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 좀 봐라!"
거가대교 개통 소식 반가워 한달음에 달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많고 많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기에 참았다가 겨우 좀 진정될 무렵, 그 빠른 환상의 바닷길로 일일생활권이 된 고향을 방문했다. 부업삼아 마루에서 그물질을 하다 말고 잠시 사라졌던 아버지가 손에 뭔가를 들고 다시 들어오시면서 말했다.
"조끼 짜던 게 있길래 내다버릴까 하고 보니까 거의 다 완성된 것이라 아까워서 놔뒀다. 이건 틀림없이 네가 짜던 거다 싶어서 챙겨 놨다. 으나~!"
나는 비닐 봉투 안을 들여다보았다. 아~! 옅은 비명 같은 신음이 새어나왔다. 까마득히 잊고 지냈던 미완성 조끼. 십년도 더 넘은 미완성 조끼는 오래 전, 이사를 하면서 갖가지 물건들을 시골 부모님 집에 맡겨놨던 적이 있었고 그때 이삿짐들 속에 포함되어 있던 것이었다. 그때, 거의 다 완성돼가던 조끼가 아까워 차마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오래 된 미완성 조끼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거의 완성된 작품이었다. 그때 실만 모자라지 않았다면 일찍이 완성하고도 남았을 조끼, 열심히 짜다말고 실이 모자라서 열정도 식어(?)제쳐 둔 모양이다. 앞가슴 테두리부분과 오른쪽 겨드랑이 테두리 부분만 갈무리 하면 입을 수 있는 조끼였다.
요즘이야 아주 고급스러운 실도 많지만 그때 내가 짜던 조끼 실은 그저 그런 보통의 것이었다. 하지만 뜨게방에 발품 팔아가면서 했던지 겉뜨기 안뜨기만으로 한 것이 아니라 제법 까다로운 무늬까지 넣어가면서 만든 조끼다. 부모님을 만나 뵙고 나오면서 조끼를 완성해 아버지께 보내드리겠다고 약속하고 미완성 조끼를 가지고 왔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생각에 잠겼다. 그동안 살면서 조금만 더하면 되는 일들을 이렇게 미완성으로 남겨 둔 일들은 없을까. 내 인생의 미완의 작품들, 그것이 사랑이든 일이든, 꿈이든, 관계든...나도 모르게 매듭을 짓지 못하고 미루어 둔 일, 혹은 포기해버린 것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십년이 훨씬 넘도록 잊고 있었던 미완성의 조끼처럼, 그렇게 캄캄한 기억의 창고 속에 처박혀 있는 것들이, 내가 미처 생각지도 못하고 있는 것들은 또 얼마나 있을까. 정말 중요한 것들을 잊고 지내 온 것은 아닐까, 마음이 착잡해지기도 했다. 아쉬움이 많은 걸 보면 미완의 것들이 많은가보다.
오래 전에 읽었던 <매듭짓기>(이재철)란 책이 떠올랐다. 대나무가 강한 것은 다른 나무와 달리 일정한 간격을 두고 매듭을 지을 줄 알기 때문'이라고 했던가. 대나무의 강인함은 높이가 아니라 매듭에서 비롯된다는 것. 무슨 일이든 매듭짓기를 잘 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우는 글이었다. 새끼줄을 꼬는 것도 마무리, 즉 매듭짓기를 해야 풀어지지 않고, 바느질을 해도 첫 매듭과 끝매듭을 잘 갈무리해야 한다. 운동화도 끈으로 매듭을 잘 만들어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작은 것이라도 내가 흘려 둔 미완의 일들과 꿈들과 관계들과 그 무엇 무엇들...하나 하나 잘 매듭을 지으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인생의 미완성의 것들을 하나 하나 찾아 완성해가는 마음으로, 혹은 지금부터 작은 일에도 잘 매듭짓고 완성하려고 애쓰면서...그렇게. 그런 생각을 하노라니 마음이 좀 무거워졌다.
한편, 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완성되지 못하고 미완으로 남은 것, 그 자체도 삶이라는 것, 그것으로 자족하고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 또한 내 삶을 만들어온 한 부분이요 내 인생이기에 그 자체로도 충분히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것. 또 하나는 이렇게 늦게라도 미완의 것이 완성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십년도 더 넘은 미완성의 조끼가 다시 내게로 왔고 지금에라도 완성할 수 있다는 것, 아~ 무슨 일이든 언젠가는 이루어지는구나...그것은 많은 것을 시사했다.
어디 이 조끼뿐이랴. 모든 일을 따뜻하고 느긋하게 긍정하며 가볍게 바라본다면 그동안 왜 이렇게 살았을까 하는 그래서 채무감만 남는 것이 아니라 감사로 기쁨으로 또한 가볍게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옛 것은 옛 그 자리에, 지금 내 모습 이대로 한 걸음씩 또 앞으로 나아가는 거다. 인생은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미완의 삶. 당장 내 앞에 놓인 미완의 조끼부터 갈무리 지으면서 보다 나은 삶이 되기 위해 겸허하게, 감사하며 오늘도 살아가리.
이 추운 겨울, 얼른 조끼를 완성해 아버지께 드려야겠다. 쌩쌩 달려가는 차창 밖으로 보이는 이른 아침의 푸른 바다는 아침 햇살을 받아 은빛 빛무리로 눈부셨다. 아 멋진 날, 아름다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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