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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좀 봐라!"

 

거가대교 개통 소식 반가워 한달음에 달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많고 많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기에 참았다가 겨우 좀 진정될 무렵, 그 빠른 환상의 바닷길로 일일생활권이 된 고향을 방문했다. 부업삼아 마루에서 그물질을 하다 말고 잠시 사라졌던 아버지가 손에 뭔가를 들고 다시 들어오시면서 말했다.

 

  "조끼 짜던 게 있길래 내다버릴까 하고 보니까 거의 다 완성된 것이라 아까워서 놔뒀다. 이건 틀림없이 네가 짜던 거다 싶어서 챙겨 놨다. 으나~!"

 

나는 비닐 봉투 안을 들여다보았다. 아~! 옅은 비명 같은 신음이 새어나왔다. 까마득히 잊고 지냈던 미완성 조끼. 십년도 더 넘은 미완성 조끼는 오래 전, 이사를 하면서 갖가지 물건들을 시골 부모님 집에 맡겨놨던 적이 있었고 그때 이삿짐들 속에 포함되어 있던 것이었다. 그때, 거의 다 완성돼가던 조끼가 아까워 차마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10년도 훨씬 더 넘은... 미완성 조끼...
10년도 훨씬 더 넘은...미완성 조끼... ⓒ 이명화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오래 된 미완성 조끼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거의 완성된 작품이었다. 그때 실만 모자라지 않았다면 일찍이 완성하고도 남았을 조끼, 열심히 짜다말고 실이 모자라서 열정도 식어(?)제쳐 둔 모양이다. 앞가슴 테두리부분과 오른쪽 겨드랑이 테두리 부분만 갈무리 하면 입을 수 있는 조끼였다.

 

요즘이야 아주 고급스러운 실도 많지만 그때 내가 짜던 조끼 실은 그저 그런 보통의 것이었다. 하지만 뜨게방에 발품 팔아가면서 했던지 겉뜨기 안뜨기만으로 한 것이 아니라 제법 까다로운 무늬까지 넣어가면서 만든 조끼다. 부모님을 만나 뵙고 나오면서 조끼를 완성해 아버지께 보내드리겠다고 약속하고 미완성 조끼를 가지고 왔다.

 

미완성 조끼 뒷면이다...
미완성 조끼뒷면이다... ⓒ 이명화

돌아오는 길에 나는 생각에 잠겼다. 그동안 살면서 조금만 더하면 되는 일들을 이렇게 미완성으로 남겨 둔 일들은 없을까. 내 인생의 미완의 작품들, 그것이 사랑이든 일이든, 꿈이든, 관계든...나도 모르게 매듭을 짓지 못하고 미루어 둔 일, 혹은 포기해버린 것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십년이 훨씬 넘도록 잊고 있었던 미완성의 조끼처럼, 그렇게 캄캄한 기억의 창고 속에 처박혀 있는 것들이, 내가 미처 생각지도 못하고 있는 것들은 또 얼마나 있을까. 정말 중요한 것들을 잊고 지내 온 것은 아닐까, 마음이 착잡해지기도 했다. 아쉬움이 많은 걸 보면 미완의 것들이 많은가보다.

 

오래 전에 읽었던 <매듭짓기>(이재철)란 책이 떠올랐다. 대나무가 강한 것은 다른 나무와 달리 일정한 간격을 두고 매듭을 지을 줄 알기 때문'이라고 했던가. 대나무의 강인함은 높이가 아니라 매듭에서 비롯된다는 것. 무슨 일이든 매듭짓기를 잘 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우는 글이었다. 새끼줄을 꼬는 것도 마무리, 즉 매듭짓기를 해야 풀어지지 않고, 바느질을 해도 첫 매듭과 끝매듭을 잘 갈무리해야 한다. 운동화도 끈으로 매듭을 잘 만들어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작은 것이라도 내가 흘려 둔 미완의 일들과 꿈들과 관계들과 그 무엇 무엇들...하나 하나 잘 매듭을 지으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인생의 미완성의 것들을 하나 하나 찾아 완성해가는 마음으로, 혹은 지금부터 작은 일에도 잘 매듭짓고 완성하려고 애쓰면서...그렇게. 그런 생각을 하노라니 마음이 좀 무거워졌다.

 

한편, 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완성되지 못하고 미완으로 남은 것, 그 자체도 삶이라는 것, 그것으로 자족하고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 또한 내 삶을 만들어온 한 부분이요 내 인생이기에 그 자체로도 충분히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것. 또 하나는 이렇게 늦게라도 미완의 것이 완성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십년도 더 넘은 미완성의 조끼가 다시 내게로 왔고 지금에라도 완성할 수 있다는 것, 아~ 무슨 일이든 언젠가는 이루어지는구나...그것은 많은 것을 시사했다.

 

어디 이 조끼뿐이랴. 모든 일을 따뜻하고 느긋하게 긍정하며 가볍게 바라본다면 그동안 왜 이렇게 살았을까 하는 그래서 채무감만 남는 것이 아니라 감사로 기쁨으로 또한 가볍게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옛 것은 옛 그 자리에, 지금 내 모습 이대로 한 걸음씩 또 앞으로 나아가는 거다. 인생은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미완의 삶. 당장 내 앞에 놓인 미완의 조끼부터 갈무리 지으면서 보다 나은 삶이 되기 위해 겸허하게, 감사하며 오늘도 살아가리.

 

이 추운 겨울, 얼른 조끼를 완성해 아버지께 드려야겠다. 쌩쌩 달려가는 차창 밖으로 보이는 이른 아침의 푸른 바다는 아침 햇살을 받아 은빛 빛무리로 눈부셨다. 아 멋진 날, 아름다운 날이다.


#미완성조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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