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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스민 혁명으로 23년 독재정권을 무너뜨렸지만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무작정 이탈리아로 향하는 튀니지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이탈리아 외무부는 일요일인 지난 13일 하루에만 1천 명의 튀니지인들이 이탈리아의 작은 섬 람페두사에 도착했다고 밝혔다. 인구 5천 명의 람페두사는 이탈리아의 시실리에서 서남쪽으로 약 380km 떨어져 이탈리아 본토보다 튀니지 해안에 더 가까이 위치해 있다. 지난 한 주에만 약 3천 명의 튀니지인들이 이 섬에 도착했는데 일요일에 1천여 명이 더해져 튀니지 이주민 수는 4천여 명에 달하게 됐다.

 

튀니지를 떠나는 사람들은 작은 배로 이탈리아로 향하고 있으며 튀니지 국영방송은 지난 주 튀니지 해안에서 배 한 척이 뒤집혀 한 명의 사망자와 실종자가 발생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수용시설 부족으로 람페두사 당국은 튀니지 이주민들을 축구장에 수용하고 있으며 수백 명은 여전히 항구에서 밤을 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호텔과 교회들도 이들을 수용하고 있지만 급증한 숫자를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설이다.  

 

튀니지 이주민들의 급증으로 이 작은 섬은 람페두사 시장의 말대로 "통제불능한 상황"에 직면했고 이탈리아 정부는 "인도적 긴급사태"를 선포했다. 또한 유럽연합에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불법 이주를 차단하기 위해 튀니지 해안을 순찰할 경비대를 지원해줄 것을 요청했다.

 

계속되는 경찰과 시민의 충돌...혼란한 상황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북아프리카에서 몰려드는 불법 이주자들 때문에 골치를 썩였던 이탈리아는 튀니지와 이집트를 비롯한 아랍 국가들의 정국 불안으로 다시 이주자들이 몰려들 것을 우려하고 있다. 상황의 조기 통제 필요성을 느낀 이탈리아는 정국 불안과 경찰 기능 마비로 출국 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튀니지의 국내 상황을 고려해 튀니지에 이탈리아 경찰을 파견해 상황을 통제하도록 허락해 줄 것을 튀니지 정부에 요청했다.

 

자존심을 건드리는 다소 황당한 제안을 받은 튀니지 정부는 "수용할 수 없는" 일이라며 이탈리아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부했다. 그러나 내각 차원에서 대응책을 논의하겠다고 덧붙였다. 유럽연합 또한 외무장관을 보내 튀니지 정부와 대책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독재정권이 막을 내렸지만 튀니지 정국은 여전히 불안한 상황이다. 외신들은 23년을 집권했던 벤 알리 대통령 축출 이후 거리에서는 경찰과 시민들의 충돌이 계속되고 있으며 많은 경찰관들이 업무를 그만뒀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에 따라 튀니지는 법적 통제가 이뤄지지 않는 혼란 상황에 빠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엔난민국은 람페두사에 도착한 사람들 중에는 정치적 망명을 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무작정 배를 타고 튀니지를 탈출한 사람들이라고 밝혔다.

 

경찰 조사에 응하기 위해 람페두사의 스포츠 센터 담 뒤에서 기다리던 튀니지 젊은이는 한 이탈리아 뉴스 채널과의 인터뷰에서 재스민 혁명 이후 튀니지 상황은 사실상 변한 것이 없으며 따라서 떠날 결심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단지 이탈리아나 다른 유럽 국가에서 일할 기회를 얻는 것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바라는 것은 단 한 가지, 바로 도움이다."

 

독재는 끝났지만, 불확실한 튀니지는 이제 시작

 

 

재스민 혁명은 아랍 민주화에 불을 지폈고 전 세계에 21세기에도 시민혁명이 성공할 수 있다는 소중한 교훈을 안겨주었다. 튀니지 시민저항에 힘을 얻어 이집트 국민들은 30년 독재를 종식시켰다.

 

그러나 성공한 시민혁명과 독재 청산이 자동적으로 민주주의와 장밋빛 미래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아르헨티나, 페루 등 독재자를 쫓아낸 세계 많은 나라들의 역사에서 알 수 있다. 극심한 부패, 실업, 양극화, 가난 때문에 촉발된 시민혁명이었지만 성공한 혁명이 당장 가난과 실업을 해결해 주지도 않는다. 가난한 사람의 삶은 여전히 힘들고 부자의 삶은 예전처럼 편안하다.

 

재스민 혁명 후 황급히 튀니지를 떠나는 사람들은, 독재는 끝났지만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 위한 지난한 과정이 시작됐다는 것을 먼저 알아챈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이들은 불안한 작은 배에 올라 타 불법 이주라는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이탈리아로, 그리고 유럽으로 가는 것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확실한 튀니지 상황을 감내하는 것보다 나은 선택이라는 결론을 내린 사람들일 것이다.

 

어쨌든 튀니지를 떠나는 사람들은 소수일 뿐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아서 변화의 바람을 온 몸을 맞고 있다. 물론 그들 중에는 형편이 되지 않아 마지못해 남아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연유야 어찌됐든 재스민 혁명으로 인한 독재청산이 진정한 민주주의와 정의로운 사회 건설로 이어질 수 있는지의 여부는 결국 남은 사람들의 인내와 노력에 달려 있다.


#튀니지#아랍 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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