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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을 방불케 하는 한국의 G20준비 상황

 

멀리 바다 건너 외국에서 인터넷을 통해 지켜보는 한국의 수도 서울의 모습은 지금 거의 계엄상황을 방불케 하는 것 같다.

 

지하철역내의 쓰레기통은 전부 치워지고 공항가는 길목에 장갑차가 배치되는 건 테러위협 때문에 그렇다치고 공무원은 본업을 제쳐놓고 거리청소에 동원되고 회의장 인근 고등학교는 휴교를 한다고 한다.

 

TV는 온통 'G20 기념' 문화행사로 도배되고, 뉴스에는 연일 G20회의를 계기로 한국의 위상이 크게 높아지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 시내의 큰 건물들에는 'G20 경축' 플래카드가 물결치고 있다고 한다.

 

행사장인 코엑스 인근 노점상들은 미관을 해친다며 영업을 못하게 한다. 지금이 88올림픽때인가 의심이 간다. 그렇다면 우리가 20여 년 전으로 후퇴한 것이 아닌가.

 

외국 손님들이 오는 길목에 음식물 쓰레기 처리장이 있어 냄새가 날지도 모르니 시민들에게 음식물 쓰레기 배출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가 "밥도 먹지 말란 말이냐"는 항의를 받고 철회하는 촌극에는 할 말을 잊을 지경이다.

 

"자유로운 시위를 보장하는 것도 경찰의 임무"

 

"테러를 막아야 하지만, 헌법에 보장된 평화롭고 자유로운 시위를 보장하고 보호하는 것 또한 경찰의 임무이다."

 

어느 시민단체의 성명이 아니다. 한국보다 5개월 앞서 G20회의(6월 26-27일)를 치렀던 토론토의 경찰 총수 빌 블레어가 행사를 이틀 앞두고 정상회담 경비상황을 점검하는 CBC-TV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블레어는 이어 "합법적이고 평화로운 시위대가 다른 목적을 가지고 참가하는 그룹에 말려들지 않길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토론토 G20 첫날인 지난 6월 26일 기자는 2시간여 시위대를 동행 취재할 기회가 있었는데, 정말 다양한 조직에서 나온 수 천명의 시위대가 평화롭고 자유롭게 시위하는 광경을 보았다.

 

이날 시위대는 대부분 G8, G20 반대 슬로건을 내걸고 있었다. 각국 정상들이 호화로운 만찬을 즐기고 경호비용으로 10억 달러를 지불하는 대신, 캐나다와 전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많은 예산을 집행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다양한 민족의 구성원들이 자기 의사를 표현했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방문에 맞추어 '자유 티벳'을 외치는 사람들, 베트남의 자유를 요구하는 사람들부터 인도의 카슈미르 탄압 중지를 요구하는 단체, 이란의 정치범 탄압을 규탄하는 사진을 들고 다니는 여인들까지….

 

또한, 자동차노조, 철강노조, 공공노조 등 노조원 뿐 아니라 등록금 인하를 주장하는 대학생들, '자전거를 사용하면 석유 때문에 전쟁할 필요가 없다'고 외치는 단체와 환경보호단체, 녹색당 등의 모습도 보였고, 동물학대 금지, 여성의 낙태권 인정 등 다양한 주장들이 나왔다.

 

물론 시위 막판에 소수 시위대와 경찰 사이에 다소의 폭력적인 충돌이 빚어지기는 했으나 시위의 전반적인 모습은 이같이 평화롭고 자유로운 것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며칠 전 기자회견에서 "일부 단체가 (G20회의에) 반대를 하고 시위를 하겠다고 하지만 반대할 만한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자제를 요구했다. 그러나, 반대할 만한 이유가 있는지 없는지는 해당 단체가 판단할 일이지 대통령이 판단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일부 단체와 야당의 반대로 경찰의 음향대포 도입이나 야간시위를 불법화하는 집시법 개정이 좌절됐지만, 우리 정부의 대응이 이전 회의보다 훨씬 강경할 것은 불보듯 뻔하다. 7일 벌어진 서울광장 노동자대회의 거리행진에 최루액을 동원해 막아서는 광경은 그 서막에 불과하다.

 

이제까지 선진국에서 열렸던 G20회의에서는 어김없이 크고 작은 반세계화 시위가 벌어졌는데, 서울에서만 아무 시위나 집회 없이 '고요하게' 끝난다면 그게 과연 세계에 자랑할 만한 일이고 국격이 올라가는 일일까? 

 

 

"G20회의 신문 보고 알았다"는 공항 직원

 

토론토 국제공항에서 탑승객 수속업무를 하는 한인 K씨는 기자와 통화에서 "나는 지난 6월 토론토에서 G20 정상회의가 있다는 것을 행사 당일 신문을 보고서야 알았다"고 전했다.

 

공항에서 평소와 달리 특별한 홍보 현수막을 걸거나 하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토론토 국제공항은 회의에 참석하는 세계 정상들의 비행기가 이착륙했던 곳이다.

 

또한, 정상회의 기간도 서울(목~금)과는 달리 시민들이 별로 움직이지 않는 주말(토~일)이어서 일반 시민들은 평소와 다른 차이나 불편함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다만, 정상들 차량행렬이 공항에서 회의장까지 이동하는 동안 도로 일부분을 통제함에 따른 교통정체는 있었다.

 

기자도 행사 첫날 국제미디어센터를 찾기 위해 행사장 주위의 경찰에게 몇차례 위치를 물어야 했을 정도로 행사가 조용했다. 시위대와 토론토 다운타운을 취재할 때도 G20 홍보용 대형 걸개그림이나 커다란 홍보물 등을 전혀 볼 수 없었다.

 

TV방송 등은 정규뉴스 시간에만 행사관련 뉴스를 내보냈다. 서울처럼 행사 며칠 전부터 카운트 다운하는 특별방송이나, G20 글로벌 에티켓 캠페인같은 '요란한' 프로그램을 따로 하진 않았다.

 

행사 약 5개월이 지난 캐나다에서 '토론토 G20'은 이미 잊힌 지 오래다. 관련 뉴스라곤 경찰의 과잉진압에 대한 법률적인 공방만 가끔 있을 뿐이다. 당시 체포되었던 1000여 명의 시민들 대부분이 무혐의로 풀려났으며, 300여 명만 기소되었다.

 

하지만 이 중 100여 명도 지난 10월 기소취하로 풀려났다. 인권단체와 시민단체들은 여전히 이번 행사로 '시민의 기본권'이 중대하게 침해당했다며, 경찰력을 견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명찰을 떼고 진압했던 약 90여 명의 경찰은 징계를 받았다. CBC-TV 보도에 의하면, 토론토 경찰총수 빌 블레어는 의회 하원 공공안전위원회에 출석하여 "경찰이 근무중 이름표를 뗀 것은 명백히 위법행위이다. 일부는 시위대와 충돌하며 떨어질 수도 있었지만, 일부는 고의로 자신을 숨기기 위해 뗀 것으로 보인다"며 이의 판독을 위해 2만 시간 이상 비디오판독을 했다고 밝혔다.

 

 

"G20 회의는 총리 홍보사진 찍는 대회였다"

 

"캐나다가 토론토 G20회의에서 얻은 건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하퍼 총리가 자신의 홍보사진을 찍는 기회였을 뿐이다."

 

광역 토론토의 연방의원 폴 자보(자유당)가 기자의 이메일에 보낸 답변이다.

 

그는 "10억불을 투입한 행사에서 전 세계에 알린 것이라곤 소수의 폭력시위를 막지 못한 경찰, 그후 대다수 무고한 시민 1000여 명을 체포하는 폭력성 등 나쁜 것들 뿐"이었다며 오히려 "토론토의 이미지만 추락시켰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여론의 반응에 대해 묻는 질문에 "여론조사를 했는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명백하게 부끄러웠던 행사에 대해 묻는 여론조사 자체가 예산 낭비"라며, "토론토 시민과 캐나다인 전체를 수치스럽게 만든 행사"였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 때문인지 G20이 끝난 직후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입소스 리드'가 캐나다 성인 1859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에서 응답자의 62%가 "캐나다에서 G20회의를 개최한 것은 실수"라고 대답했다.

 

한편, G20 서울회의가 며칠 남지 않았지만, 바로 5개월전에 같은 행사를 한 토론토 주요 언론들의 서울 회의 관련 보도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G20#토론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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