것이다."

- 물가폭등에 전세난, 구제역까지 농촌, 도시 가릴것 없이 어수선하긴 하다.
"(곧바로) 예상했던 일 아닌가. 과거 1차 외환위기 정책실패자들이 장관으로 들어와 앉을때부터… 고환율정책으로 대기업 배만 불리고, 키코사태로 선량한 중소기업들 쓰러진 곳이 몇 군데인가."

 김태동 성균관대 교수.
김태동 성균관대 교수. ⓒ 유성호
기자가 질문을 이어가기도 전에 그의 대답은 계속됐다.
"소수 재벌, 수출대기업 위주 정책을 써온 것 아닌가? 저금리 정책으로 서민들은 빚내서 버티고, 부동산 규제는 다 풀어놓고 거품은 유지하면서 땅부자와 재벌 건설업체들만 돈 번다. 하청 업체나 건설노동자들은 월급도 제대로 못 받고… 청년 실업은 말 할 것도 없고, 전체 평균 고용율(40.7%)도 참여정부 때(47.9%)보다 훨씬 더 떨어져 있지 않나."

김 교수는 "이같은 저질 경제사회를 만드는데 3년이 걸렸다"면서 "'잃어버린 3년'을 만드는데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 이외 윤증현 현 재정부장관, 최중경 지식경제부장관,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크게 기여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두고 다음 아고라에 "조중동이 아닌 윤중동을 아십니까"라는 글을 쓰기도 했다.

- (웃으면서)올초 아고라에 쓰셨던 '윤중동'이란 말이 귀에 쏙 들어온다.
"현 정부의 내각 인사에 말들이 많았지만, 특히 경제쪽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만수, 윤증현, 최중경 장관 등 모두  이미 1997년 외환위기의 핵심 책임자들이다. 김중수 현 한은총재도 마찬가지다."

- 현 정부에 화려하게 복귀해서 고환율 정책 실패로 물러났다가 다시 복귀하고.
"(고개를 흔들면서) 고환율 정책 실패로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지금까지 고통받고 있는가. 물가폭등에 전세난, 저축은행 부실사태까지 이들이 그 한복판에 서 있다. 어찌보면 현 서민 경제위기가 바로 이들 작품이다."

올해 나이 64세. "공정과 투명성, 개혁"이라는 그의 코드는 변함이 없었다. 대신 지상파 방송사 라디오 진행자부터 학교 강의실, 인터넷에 이어 모바일 공간에 이르기까지 그의 소통 도구와 방식은 날로 진화하고 있다. 


#김태동#제2 외환위기#강만수#윤증현#최중경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