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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적으로 가장 두려웠던 점은 내 스스로 모든 것을 검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메일이며 전화통화까지도. 집에도 도청장치가 돼 있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불안감이 밀려왔다…. 검찰의 증거자료를 보고 놀랐다. 나와 관련된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온라인에 글을 올리는 일도, 공적인 자리에서 말할 때도 그들이 보고 있고 감시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내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고무찬양 등)로 불구속 기소되었다가 3년간 재판 끝에 무죄를 선고 받은 간디학교 최보경(37·역사)교사는 "자기검열이 가장 두려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자기검열은 자기를 파괴할 가능성이 높다. 국가보안법은 유무죄를 떠나, 인간 개인 본성을 철저하게 파괴시켜버리는 불행한 일로 나아갈 수 있다"며 "이 점이 국가보안법이 가진 가장 위험한 부분이고, 폐지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 교사는 "수업할 때마다 이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진실이고 사실인데도 말을 못하고 주저하는 게 분명히 있었다"면서 "주저하다 끝내 말을 못하고, 아이들과 나누지 못하고 수업이 끝나고 나면 허탈했다"고 털어놓았다.

 

경찰은 2008년 2월 최보경 교사의 집과 간디학교 교무실을 압수수색했고, 검찰은 그해 8월 최 교사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최 교사가 만든 학습교재 <역사 배움책> 내용과 한국진보연대·경남진보연합·전교조 등의 자료를 전송하고 컴퓨터에 저장한 행위, 집에서 나온 <조국통일 3대 헌장> 자료 등 총 10가지 항목에 대해 문제 삼았다.

 

그러나 지난 1일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 형사2단독 박재철 판사는 "모든 증거를 종합해 보면 이적행위를 할 목적으로 책자나 자료를 만들거나 소지했다고 보기 어렵고, 검찰의 자료를 볼 때 범죄를 증명할 수 없다"면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간디학교 학생들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며 거의 매일 '릴레이 단식'을 벌였고, 진주에서 한 달에 한 차례씩(방학 제외) 촛불문화제를 열어왔다. 또 학생들은 시민 1만명 이상의 탄원서를 받아 재판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검찰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할 것으로 보인다. 최보경 교사는 "한국 사회의 표현의 자유가 더 확산됐으면 좋겠다"면서 "과거 획일화된 사회에서 보다 다원화된 사회로 나아갔으면 좋겠고, 그런 바람으로 항소심 준비를 할 것"이라고 의지를 밝혔다.

 

"힘든 일 많았지만 의연하려고 노력했다"

 

무죄라는 가장 값진 '설날 선물'을 받은 최보경 교사와 지난 5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 소감은?

"우선 기뻤다. 2008년부터 시작되었으니 재판하는데 3년, 아니 햇수로 치면 4년이다. 나도 인간이다. 힘든 일이 많았다. 그러나 의연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단순히 나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나누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다. 누구에게라도 닥칠 수 있는 문제다. 사회 전체의 문제로 풀어나가기 위해, 개인적으로 힘들더라도 참으면서 이겨내려고 노력했다. 결과가 무죄로 나와서 기쁘다."

 

- 가족들도 힘들었을 같다.

"기쁘다는 말보다 다행이라는 반응이었다. 집사람은 평소에 내색을 잘 안했는데, 선고하던 날 눈물을 흘리는 광경을 보고 그동안 많이 힘들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초등학교 3학년과 2학년으로 올라가는 두 딸이 있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 사건이 터졌다. 선고 뒤에 외할머니한테 휴대전화 문자로 결과를 알려준 모양이다. 친가는 울산에 사시는데, 그동안 걱정하실 거 같아 말씀을 많이 드리지 않았다. 그런데 부모님들은 다 알고 계셨더라. 다행이라고 말씀하시더라."

 

- 그동안 가장 힘들었던 점은.

"내 스스로 모든 것을 검열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메일이며 전화통화까지. 집에도 도청장치가 돼 있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불안감 같은 게 밀려왔다. 행동 하나가 누군가로부터 감시를 당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주눅이 들어 있는 내 자신을 보고 더 힘들었다. 또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주변 관심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을 보면서 섭섭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느끼는 내 모습에 대한 불만도 컸다."

 

- 간디학교 학생들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며 릴레이 단식을 했다.

"밥을 굶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힘들었다. 제자들이 단식도 하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탄원서도 받고, 촛불문화제도 열었다. 아이들은 단식을 한 뒤 비망록에 글을 적으면서 웃기도 했지만,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이 교사인 나로서는 무척 힘들었다. 나 때문에 아이들이 밥을 굶는다는 생각에 참을 수가 없었다. 국가보안법이라는 악법 때문에 아이들이 굶어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무죄 선고로 아이들은 더 이상 굶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기뻤다."

 

-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하며 대응했는데.

"결과적으로 따져보면, 가장 큰 원동력은 많은 사람과 단체들이 연대했다는 점이다. 나를 개인적으로 알든, 모르든 간에 국가보안법이라는 성격을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라면 같이 했다고 본다. 사실 처음에 국가보안법에 굴하지 않고 싸워야겠다는 생각을 더 강하게 가졌던 것은 연대 때문이다. 그것이 결국 무죄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고맙다. 앞으로 그 분들과 함께 하는 인생이 되도록 하겠다."

 

- 이번 판결에 대해 제자들은 어떤 반응이었나?

"처음 사건이 제기됐던 2008년 2월에 1학년이었던 제자들은 작년 2월에 졸업했다. 사건이 터지고 나서 입학했던 제자들은 이번에 졸업한다. 선고한 뒤 전화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가 수없이 많이 왔다. 전화를 제대로 받지 못할 정도였다. 문자 메시지는 일일이 답장을 못해 주고, 며칠째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힘을 준 전교조 선생님과 간디학교 제자와 선생님, 학부모, 그리고 전국역사교사모임에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모두 고생이 많았다."

 

"검찰측 주장 뒷받침 위해 감정했던 사람에 대해서는..."

 

- 검찰측 주장을 뒷받침한 게 보수단체나 인사들의 감정이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개인적으로 그 분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한국 사회에서 그 분들처럼, 보수적이거나 조금은 극우적인 시각에서 제가 쓴 글이나 활동했던 단체에 대해 바라볼 때 그럴 수 있겠구나 하고 인정하지만, 그것이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분들도 자기 생각에 대한 표현의 자유는 존중받아야 한다. 그것을 통해 누구를 공격하거나, 국가보안법을 적용해서 자기 생각과 다르기에 같은 시대를 살 수 없고, 격리 내지 사회 매장을 시켜야 한다는 인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 분들도 전향적으로, 미래지향적인 생각을 해주었으면 한다. 보다 다양한 관점의 사고들이 공존할 수 있도록 그 분들도 노력해 주었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그 분들을 원망하지는 않는다."

 

-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가 되었지만, 학교에 근무하는 데는 지장이 없었는데.

"간디학교는 대안학교다. 사회적 '구조악'이나 잘못된 모순을 바로 잡아보자는 취지로 설립된 학교다. 학생이나 학부모, 교사들이 행복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 만든 학교다. 그런 취지를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국가보안법 사건이 터진 것이다. 학생이나 학부모, 교사들은 개인적으로 온도 차이는 있지만,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함께 해주었다. 다른 일반 학교였다면 징계를 받았을지 모르고, 학교를 떠나서 재판을 받았을지 모르지만, 간디학교를 그렇게 하지 않았다."

 

- 선고 이전에 '무죄'를 받을 것이라 생각했는지?

"무죄는 너무나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판결은 내가 하는 게 아니고 판사가 하는 것이기에, 마지막 순간까지 어떻게 될지 몰라 마음을 졸였다. 그래서 선고 뒤 기자회견 때 입장을 밝히기 위해 회견문을 유죄가 나올 것에도 대비해서 두 가지 써 놓았다. 판결 그 자체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왔다고 본다."

 

- 국가보안법 위반이 왜 본인에게 적용됐다고 생각하나?

"나를 기소했던 검찰이나 공안당국이 정확히 밝혀야 할 부분이다. 하필이면 왜 나일까. 사건 발생 시작부터 지금까지 의문이다. 다르게 생각하면, 국가보안법은 누구나 해당된다는 말이 된다. 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 살고 있었을 뿐인데, 갑자기 그 법이 내 목을 조를 줄을 생각 못했다. 개인적인 추론을 해보면, 한국진보연대, 경남진보연합, 전교조 등 사회적으로 비판의식을 갖고 있는 단체에 소속되어 활동해 왔다. 그 단체들은 정권이나 권력의 입장에서 보면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또한 아이들과 역사교육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해왔는데, 저는 너무나 상식적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위험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경찰과 검찰에서 수사를 받고, 재판과정을 거치면서, 그들은 70년대 군사독재시절의 역사 인식을 그대로 갖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들에게 그런 역사의식이 무너진다면 자신들의 권력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것이라는 인식을 하는 것 같다. 그런 인식 속에서 나를 지목했던 것 같다. 결국에는 최보경 개인을 넘어, 권력과 정권은 사회 비판세력에 대해 족쇄를 채우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내 활동은 변함이 없다, 항소심 재판도 준비할 것"

 

- 검찰은 항소할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항소할 거다.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의연하게 항소심을 준비할 것이다. 1심 변론을 맡았던 이석태 변호사도 계속해서 변론을 해주시기로 했다. 지금까지 내가 했던 활동을 변함없이 할 것이고, 항소심 재판 준비도 할 것이다."

 

- 이석태 변호사 혼자 1심 변론을 맡았다.

"2000년 경남도교육청이 간디학교에 대해 해산명령을 내려 논란을 빚었던 적이 있었다. 그 때 이석태 변호사가 변론을 해주셨다. 그 때 내가 대책위 집행위원장이었다. 이 변호사는 교육에 관심이 많고, 사회민주화에도 관심이 많다. 그 분의 딸이 간디학교를 다녔고, 지금은 대학생이 되었다. 그런 과정에서 내 사건이 터져, 처음에는 자문을 구하기 위해 연락을 했던 것인데 진주까지 와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이 변호사님이 흔쾌히 변론을 맡아주셨다."

 

- 아까 말했던 '자기검열'에 대해 더 설명한다면.

"사실 분단된 현실 속에서 역사교육이나 민주화, 통일을 위해 나름대로 활동을 해온 것은 신념 때문이었다. 그런 신념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국가보안법과 정면으로 부닥친 것이다. 검찰의 증거자료를 보고 놀랐다. 제가 간디학교에 온 지 10년 넘는 기간 동안 사적인 부분까지 많이 보고와 정리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굉장히 두려웠다.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것을 보고 인간적으로 위축되지 않았다고 할 수 없다. 온라인에 글을 올리는 일도, 공적인 자리에서 말할 때도 그들이 보고 있고 감시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내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수많은 국가보안법 사건을 지켜보았다. 다른 사람의 경우 자기검열로 인한 '자기 파괴' 뿐 아니라 가정 파탄이 일어나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과 관계가 단절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것을 경계하면서 3년 동안 싸워왔다. 자기검열 과정은 자기 스스로 극복하지 못하면 자기를 파괴할 가능성이 높다. 국가보안법은 유무죄 판결을 떠나, 인간 개인 본성을 철저하게 파괴시켜버리는 불행한 일로 나아갈 수 있다. 이 점이 국가보안법이 가진 가장 위험한 부분이고, 폐지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 국가보안법 기소 전후 수업 내용이 혹시 달라졌나?

"검찰에서 걸고 넘어진 것 가운데 가장 많은 부분이 학교 수업과 관련이 있었다. 수업을 할 때마다 이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진실이고 사실인데도 말을 못하고 주저하는 게 분명히 있었다. 주저하다 끝내 말을 못하고, 아이들과 나누지 못하고 수업이 끝나고 나면 허탈했다. 내가 왜 이럴까 하는 생각 때문에 고통스러웠다. 어떤 아이들은 그런 제 모습을 보고 느낌을 받았던 모양이더라. 아이들이 오히려 나를 위로해 줄 때도 있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지속적으로 보도해주고 관심을 가져준 <오마이뉴스>와 독자여려분들께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가보안법의 실체가 좀 더 세상에 알려지고, 국가보안법이 한국사회가 나가야할 방향과 정면으로 어긋나는 법이라는 인식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권력이나 정치세력도 국가보안법을 통해서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한국 사회가 관점의 다양성, 내지 표현의 자유가 더 확산되기를 희망한다.과거 획일화된 사회에서 보다 다원화된 사회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그런 바람으로 항소심 준비를 할 것이다."


#국가보안법#간디학교#최보경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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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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