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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자장면 >겉그림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자장면 >겉그림 ⓒ 최정애

"그림책은 글을 쓰는 사람보다 그림 그리는 사람이 훨씬 힘들 것 같아요."

"그림을 그리려면 작가가 쓴 글을 충분히 읽고 이해해야 한다는 화가님의 말씀에 그림을 더 자세히 보게 되었습니다."

"고학년이라 유치할 것 같아 그림책은 잘 안 봤는데 그림책의 가치를 발견했어요. 중학생인 언니에게도 보여줄 거예요."

 

지난 17일 우리고장 그림책 작가와의 만남을 가진 후 아이들이 던지는 말이다. 우리는 어떤 일에서나 계기가 중요하다는 말을 한다. 정말 그런 것 같다. 책을 통해서만 보던 작가를 직접 만나본 아이들은 대상에 대한 이해와 관심도가 높아지고 깊어졌다. 중국 작가 욍중추는 <디테일의 힘>이란 책에서 "디테일이 없는 개인이나 기업은 퇴출된다"며 Detail 즉 세밀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부모 없는 아이의 마음을 세밀하게 읽은 어느 자장면 집 주인장을 소개하려 한다. 이번 겨울방학 독서토론교실 아이들과의 만난 그림책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자장면>은 작가 장호씨가 그림을 그리고 <연탄길>로 유명한 소설가이자 동화작가인 이철환씨가 글을 썼다. 

 

<연탄길>을 읽으며 뼛속까지 파고든 작가의 감성에 놀랐다. 이 정도까지 생각의 범위가 넓어지려면 어느 정도의 내공이 필요할까? <연탄길>은 3권까지 나와 있는데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우리 이웃의 이야기기다.

 

1권에 '꽃 파는 할머니'라는 이야기가 있다. 키가 보통 사람에 비해 절반밖에 안 되는 할머니는 묘소 앞에 놓아둔 꽃들을 몰래 가져다 판다. 꽃 가게 딸 민혜는 그 할머니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아 아빠에게 "다른 사람이 묘소에 놓아 둔 꽃을 팔면 어떡해. 내가 관리소 아저씨께 가서 일러야지"라고 흥분한다.

 

그러자 아빠는 "얼마나 살기 힘들면 죽은 사람들 앞에 놓인 꽃을 주워다 팔겠니? "라고 한다. 겨울이라 묘소를 찾는 사람이 별로 없어 헛걸음을 치는 할머니가 안쓰러워 할머니가 자주 다니는 길목의 묘소에 꽃을 가져다 놓는 민혜 아버지. 분명 남이 묘소에 가져다 놓은 꽃을 가져다 피는 행위는 잘못이다. 특히 꽃집을 하는 입장에서는 그런 행동을 보면 용납이 잘 안 될 것이다. 꽃집 주인 민혜 아빠의 넉넉함이 압권이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자장면>을 소개하는데 '꽃집 할머니'이야기가 너무 장황했다. 이유가 있다. 기록적인 한파로 인정도 꽁꽁 얼어있는 이때 민혜 아빠를 연상시키는 아주머니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겨울 날 한 소녀(인혜)가 동생 둘을 데리고 자장면 집에 들어선다. 인혜는 자장면 두 그릇을 시킨다. 동생들은 "왜 두 그릇이야. 누나는 배 아파 못 먹어"라고 묻자 인혜는 남동생의 손을 꼭 잡아준다. 부모와 같이 온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우리도 엄마, 아빠랑 같이 오면 좋겠다"라고 부러워한다.

 

주인아주머니는 금방 이 오누이의 사정을 알아차리고 "혹시 인혜 아니니? 예전에 같은 동네에 살았던 엄마친구 영선이 아줌마야. 넌 너무 어릴 때라 기억이 안날 거야 "라고 아는 척 한다. 아주머니는 서둘러 주방으로 가 자장면과 탕수육을 내 온다. 얼굴에 양념이 시커멓게 묻을 정도로 허겁지겁 먹고 난 아이들에게 자장면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오라고 하는 아주머니.

 

옆에서 지켜보던 아저씨가 "누구네 집 애들이야. 난 기억이 안 나는데"라고 물었다. 아주머니는 "사실은 나도 모르는 아이들이에요. 부모가 없다고 돈을 받지 않고 음식을 주면 아이들이 더 슬플 것 같아서요"라고 말했다. 무턱대고 공짜로 음식을 제공하면 아이들이 상처를 받을까봐 엄마친구로 변해 한턱 쏜 아주머니의 깊고 넓은 마음에 가슴이 찡하다.

 

아주머니는 아이들이 사라진 거리를 바라보고. 감동한 아저씨는 아주머니의 어깨를 말없이 감싸주는 걸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이 책 한 권의 분량은 50문장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감동의 깊이는 어느 대하소설보다 크다. 마지막 장은 눈송이가 사방으로 흩어지는 그림으로 장식했다. 아주머니의 따뜻한 마음이 온 세상으로 은은하게 퍼지는 기분이다. 설 명절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우리 모두 이 책에 나오는 자장면 집 아주머니의 마음이 되어 이웃을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자장면>/이철환 글  장호 그림 / 주니어랜덤/ 9,800원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자장면

이철환 글, 장호 그림, 주니어RHK(주니어랜덤)(2010)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자장면 >#이철환 #장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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