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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어렵게 실버천사 김성공 할아버지를 찾아 뵈었습니다.
오늘 어렵게 실버천사 김성공 할아버지를 찾아 뵈었습니다. ⓒ 신광태

 

지난 며칠, 몇십 년 만의 혹한이라는 일기예보에 김성공 할아버지를 한번 찾아뵈어야지 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다가 오늘에야 길을 나섰습니다. 설 명절이 다가온다는 조급함 때문이었습니다.

 

의식주가 시급한 분이라 쌀을 사가지고 갈까 하다가 화천에서 별미로 꼽히는 산천어 쌀 국수로 결정했습니다. 인스턴트식품이지만 더운물만 부으면 쉽게 드실 수 있고 할아버지께서 아직 한번도 못 드셔 보셨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할아버지께서 한번도 못드셔 보셨을것 같아 설날 선물로 화천의 명물 산천어 쌀국수를 드렸습니다.
할아버지께서 한번도 못드셔 보셨을것 같아 설날 선물로 화천의 명물 산천어 쌀국수를 드렸습니다. ⓒ 신광태

이외수 선생님이 사는 다목리 감성마을 입구 외딴 마을에 사는 할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지난주에 내린 눈이 하얗게 쌓인 첩첩산중 도로를 따라 달리기를 40여 분. 도로 옆, 할아버지집 앞에 차를 세우고, 다목리 수피령로 1256번지라고 적힌 할아버지 집 문을 두드렸습니다. 집 이래봐야 5.4평(3m× 6m)짜리 콘테이너 박스에 추위를 막기 위해 주변에 스티로폼을 붙인 정도입니다.

 

 이 5.4평 규모의 콘테이너박스가 할아버지의 집입니다.
이 5.4평 규모의 콘테이너박스가 할아버지의 집입니다. ⓒ 신광태

 

"누구슈?" 

문을 열고 내다보시는 할아버지의 표정에서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보였습니다.

 

"저 기억하시겠어요? 왜 작년 6월에 할아버지가 장학금 내셨을 때 와서 사진도 찍고 신문에 내 드렸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반가움 반 원망 반의 표정을 보이십니다.

 

"내가 하지 말라고 했는데, 기자들이 찾아오고, 방송사에서 찾아오고  얼마나 귀찮았다고."

"할아버지! 좋은 일은 많이 알려야 다른 사람들이 할아버지한테 배우게 되는 거예요."

이 말에 그런데 왜 또 왔느냐는 눈치십니다.

 

"그냥 어떻게 사시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또 설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서 이거 가지고 왔습니다. 못 드셔 보셨죠? 그냥 뜨거운 물만 붓고 5분 정도 기다렸다가 드시면 돼요."

하면서 준비해온 '산천어 쌀 국수'를 드렸습니다.

 

실버천사 할아버지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저와 할아버지와의 인연은 이렇습니다.

 

지난해 6월 4일 화천군 상서면 사무소에 한쪽 다리를 절며 남루한 옷차림의 한 노인이 찾아와 커다란 밀가루자루에서 손때 묻은 돈을 풀어 놓으셨습니다. 다 세어보니 200만 원.

 

"이 돈을 못사는 애들 공부하는데 쓰게 해줘."

할아버지의 생활을 잘 아는 면사무소사회복지 담당은 "이 돈은 받은 것으로 할 테니까 넣어 두시라"고 만류했지만, 결국 할아버지의 고집을 꺾지 못했습니다.

 

면사무소를 나가시면서 할아버지는 "이 일을 소문 안 나게 해 주게나"라고 하셨지만, 담당자는 군청 홍보담당인 내게 이 사실을 알렸고, 기자들에게 내용이 전해져 김성공 할아버지는 '실버천사'라는 닉네임을 얻었습니다.

 

그러니 할아버지께서 나를 달갑지 않게 여기시는 것은 당연했지요. 웬만하면 들어오라고 하실 만도 할 텐데 끝까지 말씀이 없으십니다. 집안을 미처 치우시지 못하셨기에 손님을 들어오라는 말씀을 못하시는 것 같아 밖에서 이것저것 여쭙기로 했습니다.

 

할아버지의 주 수입원인 박스는 지난해와 같이 집 앞에 깔끔히 정리해 놓은 것 하며, 집 앞 눈도 치우고 청소도 깔끔하게 해 놓은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집앞에 가지런히 쌓아 놓은 이 박스가 할아버지의 주 수입원입니다.
집앞에 가지런히 쌓아 놓은 이 박스가 할아버지의 주 수입원입니다. ⓒ 신광태

외로운 독거노인 김 할아버지... 마음은 풍성

 

김성공 할아버지는 올해 80세로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젊었을 때 돌아가시고 슬하에 자녀도 없는 독거노인입니다. 자원봉사단체에서 일주일에 다섯 번 반찬을 지원해 주지만, 그것도 국과 김치 정도입니다. 다행히 생활보호대상자로 책정되어 지원받는 40여만 원으로 쌀도 사고 라면도 구입 하십니다. 그런데 엎친데 덮친격으로 7년 전에 얻은 당뇨로 한쪽 다리를 아예 못쓰게 되어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녀야 합니다.

 

할아버지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중고 4륜바이크를 구입해서 인근 군부대 PX와 상가 등지를 돌면서 박스를 주워오는데 하루 몇 천 원벌이밖에 되지 않습니다. 작년에 그렇게 번 돈을 모아 장학금을 낸 할아버지에게 오죽했으면 담당직원이 "이 돈으로 양복도 사 입으시고, 냉장고도 바꾸세요. 힘드시면 제가 사다 드릴게요" 했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할아버지는 주머니 깊숙한 곳에서 통장을 꺼내 보이며 "아직 30만 원이나 남아 있네. 이 돈이면 내 사는데 아무 걱정이 없다네"라고 하셨습니다. 당신은 비록 컨테이너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지만, 생활이 어려워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써 달라며 자신의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200만 원을 내놓고, 그마저 부끄러워 소문내지 말아 달라고 하시던 김 할아버지.

 

당시 나는 살아오면서 김할아버지와 같은 생각과 실천을 못한다는 것이 못내 부끄러웠습니다.

 

"설날이 며칠 남지 않았는데, 도움 같은 거 들어온 것 있어요?" 라고 묻고 할아버지 표정을 보고 괜한 질문을 했구나 하고 이내 후회했습니다. 할아버지는 내 심정을 알기라도 하신 양 말씀하셨습니다.

 

"상서면장이 쌀 한 포 보내왔어. 그리고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15사단 39연대장이 매년 명절만 되면 쌀을 보내줘서 정말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네."

 

"방을 잠깐만 둘러봐도 될까요?" 

"누추한데..."

할아버지의 말씀을 무시하고 출입문을 열었는데, 거실(?) 한쪽에 종이뭉치와 책들이 쌓여 있습니다.

"이건 젖으면 파지로 제 값을 못 받아. 그래서 들여놨지."

누추한 살림을 부끄럽게 여기셨던지 묻지도 않은 대답을 하십니다.

 

 신문지와 책들이 젖으면 제 값을 받지 못한다고 안에 들여 놓으셨습니다.
신문지와 책들이 젖으면 제 값을 받지 못한다고 안에 들여 놓으셨습니다. ⓒ 신광태

온기 없는 방안은 조금 전에 점심을 드셨는지 밥상이 그대로 놓여있습니다.

 

"왜 이렇게 방이 차요? 보일러를 꺼 놓으셨어요?" 

"기름값이 한달에 40만 원이나 나와. 또 낮에는 박스 주우러 밖에 나가야 하기 때문에 보일러를 일부러 꺼놓고 지내."

 

무얼 바라서 그러는 게 아니지만 옛날에는 평상시 까맣게 잊고 있던 사람들이 1년에 한번 명절에 찾아오더니 이제는 오지 않는다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들으면서 사람을 그리워하는 할아버지의 심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조금전에 점심을 드셨는지 냉방 한가운데 조그만 밥상이 보입니다.
조금전에 점심을 드셨는지 냉방 한가운데 조그만 밥상이 보입니다. ⓒ 신광태

 

명절이면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어 행복한, 그리고 찾아갈 곳이 있어서 기대에 부푼 사람들, 민족의 대이동을 TV를 통해 보시면서 올 명절에도 사람 사는 정을 또 얼마나 그리워하실까 하는 숙연한 마음으로 나서려는데,

 

"실은 내가 지금 통장에 한 50만 원 모은 게 있는데, 이것을 명절 때 못 먹고 못 입는 사람들을 위해 낼까 하는데"라는 말씀을 하셔서 털썩 주저앉아 울고 싶었습니다.

 

"제발! 할아버지 그 돈으로 방에 보일러 돌리시고, 라면 그만 드시고, 이불도 좀 따뜻한 걸로 사서 덮으세요"라고 말씀을 드리고는 콧등을 훔치며 돌아섰습니다.

 

 지난 추위에 수도가 얼어서 한방울씩 떨어지는 물을 받아 밥도 짓고 라면도 끓여 드시고...
지난 추위에 수도가 얼어서 한방울씩 떨어지는 물을 받아 밥도 짓고 라면도 끓여 드시고... ⓒ 신광태

#화천군#실버천사#김성공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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