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남'이니 뭐니 하며 버스에서 졸고 있던 자신에게 어깨를 빌려준 사람을 찾는다는 글을 보았습니다. 사람을 찾고 싶은 마음이 이런 마음인가 봅니다.
8일, 다른 사람의 차에 동승해 천안을 다녀오다 대전 유성온천역 사거리에서 내렸습니다. 뚝 떨어진 기온에 어깨를 움츠리며 택시를 잡으려고 하는 순간 바로 앞 승강장에 집 쪽으로 가는 114번 버스가 서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동안 보기만 했지 한 번도 타보지 않은 114번.
버스 노선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한 마음에 오후 9시 35분경, 유성온천역 사거리에서 가수원쪽으로 운행 중인 114번 버스를 탔습니다. 버스에 올라타며 지갑을 열어 봤지만 1000원짜리 지폐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만 원짜리 지폐를 꺼내들고 운전기사분에게 다가가 "이거 넣으면 거슬러 주나요?"하고 물었더니 아주 간단하게 "안 됩니다" 합니다.
그럴 경우 옆으로 비켜 서서 탑승객들이 넣으려고 하는 버스비에서 거스름 돈에 해당하는 금액을 챙겨야 한다는 걸 오늘에서야 알았지만 설사 그것을 알았다고 해도 탑승객들이 많지 않을 거리이기에 소용 없었을 겁니다.
버스비 없어 당황한 내게 친절을 베풀어준 사람
순간 '에이~ 택시비보다 더 비싼 버스 타게 생겼네'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잠깐만요"하고, 옆으로 비켜서서 이 주머니 저 주머니를 뒤지고 있는데 앞에 서 계시던 어느 여자 분(30대 후반으로 보였음)께서 물었습니다.
"1000원짜리 없으세요?""아! 예~ 준비 없이 타서…"말꼬리를 흐리며 대답하니 그 분이 버스 요금통에 1000원짜리 지폐를 한 장 넣는 게 보였습니다. 찰나였지만 얼굴이 화끈해지며 뜨끈뜨끈한 군고구마를 한 입 베어문 것처럼 가슴이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주머니에 1000원짜리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어차피 만 원짜리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아무런 이유없이 버스비를 대납해 준 저 분에게 드려야겠다는 생각에 만 원짜리 지폐를 꺼내는 순간 만 원 짜리 지폐 사이에 낀 1000원짜리가 보입니다.
얼른 1000원짜리를 꺼내 들고 "감사합니다"하며 그 분께 건네 드렸습니다. 그 분께서는 왜 선뜻 생면부지인 내 버스비를 대납해 주었을까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같은 아파트에 살아서 단지 안에서 뵌 적이 있는 분인가? 아무리 생각을 해도 기억에 없는 분이기에 "혹시 저를 아세요?"하고 물었더니 짧게 "아니요"하고 모르는 사이임을 확인해 주십니다.
고마운 그 분께 소박한 식사 한 끼 대접하고 싶습니다혹시 같은 곳에서 내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내릴 곳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그 분은 차창 밖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 내릴 기세가 아닙니다. 내려야 할 정류장 100m 전 쯤 돼서 그 분의 어깨를 두 번 톡! 톡! 노크했더니 고개를 돌려 바라봅니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진국처럼 뽀얗게 우러난 감사하는 마음을 "차비 고마웠습니다"라는 말로 전하니 가벼운 목례로 받아줍니다. 정말 찰떡 같은 마음으로 인사를 했는데 그 찰떡 같은 마음이 그 분에게까지 전해졌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버스에서 내리니 뚝 떨어진 기온에 몸은 차가왔지만 마음엔 온기가 돕니다. 준비 없이 올라탄 버스에서 자칫 썰렁함을 경험할 수 있었던 순간에 군고구마나 주머니난로처럼 초 겨울의 한기를 따뜻하게 덥혀준 그 분이 참 고맙습니다.
혹시 8일 오후 9시 35분경, 유성온천역 사거리에서 가수원으로 가는 114번 버스에서 검은색 가죽점퍼 입은 키 작은 어떤 아저씨 버스비를 대납해 주시려고 했던 분이나 그 분을 아는 분께서는 이 글 보시면 연락 주십시오. 벽난로처럼 거창한 식사는 아닐지라도 주머니난로 같은 소박한 식사 한 끼를 대접해 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