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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말로 아이폰이 한국에 들어온 지 만 1년이 됩니다. 아이폰이 상징하는 스마트폰, 모바일 열풍은 사용자들뿐 아니라 한국 사회 곳곳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과연 스마트폰은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꿔 놓았는지 다양한 사용자의 시선으로 살펴보는 기획 <아이폰 1년, OO을 바꾸다>을 마련했습니다. 첫 번째 시선은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누구보다 먼저 경험한 한 얼리어답터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이 기획에는 시민기자 여러분도 자유롭게 동참하실 수 있습니다. [편집자말]
 아이패드 앱 소개를 하고 있는 민서(왼쪽)와 선우(오른쪽).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아이패드 앱 소개를 하고 있는 민서(왼쪽)와 선우(오른쪽).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 정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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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제가 '홈3D'라는 앱을 소개하겠습니다. 홈3D는 인테리어 등 자기 집을 만드는 것입니다. 여기서 새로 만들려면..."

내로라하는 IT 전문가들이 아이폰 이야기를 연재하는 스마트폰 앱 포털사이트 '앱톡'(http://www.apptalk.tv)에서 요즘 초등학생들이 만든 아이패드 동영상이 작은 화제다.

초등학생 4학년 정선우와 1학년 민서 남매는 간단한 그림 그리기부터 음악 연주, 영어 공부, 집짓기까지 평소 즐기는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 아래 앱)을 아이들 눈높이에서 재미있게 소개한다. 누리꾼들은 어른 못지않은 선우의 조리 있고 차분한 리뷰에 감탄하는가 하면 앞니 2개가 빠진 민서의 새는 발음에 귀여워 어쩔 줄 모른다. 

아이폰으로 아이들 리뷰를 찍으면서 중간 중간 추임새를 넣는 역할은 아빠 정지훈(41)씨 몫이다. 관동의대 명지병원 IT융합연구소장인 정씨는 IT 블로그 '하이컨셉&하이터치(http://health20.kr)를 운영하는 소셜 미디어 전문가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지난 18일 낮 종로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났을 때도 본업(?)과는 무관한 IT 관련 강연을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다. 



어렵게 장만한 아이패드, 아이들에게 넘겨준 까닭

정씨는 지난 5월 외국 출장길에 아이패드를 장만했다. 아이패드를 보자마자 아이들에게 딱 맞겠다 싶어 선우와 민서에게 미련 없이 양보했다고 한다. 

"예전에는 책이나 레고를 권하는 게 고작이었는데 아이패드로 공감대를 느끼면서 아이들과 대화가 늘었어요. 앱은 권해 주거나 아이들이 직접 고르기도 하지만 결제는 아빠가 하니까 평소 앱 스토어에 찍어둔 앱 이야기를 하거나 자기가 아이패드로 만든 작품을 평가해 달라고 하기도 하죠."

평소 '미디어 아트'에 관심이 많은 선우는 신개념 음악 앱인 '비트 웨이브'나 집 짓기 앱인 '홈3D' 같이 기술과 예술을 접목한 프로그램에 관심이 많다. 반면 여동생 민서는 터치 스크린을 도화지처럼 활용하는 그림 그리기 앱이나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동화책 앱들을 더 좋아한다.

아이들의 스마트 기기 활용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아빠가 쓰던 '옴니아2'를 물려받은 선우는 얼마 전 할머니 댁에 놀러갔다가 사촌형을 조연출, 동생을 소품 담당 삼아 단편 애니메이션을 직접 찍었다. '사나이'란 제목이 붙은 이 작품은 정부 비밀요원인 주인공이 테러리스트가 있는 빌딩을 폭파하는 이야기다.

레고 블록 장난감과 실, 투명테이프를 이용해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을 투박하게 흉내 내긴 했지만 초등학생들 작품이라곤 믿기지 않는다. 더 놀라운 건 스마트폰 촬영부터 편집, 한글 영문 자막 등 후반부 작업까지 아이들 손으로 했다는 것이다.

"레고, 과학상자 등으로 새로운 걸 만들기 좋아하는 줄을 알았는데 아이패드로는 다양한 기술들을 음악, 미술 등 예술에 접목시키는 일에 관심을 갖더라고요. 덕분에 숨은 적성을 찾았죠."



유료 앱 구매 한 달 3~4만 원... 학습지 판도 변화 예고

아이들도 온라인 게임 때문에 PC를 종종 쓸 때를 제외하곤 웹서핑 등 대부분의 시간을 아이패드와 함께 보낸다고 한다. 닌텐도나 플레이스테이션2 등 다른 게임기뿐 아니라 아이폰과는 전혀 다른 경험 때문이다.

"아이들도 아이폰이 전화기라면 아이패드는 컴퓨터처럼 완전히 다른 기기로 받아들여요. 응용 프로그램도 다르고 화면 크기에 따른 경험도 달라요. 아이폰이 소통 역할을 하면서 개인적 용도로 쓴다면 아이패드는 콘텐츠 소비와 재창작 용도가 강하죠."

아이패드 앱 가운데서도 교육용, 학습용 앱들이 단연 인기다. 대부분 무료 앱이긴 하지만 유료 앱 구매도 늘어 선우네 집에서도 매달 3~4만 원 정도 쓴다고 한다. 평소 학습지나 사교육비로 나가는 돈을 감안하면 그렇게 큰돈은 아닌 셈이다.   

"앞으로 학습지 시장 판도가 바뀔 거예요. 교재 풀고 채점하는 경험을 넘어서 아이패드가 쌍방향성을 높여 앱과 선생님, 아이들이 직접 해보는 것이 삼위일체가 될 거예요. 교육업체들도 이미 많이 준비하고 있어요. '빨간 펜' 시장이 새로 열린다고들 하잖아요."

 아이패드를 사용하고 있는 민서와 선우.
 아이패드를 사용하고 있는 민서와 선우.
ⓒ 정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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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부모들이 PC와 게임에 아이를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아이패드 역시 부모와 아이들 사이를 갈라놓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정씨는 '기우'일 뿐이라고 말한다.  

"아이들을 아이패드에게 빼앗기느냐는 부모에게 달렸어요. 저처럼 앱 결제를 매개로 이야기를 더 하게 될 수도 있고, 앞으로 공교육보다 부모의 적극적인 역할이 더 중요하잖아요. 학원 입소문 듣고 다른 학부모들과 잡담하는 시간에 드는 노력이면 충분해요."

한편으로 정씨는 스마트 기기와 더불어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 미디어를 통해 한국 사회에 뿌리내리기 시작한 '소셜 문화'에 주목한다.

"아이패드 동영상을 올려 받는 원고료를 아이들에게 주면서 어렵게 사는 아이들에게 기여하자고 제안했더니 원고료 절반은 유니세프 등에 기부하기로 했어요. 평소에도 아이들에게 유산은 없다, 엄마 아빠 재산도 사회에 환원할 거다, 사회에서 돈을 벌었으니 일부를 돌려주는 건 당연하다고 가르쳐왔죠. 대신 스스로 소셜화하라, 사회적 자본의 중요성을 가르치죠."

"아이폰 도입, 가장 큰 수혜자는 국민... 이통사 헤게모니 잃어"

 의사 출신이면서 IT 전문가로 더 잘 알려진 정지훈 관동의대 명지병원 IT융합연구소장
 의사 출신이면서 IT 전문가로 더 잘 알려진 정지훈 관동의대 명지병원 IT융합연구소장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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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출신이면서 IT에 더 관심이 많았던 정씨가 지금 병원에서 하는 일도 IT 기술을 병원 경험에 접목하는 것이다. 그동안 병원정보시스템이 단순히 병원 종사자들이 하는 일을 돕는 데 쓰였다면 '병원 2.0'에선 환자 관점에서 활용하는 것이다.

"병원은 환자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자 생활 공간이에요. 태블릿PC를 차트 대신 활용하는 것 이상으로 의사와 환자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감성적인 디자인이 중요해요. 또 입원하면 실제 처치에 드는 시간은 10% 정도이고, 나머지 90%는 생활 공간으로 쓰이잖아요. 그런 병원을 더 재밌고 덜 지루하고 인간적인 환경으로 만드는 일도 중요하죠."

1년 전 아이폰 국내 도입 이후 불어닥친 스마트기기 혁명은 선우-민서 가족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일부러 아이폰4와 갤럭시S '투폰'을 쓰는 정씨는 이런 변화를 누구보다 먼저 체감하고 있다.

"아이폰을 쓰면서 일처리도 빨라지고 그때그때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죠. 그만큼 나 자신을 위해 쓰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이동시간 활용도도 높아져 운전하는 대신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하게 돼요."

정씨는 아이폰 도입으로 비즈니스 문화가 개인 문화로 바뀌었다고 말한다. 기존 PC가 직장, 조직, 업무와 관련돼 있다면 휴대폰은 나와 연관된 사람들과 소통하는 개인화된 기기라는 것이다. 아이패드는 한 발 더 나아가 우리가 보는 콘텐츠와 새로운 소비, 재창작 활동 등에 영향을 줄 것으로 봤다.

"아이폰 도입의 가장 큰 수혜자는 국민이죠. 그동안 통신시장은 이통사와 공급자가 쥐락펴락 해왔는데 이제 KT도 SKT도 헤게모니를 잃었잖아요. 아이폰이 통신사 경쟁을 유도하면서 데이터 사용료 떨어진 것 보세요. 다음은 방송과 신문 차례죠. 정부도 더는 콘텐츠 유통을 규제할 수 없을 테니까요."


#아이폰#아이패드#정지훈#스마트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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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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