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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식도의 마물> 겉표지
<월식도의 마물>겉표지 ⓒ 김준희
1857년, 덴마크 동화작가 안데르센이 영국의 문호 찰스 디킨스의 집을 방문해 몇 주 동안 머물렀다고 한다. 두 명 모두 자국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작가였지만, 작품의 스타일이나 개인적인 성격에서는 많은 차이가 났다.

그래도 문학이라는 공통점이 그 몇 주 동안 그들을 함께 있게 만들었을 것이다. 디킨스와 안데르센은 그 기간동안 술을 마시고 토론을 하고 강연회에 참석하고 연극을 보며 시간을 보냈을테고, 어쩌면 같이 여행을 떠났을 수도 있다.

<은하영웅전설>로 유명한 작가 다나카 요시키의 상상력은 <월식도의 마물>(다나카 요시키 저, 들녘 펴냄)을 통해서 안데르센과 디킨스를 모험의 세계로 던져 넣는다. 그 무대는 스코틀랜드 북쪽에 있는 작은 섬 월식도다. 월식도는 월식이 일어날 때마다 제사를 지내며 산 제물을 바쳤다고 알려진 섬이다.

안데르센과 디킨스의 모험은 19세기에 유행했던 어둡고 음산한 고딕소설과 비슷하다. 월식도에는 사람은 물론이고 북극곰까지 잡아먹는 정체모를 괴생명체가 있다고 한다. 아무리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하지만 어떻게 이 작가들이 그런 괴물에 맞설까?

다수의 실존인물이 등장하는 팩션(Fact+Fiction)

<월식도의 마물>은 3년에 걸친 크림전쟁이 끝난 1856년, 에드워드 니담이라는 젊은 병사가 영국으로 귀국하면서 시작된다. 니담이 탄 배가 도버항으로 들어서자 조카 메이플 콘웨이가 그를 반갑게 맞아준다. 니담과 메이플의 가족들은 당시에 유행했던 콜레라와 풍토병 등으로 모두 세상을 떠났다. 니담의 유일한 혈육은 오직 메이플 뿐이다.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왔지만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니담은 전쟁이 터지기 전에 작은 출판사에서 잡지기자로 일한 경력이 있다. 그 경력을 살려서 대형 도서대여점에 취직한다.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글을 읽고 쓸 줄 알았던 메이플도 함께 그곳에서 일하게 된다.

일을 시작한지 약 일 년 후에, 도서대여점의 사장은 니담에게 한 가지 일을 맡긴다. 안데르센이 지금 디킨스의 집에 머물고 있는데, 메이플과 함께 그 집에 가서 두 문호의 시중을 들어달라는 것이다. 이때 안데르센은 쉰두 살, 디킨스는 마흔다섯 살이었다.

이렇게 해서 니담은 유럽의 양대 문호와 인연을 맺게 된다. 니담과 메이플이 디킨스의 집을 찾아가고 디킨스와 안데르센은 이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니담은 그곳에서 신문을 통해 영국에 떠도는 괴상한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스코틀랜드 북쪽에 있는 월식도 주변에 빙산에 갇힌 대형 범선이 있다는 것이다.

그 범선은 수 세기 전의 스페인 함선으로 짐작되지만 어쩌다가 빙산에 갇히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빙산과 범선을 제대로 관찰하려면 월식도에 들어가야 한다. 호기심이 동한 디킨스는 안데르센, 니담, 메이플과 함께 스코틀랜드로 향한다. 고대의 게일어가 통하는 하이랜드, 세상의 끝처럼 느껴지는 황량한 곳으로 들어선 것이다.

월식도에 간다고 해서 이들이 범선의 비밀을 모두 알아낸다는 보장도 없다. 게다가 포악하기로 악명 높은 월식도의 영주와도 맞서야 하고, 그린란드에서 정착민들을 몰살시켰다는 정체불명의 괴물이 월식도에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이런 모든 위험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용감하게 또는 무모하게 월식도로 향하는 배에 오른다.

빙산에 갇힌 범선과 괴물의 정체는 무엇일까

<월식도의 마물>은 1인칭 주인공인 니담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모험도 흥미롭지만 니담이 묘사하는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풍경도 생생하게 다가온다. 니담은 크림전쟁에서 온갖 고생을 하고 귀국했어도 런던의 모습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 런던은 산업혁명 덕분에 상공업으로 먹고 살 수 있는 도시가 되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점점 늘어난다.

열 살짜리 아이가 탄광에서 14시간 동안 일을 한다. 중노동에 시달리다 깜빡 졸기라도 하면 머리에 찬물을 한 바가지 뒤집어 쓴다. 런던에 사는 열다섯 살 이하의 아이들 중에서 학교에 다니는 아이는 절반 밖에 되지 않는다. 영국은 전통적으로 술과 마약에 관대한 나라였다. 열 살짜리 아이가 술집에서 맥주를 마셔도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에 선술집에 들어서면 아이들이 앉아서 맥주를 마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여성은 전체 여성의 60%가 채 안된다. 이 통계도 그리 믿을만 하지 않다. 단순히 자신의 이름만 적을 줄 알아도 '글자를 쓸 줄 아는 사람'으로 분류되었다. 그러니 실제 문맹률은 훨씬 더 높을 것이다.

니담의 조카 메이플은 이런 상황에서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신은 1840년에 태어났지만 수천년 전에 이집트에서 피라미드가 만들어졌고, 그 피라미드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알고 있다고 말한다. 어떻게? 바로 독서를 통해서다.

메이플은 독서를 가리켜서 '책상 앞에 앉은 채로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여행을 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월식도의 마물>을 읽다보면 독자들도 메이플의 말처럼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모험을 하게된다.

덧붙이는 글 | <월식도의 마물> 다나카 요시키 지음 / 김윤수 옮김. 들녘 펴냄.



월식도의 마물

다나카 요시키 지음, 김윤수 옮김, 들녘(2010)


#월식도의 마물#안데르센#찰스 디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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